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史] 농구팬이 잊지 못할 이야기 ‘뉴델리AG 우승’

입력 2015.12.07 (00:44) 수정 2015.12.07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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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제어 ③ 스포츠 사

강승화 : 끝으로 시간여행을 한 번 떠나보겠습니다.

제인 : 스포츠팬이라면 다들 기억 남는 명승부 하나쯤은 있잖아요. 농구팬들에게도 정말 잊을 수 없는 경기가 있죠?

이병진 : 오늘은 시간을 좀 많이 거슬러 올라가볼 건데요. 강승화 아나운서와 레이디 제인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입니다. 1982년 12월 3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33년 전 첫 눈이 내리는 이 무렵~ 뉴델리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남자 농구 대표팀이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죠.

김남훈 : 그때도 중국 만리장성은 결코 쉽지 않은 상대였는데~ 당시 대표팀을 맡았던 방열 감독이 지략이 빛났다. 30초 공격 제한 시간 중 24초를 다 쓰고 6초 공격을 벌이는 지공 작전이 맞아 들어가면서 1점 차 짜릿한 승리를 완성했다.

이병진 : 방열 감독이 이런 맞춤 전술을 들고 나올 수 있었던 건~ 전임 대표팀 감독이었던 박한 감독과 김인건 감독을 직접 찾아가 중국전에서 후회되는 부분을 얘기해달라며 자문을 구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제인 : 감독도 감독이지만~ 그때 출전했던 선수들도 대단했다고요?

김남훈 : ‘슛도사’ 이충희를 비롯해 신선우, 박수교, 신동찬, 임정명~ 당대 최고의 스타이자 한국 농구 역대 드림팀을 뽑는다 해도 하마평에 오를 선수들이다.

강승화 : 그런데 그 때 농구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농구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고요?

이병진 : 일단 지금처럼 4쿼터가 아니라 전·후반이었고~ 또 3점슛 자체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김남훈 : 코트 밖에서도 요즘과 많이 달랐다. 지금은 상대팀 경기를 비디오 분석하면서 준비하잖아요. 그때는 국제농구연맹에 요청해 상대팀 명단을 받아서 키 보고, 몸무게 보고 “아, 얘는 센터겠구나~ 가드겠구나~” 했다고 합니다.

강승화 : 이렇게 어렵게 딴 금메달인데... 이후 남자 농구가 다시 아시아 정상에 서기까지 시간이 걸렸죠?

이병진 ;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이후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또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냈는데~ 두 대회 모두 홈팬들 앞에서 두 점 차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제인 : 농구에서 두 점 차면 결국 한 골 싸움이었던 거잖아요?

김남훈 : 또 뉴델리 때는 1점차... 한국 남자 농구는 그야말로 매번 드라마를 쓰면서 금메달을 따기에 더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 같다.

이병진 : 이렇게 가끔 추억을 되새기는 것도 좋지만~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꿈꿀 수 있는 한국 농구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강승화 : 프로농구 시즌이 한창이니까 경기장을 직접 찾아가보는 것도 연말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스포츠 지식 배양에 도움이 됐기를 바라면서~ 저희는 더 쉽고 깊이 있는 스포츠 이야기로 다음 주에 돌아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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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5-12-07 07:41:03
    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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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화 : 끝으로 시간여행을 한 번 떠나보겠습니다.

제인 : 스포츠팬이라면 다들 기억 남는 명승부 하나쯤은 있잖아요. 농구팬들에게도 정말 잊을 수 없는 경기가 있죠?

이병진 : 오늘은 시간을 좀 많이 거슬러 올라가볼 건데요. 강승화 아나운서와 레이디 제인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입니다. 1982년 12월 3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33년 전 첫 눈이 내리는 이 무렵~ 뉴델리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남자 농구 대표팀이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죠.

김남훈 : 그때도 중국 만리장성은 결코 쉽지 않은 상대였는데~ 당시 대표팀을 맡았던 방열 감독이 지략이 빛났다. 30초 공격 제한 시간 중 24초를 다 쓰고 6초 공격을 벌이는 지공 작전이 맞아 들어가면서 1점 차 짜릿한 승리를 완성했다.

이병진 : 방열 감독이 이런 맞춤 전술을 들고 나올 수 있었던 건~ 전임 대표팀 감독이었던 박한 감독과 김인건 감독을 직접 찾아가 중국전에서 후회되는 부분을 얘기해달라며 자문을 구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제인 : 감독도 감독이지만~ 그때 출전했던 선수들도 대단했다고요?

김남훈 : ‘슛도사’ 이충희를 비롯해 신선우, 박수교, 신동찬, 임정명~ 당대 최고의 스타이자 한국 농구 역대 드림팀을 뽑는다 해도 하마평에 오를 선수들이다.

강승화 : 그런데 그 때 농구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농구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고요?

이병진 : 일단 지금처럼 4쿼터가 아니라 전·후반이었고~ 또 3점슛 자체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김남훈 : 코트 밖에서도 요즘과 많이 달랐다. 지금은 상대팀 경기를 비디오 분석하면서 준비하잖아요. 그때는 국제농구연맹에 요청해 상대팀 명단을 받아서 키 보고, 몸무게 보고 “아, 얘는 센터겠구나~ 가드겠구나~” 했다고 합니다.

강승화 : 이렇게 어렵게 딴 금메달인데... 이후 남자 농구가 다시 아시아 정상에 서기까지 시간이 걸렸죠?

이병진 ;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이후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또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냈는데~ 두 대회 모두 홈팬들 앞에서 두 점 차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제인 : 농구에서 두 점 차면 결국 한 골 싸움이었던 거잖아요?

김남훈 : 또 뉴델리 때는 1점차... 한국 남자 농구는 그야말로 매번 드라마를 쓰면서 금메달을 따기에 더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 같다.

이병진 : 이렇게 가끔 추억을 되새기는 것도 좋지만~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꿈꿀 수 있는 한국 농구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강승화 : 프로농구 시즌이 한창이니까 경기장을 직접 찾아가보는 것도 연말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스포츠 지식 배양에 도움이 됐기를 바라면서~ 저희는 더 쉽고 깊이 있는 스포츠 이야기로 다음 주에 돌아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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