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김대중] “한일 외교의 선구자” - 이종찬 광복회장

입력 2024.11.05 (14: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요약

연중기획 DJ탄생 100년「다시 만난 김대중」은 KBS 광주총국이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맞아 준비한 기획 연재물입니다. 월 1회 제작해 '뉴스 7 광주전남'과 '광주전남 9시 뉴스'에서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1998년 10월 이뤄진 '김대중-오부치 선언' 을 다뤘습니다. 한일 외교 사상 최초로 일본의 반성과 사죄가 공식문서화된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역사적 의미와 내용 면에서 오늘날 한일 관계의 이정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 초대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 광복회장과 인터뷰를 정리했습니다. 상자 안 이텔릭체 문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입니다.


보수 이종찬은 어떻게 김대중과 정치적 동지가 됐나?

제(이종찬)가 여당(민정당)의 총무도 했고 정무장관도 했어요. 정당의 총무는 여· 야당과 잘 지내는 것이 본래 일입니다. 더군다나 정무장관은 야당 총재와 정말 가깝게 지내야 해요. 그래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대화했죠.

그런데 한 번 대화를 시작하면 한 시간으로는 모자라 계속 토론해야 해요. 이 분의 장점이 뭐냐 자기 말에 무조건 '아, 그거 옳습니다' 하고 수긍하더라도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이유 없이 순종하는 걸 싫어한다고 '그건 맹종이다' 이거죠.

(노태우 정부) 정무장관 하면서도 참 많이 만났어요. 예를 들면 '정부에서 이런 정책을 하는 데 좀 협조해 주십시오' 그러면 '왜 협조를 해야 되는지 이유를 얘기하시오' 라는식의 토론을 이어가야 했어요. 끄덕거리기만 하는 것을 별로 반기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 그래서 제가 ' 질문에 대해 분명한 해답을 가지고 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종찬 국가안전기획부장 임명장 수여식(1998년 3월 4일)이종찬 국가안전기획부장 임명장 수여식(1998년 3월 4일)

국정원장 하면서도 그 분에게 서류를 가져가서 정보 보고를 하거나 결재를 받을 때 꼭 물어봐요. 그러면 거기에 대해 답변을 해야 합니다. '아 ,이건 그냥 들은풍월로 얘기한 겁니다' 이런 건 안 됩니다. 그래서 긴장을 많이 했어요.

그런 정치인· 지도자를 제가 그리 많이 못 봤어요. 모시던 분들도 그냥 지시하면 따르는 것만 원했지, 지시하면서 그 지시에 대해서 숙지하도록 충분한 기회를 주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분으로부터는 그 기회를 받았다고 하는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 김대중-오부치 선언 어떻게 가능했나?

나는 한국과 일본이 불행한 과거사를 정리하고 진정한 미래의 동반자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 두 나라의 20세기 역사에 박혀 있는 원한과 상처를 21세기까지 끌고 갈 수는 없었다. 김영삼 정부 때 악화된 대일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야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지자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강경 대응은 또 다른 강경책을 불러왔다. 그러다 보니 한일 양국의 외교 채널은 끊겨 버렸고, 정부간의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다.
-「김대중 자서전」 중에서

국정원장을 하면서 한일 정상회담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측의 정보를 많이 입수했습니다. 일본으로서는 한일 정상 만남에 가장 거북한 주제가 '김대중 납치사건' 이었습니다. 그렇게 보고를 드렸어요.

당시에는 별말씀 없으셨는데 조금 있으니까, 정상회담이 (성사)됐어요. 제가 당시에 보고한 게 있으니까 긴장해서 지켜봤을 거 아니에요? 대통령은 (본인이 겪은 납치 사건에 대해) 일언반구 하지 않았어요.


