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톡톡] 자연 파괴와 언어 소멸 이야기…‘노래하는 땅’

입력 2023.11.30 (20:09) 수정 2023.11.3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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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나무는 사람에게 아주 큰 의자가 됩니다.

그곳에 편히 앉아 전시장을 둘러보면 자연이 들어옵니다.

붉은 천을 펄럭이며 장엄한 풍경을 만드는 바람은 시원한 해방감을 전해줍니다.

고개를 돌리면 생명 근원인 땅을 직물과 흙물로 표현한 작품을 만납니다.

맞은편에는 나뭇잎이 모여 만든 가볍고 풍성한 숲 사이로 바람이 지나갑니다.

구획을 나누는 표지판에는 사라져가는 토착어와 자연과 접속했던 언어의 소멸을 막으려는 창작 소설이 작품과 함께합니다.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자연과 사라지는 토착어가 공동운명체로 다가옵니다.

[박한나/'노래하는 땅' 전시기획자 : "전시에서 주목하는 언어는 소멸 위기에 놓인 세계 토착어와 에코 아티스트들의 시각 조형 언어입니다. 두 언어의 세계를 조명하며 인간과 자연이 맺어온 오래된 공생 관계를 환기하고 현대인의 물질 중심의 자연관을 깨뜨리기를 시도하는 전시입니다."]

갯벌에 사는 게 구멍을 표현한 테라코타 둥근 구멍은 파도에 휩쓸려 순간 허무하게 사라지지만 게가 치열하게 살아온 흔적입니다.

여러 겹 풍경이 중첩돼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각양각색 버섯이 선사하는 풍성함과 아름다움은 영겁이 만들어낸 야생의 힘을 보여줍니다.

반면 인간이 개발한 공사 터.

개발이 남긴 쓰레기와 사라진 철새 소리로 만든 작품은 파괴의 스산함과 황량함을 전해줍니다.

'베리를 따는 시간'이란 단어는 북아메리카 북서해안 부족들 토착어로 6월을 뜻합니다.

그들이 계절을 표현한 단어는 모두 자연과 연결돼 있지만 파괴되는 자연과 함께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박한나/'노래하는 땅' 전시기획자 : "전시에는 소설가, 문학연구자, 인류학연구자, 국내·외 에코아티스트, 해외 선주민 미술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25명이 참여해 국내 토박이어, 제주어, 북미 인디언 부족어, 일본 아이누 부족어와 함께 80점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인디언 원주민 미술가 '에드가 힙 오브 버즈' 작품은 피로 쓴 대자보처럼 백인 이주민이 행한 압제와 폭력을 선명하게 폭로합니다.

캐나다 원주민 작가 '에일란 코우치'는 니피씽 부족 땅 장엄한 자연 풍광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이주민이 파괴한 동굴 속 부족 기록을 전시장 벽면에 옮겨 놓았습니다.

소멸 위기에 놓인 토착어는 우리 주변에도 있습니다.

제주 해녀가 부르는 노동요는 선창과 합창을 반복하며 이어지지만 해녀가 하나, 둘 사라지면 그들의 완벽한 합창도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전시장에서는 나뭇가지를 얽어 만든 나선형 길을 따라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걸을 수 있고,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청아한 노래도 들을 수 있습니다.

전시장을 나서면서 사라지고 있는 언어는 인류가 자연을 파괴하기 전,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든 순수한 노래였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문화톡톡 최재훈입니다.

촬영기자:이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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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톡톡] 자연 파괴와 언어 소멸 이야기…‘노래하는 땅’
    • 입력 2023-11-30 20:09:43
    • 수정2023-11-30 20:15:16
    뉴스7(부산)
쓰러진 나무는 사람에게 아주 큰 의자가 됩니다.

그곳에 편히 앉아 전시장을 둘러보면 자연이 들어옵니다.

붉은 천을 펄럭이며 장엄한 풍경을 만드는 바람은 시원한 해방감을 전해줍니다.

고개를 돌리면 생명 근원인 땅을 직물과 흙물로 표현한 작품을 만납니다.

맞은편에는 나뭇잎이 모여 만든 가볍고 풍성한 숲 사이로 바람이 지나갑니다.

구획을 나누는 표지판에는 사라져가는 토착어와 자연과 접속했던 언어의 소멸을 막으려는 창작 소설이 작품과 함께합니다.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자연과 사라지는 토착어가 공동운명체로 다가옵니다.

[박한나/'노래하는 땅' 전시기획자 : "전시에서 주목하는 언어는 소멸 위기에 놓인 세계 토착어와 에코 아티스트들의 시각 조형 언어입니다. 두 언어의 세계를 조명하며 인간과 자연이 맺어온 오래된 공생 관계를 환기하고 현대인의 물질 중심의 자연관을 깨뜨리기를 시도하는 전시입니다."]

갯벌에 사는 게 구멍을 표현한 테라코타 둥근 구멍은 파도에 휩쓸려 순간 허무하게 사라지지만 게가 치열하게 살아온 흔적입니다.

여러 겹 풍경이 중첩돼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각양각색 버섯이 선사하는 풍성함과 아름다움은 영겁이 만들어낸 야생의 힘을 보여줍니다.

반면 인간이 개발한 공사 터.

개발이 남긴 쓰레기와 사라진 철새 소리로 만든 작품은 파괴의 스산함과 황량함을 전해줍니다.

'베리를 따는 시간'이란 단어는 북아메리카 북서해안 부족들 토착어로 6월을 뜻합니다.

그들이 계절을 표현한 단어는 모두 자연과 연결돼 있지만 파괴되는 자연과 함께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박한나/'노래하는 땅' 전시기획자 : "전시에는 소설가, 문학연구자, 인류학연구자, 국내·외 에코아티스트, 해외 선주민 미술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25명이 참여해 국내 토박이어, 제주어, 북미 인디언 부족어, 일본 아이누 부족어와 함께 80점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인디언 원주민 미술가 '에드가 힙 오브 버즈' 작품은 피로 쓴 대자보처럼 백인 이주민이 행한 압제와 폭력을 선명하게 폭로합니다.

캐나다 원주민 작가 '에일란 코우치'는 니피씽 부족 땅 장엄한 자연 풍광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이주민이 파괴한 동굴 속 부족 기록을 전시장 벽면에 옮겨 놓았습니다.

소멸 위기에 놓인 토착어는 우리 주변에도 있습니다.

제주 해녀가 부르는 노동요는 선창과 합창을 반복하며 이어지지만 해녀가 하나, 둘 사라지면 그들의 완벽한 합창도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전시장에서는 나뭇가지를 얽어 만든 나선형 길을 따라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걸을 수 있고,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청아한 노래도 들을 수 있습니다.

전시장을 나서면서 사라지고 있는 언어는 인류가 자연을 파괴하기 전,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든 순수한 노래였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문화톡톡 최재훈입니다.

촬영기자:이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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