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지나도 안 잊혀져요”…치료비 지원은 ‘사회적 지지’의 의미 [세월호기획/더 많은 ‘세월’ 흘러도]①

입력 2024.04.16 (19:49) 수정 2024.04.1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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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더 많은 '세월' 흘러도

"1년이 가도 10년이 가도 아니 더 많은 세월 흘러도 보고픈 얼굴들 그리운 이름을 우리 가슴에 새겨놓을게"
- 4·16합창단 <잊지 않을게> 중

별이 된 이들을 잊지 않으려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내 가족이어서, 또래여서, 여전히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서, 그냥 안타까워서.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10년을 살아온 이들을 KBS가 만났습니다.


트라우마는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대로 여전히 있고 안 잊혀져요.

그래서 가끔 가다 투석 받고 있으면, 혼자 뭔가 생각하고 있으면

옛날 생각이 다시 나서 또 혼자 울고 있고…

그런 건 여전히 있어요.

-세월호 민간잠수사 황병주 씨

■ 해경 대신 구조 활동…10년 지났지만, 몸과 마음엔 여전한 흉터

참사 직후 80일 넘게 293명의 희생자를 수습한 스물다섯 명의 민간잠수사.

유가족의 슬픔 말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현장에서 안전 수칙은 형식에 불과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30년 경력의 베테랑 잠수사였던 황병주 씨는 해경을 대신해 많게는 하루에 네 번을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10년 전 4월 이후 황 씨는 긴 시간 잠에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주기적으로 병원에 들러 처방받던 우울증약은 지난해에서야 끊었고, 여전히 수면제의 힘을 빌립니다.

지금도 잠은 계속 쪽잠을 자니까, 2시간.

짧으면 1~2시간, 어떨 때는 한 3시간까지도 갈 때도 있고. 그럴 때는 좀 더 컨디션이 괜찮고.

그러다 불면증이 심해지려고 하면 다시 수면제 먹고…

-세월호 민간잠수사 황병주 씨


몸도 성치 않습니다.

구조 활동이 마무리된 뒤 신장이 급격히 나빠진 황 씨는 지금까지 혈액 투석을 받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한 번 할 때마다 네 시간이 걸리는 치료는 그의 일상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잠수는 마찬가지고, 모든 일을 못 하게 된 거죠.

저는 투석을 해야 하니까 회사에 다니면 월, 수, 금에는 오후에 일찍 가야 해요.

친구가 사정을 이해해주고 '그런 것 신경 쓰지 말고 와서 일하라'고 해서 지금 친구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혹여라도 가족여행이라도 가게 되는데 투석 때문에 못 가는 상황, 그런 게 너무나 불편하죠. 멀리 이렇게 못 다니고.

-세월호 민간잠수사 황병주 씨


황 씨는 투석으로 인해 혈관이 팽창한 팔을 걷어 보이며 씁쓸한 표정으로 기자에게 물었습니다.

"징그럽죠?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서울 것 같아요."


■ 진통제 오래 복용해 생긴 위장병, 인과 관계없다며 지원 못 받기도

황 씨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지난해부터 치료 지원비를 받는 일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해경의 심사 절차가 추가됐는데, 이 절차를 통해 구조 활동에 참여했던 잠수사들이 받는 치료가 참사와 '인과관계'가 있음이 인정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황 씨는 치료비 지원 방식이 바뀐 뒤로 동료 잠수사들이 지원을 거절당하는 일이 종종 생겨났다고 말합니다.

'골괴사'(잠수사 직업병)가 심한 사람이 있고 덜 심한 사람이 있거든요.

한 동료가 골괴사가 굉장히 심해서 통증이 심하니까 진통제를 아주 강한 걸 먹어요.

그럼 진통제를 계속 먹으니까 위장이 안 좋아져서 위장약을 받는단 말이에요.

근데 그런 거는 인정을 안 해주는 거죠.

-세월호 민간잠수사 황병주 씨


또 다른 잠수사는 구조 당시 찼던 '웨이트 벨트'의 무게 때문에 허리를 다쳐 시술을 했는데, 구조 활동과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지원을 거절당하기도 했습니다.

■ 유가족·생존자 트라우마 계속돼…치료비 지원은 어제 종료

안산온마음센터에서 관리하는 심리지원 대상자는 900명 안팎입니다.

이 가운데 전문 상담사를 통해 1대1 사례 관리를 받고 있는 이들은 총 대상자의 98%.

