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누구에게는 빼빼로 데이이고, 누구에게는 가래떡 데이였지만, 법정 기념일은 '농업인의 날'입니다.
한자로 쓰면 十一월 十一일로 十一을 위아래로 겹치면 흙 토(土)자가 되죠.
여기에 시간까지 11시가 되면 흙 토(土)가 세 번 겹치니, '농민은 흙에서 나서 흙을 벗 삼아 살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라 의미를 붙이기도 합니다.
이런 뜻에서 지난 1996년 법정기념일인 농업인의 날로 공표했고, 기념식도 11월 11일 11시에 맞춰 엽니다.
올해로 29회를 맞은 농업인의 날 기념식이 농업계 주요 인사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올해 기념식은 서울 중구에 있는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렸는데, 농업계 주요 인사들과 정치인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대통령도 영상 축사를 통해 "국민의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농업인들의 노고를 치하"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야말로 농업인들의 잔칫날인데, 행사장 바깥에서는 잔치가 웬 말이냐며, 규탄하는 이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긴 더위와 집중호우 속에 벼멸구까지 기승을 부려 쌀 작황이 좋지 않은데 쌀값이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벼멸구 피해로 검게 죽은 벼. 올해 긴 더위에 벼멸구가 기승을 부려 쌀 생산성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농촌 현장에서는 벼에 쭉정이가 많아 생산성이 떨어지고, 그만큼 알곡이 적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당초 예상보다 올해 쌀 생산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11월에 접어들자, 농림축산식품부에서도 '올해 쌀 수급이 빠듯하겠다'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산지 쌀값은 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장 최근 수치인 11월 5일 산지 쌀값은 20kg에 4만 5,675원입니다. 1년 전에 5만 346원이었던 데 비해 9% 낮은 가격입니다.
80kg으로 환산하면 18만 2,700원으로, 농민들이 자주 말하는 "80kg 한 가마에 20만 원"에 못 미칩니다.
산지 쌀값은 지난해 수확기였던 10월 5일에 기록한 5만 4,388원 이후 11개월 내림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 대책이 나온 뒤 10월 초순에 반짝 회복세를 보이다가 다시 내림세로 돌아섰습니다.
보통은 농민들이 쌀을 수확해 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 등에 내다 파는 수확기에 쌀값이 좋습니다. 농협이라는 큰 손이 쌀을 사들이기 때문이죠.
이때는 정부에서도 공공 비축미를 사들이고 목표가격을 제시하기도 하고 지역 농협이 가격을 후하게 쳐주기도 해서, 쌀을 많이 거두는 수확기지만 오히려 쌀값이 좋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역 농협 입장에서는 조합원인 농민들에게 쌀값을 제대로 주고 사들인 것은 좋았는데, 이후 가격이 계속 하락하니 적자를 감당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예전에는 '단경기'라 해서 전년도에 생산한 쌀이 떨어질 때쯤 되면 쌀값이 오르기도 했는데, 올해는 쌀값이 계속 내리막이라 쌀을 갖고 있는 지역 농협 상황이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지난 2년 동안 적자가 누적돼 올해는 농민들에게서 쌀을 사들일 자금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니 그동안 쌀을 사주던 큰 손이 쌀 사들이기를 주저하고, 수확기를 맞았는데도 산지 쌀값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농업인의 날 행사가 열린 농협 건물 바깥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가 집회하고 있다.
농업인의 날 행사장 바깥에서 열린 규탄 집회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하원오 의장은 "나도 벼농사를 만 평 정도 짓고 있는데 비룟값 등 생산비는 계속 오르고 벼농사를 지어봐야 남는 건 빚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 의장은 "적어도 빚은 안 지고 살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며,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했던 '쌀값 20만 원(80kg 기준)'이나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이 약속했던 '나락값 7만 원' 얘기는 슬그머니 사라졌다"고 비판합니다.
또 농식품부가 배추든 양파든 농산물 가격이 오를라치면 외국에서 수입해서 가격을 '안정'시키면서, 떨어진 쌀값은 방치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정부가 "올해 쌀 목표가격은 얼마다"라고 제시해야 산지에서 쌀을 사들이는 가격도 올라갈 텐데, 그렇지 않다는 거지요.
농업인의 날 축사에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일찍 수확기 쌀 대책을 발표했다"면서 "현장에서 반응이 느리게 나타나고 있지만, 곧 쌀값이 오를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농민들은 쌀을 수확해서 쌀값이 오를 때까지 보관하는 게 아니고, 농협 RPC 등에 넘겨야 하는 현실에서 "농민들이 쌀을 다 내고 나서 나중에 쌀값이 오른다는 얘기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지적합니다.
우리 국민의 주식이자 가장 많은 농민들이 짓고 있는 쌀. 쌀값 약세로 인한 농민들의 불만이 높아지는 가운데 농민단체들은 잇따라 정부 비판 집회를 열고, 오는 20일에도 전국 농민대회를 예고했습니다.
