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지난 4월에 있었던 '지향이'사건 기억하시나요?
친엄마가 두 돌이 갓 지난 아이를 학대하고 방치해서 죽음에 이르게 했던 사건인데요.
석 달 만에 지향이의 사망 원인이 밝혀졌습니다. 김기흥 기자 나와 있는데요.
오늘 이 기사 보면서 다른 일이 손에 안 잡힐 정도였거든요?
<기자 멘트>
저도 취재를 하면 할수록 저 밑에서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는데요.
여러분도 사랑스런 지향이의 모습을 보시면 제가 왜 이런 대답을 하는지 분명히 아실 겁니다.
27개월 된 지향이의 죽음에는 5명의 나쁜 어른이 관련돼 있는데요.
그 중심에는 아이를 학대하고 방치한 지향이의 친엄마가 있었습니다.
지향이 엄마는 수사과정에서 '잘못했다'고 반성했으나 울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뉴스 따라잡기에서 지향이 사건의 전말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향이가 하늘나라로 간 지 석 달이 됐지만 고모 성영 씨는 아직 지향이를 떠나 보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정성영(故 정지향 양의 고모) : “지향이 가기 직전까지 쓰던 로션 같은 것들 그대로 있어요. 원래 이런 물건을 버려야지 잘 떠날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요.”
지난 2010년 12월 태어난 지향이.
하지만 남동생 부부의 불화로 성영 씨는 조카 지향이와 생후 3개월 무렵부터 한 집에 살았다고 합니다.
<인터뷰> 정성영(故 정지향 양의 고모) : “이 집을 얻게 된 게 3월 달에 얻었어요. 1월부터 (지향이 엄마가) 출근하고 하면서 제가 그 집에서 애를 보고 하다가….”
함께 살 수 있는 큰 집까지 구해 지향이를 딸처럼 키워왔다는 성영 씨.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약한 아이었지만 지향이는 떼쓰고 우는 법 한 번 없이 잘 자라줬는데요.
하지만 지향이가 돌이 됐을 무렵, 지향이 엄마는 남편과 함께 따로 살림을 차리겠다며 시댁으로부터 돈을 받고 지향이를 데리고 나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살았습니다.
<인터뷰> 정성영(故 정지향 양의 고모) : “아예 연락이 없었어요. 남동생도 그날 싸웠잖아요. 데려가는 날. 생부랑 방 얻는다고 해놓고 2주 만에 사라지고 내연남이랑 방 얻었다고 들었어요.”
고모 성영 씨가 지향이의 소식을 다시 들은 건 그로부터 1년여 뒤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서였습니다.
<인터뷰> 정성영(故 정지향 양의 고모) : “지향이가 병원에 있다. 심장 수술하는 거야? 이랬어요. 왜냐하면 그게 예정되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아니라고. 뇌출혈이라는 거예요.”
지향이와 헤어진 지 1년 3개월 만에 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
그런데 지향이 엄마의 행동이 왠지 이상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정성영(故 정지향 양의 고모) : “생모가 집앞 슈퍼에 5분 동안 뭐 사러 갔다 온 사이에 지향이가 쓰러졌대. 이렇게 들었어요, 처음에는. 다시 전화 와서 한다는 말이 ‘누나, 식용유에 미끄러졌대’ 이러더라고요.”
자꾸만 말을 바꾸던 지향이 엄마.
그러던 차에 또 한 가지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지향이가 병원에 실려 오기 전, 지향이 엄마의 신고를 받은 소방대원들은 엄마로부터 또 다른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인터뷰> 김지용(소방사/대구이현119구급센터) : “아기가 목욕탕에서 넘어졌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희가 애기를 봤을 때 의식이 없었고 동공반응도 무반응 상태였습니다.”
결국 병원에 옮긴 지 사흘 만에 숨진 지향이.
하지만 장례도 치르지 않고 지향이를 화장해 버려 의혹을 밝힐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경찰에 한 통의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인터뷰> 김진묵(경감/대구달서경찰서 형사과) : “진단서하고 검안서를 보여준 후에 먼저 사망진단을 한 쪽에서는 외인사로 발행을 했고 (시신)검안을 한 의사는 변사로 검안을 했기 때문에 뭔가 의심점이 있다.”