대부분이 여전히 센터를 통해 관리를 받고 있는데, 대상자 네 명 중 한 명은 정신과 상담 진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오랜 기간 이들을 상담해온 한 상담사는 취재진에 "센터에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꺼리는 피해자들도 있어 그 비율은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센터에 등록된 피해자 중 열 명 안팎의 사람들은 상담사의 연락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연락처를 바꾸거나, 전화를 해도 '세월호 얘기를 듣거나 하고 싶지 않다'고 거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회피'하고자 하는 겁니다.

장기화된 트라우마는 신체 질병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2022년 유가족과 생존자 모두 트라우마를 겪지 않은 대조군에 비해 소화계통이나 내분비 질환· 근골격계 질환의 병원 신규 이용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유가족의 암·뇌혈관 질환 등 질병 발생 위험도도 대조군 대비 높았습니다.


참사 초기부터 세월호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온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트라우마는 몸이 기억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합니다.

백 교수는 "실제 트라우마 피해자에 대한 연구들은 다양한 신체 질환, 심장 질환이나 위장관 질환은 물론이고 암과 같은 여러 질병의 발병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보고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에 대한 '장기추적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백 교수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물론 해외에서도 10년 정도가 지나면 그 지역의 재난 트라우마 센터는 한 10년 정도 활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그런데 그 결정을 하게 되는 근거가 있어야 하거든요.

그것들이 10년간 꾸준히 피해를 본 분, 희생을 당한 분, 유가족들을 추적 조사를 해서 어느 정도 회복이 됐다고 판단되면 중단할 수도 있습니다.

근데 그 결정은 장기적인 추적 관찰에 근거해서 그 필요성에 의해서 따지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처음으로 세월호 피해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정신건강 추적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트라우마는 그 자체로 장기간의 치료를 필요로 하기도, 2·3차 질환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피해자들의 치료비 지원은 어제(15일) 종료됐습니다.

국회에는 피해자들의 치료비 지원에 기간을 정하지 않는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통과되지 못한 채 계류 중입니다.

■ 치료 지원은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지지'의 의미

백 교수는 국가의 피해 지원이 '사회적 지지'의 의미와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치료를 지원해온 것은 이 사회의 관심과 연대를 표현한 것이고 치유에 굉장히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9·11테러 피해자들에게 평생 치료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백 교수는 마지막으로 "10년이 지났다고 치료가 중단되는 건 사회의 관심과 연대가 철회된다는 의미에서 매우 안타까운 결과"라고 덧붙였습니다.

진정한 추모에 기한은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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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이 지나도 안 잊혀져요”…치료비 지원은 ‘사회적 지지’의 의미 [세월호기획/더 많은 ‘세월’ 흘러도]①
    • 입력 2024-04-16 19:49:36
    • 수정2024-04-18 17: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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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더 많은 '세월' 흘러도<br /><br />"1년이 가도 10년이 가도 아니 더 많은 세월 흘러도 보고픈 얼굴들 그리운 이름을 우리 가슴에 새겨놓을게"<br />- 4·16합창단 &lt;잊지 않을게&gt; 중<br /><br />별이 된 이들을 잊지 않으려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내 가족이어서, 또래여서, 여전히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서, 그냥 안타까워서.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10년을 살아온 이들을 KBS가 만났습니다.</strong><br />

트라우마는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대로 여전히 있고 안 잊혀져요.

그래서 가끔 가다 투석 받고 있으면, 혼자 뭔가 생각하고 있으면

옛날 생각이 다시 나서 또 혼자 울고 있고…

그런 건 여전히 있어요.

-세월호 민간잠수사 황병주 씨

■ 해경 대신 구조 활동…10년 지났지만, 몸과 마음엔 여전한 흉터

참사 직후 80일 넘게 293명의 희생자를 수습한 스물다섯 명의 민간잠수사.

유가족의 슬픔 말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현장에서 안전 수칙은 형식에 불과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30년 경력의 베테랑 잠수사였던 황병주 씨는 해경을 대신해 많게는 하루에 네 번을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10년 전 4월 이후 황 씨는 긴 시간 잠에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주기적으로 병원에 들러 처방받던 우울증약은 지난해에서야 끊었고, 여전히 수면제의 힘을 빌립니다.

지금도 잠은 계속 쪽잠을 자니까, 2시간.

짧으면 1~2시간, 어떨 때는 한 3시간까지도 갈 때도 있고. 그럴 때는 좀 더 컨디션이 괜찮고.

그러다 불면증이 심해지려고 하면 다시 수면제 먹고…

-세월호 민간잠수사 황병주 씨


몸도 성치 않습니다.

구조 활동이 마무리된 뒤 신장이 급격히 나빠진 황 씨는 지금까지 혈액 투석을 받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한 번 할 때마다 네 시간이 걸리는 치료는 그의 일상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잠수는 마찬가지고, 모든 일을 못 하게 된 거죠.

