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노벨문학상도 유해도서? 경기도 학교도서관 3,300여권 ‘열람 제한’

입력 2024.10.2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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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경기 초중고, 교육청 성교육 도서 지침에 3,340권 '열람 제한'
2022년 노벨문학상 아니 에르노의 작품도 금지도서
김영하·정유정 작가 등 해외 출간 문학도 포함
일본군 위안부 증언 그림책,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수상작도 배제


경기도교육청의 성교육 도서 관리 지침에 따라, 경기도 초중고에서 지난해 3,340권을 '열람 제한'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열람 제한'은 학생들이 학교 도서관에서 해당 도서를 대출할 수 없도록 하는 조치로, 실질적으로 도서 폐기와 비슷한 효과를 냅니다.

이로써 경기도교육청의 조치로 학교 도서관에서 금지된 도서는 폐기 2,528권, 열람 제한 3,340권 등 모두 5,868권에 이릅니다. 폐기 도서와 마찬가지로 '열람 제한' 도서에는 성교육 도서가 아닌 문학 작품이나, 청소년 우수 도서가 다수 포함됐습니다.

[연관 기사] 학교도서관에 유해 성교육 책이 500여 종? 폐기된 책 목록 봤더니 (2024.05.15)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63860

■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도 열람 제한…국내 대표 작가 작품도 금지도서

경기도교육청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정을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성교육 도서 처리 결과 도서 목록'에 따르면,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여성작가 아니 에르노의 대표작 '단순한 열정'이 열람 제한됐습니다. 폐기 목록에 있었던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도 2개 학교에서 열람 제한된 것으로 추가 확인됐습니다. 199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가 폐기된 것을 더하면, 경기도 학교 도서관에서 금지된 노벨문학상 작가의 작품은 3종입니다.


학생들에게 열람 제한된 도서에는 해외에 활발하게 번역되며 한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도 포함됐습니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과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중혁의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정유정의 '종의 기원' 등이 열람 제한 목록에 들어갔습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독일에서 독립출판사 문학상, 추리문학상을 수상했고 일본번역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종의 기원'은 미국 최대 출판사인 펭귄북스를 포함해 20여 개국에 소개된 작품입니다.

■ 일본군 위안부 증언 담은 그림책,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수상작도 배제

유해한 성교육 도서로 보기 힘든 어린이 청소년 책도 열람 제한 도서 목록에 포함됐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그림책 '꽃 할머니'가 대표적입니다. 출판사에 따르면 이 책은 한중일 출판사가 공동 기획해 출간한 '평화 그림책'으로, 온라인 서점들은 이 책을 초등학교 고학년 추천도서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아동도서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수상작도 경기도 학교 도서관에서는 금지도서가 됐습니다. 스웨덴 작가 안나 회글룬드의 '나에 관한 연구'는 열네 살 소녀가 자신의 몸과 마음의 변화를 탐구하는 과정을 담은 그림책으로, 볼로냐 라가치 상을 수상했습니다.


아동 성폭력을 예방하고 피해자를 위로하는 책들도 유해 성교육 도서라며 금지됐습니다. 성폭력 대처법을 담은 그림책 '이럴 땐 싫다고 말해요!', 중학생 성추행 피해자의 극복 과정을 그린 만화 '비밀을 말할 시간'이 금지도서가 됐고, EBS가 출간한 유아용 성교육 동화 '아이들이 사는 성'도 열람 제한됐습니다.

■ 임태희 "독서 지도 필요성 강조한 것… 성교육 전문가 참여에 공감"

오늘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경기도 교육청 국정 감사에서는 이 같은 성교육 도서 폐기 사태가 집중적으로 다뤄졌습니다. 정을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기도 공문에 따라 학교의 94%가 청소년 유해매체 심의기준을 도서 관리 규정에 포함시켰다"면서 "심의 기관이 아닌 학교 도서관 운영위원회가 임의적으로 책을 심의하도록 한 것은 도서 검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청소년 유해 성교육 도서'에 대한 조치를 학교에 공문으로 요구한 곳은 경기도 교육청뿐이라고 밝혔습니다. 성교육 도서에 이 같은 조치가 필요하냐는 의원들의 질의에 함께 국정감사를 받은 정근식 서울교육감, 도성훈 인천교육감은 '계획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은 각 학교가 정한 유해 성교육 도서 목록이 "그런 조치가 이해되는 부분도 있고,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있다"면서도 "각 학교의 자율적 결정이지 검열은 아니다"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습니다.

이어 "경기도 교육청이 도서 폐기를 하라고 할 수도 없고, 해선 안된다"면서도 "딥페이크(허위 영상물) 같은 성 관련 범죄가 학교에서 많이 발생해 제대로 된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차원이었고, 혹시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그런 책을 무분별하게 볼 경우에는 적절한 독서 지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주의 환기 차원에서 공문을 보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성교육 도서의 보급 결정에 학부모보다 전문가 의견이 꼭 필요하다"는 김영호 교육위원장의 지적에 대해서는 공감한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의 지침으로 금서가 된 5,868권의 상당수는 이미 국내외에서 검증된 성교육 전문가들이 저술한 성교육·성평등 도서입니다. 개중에는 청소년이 다양한 매체 환경에서 판단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독서 지도와 직접 관련된 미디어 리터러시 책 ('좋아요'가 왜 안 좋아?')도 열람 제한됐습니다. 도서관에서 퇴출된 책들을 복원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의에, 임 교육감은 학교의 자율이라며 즉답을 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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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노벨문학상도 유해도서? 경기도 학교도서관 3,300여권 ‘열람 제한’
    • 입력 2024-10-22 15: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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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초중고, 교육청 성교육 도서 지침에 3,340권 '열람 제한'<br /> 2022년 노벨문학상 아니 에르노의 작품도 금지도서<br />김영하·정유정 작가 등 해외 출간 문학도 포함<br />일본군 위안부 증언 그림책,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수상작도 배제

