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짜놓은 판 흔들었다”…중국의 북극해 진입 자축, 왜?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4.10.08 (08:00) 수정 2024.10.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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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최장 연휴(국경절 연휴, 10월 1일~7일)에 들어선 중국에서 지난 2일 해경발 깜짝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중국 해경이 사상 최초로 북극해에 진출해 러시아와 합동 순찰에 나섰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정부 부처도 매체도 한숨 돌리며 쉬어가는 연휴 기간임에도 수일간 자축의 목소리가 잇따라 쏟아져나오며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습니다.

중국 관영매체들의 분석 보도를 통해 중국이 이번 사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먼저 그 시선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중국 해경이 북극해 최초 진입 소식을 전하며 공개한 사진. 해경 대원들 앞에 놓인 플래카드에 ‘중국 해경의 마음은 당을 향하며, 북극해에서 충성을 보인다’는 구호가 적혀있다.중국 해경이 북극해 최초 진입 소식을 전하며 공개한 사진. 해경 대원들 앞에 놓인 플래카드에 ‘중국 해경의 마음은 당을 향하며, 북극해에서 충성을 보인다’는 구호가 적혀있다.

■"신(新) 제1 도련선 돌파…미국이 짜놓은 판을 흔들어놔"

중국이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것, 바로 '신(新) 제1 도련선 돌파'입니다.

제1 도련선이란 쿠릴열도-일본-오키나와-타이완-필리핀-보르네오섬을 잇는 선을 뜻합니다.

우리에게는 1980년대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사령원이었던 류화칭(劉華淸)이 제시한 중국 해군의 작전 반경으로 익숙한 개념입니다. 중국에 대한 외부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한 저지선의 의미가 강합니다.

중국에서는 좀 다른데, 류화칭에 앞선 1950년대에 미국의 존 포스터 덜레스 전 국무장관이 처음으로 이 개념을 고안해 냈을 때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시 덜레스는 공산권 국가인 소련과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를 제시했는데, 이 냉전 시기의 개념 그대로 중국이 해상에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한 미국의 봉쇄선을 떠올리는 겁니다.


그렇다면 중국 매체들이 말하는 '신(新) 제1 도련선'은 뭘 뜻하는 걸까요?

미국이 필리핀, 한국, 일본, 호주 등과 함께 해경을 이용해 구축한 새로운 대(對)중국 봉쇄선을 일컫습니다.

중국과 필리핀 해경의 충돌 지점, 한미일 3국의 해경 연합훈련 지점, 쿼드 영향권에 든 해역 등 미국이 간접적으로 해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주요 해역을 손가락으로 쭉 이어보면 냉전 시기 고안된 제1 도련선과 비슷한 또 하나의 선이 생긴다는 겁니다.

해군이 해경으로 바뀌었을 뿐, 미국이 주변국들과 손잡고 중국의 해상 영향력 확대를 견제할 의도로 또다시 새로운 봉쇄선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깔려있습니다.

중국 매체에 따르면 중국 해경선 메이산(梅山)호와 슈산(秀山)호는 중국 저우산(舟山)을 출발해 러시아를 잠시 들른 뒤 미국 알래스카 근처 베링해를 지나 북극해에 도달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한 중국 매체들은 해경의 북극해 진출로 새 도련선을 돌파해 미국이 짠 판을 흔들어놨다면서 자체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CNN 역시 분석가들을 인용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오랫동안 해상활동을 전개해 온 미국에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고안된 중러 사이 협력'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빙하 녹는 북극항로…빙상 실크로드 시대 올까

한편, 중국이 이렇게 어렵사리 북극해에 진출한 것을 두고 외신들은 새로운 해상 운송로 개척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번 중러 북극해 합동 순찰 소식이 전해진 2일은 마침 중러 수교 75주년 기념일이기도 했는데, 중러 사이 협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북극 해상운송로는 지구온난화로 바닷길을 막던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항행 가능 기간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국가들과 유럽·북미 사이 운송 거리를 크게 단축할 수 있기 때문에 만일 상시 운항이 가능해질 경우 해적의 습격과 무력 충돌 등으로 위험요소가 상존하는 기존 해상운송로를 대체할 잠재력이 큽니다.

이 때문에 중국은 2017년 중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러시아와 손잡고 '빙상 실크로드(冰上絲綢之路)' 추진에 힘을 쏟았습니다.

