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장악한 영화계

입력 2015.02.15 (23:48)

수정 2015.02.16 (00:14)

<인터뷰> 엄용훈(삼거리픽처스 대표) : "한국 영화계에 크게 두가지 문제점을 들라면 자본의 독과점과 스크린의 독과점입니다"

<인터뷰> 최현용(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소장) : "헐리우드 직배와 한국영화 배급사, 대기업 배급사 4~5개 정도의 군이 형성 되어있는 것이고 이 군 말고 다른 군이 진입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구조라는 거죠."

지난해 우리 영화산업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2조원을 넘었습니다.

관람객 천만 명을 넘긴 영화가 4편이나 되고 총 관객수는 2억 명을 넘었습니다.

하지만 성장에 드리운 그늘이 그만큼 깊어졌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영화 산업 전반에서 대기업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면서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 영화 산업의 투자와 배급 시스템을 취재했습니다.

지난 2010년 한국과 일본에서 개봉한 사요나라 이츠카라는 영홥니다.

일본 소설이 원작이고 영화 '러브레터'에 출연했던 나카야마 미호 등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일본 영화 같지만 이 영화의 투자배급은 CJ가, 제작은 투베어픽처스라는 한국 제작사가 맡았습니다.

문제는 한국 개봉을 일주일 앞둔 2010년 4월 불거졌습니다.

제작사인 투베어 픽처스의 은행 통장입니다.

4월 5일부터 9일까지 18차례에 걸쳐서 5개 창업투자회사로부터 모두 48억 원의 자금이 입금됐습니다.

이 자금들은 모두 입금 즉시 CJ 엔터테인먼트로 이체됐습니다.

투베어픽처스 측은 당시에 자신들이 창투사로부터 투자를 받는다는 사실도 몰랐고 CJ가 그 지원금을 가져간 사실도 몰랐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뷰> 투베어픽처스 관계자 : "5개 창투사 6개 영화조합으로부터 48억을 투베어픽처스로 받았어요. 투자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투베어픽처스는 거기에 대해 아무도 몰라요. 그 돈을 48억 이라는 돈을 CJ에서 가져간 겁니다."

CJ 직원이 투베어픽처스 회사 직원에게 통장과 도장을 가져나오라고 한 뒤 창투사로부터 돈을 받아 이체시켰다는 겁니다.

<인터뷰> 투베어픽처스 관계자 : "CJ직원이 투베어픽처스 사무실 근처 은행에 와서 투베어픽처스 여직원한테 통장과 도장을 가져오라해서 자기가 도장 다 찍어 가지고 돈을 받아서 그 돈을 CJ에다가 넣었답니다."

CJ측은 창투사로부터 투베어픽처스에 투자된 돈을 CJ가 받아 간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사실을 투베어픽처스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이 같은 방식이 정당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공식적인 인터뷰는 거절했습니다.

<녹취> CJ E&M 관계자 : "이른 시일 내에 법원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 같으니까 반론은 안 하는 걸로 그렇게 의사결정이 났거든요."

과연 누구 말이 사실일까?

일단 공은 검찰로 넘어갔습니다.

투베어픽처스 측이 CJ E&M을 상대로 중소기업 창업투자금을 편취했다며 국민권익위에 신고했고 1차 수사에서는 불기소 처분을 내렸던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CJ가 중소 제작사에만 지원돼야 하는 투자금을 편법으로 받아 갔는냐 하는 점입니다.

이 투자금에 공적자금인 모태펀드 출자금이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조성한 모태펀드는 창업투자회사가 결성하는 자 펀드에 출자하고 자 펀드가 중소기업 관련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현행법 상 모태펀드가 출자된 자 펀드는 대기업에는 투자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인터뷰> 윤효환(한국벤처투자 투자관리 본부장) : "저희 모태펀드는 이런 중소기업에 투자 재원을 공급해서 안정적으로 콘텐츠가 우리나라에 제작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모태펀드가 조성이 됐습니다."

모태펀드의 자 펀드가 영화 산업에 투자한 금액은 2007년 이후 8년 간 모두 8천억 여원에 이릅니다.

한국 영화 총 제작비의 약 40%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이처럼 규모가 큰 모태펀드 자금을 사용하기 위해 일부 영화 제작 프로젝트의 경우, 일단 중소 제작사가 자금을 받은 뒤에 대기업 투자배급사로 이 돈을 보내고 실질적인 자금 관리는 대기업 투자배급사가 하는 방식으로 대기업 투자금지 규정을 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터뷰> 최현용(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소장) : "메인 투자 배급을 하는 투자사가 관리를 하도록 영화산업 시스템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될 경우에는 투자자금이 중소기업 제작사로 갔다가 다시 메인 투자사, 보통은 대기업이죠 갔다가 실제 제작되는 과정들 속에서 다시 중소기업제작사가 제작을 할 때 비용으로 돌아와서 쓰여지게 되는 구조를 갖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투자를 하는 창투사 입장에서는 대기업이 완성과 상영을 보증하는 영화에 투자를 하고 싶어하고 중소 제작사나 배급사의 힘만으로는 투자를 받기 어렵다보니 생겨난 방식입니다.

<인터뷰> 윤효환(한국벤처투자 투자관리 본부장) : "통상 투자하는 시점에 배급계약은 정말 돼 있는지 이게 완성될 수 있는 보장은 있는지 이런 것을 따지는데 배급업무를 하는 회사는 대기업들이기 때문에 그 대기업들하고 먼저 어느 정도 얘기가 된 프로젝트에 투자를 선호할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이게 대기업에 투자하는 건 전혀 아니고요."