촬영기자 노동수 그래픽 이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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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칫날이라고? “1년째 쌀값 하락에 비료값도 못 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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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11-12 17:01:08
11월 11일. 누구에게는 빼빼로 데이이고, 누구에게는 가래떡 데이였지만, 법정 기념일은 '농업인의 날'입니다.
한자로 쓰면 十一월 十一일로 十一을 위아래로 겹치면 흙 토(土)자가 되죠.
여기에 시간까지 11시가 되면 흙 토(土)가 세 번 겹치니, '농민은 흙에서 나서 흙을 벗 삼아 살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라 의미를 붙이기도 합니다.
이런 뜻에서 지난 1996년 법정기념일인 농업인의 날로 공표했고, 기념식도 11월 11일 11시에 맞춰 엽니다.
올해 기념식은 서울 중구에 있는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렸는데, 농업계 주요 인사들과 정치인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대통령도 영상 축사를 통해 "국민의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농업인들의 노고를 치하"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야말로 농업인들의 잔칫날인데, 행사장 바깥에서는 잔치가 웬 말이냐며, 규탄하는 이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긴 더위와 집중호우 속에 벼멸구까지 기승을 부려 쌀 작황이 좋지 않은데 쌀값이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농촌 현장에서는 벼에 쭉정이가 많아 생산성이 떨어지고, 그만큼 알곡이 적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당초 예상보다 올해 쌀 생산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11월에 접어들자, 농림축산식품부에서도 '올해 쌀 수급이 빠듯하겠다'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산지 쌀값은 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장 최근 수치인 11월 5일 산지 쌀값은 20kg에 4만 5,675원입니다. 1년 전에 5만 346원이었던 데 비해 9% 낮은 가격입니다.
80kg으로 환산하면 18만 2,700원으로, 농민들이 자주 말하는 "80kg 한 가마에 20만 원"에 못 미칩니다.
산지 쌀값은 지난해 수확기였던 10월 5일에 기록한 5만 4,388원 이후 11개월 내림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 대책이 나온 뒤 10월 초순에 반짝 회복세를 보이다가 다시 내림세로 돌아섰습니다.
보통은 농민들이 쌀을 수확해 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 등에 내다 파는 수확기에 쌀값이 좋습니다. 농협이라는 큰 손이 쌀을 사들이기 때문이죠.
이때는 정부에서도 공공 비축미를 사들이고 목표가격을 제시하기도 하고 지역 농협이 가격을 후하게 쳐주기도 해서, 쌀을 많이 거두는 수확기지만 오히려 쌀값이 좋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역 농협 입장에서는 조합원인 농민들에게 쌀값을 제대로 주고 사들인 것은 좋았는데, 이후 가격이 계속 하락하니 적자를 감당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예전에는 '단경기'라 해서 전년도에 생산한 쌀이 떨어질 때쯤 되면 쌀값이 오르기도 했는데, 올해는 쌀값이 계속 내리막이라 쌀을 갖고 있는 지역 농협 상황이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지난 2년 동안 적자가 누적돼 올해는 농민들에게서 쌀을 사들일 자금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니 그동안 쌀을 사주던 큰 손이 쌀 사들이기를 주저하고, 수확기를 맞았는데도 산지 쌀값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농업인의 날 행사장 바깥에서 열린 규탄 집회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하원오 의장은 "나도 벼농사를 만 평 정도 짓고 있는데 비룟값 등 생산비는 계속 오르고 벼농사를 지어봐야 남는 건 빚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 의장은 "적어도 빚은 안 지고 살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며,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했던 '쌀값 20만 원(80kg 기준)'이나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이 약속했던 '나락값 7만 원' 얘기는 슬그머니 사라졌다"고 비판합니다.
또 농식품부가 배추든 양파든 농산물 가격이 오를라치면 외국에서 수입해서 가격을 '안정'시키면서, 떨어진 쌀값은 방치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정부가 "올해 쌀 목표가격은 얼마다"라고 제시해야 산지에서 쌀을 사들이는 가격도 올라갈 텐데, 그렇지 않다는 거지요.
농업인의 날 축사에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일찍 수확기 쌀 대책을 발표했다"면서 "현장에서 반응이 느리게 나타나고 있지만, 곧 쌀값이 오를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농민들은 쌀을 수확해서 쌀값이 오를 때까지 보관하는 게 아니고, 농협 RPC 등에 넘겨야 하는 현실에서 "농민들이 쌀을 다 내고 나서 나중에 쌀값이 오른다는 얘기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지적합니다.
우리 국민의 주식이자 가장 많은 농민들이 짓고 있는 쌀. 쌀값 약세로 인한 농민들의 불만이 높아지는 가운데 농민단체들은 잇따라 정부 비판 집회를 열고, 오는 20일에도 전국 농민대회를 예고했습니다.
촬영기자 노동수 그래픽 이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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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 기자 isuy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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