나와 오부치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21세기 한일 파트너십'이라는 공동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 공동 선언은 많은 원칙과 구체적 행동계획을 담고 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사에 대한 일본 총리의 대한국 사죄였다. "오부치 총리대신은 금세기의 한일 양국 관계를 돌아보고,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하였다. 이는 일본 정부가 '식민 통치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처음으로 외교 문서에, 또 한국을 직접 지칭해서 명기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김대중 자서전」 중에서

저는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전전 일본은 군국주의 일본이고, 제국주의 일본이고, 우리에게 피해를 준 일본이다. 그러나 전후 일본은 민주주의 일본이고, 평화를 향해서 가려는 일본이고, 평화헌법에 의해서 전쟁을 부인한 일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전 일본과 전후 일본을 이렇게 혼동해서 생각하면 안 된다."라고 배웠습니다.

"전전 일본에 대해서는 우리가 항의도 하지만 전후 일본에 대해서 자꾸 그것을(과거를) 항의할 수는 없는 거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피차 잘 풀어가야 한다. 공존해서 가야 된다."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오부치 선언에도 딱 나와 있어요. 우리 과거에 대해서는 잊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에 대해서 얽매여 있지 않고 그래서 미래를 향해서 가자, 그런 뜻에서 대중문화를 풀자. 굉장한 현안이죠.

당시에 굉장했어요. (대중문화 개방 소식에) 저를 찾아온 사람이 많았어요. 특히 레코드하는 사람들, 디스크 만드는 사람이 찾아와서 "일본의 엔가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우리 우리 DVD 다 망합니다' '일본의 DVD가 막 물 밀듯이 들어오고 젊은이들이 좋아하고 그렇게 되면 우리 디스크 만드는 사람들은 판로가 없잖아요?'"라고. 김대중 대통령이 잘못 생각한 거라고, 우리의 형편을 잘 모르는 거라고 항의도 많이 받았어요.

그러면 언제까지 문을 닫고 사느냐, 견뎌보자 그러는데…웬걸 견뎌보니까 어때요? 우리가 이익 아니에요. K컬쳐가 더 많이 일본에 가잖아요. 지금은 이 개방이 어떤 면에서 우리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거예요.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믿은 거죠.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 우리나라 사람들의 재능을 믿은 거지. 어쩌면 일본 문화가 들어와서 초장에는 우리가 당하지만 이걸 역전시킬 수 있다는 어떤 그런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더라도 우리 것으로 재창조하는 독특한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더 이상 문화 쇄국주의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 문화는 우리 스스로가 생각해도 자랑스럽다. 나는 일본 문화 개방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내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일본 문화를 개방한 이후 오히려 일본에서 '한류(韓流)'가 일어나지 않았는가.
-「김대중 자서전」 중에서

역대 한국 대통령 중에서 김대중 대통령만큼 일본 조야에서 그 당시에 방문했을 때 환영받은 그런 분이 없어요. 김대중 대통령은 곳곳 문화인들하고 만나서 얘기하고, 심지어 목상(목포 상고) 담임 선생까지 찾아서 인사를 했단 말이에요.

목포상고 다닐 때 담임 선생이 일본 사람인데 그분을 찾아서 인사를 했어요. 세심한 준비를 한 거죠. 그 세심한 준비라는 것을 참모들은 할 수가 없어요. 대통령의 목포상고 담임 선생을 본인만 알죠. 참모들이 그것까지 어떻게 압니까? (김대중 대통령은) 그것까지 다 생각해서 오사카 방문할 때 그 선생이 오사카 근방에 산다는 걸 알고 전화를 해서 제가 아무개입니다. … 감동을 준 거지.

어떻게, 담임 선생을 찾는다는 건 나도 상상을 못 한 거고. 일본 사람이 생각할 때는 아 저 사람이 보통 마음이 아니구나를 알게 되잖아요. 문화인들 다 만났거든 심지어 작가들도 다 만났단 말이에요.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그분이 평소에 공부했기 때문에 실력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그런 시나리오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날을 체크했겠어요. 아마 수첩에 새카맣게 썼을 거예요.


