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덤 파는 사람입니다”…시리아 집단 암매장지 발굴 [지금 중동은]

입력 2024.12.23 (06:07) 수정 2024.12.23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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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다마스쿠스 인근  집단매장지에서 실종자 유해 발굴 작업,  2024년 12월 16일시리아 다마스쿠스 인근 집단매장지에서 실종자 유해 발굴 작업, 2024년 12월 16일

“나는 ‘무덤 파는 사람’이었습니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7년 동안 날마다 불려 나가 시신을 암매장했습니다.

다른 불도저 기사들과 함께 대략 깊이 70cm, 너비 30cm가량 되는 구덩이를 팠는데, 그 길이가 18m쯤 됐습니다.

다마스쿠스 인근 군 병원과 정보기관 지부에서 시체들을 싣고 오면, 미리 파둔 구덩이에 시체들을 밀어 넣고 불도저로 흙을 덮었습니다. 일주일에 두어 번 시체 더미가 운반됐습니다.

시신에는 고문과 처형의 흔적들이 있었습니다. 간혹 굶어 죽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2023년 4월 미 하원 비공개 청문회 中)

■ 무덤 파는 사람 “7년간 매일 시신 암매장”

지난해 4월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 전쟁 범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익명의 시리아인은 스스로를 ‘무덤 파는 사람(gravedigger)’이라고 밝혔습니다.

가까스로 시리아를 탈출한 것으로 알려진 ‘무덤 파는 사람’은 속죄라도 하듯 알아사드 정권의 무참함을 증언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시체 더미 속에서 아기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고문당한 흔적이 역력한 엄마가 아기를 품에 꼭 안고 있었습니다.

차마 엄마와 아기를 구덩이 속에 밀어 넣을 수 없어 정보기관 장교에게 둘만 따로 매장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했지만, 장교는 그냥 구덩이에 던지라며 저를 꾸짖었습니다”
(2023년 4월 미 하원 비공개 청문회 中)

■ “매주 2~3차례 냉동 트럭으로 시신 운반”

시리아에서 탈출한 사람들의 증언 외에는 사실 확인이 어려웠던 알아사드 정권의 자국민 학살 및 집단 암매장 의혹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8일 부자 세습을 통한 50여 년의 독재 체제가 붕괴했기 때문입니다.

암매장 관련자들은 수도 다마스쿠스 북쪽 40km 거리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 알쿠타이파는 내전 발발 다음 해인 2012년부터 집단 매장지로 사용됐다고 밝혔습니다.

‘무덤 파는 사람’의 진술처럼 매주 2~3차례 냉동 트럭에 시신을 싣고 와 미리 파놓은 무덤(도랑)에 내려놓으면 불도저 기사들이 흙으로 덮었다는 겁니다.

한 번에 시신 30~40구가 운반됐고, 많을 때는 수백 구에 달했다는 게 관련자들의 일관된 진술입니다.

군과 정보기관이 암매장을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복수의 진술도 나오고 있습니다.

알쿠타이파 지역에서 군 복무했던 무함마드 아부 알바하도 “한밤중에 냉동 트럭이 오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외신에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냉동 트럭이 다마스쿠스 인근 군 병원에서 시신을 실어 알쿠타이파로 이동했고, 대형 무덤에 시신을 매장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며 “시체 썩는 냄새는 지독했고, 트럭에서 피가 흘러나오기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알아사드 정권 실종자 및 암매장 진상 규명 활동을 벌이고 있는 ‘시리아 긴급 태스크포스’의 무아즈 무스타파 대표는 암매장 관련자들의 진술을 근거로 “시리아 공군 정보사령부가 시신을 군 병원과 교도소 등에서 모아 여러 정보 부대들을 통해 암매장지들로 보냈다”고 주장했습니다.

집단매장지 알쿠타이파 항공촬영, 2024년 12월 16일집단매장지 알쿠타이파 항공촬영, 2024년 12월 16일

■ “수도 40km 인근 알쿠타이파 최소 10만 명 암매장”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 도시인 알쿠타이파 외에도 집단 암매장지가 추가 확인됐습니다.

나지하는 기존 묘지 아래 최대 수만 명을 매장했을 곳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다마스쿠스 외곽 아드라에도 집단 매장지가 있다는 증언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사이다자이납에서 확인된 집단 매장지는 레바논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이란 민병대가 사용한 장소로 추정됩니다. 아직 본격적인 유해 발굴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21구의 유해가 발견됐습니다.

