[뉴스 따라잡기] 119 무전 도청…“심정지” 들리면 출동

입력 2017.08.02 (08:34) 수정 2017.08.02 (10:2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기자 멘트>

119 소방대원이 사용하는 무전기에는 긴박한 사고 현장의 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겠죠.

그런데 이 무전 내용을 24시간 엿듣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19 상황실의 무전을 불법 도청한 건데요.

이들이 노린 건 사망 사고와 관련된 무전입니다.

심정지나 변사 사건 등의 무전 내용이 들리면 즉각 반응했습니다.

사고 현장으로 먼저 달려가 시신을 운구하고, 특정 장례 업체에 넘겨 돈을 챙겨온 일당이었습니다.

이런 수법으로 시신 운구를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2년 동안 번 돈이 45억 원이 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불법 도청이 가능했을까요.

사건의 전말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경찰이 부산의 한 아파트를 압수수색합니다.

창가에는 일반 가정집에선 보기 힘든 무전기와 안테나가 놓여있습니다.

<녹취> 경찰 : “휴대폰이 하나네요. (네.)”

<인터뷰> 이종봉(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의료범죄수사팀) : “소방 본부의 변사, 사고사 현장의 무전 교신을 불법 감청해 장례를 진행하면서 불법 수익금을 벌어드린 일당을 일망타진한 사건입니다.”

무전기와 안테나를 설치하고, 휴대전화를 이용해 장례 업체와 관련된 사람들이 소방 본부의 무전 내용을 24시간 도청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런 도청을 통해 2년 동안 벌어들인 수익은 45억 원 상당.

119 상황실에서 각 관할 안전 센터로 보내는 무전이 표적이 됐습니다.

<녹취> 119 대원 : “53세 남자. 의식 호흡 없음. 심정지 추정. 몸이 약간 굳은 것 같긴 한데…….”

소방서 무전을 들은 조직원은 곧바로 조직의 우두머리로 통하는 46살 임 모 씨에게 내용을 보고합니다.

<녹취> 임○○(피의자/음성변조) : “무슨 동이고 빨리 봐라.”

<녹취> 감청 담당(피의자/음성변조) : “분명히 좌동인가 싶었는데 사직동이네요. 형님.”

사망 사고 현장 위치를 보고받은 임 씨는 곧바로 사설 구급차를 현장으로 보내 시신을 운구하게 하고, 특정 장례 업체에게 시신을 보냈습니다.

장례비를 노리고 시신을 선점하기 위해 소방서의 무전을 불법 도청해오고 있었던 겁니다.

<인터뷰> 이종봉(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의료범죄수사팀) : “감청 조가 있고 시체를 운구하는 출동 조가 있고 거기다가 부산에 각 지역별 장의사 조가 있는데 각 지역별 장의사 조들이 벌어들인 장례 수익금을 가지고 모든 공범이 나눠 가지는 방식인데…….”

불법도청조와 현장출동조, 장례진행조 등 3개 팀이 조직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인터뷰> 이종봉(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의료범죄수사팀) : “먼저 출동해서 와 있다. 그러면 이 시신에 대한 장례는 (먼저 온 사람이) 할 수 있다. 장례 업체에서는 자기들 (업계) 관행이기 때문에 먼저 온 사람한테 양보하는 거로…….”

도청조가 소방서 무전을 유심히 듣다가 사망자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식이었습니다.

<인터뷰> 이종봉(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의료범죄수사팀) : “호흡 정지, 그다음 추락, 목멤, 산에 목메었다고 하면 당연히 변사겠죠. 주로 그런 표현을 암호화한다고 하지만 <인터뷰> 암호화돼 있다 하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는 표현이고…….”

불법 도청조는 주야간으로 교대하면서 24시간 내내 소방서 무전을 엿들어 왔습니다.

대장이라는 조직의 총책 임 씨와 감청 담당, 구급차 운전기사, 장례업자 등이 2년간 이렇게 45억 원 넘는 부당 이득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는데요.

<인터뷰> 이종봉(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의료범죄수사팀) : “45억 원 이상으로 생각합니다. (임 씨가) 매달 받은 상납 금액이 파악한 게 4~5천만 원 정도 되거든요. 그냥 상납받은 금액만.”

총책 임 씨는 시신을 보내준 대가로 장례 업체 한 곳에서 월 4백만 원에서 많게는 1천4백만 원을 상납받았습니다.

여기에 더해 장례 수익의 일부도 챙겨온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구급차 운전기사와 감청 조직원들은 매달 월급으로 1백40만 원에서 2백50만 원씩을 받았습니다.