■ 인내와 화해…전제는 철저한 반성

"한일 두 나라는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 때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를 직시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고, 미래를 지향한다는 것은 인식된 사실에서 교훈을 찾고 더 나은 내일을 함께 모색한다는 뜻입니다.
- 1998년 한일 정상회담 참의원 본회의장 연설 중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의 지금 일본에 대한 감정은 말하자면 종결할 때가 됐어요. 일본을 욕함으로써 기분 좋은, 대중들을 선동시키는 이런 건 안 해야 돼요. 왜냐하면 우리가 일본 욕하면 대중들이 박수치거든. 그것 때문에 일본을 욕하는 그런 시대는 지났어요. 그건 안 해야 한다고 봐요. 더군다나 우리 가족이 일본으로부터 피해를 본 제가 당당하게 얘기를 하겠다 이거예요.

우리도 톨레랑스를 배워야 합니다. 인고· 인내·화해예요. 인내만 하는 게 아니라 화해하는 거예요. 프랑스에서 톨레랑스라고 하죠. 인내하면서 참으면서 화해하는 거예요. 문을 여는 거예요. 그 시대가 왔다고 봅니다. 그런데 단, 조건이 있어요. 일본의 우파들처럼 자기네들은 다 잘났다고 하면서 전혀 우리에 대해서 미안한 감도 안 가지면서 우리가 톨레랑스 한다면 우리가 무릎을 꿇는 격이 돼버려요. 그러니까 일본도 상응하는 대접을 해라 이겁니다.

■ 한일 관계 어떻게 풀어야 하나?

국민들에게 계속해서 일본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켜서 정치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것으로는 영원히 해결이 안 됩니다. 한일 관계는 풀자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서만 풀자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두환·노태우에 대해서도 풀자는 마음이 있었다는 거죠.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에 대해 전혀 보복하지 않고 계속 대화했어요. 노태우 대통령에게는 '당신의 대북 정책은 내가 승계하겠다'고 했죠. 이런 마음이 있으니까 그 두 분이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 굉장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가셨잖아요. 그렇게 참고 인내하면서 화해한 유일한 대통령이 아닌가(생각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철학, '용서와 화해' 여기에 다 들어가 있어요. 김대중-오부치 선언에만 용서와 화해고, 국내에 와서는 다르고 이게 아니었단 말이에요. 모든 정치의 상대에 대해 다 용서와 화해라는 입장에서 서있다 이겁니다. 노태우· 전두환에 대해서도 그렇고 박정희에 대해서도 그렇고 또 오부치에 대해서도…일본에 있는 모든 사람한테 다 그렇게 대하고 있다, 이거죠.


■ 정부의 김대중-오부치 정신 계승 어떻게 보나?

저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신을 좀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어떤 면에서는 평화와 화해 쪽의 사람이니까.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대해야합니다. 그러면서 과거는 과거대로 따질 건 따지고 미래에 대해서 (협의하는) . 이걸 혼동시키지 말고 가야 옳다고 봅니다. 전후 일본과 전전 일본을 혼동해서 헤매면 국민이 못 따라갑니다.

강제징용 피해에 대해 제3자 변제라는 방식으로 해보자는 것은 잘한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꼭 매여 있어서 풀 수가 없었는데 이걸 풀었단 말이죠. 그러나 일본이 호응하지 않고 있으니까 자칫 잘못하면 우리만 풀고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게 된단 말이죠. 그러니까 이제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에게 '우리가 풀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컵의 반을 채웠다. 이제 남은 반은 당신이 채워라.' 이것을 요구해야지요. 그러면 우리의 피해자들도 마음을 풀리라고 봅니다.

일본이 풀지 않으니까 그 사람들도 딱 하고 움켜쥐고 있는 거예요. 이시바 시게루 총리 같은 사람은 과거의 언동으로 보면 제 생각에 사과할 수 있는 사람으로 봐요. 그런데 사과에 진정성이 있어야지 형식적으로 사과하면 무슨 의미가 있어요? 우리 국민들에게 맞게 사과해 주면 우리도 그 부분에 대해서 응답해서 이걸 풀고 나가야지 계속 끌고 가는 건 현명치 못한 방법입니다.

