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인도의 최저가 의료 실험…빈민층 희망 되나?

입력 2019.07.20 (21:55) 수정 2019.07.2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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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모든 이에게 건강을.'

건강만큼은 차별 없이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세계보건기구의 표어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요.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빈곤층은 아파도 제때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싼 의료비 때문에 의료 사각지대에 내몰린 겁니다.

이 같은 건강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파격적인 실험이 인도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극한의 비용 절감으로 의료 서비스의 수혜자를 늘리고 있는 인도 나라야나 병원을 이재희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빈민들의 모여 사는 인도 델리 외곽의 무허가 판자촌.

사람 두 명이 함께 지나가기도 좁은 골목 안 9제곱미터 남짓한 반지하 단칸방에 세 사람이 살 정도로 거주 환경이 안 좋습니다.

구정물 도랑에 닿았던 호스에 아이가 입을 대고 물을 마시고, 밖에 내놓은 식기와 옷가지엔 파리가 들끓는 비위생적인 환경.

주민들은 콜레라, 이질 등 질병은 물론 부상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도의 빈민촌은 이처럼 쓰레기가 곳곳에 버려져 있고 상하수도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질병에 걸리기 쉽지만 치료비 때문에 병원을 찾긴 어렵습니다.

[레카/빈민촌 주민 : "정부가 무슨 도움을 주나요. 스스로 돈을 마련해야 해요. 치료비가 필요하면 가족들이나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서 치료를 받아야죠."]

치료비가 저렴한 국공립 병원은 몰려드는 환자에 비해 인력과 장비가 턱없이 부족해 언제나 북새통입니다.

병원 밖 지하도에는 환자 수십 명이 자리를 깔고 노숙합니다.

진료를 받으려면 심할 땐 며칠 동안 기다려야 하는데 숙박비가 없기 때문입니다.

[문니 데비/국립병원 환자 : "병원에 여러 번 와야 하는데 집이 멀어서 오가는 교통비가 큰 부담입니다. 하지만 병원 근처에서는 머물 수 있는 데가 없어요."]

빈곤과 질병의 악순환을 누군가가 끊어내야 한다며 한 병원이 나섰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싼 병원, 나라야나 병원이 그 주인공입니다.

[데비 셰티/나라야나 병원 창립자/TED 강연 : "의사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인간의 생명에 가격표를 붙이고 있습니다. 이 일을 언제까지 계속 해야 할까요?"]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싼 가격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제공하자."

이 기치를 내건 나라야나 병원은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유명합니다

후두암이나 인후암 수술비는 단 80만 원, 심장 수술도 2백만 원 대에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 등 선진국 병원의 수십 분의 1 가격입니다.

나라야나 병원이 고품질의 의료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철저하게 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장의 생산 라인과 비슷한 독특한 수술법이 비용 절감의 핵심입니다.

심장 수술의 경우 준비와 피부 절개 등 상대적으로 쉬운 부분은 보조의들이 맡습니다.

숙련의는 심장에 직접 메스를 대는 최고난도 과정에만 투입됩니다.

그리고 이를 마치면 곧바로 다른 수술실에 투입됩니다.

[헤먼트 마단/심장전문의 : "한 사람이 수술을 다 하지 않고 여러 사람이 수술의 다른 과정마다 투입됩니다. 그래서 이 모든 과정에서 개인이 지치지 않고 최적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이 방법으로 나라야나 병원의 의사들은 미국 의사들보다 6배나 많은 수술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박리다매로 싼값을 실현한 데다 수술 정확도도 높다는 평갑니다.

[발비르 싱/저소득층 환자 : "다른 환자들도 저처럼 이 병원에서 질 좋은 수술과 간호를 큰 부담 없이 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비용 절감 두 번째 비법은 '다시 쓰고 아껴쓰기' 입니다.

선진국에서는 한 번 쓰고 버리는 집게와 관 등 수술 도구를 여기선 많게는 5번까지 재사용합니다.

철저한 감독 아래 소독해 다시 쓰는 겁니다.

[디푸 바너지/신경외과의 : "멸균이 가능한 단단한 장비나 여러 번 사용해도 될만한 장비만 진료비를 줄이기 위해 다시 씁니다."]