저는 투석을 해야 하니까 회사에 다니면 월, 수, 금에는 오후에 일찍 가야 해요.

친구가 사정을 이해해주고 '그런 것 신경 쓰지 말고 와서 일하라'고 해서 지금 친구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혹여라도 가족여행이라도 가게 되는데 투석 때문에 못 가는 상황, 그런 게 너무나 불편하죠. 멀리 이렇게 못 다니고.

-세월호 민간잠수사 황병주 씨


황 씨는 투석으로 인해 혈관이 팽창한 팔을 걷어 보이며 씁쓸한 표정으로 기자에게 물었습니다.

"징그럽죠?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서울 것 같아요."


■ 진통제 오래 복용해 생긴 위장병, 인과 관계없다며 지원 못 받기도

황 씨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지난해부터 치료 지원비를 받는 일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해경의 심사 절차가 추가됐는데, 이 절차를 통해 구조 활동에 참여했던 잠수사들이 받는 치료가 참사와 '인과관계'가 있음이 인정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황 씨는 치료비 지원 방식이 바뀐 뒤로 동료 잠수사들이 지원을 거절당하는 일이 종종 생겨났다고 말합니다.

'골괴사'(잠수사 직업병)가 심한 사람이 있고 덜 심한 사람이 있거든요.

한 동료가 골괴사가 굉장히 심해서 통증이 심하니까 진통제를 아주 강한 걸 먹어요.

그럼 진통제를 계속 먹으니까 위장이 안 좋아져서 위장약을 받는단 말이에요.

근데 그런 거는 인정을 안 해주는 거죠.

-세월호 민간잠수사 황병주 씨


또 다른 잠수사는 구조 당시 찼던 '웨이트 벨트'의 무게 때문에 허리를 다쳐 시술을 했는데, 구조 활동과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지원을 거절당하기도 했습니다.

■ 유가족·생존자 트라우마 계속돼…치료비 지원은 어제 종료

안산온마음센터에서 관리하는 심리지원 대상자는 900명 안팎입니다.

이 가운데 전문 상담사를 통해 1대1 사례 관리를 받고 있는 이들은 총 대상자의 98%.

대부분이 여전히 센터를 통해 관리를 받고 있는데, 대상자 네 명 중 한 명은 정신과 상담 진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오랜 기간 이들을 상담해온 한 상담사는 취재진에 "센터에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꺼리는 피해자들도 있어 그 비율은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센터에 등록된 피해자 중 열 명 안팎의 사람들은 상담사의 연락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연락처를 바꾸거나, 전화를 해도 '세월호 얘기를 듣거나 하고 싶지 않다'고 거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회피'하고자 하는 겁니다.

장기화된 트라우마는 신체 질병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2022년 유가족과 생존자 모두 트라우마를 겪지 않은 대조군에 비해 소화계통이나 내분비 질환· 근골격계 질환의 병원 신규 이용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유가족의 암·뇌혈관 질환 등 질병 발생 위험도도 대조군 대비 높았습니다.


참사 초기부터 세월호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온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트라우마는 몸이 기억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합니다.

백 교수는 "실제 트라우마 피해자에 대한 연구들은 다양한 신체 질환, 심장 질환이나 위장관 질환은 물론이고 암과 같은 여러 질병의 발병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보고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에 대한 '장기추적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백 교수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물론 해외에서도 10년 정도가 지나면 그 지역의 재난 트라우마 센터는 한 10년 정도 활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그런데 그 결정을 하게 되는 근거가 있어야 하거든요.

그것들이 10년간 꾸준히 피해를 본 분, 희생을 당한 분, 유가족들을 추적 조사를 해서 어느 정도 회복이 됐다고 판단되면 중단할 수도 있습니다.

근데 그 결정은 장기적인 추적 관찰에 근거해서 그 필요성에 의해서 따지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처음으로 세월호 피해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정신건강 추적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트라우마는 그 자체로 장기간의 치료를 필요로 하기도, 2·3차 질환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피해자들의 치료비 지원은 어제(15일) 종료됐습니다.

국회에는 피해자들의 치료비 지원에 기간을 정하지 않는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통과되지 못한 채 계류 중입니다.

■ 치료 지원은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지지'의 의미

백 교수는 국가의 피해 지원이 '사회적 지지'의 의미와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치료를 지원해온 것은 이 사회의 관심과 연대를 표현한 것이고 치유에 굉장히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9·11테러 피해자들에게 평생 치료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백 교수는 마지막으로 "10년이 지났다고 치료가 중단되는 건 사회의 관심과 연대가 철회된다는 의미에서 매우 안타까운 결과"라고 덧붙였습니다.

진정한 추모에 기한은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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