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초보 번역가라면 사기를 조심하세요

입력 2019.07.17 (12:03)

피해자1. 김학생 "등록금 벌려다 사기꾼 돈만 벌어줘"

김학생(가명) 씨는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올해 1학기를 휴학했습니다. 휴학 기간 동안 다음 학기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를 살펴보던 김 씨는 흥미로운 게시글을 발견했습니다. '재택근무 가능 번역 알바 구인'으로 영한번역은 1장당 7천 원, 한영번역은 1장당 8천 원의 번역료를 지급하는 조건이었습니다.

김학생 씨가 유령 번역 업체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 번역 일이 끝나고 다음날 말에 번역료를 지급하는 관행은 번역 업계에서는 흔하다.김학생 씨가 유령 번역 업체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 번역 일이 끝나고 다음날 말에 번역료를 지급하는 관행은 번역 업계에서는 흔하다.

'번역료는 다음날 말에 지급한다'는 조건이 마음에 걸렸지만, 통상적으로 번역료는 번역 일이 끝난 후 지급됐기 때문에 수상하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번역 일감을 맡긴 업체 중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과 공기업도 있었습니다. 대기업에서 아무에게나 번역 중개를 맡기지 않을 거란 생각에 김 씨는 번역 중개 업체에 번역가로 등록했습니다.

그렇게 김 씨가 두 달 동안 번역한 글은 짧은 기계 안내서부터 수십 장짜리 법률 계약서까지 총 30개, 번역료 126만 원 분량이었습니다. 그런데, 김 씨가 일을 시작한 지 두 달이 훌쩍 지났는데도 번역 중개 업체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번역료를 주지 않았습니다.

번역 사기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인터넷 카페. 카페 회원은 천5백 명이지만, 비슷한 사기를 당한 피해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번역 사기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인터넷 카페. 카페 회원은 천5백 명이지만, 비슷한 사기를 당한 피해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2. 김취준 "처음엔 번역료 입금돼서 믿고 맡겼더니…"

김취준(가명) 씨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생활비가 필요했던 김 씨는 구직 사이트에서 번역 아르바이트를 찾았습니다. 기존에 번역 알바를 하면서 사기를 당한 적이 있었지만, 출근하지 않고도 일감을 받아 원하는 때에 편한 곳에서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컸기 때문입니다.

첫 두 달 동안은 번역료가 제대로 입금됐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번역료가 밀리기 시작하더니 번역료가 미지급된 일감이 7개로 늘었습니다. 중개 업체가 쓰는 메일 주소를 검색해 본 김 씨는 같은 피해를 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심지어 5년 전에도 같은 수법의 사기 범행이 있었지만, 피해자는 끊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경찰의 연락을 받고 사기를 당한 사실을 알게 된 피해자가 직접 카페를 찾아 게시글을 올렸다.경찰의 연락을 받고 사기를 당한 사실을 알게 된 피해자가 직접 카페를 찾아 게시글을 올렸다.

번역 업체는 '유령'…"메일·아이디 계속 바꾸며 사기 행각"

김학생 씨의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은 추적 끝에 지방의 한 원룸에서 53살 김 모 씨를 검거했습니다. 김 씨가 운영한다는 번역 업체는 물론 없었습니다. 김 씨는 이미 2014년부터 비슷한 수법으로 범행을 이어왔고 재판에서 사기 혐의가 인정된 전과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찰은 김 씨의 컴퓨터를 분석해 지난해 5월부터 최근까지 같은 수법으로 23명에게 2천여만 원을 가로챈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경찰은 김 씨를 구속해 지난 9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보냈습니다.

김 씨는 인터넷의 익명성에 숨어 같은 범행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구직하는 사이트에서 지속적으로 메일과 아이디를 바꾸고 가명을 써가며 활동했던 겁니다. 인당 피해 금액은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아도 수백만 원으로, 피해자에겐 큰돈이지만 민사 소송이나 형사 고소를 하기에는 적은 돈입니다. 김 씨가 사기 행각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번역은 '후불'…번역 중개업체 각별히 주의해야

번역료가 '후불'이란 점도 한몫했습니다. 번역물을 본 이후에 돈을 지급하는 번역 업계의 특성상, 번역 일을 끝낸 후에 번역료가 지급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틈을 노려 번역 아르바이트 사기가 끊이지 않는 겁니다.

김취준 씨는 "초보 번역가는 번역 일을 맡기 전에 업체를 제대로 알아봐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사업자등록증과 메일 주소 등을 미리 검색해보고 신뢰할 수 있는 업체와 거래해야 초보 번역자도 사기를 피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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