저는 윤석열 대통령도 제대로 김대중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전 문제와 전후 문제를 분명히 가려야 될 텐데 혼동을 시키고 있어요. 전전 문제는 전전 문제대로 잊지 않아야 하고, 전후 문제는 전후 문제대로 우애와 호혜· 평등의 원칙에서 가야 되고 이렇게 구분해야 할 텐데 이거 구분이 안 되고 있어요.

지금 제가 뉴라이트를 많이 비난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이 사람들은 무조건 잊자 이런 얘기에요. 뉴라이트 식으로 접근하면 영원히 일본 문제도 해결이 안 돼요. 우리를 지켜가면서 너희 입장도 이해한다고 그래야지 우리는 없어져 버리고 너희 입장도 이해한다고 그러면 그건 그야말로 친일파지 그게 뭐예요?

윤석열 대통령도 대통령 되기 전에는 전전 일본과 전후 일본을 분명히 구분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생각이 옳다고 얘기를 했어요. 김대중 오부치 선언적인 것이 제일 지금 필요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본인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바탕으로 깔고 그 위에다가 자기의 집을 짓겠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자꾸 혼동되고 있단 말이에요. 사도 광산에 대한 얘기를 안 하고, 관동 대지진으로 인해서 6천 명이나 우리가 학살을 당했는데 한마디는 해야지. 그것도 얘기 안 하고….

그저 이 얘기는 뭐냐 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뉴라이트 식 인사니까 '과거를 잊어버려라, 잊어버려라'만 얘기를 하지 미래를 향해서 가는 프로그램이 없단 말이죠.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대통령 되기 전에 생각했던 걸로 돌아가라 이겁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이 구축해 놓은 그 위에다 집을 지어라 내가 그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다시 만난 김대중] “한일 외교의 선구자” - 이종찬 광복회장
    • 입력 2024-11-05 14:00:37
    심층K
<strong>연중기획 DJ탄생 100년「다시 만난 김대중」은 KBS 광주총국이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맞아 준비한 기획 연재물입니다. 월 1회 제작해 '뉴스 7 광주전남'과 '광주전남 9시 뉴스'에서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1998년 10월 이뤄진 '김대중-오부치 선언' 을 다뤘습니다. 한일 외교 사상 최초로 일본의 반성과 사죄가 공식문서화된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역사적 의미와 내용 면에서 오늘날 한일 관계의 이정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 초대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 광복회장과 인터뷰를 정리했습니다. 상자 안 이텔릭체 문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입니다.</strong><br />

보수 이종찬은 어떻게 김대중과 정치적 동지가 됐나?

제(이종찬)가 여당(민정당)의 총무도 했고 정무장관도 했어요. 정당의 총무는 여· 야당과 잘 지내는 것이 본래 일입니다. 더군다나 정무장관은 야당 총재와 정말 가깝게 지내야 해요. 그래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대화했죠.

그런데 한 번 대화를 시작하면 한 시간으로는 모자라 계속 토론해야 해요. 이 분의 장점이 뭐냐 자기 말에 무조건 '아, 그거 옳습니다' 하고 수긍하더라도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이유 없이 순종하는 걸 싫어한다고 '그건 맹종이다' 이거죠.

(노태우 정부) 정무장관 하면서도 참 많이 만났어요. 예를 들면 '정부에서 이런 정책을 하는 데 좀 협조해 주십시오' 그러면 '왜 협조를 해야 되는지 이유를 얘기하시오' 라는식의 토론을 이어가야 했어요. 끄덕거리기만 하는 것을 별로 반기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 그래서 제가 ' 질문에 대해 분명한 해답을 가지고 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종찬 국가안전기획부장 임명장 수여식(1998년 3월 4일)
국정원장 하면서도 그 분에게 서류를 가져가서 정보 보고를 하거나 결재를 받을 때 꼭 물어봐요. 그러면 거기에 대해 답변을 해야 합니다. '아 ,이건 그냥 들은풍월로 얘기한 겁니다' 이런 건 안 됩니다. 그래서 긴장을 많이 했어요.