부산 지역 장의 업계에선 이 조직의 존재가 암암리에 알려졌었습니다.

<녹취> 장의 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많이 들어봤지요. 운구차 기사들이 자기들 정해 놓은 장의 업체에다가 연락을 합니다.”

불법 도청으로 운구한 시신은 하루 평균 네 구.

한해에 1천5백 구 정도를 선점해 처리했습니다.

부산 지역에서 한 해 발생하는 변사 사건이 평균 2천6백 건인데, 절반이 넘는 시신이 이 조직의 손에 먼저 들어간 겁니다.

<녹취> 장의 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조직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그 가족들이 원하는 장례식장에 모셔 놓는 게 아니고 자기들이 장례를 편하게 치를 수 있는 장례식장으로 옮겨놔 버린 거예요. 미리 선점해서.”

유족들도 이런 업체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피해를 봐야했습니다.

장례 업체를 원하는 곳으로 바꾸기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녹취> 장의 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수의를 입혀놓는다든지, 더 이상 손을 못 쓰도록 자기네들 선조치를 해놓는다. 이 말이에요. 그 값을 치르고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그렇게 이야기하거든요.”

<녹취> 장의 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장례를 치르면서 바가지를 씌울 수밖에 없는 거예요. 우리가 100만 원 받을 거 그 사람들은 150만 원, 200만 원 받는 거죠.”

부산에서 소방서 무전이 뚫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2년 전에도 장례업자들이 무전을 도청하는 비슷한 사건이 있었지만, 개선이 되지 않았습니다.

<녹취> 부산 소방안전본부 관계자 : “주파수 접속 방식이 아날로그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고도화된 암호화 장비를 쓰더라도 이게 미국이나 일본 등 도청 해독 장비에 쉽게 노출이 됩니다.”

부산 소방안전본부는 3백3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무전기를 디지털 장비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녹취> 부산 소방안전본부 관계자 : “현재는 42.5% 928대를 교체 완료했고 나머지 1,250대는 2020년까지 디지털로 전면 전환할 예정입니다.”

경찰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총책 임 씨 등 6명을 구속하고, 다른 조직원 6명도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경찰은 불법 도청으로 부당 수익을 올리는 장의 업체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뉴스 따라잡기] 119 무전 도청…“심정지” 들리면 출동
    • 입력 2017-08-02 08:35:47
    • 수정2017-08-02 10:22:24
    아침뉴스타임
<기자 멘트>

119 소방대원이 사용하는 무전기에는 긴박한 사고 현장의 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겠죠.

그런데 이 무전 내용을 24시간 엿듣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19 상황실의 무전을 불법 도청한 건데요.

이들이 노린 건 사망 사고와 관련된 무전입니다.

심정지나 변사 사건 등의 무전 내용이 들리면 즉각 반응했습니다.

사고 현장으로 먼저 달려가 시신을 운구하고, 특정 장례 업체에 넘겨 돈을 챙겨온 일당이었습니다.

이런 수법으로 시신 운구를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2년 동안 번 돈이 45억 원이 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불법 도청이 가능했을까요.

사건의 전말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경찰이 부산의 한 아파트를 압수수색합니다.

창가에는 일반 가정집에선 보기 힘든 무전기와 안테나가 놓여있습니다.

<녹취> 경찰 : “휴대폰이 하나네요. (네.)”

<인터뷰> 이종봉(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의료범죄수사팀) : “소방 본부의 변사, 사고사 현장의 무전 교신을 불법 감청해 장례를 진행하면서 불법 수익금을 벌어드린 일당을 일망타진한 사건입니다.”

무전기와 안테나를 설치하고, 휴대전화를 이용해 장례 업체와 관련된 사람들이 소방 본부의 무전 내용을 24시간 도청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런 도청을 통해 2년 동안 벌어들인 수익은 45억 원 상당.

119 상황실에서 각 관할 안전 센터로 보내는 무전이 표적이 됐습니다.

<녹취> 119 대원 : “53세 남자. 의식 호흡 없음. 심정지 추정. 몸이 약간 굳은 것 같긴 한데…….”

소방서 무전을 들은 조직원은 곧바로 조직의 우두머리로 통하는 46살 임 모 씨에게 내용을 보고합니다.

<녹취> 임○○(피의자/음성변조) : “무슨 동이고 빨리 봐라.”

<녹취> 감청 담당(피의자/음성변조) : “분명히 좌동인가 싶었는데 사직동이네요. 형님.”