또 MRI와 CT 등 값비싼 장비도 꼼꼼하게 정비해 한계 연한을 넘겨 사용하고, 주사기와 수술복 등 소모성 자재까지 인도 현지에서 3분의 1 가격에 조달합니다.

입원비 역시 환자들에게는 또 다른 부담인데, 이 때문에 환자를 일찍 퇴원시키는 게 병원의 방침입니다.

대신 집에서도 기본 처치를 할 수 있게 붕대 갈이나 재활 운동 등을 환자 가족에게 가르칩니다.

[샤르마/퇴원 환자 가족 : "병원에서 붕대를 가는 법과 약 투여법, 재활 운동법 등을 가르쳐 줬어요. 가족들이 언제 어떻게 환자를 다뤄야 하는지 알려줬습니다."]

아끼기만 하는 것이 병원의 경영법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수익모델은 부유층을 위한 고급병동입니다.

손님 응접실까지 갖춘 데다 환자 혼자 쓸 수 있는 고급 병동입니다.

나라야나 병원은 여기에서 버는 수익으로 초저가 병원의 비용을 충당합니다.

저소득층이 이용하는 병동과 같은 의사가 똑같이 수술하지만 해외에서 환자들이 찾을 정도로 인기입니다.

[슈니타 샤르마/고급병동 환자 : "이 병원이 친절하고 실력이 뛰어나다고 오빠가 추천해서 오게 됐어요. 실제로 무릎 수술도 잘 됐고 병원 시설도 더할 나위 없이 좋네요."]

단 이 같은 초저가 의료 모델을 보건 위생 규정이 철저한 선진국에 도입하기는 무리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하지만 인구가 많은 저소득층 국가에서는 효과를 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합니다.

[김상균/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캄보디아 사무소장 : "의료에 대한 기본적인 체계나 인프라가 어느 정도 있는 곳이어야만 하고. 그 지역이 가진 특수한 질환군에 초점을 맞춰서 접근한다면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5년 전 문을 연 케이맨제도 지점을 시작으로 초저가 의료 모델을 세계에 전파하려는 나라야나 병원.

인도에서 시작된 의료 실험이 건강의 불평등이라는 인류의 과제를 풀어낼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KBS 뉴스 이재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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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리포트] 인도의 최저가 의료 실험…빈민층 희망 되나?
    • 입력 2019-07-20 22:19:01
    • 수정2019-07-20 22:29:52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앵커]

'모든 이에게 건강을.'

건강만큼은 차별 없이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세계보건기구의 표어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요.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빈곤층은 아파도 제때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싼 의료비 때문에 의료 사각지대에 내몰린 겁니다.

이 같은 건강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파격적인 실험이 인도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극한의 비용 절감으로 의료 서비스의 수혜자를 늘리고 있는 인도 나라야나 병원을 이재희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빈민들의 모여 사는 인도 델리 외곽의 무허가 판자촌.

사람 두 명이 함께 지나가기도 좁은 골목 안 9제곱미터 남짓한 반지하 단칸방에 세 사람이 살 정도로 거주 환경이 안 좋습니다.

구정물 도랑에 닿았던 호스에 아이가 입을 대고 물을 마시고, 밖에 내놓은 식기와 옷가지엔 파리가 들끓는 비위생적인 환경.

주민들은 콜레라, 이질 등 질병은 물론 부상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도의 빈민촌은 이처럼 쓰레기가 곳곳에 버려져 있고 상하수도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질병에 걸리기 쉽지만 치료비 때문에 병원을 찾긴 어렵습니다.

[레카/빈민촌 주민 : "정부가 무슨 도움을 주나요. 스스로 돈을 마련해야 해요. 치료비가 필요하면 가족들이나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서 치료를 받아야죠."]

치료비가 저렴한 국공립 병원은 몰려드는 환자에 비해 인력과 장비가 턱없이 부족해 언제나 북새통입니다.

병원 밖 지하도에는 환자 수십 명이 자리를 깔고 노숙합니다.

진료를 받으려면 심할 땐 며칠 동안 기다려야 하는데 숙박비가 없기 때문입니다.

[문니 데비/국립병원 환자 : "병원에 여러 번 와야 하는데 집이 멀어서 오가는 교통비가 큰 부담입니다. 하지만 병원 근처에서는 머물 수 있는 데가 없어요."]