지난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영화 분야에 투자된 모태펀드 6,582억 가운데 70%가 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미디어플렉스 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배급사에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터뷰> 배장수(한국 영화제작가협회 상임이사) : "(모태펀드가) 대기업이 투자배급하는 영화에 흡수되면서 결과적으로 대기업이 70%를 쓴 격에 해당이 되어버리거든요. 그래서 중소제작사를 지원하기 위해서 조성된 펀드인데, 결과적으로 대기업 배불리기에 사용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CJ나 롯데, 쇼박스 같은 대기업을 끼지 않고 중소 제작사나 배급사 만으로 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지난 연말 개봉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라는 영홥니다.

이 영화는 중소 제작사와 배급사가 독자적으로 38억 원의 자금을 투자받아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배급도 스스로 맡았습니다.

어렵사리 영화를 완성했지만 상영관 확보라는 벽에 부딪혔습니다.

<인터뷰> 엄용훈('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제작자) : "진짜 너무도 어렵게 자금을 조달해서, 그리고 우리 감독, 배우, 모든 스텝 그리고 마케팅 인력들 모두가 다 열심히 해주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군다나 영화 전문기자들, 평론가, 일반 관객들의 꽤 큰 호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한국 영화는 수직계열화 된 대기업들이 스크린까지도 독과점 되어있는 상태라서 그 스크린 독과점의 벽을 뚫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상영관 수, 인터넷 예매 개시 시기, 들쭉날쭉한 상영시간 등 불이익을 받았다고 제작사 측은 주장합니다.

온라인에서는 이 영화의 개봉관을 늘려달라는 서명운동이 벌어졌고 시민단체는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녹취> 참여연대 집회 : "보고싶다! 보고싶다!"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 측은 이 영화의 좌석 점유율이 적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녹취> 대기업 배급사 관계자 : "첫 주말에 좌석 점유율이 다른 영화에 비해서 상당히 적게 나오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2주차, 3주차 가면서 스크린을 조금 더 줄이게 되는 결과를 낳은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현재 CJ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가 전체 스크린의 92%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없이는 투자를 받기도, 상영관을 잡기도 어려운 중소 제작, 배급사들은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합니다.

반면 현실론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중소 영화 제작사 대부분이 영세하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영화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대기업이 책임지고 투자, 제작, 배급을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최현용(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소장) : "영화산업이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다양한 투자자금을 분산시키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한국 영화 산업 매출은 역대 최고점을 찍었습니다.

1761만 명의 역대최다 관객을 모은 명량을 비롯해 해적, 국제시장, 수상한 그녀 등 4편의 한국영화가 관객 8백만 명을 넘었습니다.

전체 성적표는 화려합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위기가 감지됩니다.

CJ, 롯데, 쇼박스 등 대기업 배급사가 한국 영화 매출액의 75.2%를 차지했습니다.

또 전체 개봉 영화 1095편 가운데 2%도 채 안되는 20편의 영화가 전체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이른바 중박 영화로 불리는 5백만에서 8백만 관객 영화는 지난해 단 한편도 없었습니다.

대기업 쏠림 현상, 양극화는 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배장수(영화제작가협회 상임이사) : "천만 영화, 대박 영화만 있고 그 위에 중박 영화들이 없으니까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극심화되고 창장의욕이 떨어져서 결국은 영화 시장 활성화가 영화시장이 침체되는 상황을 만들게 되는 거죠."

프랑스는 12개 이상의 스크린을 가진 복합상영관은 영화 한 편을 최대 2개 스크린에서만 상영하도록 영화계가 자율적으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1948년 제작과 배급, 상영을 겸하지 못하게 하는 '파라마운트 판결'로 대형 영화사의 수직계열화를 해체했습니다.

<인터뷰> 우디 앱스타인(미국 독립영화배급사대표) : "(파라마운트 판결이 없었다면) 지금의 미국 독립영화는 아마 존재하지 못했을 겁니다. 대형영화사가 영화의 아이디어나 대본, 배우는 물론 영화관의 티켓, 팝콘 판매까지 관여했을 거예요."

지난해 3월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개혁 회의.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녹취> 윤제균(JK필름 대표) : "(영화 산업 수직계열화의) 단점으로는 투자, 배급, 극장이란 단계별 불만을 역시 다른 단계에서 매울 수가 있기 때문에 제작사만 공정한 소득 분배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녹취> 대통령 : "너무 양극화가 심해져 있거든요. 그러면 양극화에 시달리는 영화 업체들은 규제 이상의 엄청난 사실 뭐 그런게 규제죠."

이후 공정거래위에서는 CJ와 롯데가 자사 배급 영화에 대해 상영관을 유리하게 제공했다며 5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문화체육부도 올해부터 3년 동안 새로 조성되는 모태펀드는 CJ E&M과 롯데엔터테인먼트가 관련된 영화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중소 제작사들은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고 있습니다.

모태펀드 투자 금지에 각종 예외 조항들이 들어있고 2009년 이후 정부주도로 4차례나 동반성장 협약식이 열렸지만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엄용훈(삼거리픽처스 대표) : "(정부가) 안을 세세하게 들여다 봐서 어떤 우회적인 방법이라던가 편법을 동원하지 않는가 이런 것 조차도 면밀히 지켜봐서 앞으로 이러한 잘못된 관행은 반드시 뿌리 뽑아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양성과 창의성은 문화 산업의 생명과 같습니다.

창의적인 영화를 만드는 다양한 제작배급사가 자라나지 못한다면 한국 영화 산업의 내실있는 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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