사망 사고 현장 위치를 보고받은 임 씨는 곧바로 사설 구급차를 현장으로 보내 시신을 운구하게 하고, 특정 장례 업체에게 시신을 보냈습니다.

장례비를 노리고 시신을 선점하기 위해 소방서의 무전을 불법 도청해오고 있었던 겁니다.

<인터뷰> 이종봉(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의료범죄수사팀) : “감청 조가 있고 시체를 운구하는 출동 조가 있고 거기다가 부산에 각 지역별 장의사 조가 있는데 각 지역별 장의사 조들이 벌어들인 장례 수익금을 가지고 모든 공범이 나눠 가지는 방식인데…….”

불법도청조와 현장출동조, 장례진행조 등 3개 팀이 조직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인터뷰> 이종봉(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의료범죄수사팀) : “먼저 출동해서 와 있다. 그러면 이 시신에 대한 장례는 (먼저 온 사람이) 할 수 있다. 장례 업체에서는 자기들 (업계) 관행이기 때문에 먼저 온 사람한테 양보하는 거로…….”

도청조가 소방서 무전을 유심히 듣다가 사망자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식이었습니다.

<인터뷰> 이종봉(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의료범죄수사팀) : “호흡 정지, 그다음 추락, 목멤, 산에 목메었다고 하면 당연히 변사겠죠. 주로 그런 표현을 암호화한다고 하지만 <인터뷰> 암호화돼 있다 하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는 표현이고…….”

불법 도청조는 주야간으로 교대하면서 24시간 내내 소방서 무전을 엿들어 왔습니다.

대장이라는 조직의 총책 임 씨와 감청 담당, 구급차 운전기사, 장례업자 등이 2년간 이렇게 45억 원 넘는 부당 이득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는데요.

<인터뷰> 이종봉(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의료범죄수사팀) : “45억 원 이상으로 생각합니다. (임 씨가) 매달 받은 상납 금액이 파악한 게 4~5천만 원 정도 되거든요. 그냥 상납받은 금액만.”

총책 임 씨는 시신을 보내준 대가로 장례 업체 한 곳에서 월 4백만 원에서 많게는 1천4백만 원을 상납받았습니다.

여기에 더해 장례 수익의 일부도 챙겨온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구급차 운전기사와 감청 조직원들은 매달 월급으로 1백40만 원에서 2백50만 원씩을 받았습니다.

부산 지역 장의 업계에선 이 조직의 존재가 암암리에 알려졌었습니다.

<녹취> 장의 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많이 들어봤지요. 운구차 기사들이 자기들 정해 놓은 장의 업체에다가 연락을 합니다.”

불법 도청으로 운구한 시신은 하루 평균 네 구.

한해에 1천5백 구 정도를 선점해 처리했습니다.

부산 지역에서 한 해 발생하는 변사 사건이 평균 2천6백 건인데, 절반이 넘는 시신이 이 조직의 손에 먼저 들어간 겁니다.

<녹취> 장의 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조직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그 가족들이 원하는 장례식장에 모셔 놓는 게 아니고 자기들이 장례를 편하게 치를 수 있는 장례식장으로 옮겨놔 버린 거예요. 미리 선점해서.”

유족들도 이런 업체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피해를 봐야했습니다.

장례 업체를 원하는 곳으로 바꾸기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녹취> 장의 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수의를 입혀놓는다든지, 더 이상 손을 못 쓰도록 자기네들 선조치를 해놓는다. 이 말이에요. 그 값을 치르고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그렇게 이야기하거든요.”

<녹취> 장의 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장례를 치르면서 바가지를 씌울 수밖에 없는 거예요. 우리가 100만 원 받을 거 그 사람들은 150만 원, 200만 원 받는 거죠.”

부산에서 소방서 무전이 뚫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2년 전에도 장례업자들이 무전을 도청하는 비슷한 사건이 있었지만, 개선이 되지 않았습니다.

<녹취> 부산 소방안전본부 관계자 : “주파수 접속 방식이 아날로그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고도화된 암호화 장비를 쓰더라도 이게 미국이나 일본 등 도청 해독 장비에 쉽게 노출이 됩니다.”

부산 소방안전본부는 3백3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무전기를 디지털 장비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녹취> 부산 소방안전본부 관계자 : “현재는 42.5% 928대를 교체 완료했고 나머지 1,250대는 2020년까지 디지털로 전면 전환할 예정입니다.”

경찰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총책 임 씨 등 6명을 구속하고, 다른 조직원 6명도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경찰은 불법 도청으로 부당 수익을 올리는 장의 업체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