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우리 민족은 측우기를 발명해 세계 최초로 비의 양을 측정했지요.
하지만 굴곡 많은 역사 탓에 국내에 진품 측우기는 단 하나 뿐입니다.
지금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니 꼭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김성한 기자입니다.
<리포트>
국내 유일의 진품 측우기가 공개된 첫날,
서양의 우량계보다 200년 앞서 발명됐다는 설명에 학생들의 표정은 더욱 진지해집니다.
<인터뷰> 오재근(백령도 북포초등 6학년) : "옛날 사람들이 자랑스럽고요. 저희도 저런 훌륭한 것을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요."
국내 단 하나뿐인 진품 측우기는 일제 강점기 때 반출됐다가 지난 1971년 되찾아온 것입니다.
<녹취> 대한뉴우스 멘트: "귀중한 과학문화재 하나인 측우기 한 점이 일본으로부터 반환돼 돌아왔습니다."
높이 30cm, 지름 14cm의 통일된 규격, 1442년 세종 때부터 전국적인 관측망을 갖추고 관측을 시작했습니다.
발명자는 당시 왕세자였던 문종입니다.
<녹취> 대왕 세종 중 왕세자 대사 : "통을 세 개로 분리해 두면 상대적으로 강우량이 적은 봄, 가을의 강우량 측정이 보다 용이해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정조 때 기록을 보면 지금의 연간 강수량보다 적은 해가 많았습니다.
정조 23년 5월엔 강수량이 이전 해의 1/5에 불과하다며 걱정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인터뷰> 이하상(한국농업사학회 고문) : "벼농사에서 이앙법이 확산됨에 따라 강우 패턴을 이해하고 강우량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측우기, 측우제도로 나타난 것입니 다."
진품 측우기는 오는 23일까지 서울 신대방동 기상청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KBS 뉴스 김성한입니다.
우리 민족은 측우기를 발명해 세계 최초로 비의 양을 측정했지요.
하지만 굴곡 많은 역사 탓에 국내에 진품 측우기는 단 하나 뿐입니다.
지금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니 꼭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김성한 기자입니다.
<리포트>
국내 유일의 진품 측우기가 공개된 첫날,
서양의 우량계보다 200년 앞서 발명됐다는 설명에 학생들의 표정은 더욱 진지해집니다.
<인터뷰> 오재근(백령도 북포초등 6학년) : "옛날 사람들이 자랑스럽고요. 저희도 저런 훌륭한 것을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요."
국내 단 하나뿐인 진품 측우기는 일제 강점기 때 반출됐다가 지난 1971년 되찾아온 것입니다.
<녹취> 대한뉴우스 멘트: "귀중한 과학문화재 하나인 측우기 한 점이 일본으로부터 반환돼 돌아왔습니다."
높이 30cm, 지름 14cm의 통일된 규격, 1442년 세종 때부터 전국적인 관측망을 갖추고 관측을 시작했습니다.
발명자는 당시 왕세자였던 문종입니다.
<녹취> 대왕 세종 중 왕세자 대사 : "통을 세 개로 분리해 두면 상대적으로 강우량이 적은 봄, 가을의 강우량 측정이 보다 용이해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정조 때 기록을 보면 지금의 연간 강수량보다 적은 해가 많았습니다.
정조 23년 5월엔 강수량이 이전 해의 1/5에 불과하다며 걱정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인터뷰> 이하상(한국농업사학회 고문) : "벼농사에서 이앙법이 확산됨에 따라 강우 패턴을 이해하고 강우량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측우기, 측우제도로 나타난 것입니 다."
진품 측우기는 오는 23일까지 서울 신대방동 기상청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KBS 뉴스 김성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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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단 하나뿐인 ‘진품 측우기’ 일반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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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2-03-20 22:01:58
<앵커 멘트>
우리 민족은 측우기를 발명해 세계 최초로 비의 양을 측정했지요.
하지만 굴곡 많은 역사 탓에 국내에 진품 측우기는 단 하나 뿐입니다.
지금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니 꼭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김성한 기자입니다.
<리포트>
국내 유일의 진품 측우기가 공개된 첫날,
서양의 우량계보다 200년 앞서 발명됐다는 설명에 학생들의 표정은 더욱 진지해집니다.
<인터뷰> 오재근(백령도 북포초등 6학년) : "옛날 사람들이 자랑스럽고요. 저희도 저런 훌륭한 것을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요."
국내 단 하나뿐인 진품 측우기는 일제 강점기 때 반출됐다가 지난 1971년 되찾아온 것입니다.
<녹취> 대한뉴우스 멘트: "귀중한 과학문화재 하나인 측우기 한 점이 일본으로부터 반환돼 돌아왔습니다."
높이 30cm, 지름 14cm의 통일된 규격, 1442년 세종 때부터 전국적인 관측망을 갖추고 관측을 시작했습니다.
발명자는 당시 왕세자였던 문종입니다.
<녹취> 대왕 세종 중 왕세자 대사 : "통을 세 개로 분리해 두면 상대적으로 강우량이 적은 봄, 가을의 강우량 측정이 보다 용이해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정조 때 기록을 보면 지금의 연간 강수량보다 적은 해가 많았습니다.
정조 23년 5월엔 강수량이 이전 해의 1/5에 불과하다며 걱정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인터뷰> 이하상(한국농업사학회 고문) : "벼농사에서 이앙법이 확산됨에 따라 강우 패턴을 이해하고 강우량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측우기, 측우제도로 나타난 것입니 다."
진품 측우기는 오는 23일까지 서울 신대방동 기상청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KBS 뉴스 김성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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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기자 albatros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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