무스타파 대표는 “알쿠타이파 한 곳에서 최소 10만 명이 암매장됐을 것”이라며 "10만 명은 가장 보수적으로 잡은 추정치로 매우 낮춰 잡은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다마스쿠스 시립 장례사무소 직원들도 냉동 트럭에 실린 시신들을 하역해 암매장지로 보내는 데 협조했다”고 밝혔습니다. 증언에 따르면 암매장된 시체는 총상을 입었거나, 눈이 가려진 상태로 옷이 벗겨진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어 알아사드 정권이 미국, 영국 등 서방 국가 외국인들도 살해, 암매장했을 가능성도 시사했습니다. “시리아인들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등 외국인들의 시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종 미국 기자 오스틴 (아들) 사진 보여주는 데브라 타이스, 2017년 7월실종 미국 기자 오스틴 (아들) 사진 보여주는 데브라 타이스, 2017년 7월

■ 국제실종자위원회, 시리아 내전 이후 15만 명 이상 실종

국제실종자위원회(ICMP)는 시리아에 66개 이상의 검증되지 않은 집단 매장지가 존재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시리아인 15만 명 이상이 실종됐다고 집계했습니다.

실종자 대다수는 알아사드 정권에 비판적이었거나 비협조적이었던 사람들입니다. 주로 정치인, 언론인 등이 구금됐고, 일반 시민들도 뚜렷한 이유 없이 강제 투옥됐습니다.

서방 국가 언론인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미 해병대 출신 프리랜서 기자로서 워싱턴 포스트, CBS 등에 시리아 내전 관련 기사를 기고했던 오스틴 타이스 역시 시리아에서 실종됐습니다.

오스틴은 2012년 8월 다마스쿠스에서 내전을 취재하던 중 소식이 끊겼는데, 같은 해 눈이 가려진 채 무장군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동영상이 공개된 게 그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현재까지 오스틴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들의 생환 소식을 간절히 바라는 오스틴의 부모는 아들이 다마스쿠스 인근 비밀 감옥에 수감돼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인간 도살장’ 세드나야 감옥, 2024년 12월 9일‘인간 도살장’ 세드나야 감옥, 2024년 12월 9일

‘인간 도살장’ 세드나야 감옥 내부, 2024년 12월 9일‘인간 도살장’ 세드나야 감옥 내부, 2024년 12월 9일

■“제발 시신만이라도”…실종된 가족 찾아 비밀 감옥· 시신 안치실로

“그냥 감옥의 지하실을 열어주세요. 우리가 직접 시신들 사이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제발 지하실들을 열어주세요.

사람들은 세드나야(Saydnaya, 비밀감옥)에만 묻힌 것이 아니라, 시리아 전역에 묻혔습니다.

우리 발밑 도처에 세드나야 같은 곳들이 있습니다"
-야스민 샤비브(37) 아버지·형제 실종-

알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 실종자 가족들은 사라진 가족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다마스쿠스를 비롯한 전국의 비밀 감옥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또 비밀 감옥 등에서 발견된 시신 가운데서 가족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각 병원 시신 안치실을 찾고 있습니다.

시리아 과도정부는 실종자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기구, 인권 단체와 협력하고 있으며, 실종자 가족의 유전자(DNA) 정보와 집단 매장지에서 발견된 유해와 대조하는 작업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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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무덤 파는 사람입니다”…시리아 집단 암매장지 발굴 [지금 중동은]
    • 입력 2024-12-23 06:07:45
    • 수정2024-12-23 07:17:55
    국제
시리아 다마스쿠스 인근  집단매장지에서 실종자 유해 발굴 작업,  2024년 12월 16일
“나는 ‘무덤 파는 사람’이었습니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7년 동안 날마다 불려 나가 시신을 암매장했습니다.

다른 불도저 기사들과 함께 대략 깊이 70cm, 너비 30cm가량 되는 구덩이를 팠는데, 그 길이가 18m쯤 됐습니다.

다마스쿠스 인근 군 병원과 정보기관 지부에서 시체들을 싣고 오면, 미리 파둔 구덩이에 시체들을 밀어 넣고 불도저로 흙을 덮었습니다. 일주일에 두어 번 시체 더미가 운반됐습니다.

시신에는 고문과 처형의 흔적들이 있었습니다. 간혹 굶어 죽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2023년 4월 미 하원 비공개 청문회 中)

■ 무덤 파는 사람 “7년간 매일 시신 암매장”

지난해 4월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 전쟁 범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익명의 시리아인은 스스로를 ‘무덤 파는 사람(gravedigger)’이라고 밝혔습니다.

가까스로 시리아를 탈출한 것으로 알려진 ‘무덤 파는 사람’은 속죄라도 하듯 알아사드 정권의 무참함을 증언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시체 더미 속에서 아기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고문당한 흔적이 역력한 엄마가 아기를 품에 꼭 안고 있었습니다.

차마 엄마와 아기를 구덩이 속에 밀어 넣을 수 없어 정보기관 장교에게 둘만 따로 매장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했지만, 장교는 그냥 구덩이에 던지라며 저를 꾸짖었습니다”
(2023년 4월 미 하원 비공개 청문회 中)

■ “매주 2~3차례 냉동 트럭으로 시신 운반”

시리아에서 탈출한 사람들의 증언 외에는 사실 확인이 어려웠던 알아사드 정권의 자국민 학살 및 집단 암매장 의혹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8일 부자 세습을 통한 50여 년의 독재 체제가 붕괴했기 때문입니다.