그런 정치인· 지도자를 제가 그리 많이 못 봤어요. 모시던 분들도 그냥 지시하면 따르는 것만 원했지, 지시하면서 그 지시에 대해서 숙지하도록 충분한 기회를 주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분으로부터는 그 기회를 받았다고 하는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 김대중-오부치 선언 어떻게 가능했나?

나는 한국과 일본이 불행한 과거사를 정리하고 진정한 미래의 동반자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 두 나라의 20세기 역사에 박혀 있는 원한과 상처를 21세기까지 끌고 갈 수는 없었다. 김영삼 정부 때 악화된 대일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야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지자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강경 대응은 또 다른 강경책을 불러왔다. 그러다 보니 한일 양국의 외교 채널은 끊겨 버렸고, 정부간의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다.
-「김대중 자서전」 중에서

국정원장을 하면서 한일 정상회담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측의 정보를 많이 입수했습니다. 일본으로서는 한일 정상 만남에 가장 거북한 주제가 '김대중 납치사건' 이었습니다. 그렇게 보고를 드렸어요.

당시에는 별말씀 없으셨는데 조금 있으니까, 정상회담이 (성사)됐어요. 제가 당시에 보고한 게 있으니까 긴장해서 지켜봤을 거 아니에요? 대통령은 (본인이 겪은 납치 사건에 대해) 일언반구 하지 않았어요.


나와 오부치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21세기 한일 파트너십'이라는 공동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 공동 선언은 많은 원칙과 구체적 행동계획을 담고 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사에 대한 일본 총리의 대한국 사죄였다. "오부치 총리대신은 금세기의 한일 양국 관계를 돌아보고,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하였다. 이는 일본 정부가 '식민 통치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처음으로 외교 문서에, 또 한국을 직접 지칭해서 명기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김대중 자서전」 중에서

저는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전전 일본은 군국주의 일본이고, 제국주의 일본이고, 우리에게 피해를 준 일본이다. 그러나 전후 일본은 민주주의 일본이고, 평화를 향해서 가려는 일본이고, 평화헌법에 의해서 전쟁을 부인한 일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전 일본과 전후 일본을 이렇게 혼동해서 생각하면 안 된다."라고 배웠습니다.

"전전 일본에 대해서는 우리가 항의도 하지만 전후 일본에 대해서 자꾸 그것을(과거를) 항의할 수는 없는 거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피차 잘 풀어가야 한다. 공존해서 가야 된다."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오부치 선언에도 딱 나와 있어요. 우리 과거에 대해서는 잊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에 대해서 얽매여 있지 않고 그래서 미래를 향해서 가자, 그런 뜻에서 대중문화를 풀자. 굉장한 현안이죠.

당시에 굉장했어요. (대중문화 개방 소식에) 저를 찾아온 사람이 많았어요. 특히 레코드하는 사람들, 디스크 만드는 사람이 찾아와서 "일본의 엔가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우리 우리 DVD 다 망합니다' '일본의 DVD가 막 물 밀듯이 들어오고 젊은이들이 좋아하고 그렇게 되면 우리 디스크 만드는 사람들은 판로가 없잖아요?'"라고. 김대중 대통령이 잘못 생각한 거라고, 우리의 형편을 잘 모르는 거라고 항의도 많이 받았어요.