경기도교육청의 성교육 도서 관리 지침에 따라, 경기도 초중고에서 지난해 3,340권을 '열람 제한'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열람 제한'은 학생들이 학교 도서관에서 해당 도서를 대출할 수 없도록 하는 조치로, 실질적으로 도서 폐기와 비슷한 효과를 냅니다.

이로써 경기도교육청의 조치로 학교 도서관에서 금지된 도서는 폐기 2,528권, 열람 제한 3,340권 등 모두 5,868권에 이릅니다. 폐기 도서와 마찬가지로 '열람 제한' 도서에는 성교육 도서가 아닌 문학 작품이나, 청소년 우수 도서가 다수 포함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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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도 열람 제한…국내 대표 작가 작품도 금지도서

경기도교육청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정을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성교육 도서 처리 결과 도서 목록'에 따르면,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여성작가 아니 에르노의 대표작 '단순한 열정'이 열람 제한됐습니다. 폐기 목록에 있었던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도 2개 학교에서 열람 제한된 것으로 추가 확인됐습니다. 199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가 폐기된 것을 더하면, 경기도 학교 도서관에서 금지된 노벨문학상 작가의 작품은 3종입니다.


학생들에게 열람 제한된 도서에는 해외에 활발하게 번역되며 한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도 포함됐습니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과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중혁의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정유정의 '종의 기원' 등이 열람 제한 목록에 들어갔습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독일에서 독립출판사 문학상, 추리문학상을 수상했고 일본번역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종의 기원'은 미국 최대 출판사인 펭귄북스를 포함해 20여 개국에 소개된 작품입니다.

■ 일본군 위안부 증언 담은 그림책,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수상작도 배제

유해한 성교육 도서로 보기 힘든 어린이 청소년 책도 열람 제한 도서 목록에 포함됐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그림책 '꽃 할머니'가 대표적입니다. 출판사에 따르면 이 책은 한중일 출판사가 공동 기획해 출간한 '평화 그림책'으로, 온라인 서점들은 이 책을 초등학교 고학년 추천도서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아동도서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수상작도 경기도 학교 도서관에서는 금지도서가 됐습니다. 스웨덴 작가 안나 회글룬드의 '나에 관한 연구'는 열네 살 소녀가 자신의 몸과 마음의 변화를 탐구하는 과정을 담은 그림책으로, 볼로냐 라가치 상을 수상했습니다.


아동 성폭력을 예방하고 피해자를 위로하는 책들도 유해 성교육 도서라며 금지됐습니다. 성폭력 대처법을 담은 그림책 '이럴 땐 싫다고 말해요!', 중학생 성추행 피해자의 극복 과정을 그린 만화 '비밀을 말할 시간'이 금지도서가 됐고, EBS가 출간한 유아용 성교육 동화 '아이들이 사는 성'도 열람 제한됐습니다.

■ 임태희 "독서 지도 필요성 강조한 것… 성교육 전문가 참여에 공감"

오늘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경기도 교육청 국정 감사에서는 이 같은 성교육 도서 폐기 사태가 집중적으로 다뤄졌습니다. 정을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기도 공문에 따라 학교의 94%가 청소년 유해매체 심의기준을 도서 관리 규정에 포함시켰다"면서 "심의 기관이 아닌 학교 도서관 운영위원회가 임의적으로 책을 심의하도록 한 것은 도서 검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청소년 유해 성교육 도서'에 대한 조치를 학교에 공문으로 요구한 곳은 경기도 교육청뿐이라고 밝혔습니다. 성교육 도서에 이 같은 조치가 필요하냐는 의원들의 질의에 함께 국정감사를 받은 정근식 서울교육감, 도성훈 인천교육감은 '계획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은 각 학교가 정한 유해 성교육 도서 목록이 "그런 조치가 이해되는 부분도 있고,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있다"면서도 "각 학교의 자율적 결정이지 검열은 아니다"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습니다.

이어 "경기도 교육청이 도서 폐기를 하라고 할 수도 없고, 해선 안된다"면서도 "딥페이크(허위 영상물) 같은 성 관련 범죄가 학교에서 많이 발생해 제대로 된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차원이었고, 혹시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그런 책을 무분별하게 볼 경우에는 적절한 독서 지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주의 환기 차원에서 공문을 보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성교육 도서의 보급 결정에 학부모보다 전문가 의견이 꼭 필요하다"는 김영호 교육위원장의 지적에 대해서는 공감한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의 지침으로 금서가 된 5,868권의 상당수는 이미 국내외에서 검증된 성교육 전문가들이 저술한 성교육·성평등 도서입니다. 개중에는 청소년이 다양한 매체 환경에서 판단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독서 지도와 직접 관련된 미디어 리터러시 책 ('좋아요'가 왜 안 좋아?')도 열람 제한됐습니다. 도서관에서 퇴출된 책들을 복원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의에, 임 교육감은 학교의 자율이라며 즉답을 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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