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우리나라의 규제, 많다고 하는데 얼마나 많은 걸까요?
오늘 현재 정확히 만 오천삼백오(15,305) 건입니다.
지난 2008년 5천여 건에서 불과 6년 만에 세 배 가까이 늘어난 건데요.
만들기는 쉬워도 없애기는 어려운 게 규제라는데 왜 그런지, 먼저 류호성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지난해 초 삼성전자 공장에서 '불산가스' 누출 사고가 난 뒤 다섯 달 만에 '화학물질관리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사고가 나면 매출액의 최대 5%까지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화학 물질 등록 평가법, '업체가 보유하는 모든 화학물질을 정부에 등록해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업계는 이 두 규제가 비용과 시간 등 현실을 외면한 졸속 규제라고 비난했습니다.
<녹취> 기업 관계자 : "비용을 중소 기업체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들게 하느냐…이런 것 때문에 많이 반발했죠."
1982년 수도권 과밀화를 막기 위해 만든 수도권정비계획법, 영국 사례를 참고해 만들었는데 비슷한 시기 영국은 대처 정부의 개혁을 통해 관련 규제를 없앴습니다.
수도권 개발 규제는 현재 우리나라에만 남아 있습니다.
일단 만들어진 뒤엔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규제, 공무원들이 규제를 힘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황인학(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부처 공무원들이 반발하게 되고, 두 번째는 그 규제 혜택을 누리는 우리 국민들 중에 특정 이익 단체가 그 규제의 생존을 원하게 되고…"
실제로 지난해에 총리가 관광특구 지정요건 완화 등 대표적인 규제 일곱 가지를 풀겠다고 약속했는데 관련 부처 반대로 네 가지 규제는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기자 멘트>
세계자연문화유산인 스위스 융프라우에는 정상까지 이런 관광열차가 다니죠.
스위스 사업가가 처음 건설 계획을 내놨을 때엔 자연 훼손을 우려한 반대도 만만치 않았지만, 관광 잠재력이 크다는 여론에 힘입어 정부와 의회의 승인을 얻었는데요.
우리나라 산에도 이런 관광시설을 만들 수 있을까요?
여론의 찬성, 반대를 떠나 29개에 달라는 각종 규제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태국의 경우엔 1년에 150만 명이 넘는 의료 관광객으로 4조 원의 수입을 올렸는데요.
우리나라의 해외 의료 관광객은 16만 명에 불과합니다.
의사와 환자의 원격 진료를 허용하지 않는데다 종합병원의 외국인 환자 수 제한 등 각종 규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규제를 만들고 없애는 데도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정부가 만드는 규제만 사전에 영향을 평가하지만,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은 의원 입법도 사전 심사를 하고 수시 점검을 통해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고 있습니다.
물론 규제를 없앨 때도 부작용은 없을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희용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이 순대 업체는 3년 전 대기업들이 순대 시장에 진출하면서 한때 경영 위기를 맞았습니다.
순대업이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돼 한숨을 돌렸지만, 오는 9월 재지정 결정을 앞두고 걱정이 커졌습니다.
최근 규제 완화 분위기에 따라 대기업 진출이 허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렵니다.
<인터뷰> 김만제(대표) : "기존에 투자했던 중소기업들이 타격을 입고 도산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중소 기업을 보호하는 규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03년 '카드대란'도 규제를 너무 많이 푼 게 원인이었습니다.
카드사들이 길거리에서까지 모집 경쟁을 벌이면서 결국 수백만 명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처럼 섣부른 규제 완화는 또 다른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규제의 수를 줄이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변창흠(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 "발전시키기 위한 규제냐, 특정한 개인이나 조직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규제냐에 대해서 평가를 하고 거기에 따라서 규제 철폐나 규제의 합리화 방안을 만들어내는 절차가 필요하지 않은가…"
규제가 본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규제 조건을 정교하게 만들고, 심사 과정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KBS 뉴스 김희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