최초 사망원인은 외부 원인으로 숨졌다는 '외인사'였지만 바로 다음날 사인이 '병사'로 바뀌어있었던 건데요.
그 때부터 지향이 엄마에 대한 경찰의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인터뷰> 김진묵(경감/대구달서경찰서 형사과) : “(엄마가) 처음에는 어린이 집에 보냈습니다. 보내다가 아침 7시쯤에 아기를 보내야 되니까 잠이 부족해요, 잠이. 그 때 일어날 수가 없다 그런 말을 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귀찮다고요.”
결혼을 일찍 해 남들보다 아이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는 지향이 엄마의 진술.
지난해 4월 대구의 한 원룸에서 동거남 김모 씨와 딸 지향이가 함께 살기 시작했지만 정작 엄마가 아이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이웃은 없었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웃 주민(음성 변조) : “같이 살아도 애 있는 줄 몰랐는데 우리야 뭐 (방충망을) 고쳐달라고 해서 들어가서 애 가방을 봤기 때문에 애 있구나 했는데 애 있는 걸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요. ”
제대로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지향이는 엄마와 동거남 김 씨가 돌아올 때까지 집안에 홀로 남겨지곤 했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김진묵(경감/대구달서경찰서 형사과) : “원룸에 기저귀만 채우고 또 빵과 우유만 놔두고 피해자의 친모는 출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엄마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던 지향이.
그런데 지향이가 숨지기 얼마 전부터 조용했던 지향이의 집에서 울음소리가 심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웃 주민(음성 변조) : “근래 애 우는 소리를 많이 들었대요. 애가 그 정도면 엄마가 상식적으로 울지 말라고 하든지 아니면 달래는 소리가 나야 할 텐데.”
지향이가 욕실에서 넘어져 뇌출혈이 발생한 시점부터 시작된 울음소리였습니다.
하지만 딸이 다쳐도 병원 한 번 데려간 적 없던 지향이의 엄마는 어린 딸이 울고 구토를 하며 고통을 호소하던 이때에도 심야영화를 본 뒤 술을 먹고 늦게 귀가하는 등 딸을 계속 방치했고 지향이는 숨지고 말았던 겁니다.
<인터뷰> 김경묵(경감/대구달서경찰서 형사과) : “죽고 나서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사진 상으로 음식물이 없었어요. ”
여러 학대 정황에도 불구하고 지향이의 죽음이 단순 사고사로 덮였던 데는 친엄마와 동거남 외에도 나쁜 어른들이 한 몫을 했습니다.
변사 의혹이 있지만 경찰에 신고조차하지 않은 의사와 시신을 보지도 않고 허위 검안서를 발급해 준 의사, 그리고 그 허위검안서를 화장장에 제출한 장의 차량 운전사의 묵인이 있었던 겁니다.
<인터뷰> 김용묵(경감/대구달서경찰서 형사과) :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못 치르고 이러니까 유족 측이 안됐다고 할까 불쌍해 보여서 자기가 그렇게 해줬다, 그겁니다. 25만원은 검안 비용으로 받고.”
또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은 27개월짜리 친딸을 학대 방치한 지향이 엄마가 어린이집에서 0세반을 맡은 보육교사로 일했다는 사실입니다.
<녹취> 어린이집 관계자(음성변조) : “(저희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에는 업무에 차질없이 성실하게 임한 것, 그게 다입니다.”
착실한 천사표 선생님으로 알려졌지만 딸에게는 남보다 못한 비정한 존재였던 지향이 엄마.
단순 변사로 처리될 뻔한 지향이의 억울한 죽음은 결국 3개월여 만에 전모가 밝혀졌습니다.
<인터뷰> 정성영(故 정지향 양의 고모) : “아동학대에 심각성을 많이 아셔서 법이 많이 강화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제2의 지향이, 제3의 지향이가 안 나왔으면 하는 바람, 그게 제일 큰 것 같아요.”
지향이의 죽음에 관련된 어른 5명 모두는 처벌을 받게 됐는데요.
하지만 변사 신고 없이 지향이가 화장된 탓에 검안과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밝힐 수가 없어 지향이의 친엄마는 상해 치사 등의 혐의가 아닌 유기 치사의 혐의로 구속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