그러면 언제까지 문을 닫고 사느냐, 견뎌보자 그러는데…웬걸 견뎌보니까 어때요? 우리가 이익 아니에요. K컬쳐가 더 많이 일본에 가잖아요. 지금은 이 개방이 어떤 면에서 우리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거예요.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믿은 거죠.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 우리나라 사람들의 재능을 믿은 거지. 어쩌면 일본 문화가 들어와서 초장에는 우리가 당하지만 이걸 역전시킬 수 있다는 어떤 그런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더라도 우리 것으로 재창조하는 독특한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더 이상 문화 쇄국주의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 문화는 우리 스스로가 생각해도 자랑스럽다. 나는 일본 문화 개방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내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일본 문화를 개방한 이후 오히려 일본에서 '한류(韓流)'가 일어나지 않았는가.
-「김대중 자서전」 중에서

역대 한국 대통령 중에서 김대중 대통령만큼 일본 조야에서 그 당시에 방문했을 때 환영받은 그런 분이 없어요. 김대중 대통령은 곳곳 문화인들하고 만나서 얘기하고, 심지어 목상(목포 상고) 담임 선생까지 찾아서 인사를 했단 말이에요.

목포상고 다닐 때 담임 선생이 일본 사람인데 그분을 찾아서 인사를 했어요. 세심한 준비를 한 거죠. 그 세심한 준비라는 것을 참모들은 할 수가 없어요. 대통령의 목포상고 담임 선생을 본인만 알죠. 참모들이 그것까지 어떻게 압니까? (김대중 대통령은) 그것까지 다 생각해서 오사카 방문할 때 그 선생이 오사카 근방에 산다는 걸 알고 전화를 해서 제가 아무개입니다. … 감동을 준 거지.

어떻게, 담임 선생을 찾는다는 건 나도 상상을 못 한 거고. 일본 사람이 생각할 때는 아 저 사람이 보통 마음이 아니구나를 알게 되잖아요. 문화인들 다 만났거든 심지어 작가들도 다 만났단 말이에요.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그분이 평소에 공부했기 때문에 실력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그런 시나리오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날을 체크했겠어요. 아마 수첩에 새카맣게 썼을 거예요.


■ 인내와 화해…전제는 철저한 반성

"한일 두 나라는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 때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를 직시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고, 미래를 지향한다는 것은 인식된 사실에서 교훈을 찾고 더 나은 내일을 함께 모색한다는 뜻입니다.
- 1998년 한일 정상회담 참의원 본회의장 연설 중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의 지금 일본에 대한 감정은 말하자면 종결할 때가 됐어요. 일본을 욕함으로써 기분 좋은, 대중들을 선동시키는 이런 건 안 해야 돼요. 왜냐하면 우리가 일본 욕하면 대중들이 박수치거든. 그것 때문에 일본을 욕하는 그런 시대는 지났어요. 그건 안 해야 한다고 봐요. 더군다나 우리 가족이 일본으로부터 피해를 본 제가 당당하게 얘기를 하겠다 이거예요.

우리도 톨레랑스를 배워야 합니다. 인고· 인내·화해예요. 인내만 하는 게 아니라 화해하는 거예요. 프랑스에서 톨레랑스라고 하죠. 인내하면서 참으면서 화해하는 거예요. 문을 여는 거예요. 그 시대가 왔다고 봅니다. 그런데 단, 조건이 있어요. 일본의 우파들처럼 자기네들은 다 잘났다고 하면서 전혀 우리에 대해서 미안한 감도 안 가지면서 우리가 톨레랑스 한다면 우리가 무릎을 꿇는 격이 돼버려요. 그러니까 일본도 상응하는 대접을 해라 이겁니다.

■ 한일 관계 어떻게 풀어야 하나?