암매장 관련자들은 수도 다마스쿠스 북쪽 40km 거리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 알쿠타이파는 내전 발발 다음 해인 2012년부터 집단 매장지로 사용됐다고 밝혔습니다.

‘무덤 파는 사람’의 진술처럼 매주 2~3차례 냉동 트럭에 시신을 싣고 와 미리 파놓은 무덤(도랑)에 내려놓으면 불도저 기사들이 흙으로 덮었다는 겁니다.

한 번에 시신 30~40구가 운반됐고, 많을 때는 수백 구에 달했다는 게 관련자들의 일관된 진술입니다.

군과 정보기관이 암매장을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복수의 진술도 나오고 있습니다.

알쿠타이파 지역에서 군 복무했던 무함마드 아부 알바하도 “한밤중에 냉동 트럭이 오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외신에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냉동 트럭이 다마스쿠스 인근 군 병원에서 시신을 실어 알쿠타이파로 이동했고, 대형 무덤에 시신을 매장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며 “시체 썩는 냄새는 지독했고, 트럭에서 피가 흘러나오기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알아사드 정권 실종자 및 암매장 진상 규명 활동을 벌이고 있는 ‘시리아 긴급 태스크포스’의 무아즈 무스타파 대표는 암매장 관련자들의 진술을 근거로 “시리아 공군 정보사령부가 시신을 군 병원과 교도소 등에서 모아 여러 정보 부대들을 통해 암매장지들로 보냈다”고 주장했습니다.

집단매장지 알쿠타이파 항공촬영, 2024년 12월 16일
■ “수도 40km 인근 알쿠타이파 최소 10만 명 암매장”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 도시인 알쿠타이파 외에도 집단 암매장지가 추가 확인됐습니다.

나지하는 기존 묘지 아래 최대 수만 명을 매장했을 곳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다마스쿠스 외곽 아드라에도 집단 매장지가 있다는 증언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사이다자이납에서 확인된 집단 매장지는 레바논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이란 민병대가 사용한 장소로 추정됩니다. 아직 본격적인 유해 발굴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21구의 유해가 발견됐습니다.

무스타파 대표는 “알쿠타이파 한 곳에서 최소 10만 명이 암매장됐을 것”이라며 "10만 명은 가장 보수적으로 잡은 추정치로 매우 낮춰 잡은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다마스쿠스 시립 장례사무소 직원들도 냉동 트럭에 실린 시신들을 하역해 암매장지로 보내는 데 협조했다”고 밝혔습니다. 증언에 따르면 암매장된 시체는 총상을 입었거나, 눈이 가려진 상태로 옷이 벗겨진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어 알아사드 정권이 미국, 영국 등 서방 국가 외국인들도 살해, 암매장했을 가능성도 시사했습니다. “시리아인들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등 외국인들의 시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종 미국 기자 오스틴 (아들) 사진 보여주는 데브라 타이스, 2017년 7월
■ 국제실종자위원회, 시리아 내전 이후 15만 명 이상 실종

국제실종자위원회(ICMP)는 시리아에 66개 이상의 검증되지 않은 집단 매장지가 존재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시리아인 15만 명 이상이 실종됐다고 집계했습니다.

실종자 대다수는 알아사드 정권에 비판적이었거나 비협조적이었던 사람들입니다. 주로 정치인, 언론인 등이 구금됐고, 일반 시민들도 뚜렷한 이유 없이 강제 투옥됐습니다.

서방 국가 언론인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미 해병대 출신 프리랜서 기자로서 워싱턴 포스트, CBS 등에 시리아 내전 관련 기사를 기고했던 오스틴 타이스 역시 시리아에서 실종됐습니다.

오스틴은 2012년 8월 다마스쿠스에서 내전을 취재하던 중 소식이 끊겼는데, 같은 해 눈이 가려진 채 무장군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동영상이 공개된 게 그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현재까지 오스틴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들의 생환 소식을 간절히 바라는 오스틴의 부모는 아들이 다마스쿠스 인근 비밀 감옥에 수감돼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인간 도살장’ 세드나야 감옥, 2024년 12월 9일
‘인간 도살장’ 세드나야 감옥 내부, 2024년 12월 9일
■“제발 시신만이라도”…실종된 가족 찾아 비밀 감옥· 시신 안치실로

“그냥 감옥의 지하실을 열어주세요. 우리가 직접 시신들 사이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제발 지하실들을 열어주세요.

사람들은 세드나야(Saydnaya, 비밀감옥)에만 묻힌 것이 아니라, 시리아 전역에 묻혔습니다.

우리 발밑 도처에 세드나야 같은 곳들이 있습니다"
-야스민 샤비브(37) 아버지·형제 실종-

알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 실종자 가족들은 사라진 가족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다마스쿠스를 비롯한 전국의 비밀 감옥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또 비밀 감옥 등에서 발견된 시신 가운데서 가족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각 병원 시신 안치실을 찾고 있습니다.

시리아 과도정부는 실종자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기구, 인권 단체와 협력하고 있으며, 실종자 가족의 유전자(DNA) 정보와 집단 매장지에서 발견된 유해와 대조하는 작업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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