빙상 실크로드는 기존 일대일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프로젝트로, 북극의 에너지·운송 인프라 개발을 위해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과 협력하면서 향후 북극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특히 북극에는 석유와 가스 자원이 풍부해 차후 이 같은 중요 에너지 자원의 새로운 운송로로 부상할 수도 있는 만큼, 중러는 물론 미국 등 여타 강대국들까지 모두 북극해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중국 해경사진 출처 : 중국 해경

해경은 해군을 동원했을 때처럼 주변국을 도발하는 것은 피하면서도 바다에서의 법 집행 권한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중국 해경의 이번 북극해 진출과 향후 행보를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게만 느껴지는 먼바다 북극해지만, 북극해의 차가운 바다를 둘러싼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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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이 짜놓은 판 흔들었다”…중국의 북극해 진입 자축, 왜? [특파원 리포트]
    • 입력 2024-10-08 08:00:11
    • 수정2024-10-08 08: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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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최장 연휴(국경절 연휴, 10월 1일~7일)에 들어선 중국에서 지난 2일 해경발 깜짝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중국 해경이 사상 최초로 북극해에 진출해 러시아와 합동 순찰에 나섰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정부 부처도 매체도 한숨 돌리며 쉬어가는 연휴 기간임에도 수일간 자축의 목소리가 잇따라 쏟아져나오며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습니다.

중국 관영매체들의 분석 보도를 통해 중국이 이번 사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먼저 그 시선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중국 해경이 북극해 최초 진입 소식을 전하며 공개한 사진. 해경 대원들 앞에 놓인 플래카드에 ‘중국 해경의 마음은 당을 향하며, 북극해에서 충성을 보인다’는 구호가 적혀있다.
■"신(新) 제1 도련선 돌파…미국이 짜놓은 판을 흔들어놔"

중국이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것, 바로 '신(新) 제1 도련선 돌파'입니다.

제1 도련선이란 쿠릴열도-일본-오키나와-타이완-필리핀-보르네오섬을 잇는 선을 뜻합니다.

우리에게는 1980년대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사령원이었던 류화칭(劉華淸)이 제시한 중국 해군의 작전 반경으로 익숙한 개념입니다. 중국에 대한 외부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한 저지선의 의미가 강합니다.

중국에서는 좀 다른데, 류화칭에 앞선 1950년대에 미국의 존 포스터 덜레스 전 국무장관이 처음으로 이 개념을 고안해 냈을 때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시 덜레스는 공산권 국가인 소련과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를 제시했는데, 이 냉전 시기의 개념 그대로 중국이 해상에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한 미국의 봉쇄선을 떠올리는 겁니다.


그렇다면 중국 매체들이 말하는 '신(新) 제1 도련선'은 뭘 뜻하는 걸까요?

미국이 필리핀, 한국, 일본, 호주 등과 함께 해경을 이용해 구축한 새로운 대(對)중국 봉쇄선을 일컫습니다.

중국과 필리핀 해경의 충돌 지점, 한미일 3국의 해경 연합훈련 지점, 쿼드 영향권에 든 해역 등 미국이 간접적으로 해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주요 해역을 손가락으로 쭉 이어보면 냉전 시기 고안된 제1 도련선과 비슷한 또 하나의 선이 생긴다는 겁니다.

해군이 해경으로 바뀌었을 뿐, 미국이 주변국들과 손잡고 중국의 해상 영향력 확대를 견제할 의도로 또다시 새로운 봉쇄선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깔려있습니다.

중국 매체에 따르면 중국 해경선 메이산(梅山)호와 슈산(秀山)호는 중국 저우산(舟山)을 출발해 러시아를 잠시 들른 뒤 미국 알래스카 근처 베링해를 지나 북극해에 도달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한 중국 매체들은 해경의 북극해 진출로 새 도련선을 돌파해 미국이 짠 판을 흔들어놨다면서 자체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CNN 역시 분석가들을 인용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오랫동안 해상활동을 전개해 온 미국에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고안된 중러 사이 협력'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빙하 녹는 북극항로…빙상 실크로드 시대 올까

한편, 중국이 이렇게 어렵사리 북극해에 진출한 것을 두고 외신들은 새로운 해상 운송로 개척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번 중러 북극해 합동 순찰 소식이 전해진 2일은 마침 중러 수교 75주년 기념일이기도 했는데, 중러 사이 협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북극 해상운송로는 지구온난화로 바닷길을 막던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항행 가능 기간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국가들과 유럽·북미 사이 운송 거리를 크게 단축할 수 있기 때문에 만일 상시 운항이 가능해질 경우 해적의 습격과 무력 충돌 등으로 위험요소가 상존하는 기존 해상운송로를 대체할 잠재력이 큽니다.

이 때문에 중국은 2017년 중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러시아와 손잡고 '빙상 실크로드(冰上絲綢之路)' 추진에 힘을 쏟았습니다.

빙상 실크로드는 기존 일대일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프로젝트로, 북극의 에너지·운송 인프라 개발을 위해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과 협력하면서 향후 북극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특히 북극에는 석유와 가스 자원이 풍부해 차후 이 같은 중요 에너지 자원의 새로운 운송로로 부상할 수도 있는 만큼, 중러는 물론 미국 등 여타 강대국들까지 모두 북극해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중국 해경
해경은 해군을 동원했을 때처럼 주변국을 도발하는 것은 피하면서도 바다에서의 법 집행 권한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중국 해경의 이번 북극해 진출과 향후 행보를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게만 느껴지는 먼바다 북극해지만, 북극해의 차가운 바다를 둘러싼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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