빈곤과 질병의 악순환을 누군가가 끊어내야 한다며 한 병원이 나섰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싼 병원, 나라야나 병원이 그 주인공입니다.

[데비 셰티/나라야나 병원 창립자/TED 강연 : "의사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인간의 생명에 가격표를 붙이고 있습니다. 이 일을 언제까지 계속 해야 할까요?"]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싼 가격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제공하자."

이 기치를 내건 나라야나 병원은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유명합니다

후두암이나 인후암 수술비는 단 80만 원, 심장 수술도 2백만 원 대에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 등 선진국 병원의 수십 분의 1 가격입니다.

나라야나 병원이 고품질의 의료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철저하게 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장의 생산 라인과 비슷한 독특한 수술법이 비용 절감의 핵심입니다.

심장 수술의 경우 준비와 피부 절개 등 상대적으로 쉬운 부분은 보조의들이 맡습니다.

숙련의는 심장에 직접 메스를 대는 최고난도 과정에만 투입됩니다.

그리고 이를 마치면 곧바로 다른 수술실에 투입됩니다.

[헤먼트 마단/심장전문의 : "한 사람이 수술을 다 하지 않고 여러 사람이 수술의 다른 과정마다 투입됩니다. 그래서 이 모든 과정에서 개인이 지치지 않고 최적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이 방법으로 나라야나 병원의 의사들은 미국 의사들보다 6배나 많은 수술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박리다매로 싼값을 실현한 데다 수술 정확도도 높다는 평갑니다.

[발비르 싱/저소득층 환자 : "다른 환자들도 저처럼 이 병원에서 질 좋은 수술과 간호를 큰 부담 없이 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비용 절감 두 번째 비법은 '다시 쓰고 아껴쓰기' 입니다.

선진국에서는 한 번 쓰고 버리는 집게와 관 등 수술 도구를 여기선 많게는 5번까지 재사용합니다.

철저한 감독 아래 소독해 다시 쓰는 겁니다.

[디푸 바너지/신경외과의 : "멸균이 가능한 단단한 장비나 여러 번 사용해도 될만한 장비만 진료비를 줄이기 위해 다시 씁니다."]

또 MRI와 CT 등 값비싼 장비도 꼼꼼하게 정비해 한계 연한을 넘겨 사용하고, 주사기와 수술복 등 소모성 자재까지 인도 현지에서 3분의 1 가격에 조달합니다.

입원비 역시 환자들에게는 또 다른 부담인데, 이 때문에 환자를 일찍 퇴원시키는 게 병원의 방침입니다.

대신 집에서도 기본 처치를 할 수 있게 붕대 갈이나 재활 운동 등을 환자 가족에게 가르칩니다.

[샤르마/퇴원 환자 가족 : "병원에서 붕대를 가는 법과 약 투여법, 재활 운동법 등을 가르쳐 줬어요. 가족들이 언제 어떻게 환자를 다뤄야 하는지 알려줬습니다."]

아끼기만 하는 것이 병원의 경영법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수익모델은 부유층을 위한 고급병동입니다.

손님 응접실까지 갖춘 데다 환자 혼자 쓸 수 있는 고급 병동입니다.

나라야나 병원은 여기에서 버는 수익으로 초저가 병원의 비용을 충당합니다.

저소득층이 이용하는 병동과 같은 의사가 똑같이 수술하지만 해외에서 환자들이 찾을 정도로 인기입니다.

[슈니타 샤르마/고급병동 환자 : "이 병원이 친절하고 실력이 뛰어나다고 오빠가 추천해서 오게 됐어요. 실제로 무릎 수술도 잘 됐고 병원 시설도 더할 나위 없이 좋네요."]

단 이 같은 초저가 의료 모델을 보건 위생 규정이 철저한 선진국에 도입하기는 무리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하지만 인구가 많은 저소득층 국가에서는 효과를 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합니다.

[김상균/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캄보디아 사무소장 : "의료에 대한 기본적인 체계나 인프라가 어느 정도 있는 곳이어야만 하고. 그 지역이 가진 특수한 질환군에 초점을 맞춰서 접근한다면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5년 전 문을 연 케이맨제도 지점을 시작으로 초저가 의료 모델을 세계에 전파하려는 나라야나 병원.

인도에서 시작된 의료 실험이 건강의 불평등이라는 인류의 과제를 풀어낼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KBS 뉴스 이재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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