국민들에게 계속해서 일본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켜서 정치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것으로는 영원히 해결이 안 됩니다. 한일 관계는 풀자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서만 풀자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두환·노태우에 대해서도 풀자는 마음이 있었다는 거죠.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에 대해 전혀 보복하지 않고 계속 대화했어요. 노태우 대통령에게는 '당신의 대북 정책은 내가 승계하겠다'고 했죠. 이런 마음이 있으니까 그 두 분이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 굉장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가셨잖아요. 그렇게 참고 인내하면서 화해한 유일한 대통령이 아닌가(생각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철학, '용서와 화해' 여기에 다 들어가 있어요. 김대중-오부치 선언에만 용서와 화해고, 국내에 와서는 다르고 이게 아니었단 말이에요. 모든 정치의 상대에 대해 다 용서와 화해라는 입장에서 서있다 이겁니다. 노태우· 전두환에 대해서도 그렇고 박정희에 대해서도 그렇고 또 오부치에 대해서도…일본에 있는 모든 사람한테 다 그렇게 대하고 있다, 이거죠.


■ 정부의 김대중-오부치 정신 계승 어떻게 보나?

저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신을 좀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어떤 면에서는 평화와 화해 쪽의 사람이니까.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대해야합니다. 그러면서 과거는 과거대로 따질 건 따지고 미래에 대해서 (협의하는) . 이걸 혼동시키지 말고 가야 옳다고 봅니다. 전후 일본과 전전 일본을 혼동해서 헤매면 국민이 못 따라갑니다.

강제징용 피해에 대해 제3자 변제라는 방식으로 해보자는 것은 잘한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꼭 매여 있어서 풀 수가 없었는데 이걸 풀었단 말이죠. 그러나 일본이 호응하지 않고 있으니까 자칫 잘못하면 우리만 풀고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게 된단 말이죠. 그러니까 이제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에게 '우리가 풀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컵의 반을 채웠다. 이제 남은 반은 당신이 채워라.' 이것을 요구해야지요. 그러면 우리의 피해자들도 마음을 풀리라고 봅니다.

일본이 풀지 않으니까 그 사람들도 딱 하고 움켜쥐고 있는 거예요. 이시바 시게루 총리 같은 사람은 과거의 언동으로 보면 제 생각에 사과할 수 있는 사람으로 봐요. 그런데 사과에 진정성이 있어야지 형식적으로 사과하면 무슨 의미가 있어요? 우리 국민들에게 맞게 사과해 주면 우리도 그 부분에 대해서 응답해서 이걸 풀고 나가야지 계속 끌고 가는 건 현명치 못한 방법입니다.

저는 윤석열 대통령도 제대로 김대중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전 문제와 전후 문제를 분명히 가려야 될 텐데 혼동을 시키고 있어요. 전전 문제는 전전 문제대로 잊지 않아야 하고, 전후 문제는 전후 문제대로 우애와 호혜· 평등의 원칙에서 가야 되고 이렇게 구분해야 할 텐데 이거 구분이 안 되고 있어요.

지금 제가 뉴라이트를 많이 비난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이 사람들은 무조건 잊자 이런 얘기에요. 뉴라이트 식으로 접근하면 영원히 일본 문제도 해결이 안 돼요. 우리를 지켜가면서 너희 입장도 이해한다고 그래야지 우리는 없어져 버리고 너희 입장도 이해한다고 그러면 그건 그야말로 친일파지 그게 뭐예요?

윤석열 대통령도 대통령 되기 전에는 전전 일본과 전후 일본을 분명히 구분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생각이 옳다고 얘기를 했어요. 김대중 오부치 선언적인 것이 제일 지금 필요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본인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바탕으로 깔고 그 위에다가 자기의 집을 짓겠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자꾸 혼동되고 있단 말이에요. 사도 광산에 대한 얘기를 안 하고, 관동 대지진으로 인해서 6천 명이나 우리가 학살을 당했는데 한마디는 해야지. 그것도 얘기 안 하고….

그저 이 얘기는 뭐냐 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뉴라이트 식 인사니까 '과거를 잊어버려라, 잊어버려라'만 얘기를 하지 미래를 향해서 가는 프로그램이 없단 말이죠.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대통령 되기 전에 생각했던 걸로 돌아가라 이겁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이 구축해 놓은 그 위에다 집을 지어라 내가 그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