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화면.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 "나는 살아있는 부처"...15년 '가스라이팅'의 시작
2006년, 어린이집을 운영하던 김 모 씨는 충남 공주의 한 법당을 찾았습니다.
김 씨가 어린이집 교사 채용 문제로 어려움을 겪자, 그의 지인이 "함께 절에 가보자"며 소개해 준 곳입니다.
이곳에서 만난 최 모 씨는 자신이 스님이고, 대학교 교수로 강의도 나간다며 명망 있는 종교인 행세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만남은 '종교적 인연'이 아닌 '범죄의 악연'으로 이어졌습니다.
우연히 김 씨의 남편이 친척에게 돈을 빌려준 사실을 알아낸 최 씨는 "네 남편이 친척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알고 있느냐. 그 친척과 거래하면 복을 다 빼앗긴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김 씨는 남편에게 확인했고, 실제 돈을 빌려줬다고 하자 그때부터 최 씨를 '영적 능력이 있는 스님'으로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부터 최 씨는 "나는 살아있는 부처다. 내가 영으로 너를 다 보고 있다. 내 말만 잘 들으면 집안도 잘되고 자녀들도 잘되지만,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가족들이 죽고 재산도 다 없어진다"고 김 씨에게 겁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또 "네가 돈을 가지고 있으면 다 없어지니 나에게 맡겨라. 그러면 돈을 불려서 돌려주겠다"고 노골적으로 금전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최 씨를 강하게 신뢰하고 있던 김 씨는 점차 정신적인 예속 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소위 '가스라이팅'을 당한 겁니다.
최 씨는 이런 김 씨의 심리를 악용해 "액운을 막아주겠다"는 등의 명목으로 여러 차례 돈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범행을 계속하기 위해 김 씨에게 "자녀들을 집에서 내보내고 연락하지 말라"고 가족의 연까지 끊게 했습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김 씨는 올바른 판단력을 잃어 갔고, 점점 더 최 씨에게만 의존했습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최 씨에게 돈을 바치는 일은 무려 15년이나 이어졌습니다. 김 씨가 139차례에 걸쳐 최 씨에게 건넨 돈은 14억 원.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금액이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가스라이팅' 당한 김 씨는 이런 판단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 1심 재판부 "피해자 인생 송두리째 망가져"...징역 12년 선고
하마터면 평생 '심리적 노예'가 될뻔한 김 씨. 이런 김 씨의 불행은 예전과 다른 모습을 수상하게 여긴 지인의 설득과 신고로 겨우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는 김 씨의 '일기장'이 결정적 증거가 됐습니다.
김 씨는 2015년과 2018년을 제외하고 2006년~2021년까지 해마다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썼습니다. 일기장에는 최 씨와 주고받은 대화를 비롯해 금전 지출 내역 등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수사 결과, "살아있는 부처"라던 최 씨는 종단에 소속된 승려도 아니었고, 대학에 강의를 나간 일도 없었습니다. 김 씨는 '가짜 스님'의 언변에 속아 10억 원이 넘는 재산을 잃은 겁니다.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은 지난해 5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최 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가족과 단란하게 지내던 피해자의 인생은 피고인의 범행으로 경제적·사회적·, 육체적·정신적 모든 면에서 송두리째 망가졌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그럼에도 피고인은 범행을 부인하면서 피해자가 한 증언이 거짓이라고 비난하고, 자신이 한 일은 피해자가 잘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진정 어린 반성이나 참회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 피해자 엄벌 탄원에도...항소심서 '징역 8년' 감형
하지만 최 씨는 항소심에서 일부 감형을 받았습니다.
대전고등법원 청주 제1형사부는 최 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8년을 선고했습니다.
1심에서 범행을 부인하던 최 씨가 항소심에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변제 노력까지 보였다는 이유입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항소심에 이르러 자신의 잘못을 대부분 인정하며 깊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피해자에게 편취한 금원의 일부를 변제하거나, 피해자가 대출받은 금원을 금융기관에 대신 변제하는 등 피해 회복을 위해 일정 부분 노력했다"고 감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또 유사한 사기 범죄의 양형 사례나 권고 형량 등에 비춰볼 때 '징역 12년'을 선고한 1심의 형은 너무 무겁다고도 판단했습니다.
가짜 스님의 뻔뻔한 범행에 속아 가정도, 재산도 잃은 피해자 김 씨. 김 씨는 항소심 선고 직전까지 최 씨에 대한 엄벌 탄원서를 냈지만, 재판부의 판단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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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살아있는 부처” 14억 원 빼앗은 가짜스님 징역 12년→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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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1-05 10:02:38
■ "나는 살아있는 부처"...15년 '가스라이팅'의 시작
2006년, 어린이집을 운영하던 김 모 씨는 충남 공주의 한 법당을 찾았습니다.
김 씨가 어린이집 교사 채용 문제로 어려움을 겪자, 그의 지인이 "함께 절에 가보자"며 소개해 준 곳입니다.
이곳에서 만난 최 모 씨는 자신이 스님이고, 대학교 교수로 강의도 나간다며 명망 있는 종교인 행세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만남은 '종교적 인연'이 아닌 '범죄의 악연'으로 이어졌습니다.
우연히 김 씨의 남편이 친척에게 돈을 빌려준 사실을 알아낸 최 씨는 "네 남편이 친척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알고 있느냐. 그 친척과 거래하면 복을 다 빼앗긴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김 씨는 남편에게 확인했고, 실제 돈을 빌려줬다고 하자 그때부터 최 씨를 '영적 능력이 있는 스님'으로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부터 최 씨는 "나는 살아있는 부처다. 내가 영으로 너를 다 보고 있다. 내 말만 잘 들으면 집안도 잘되고 자녀들도 잘되지만,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가족들이 죽고 재산도 다 없어진다"고 김 씨에게 겁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또 "네가 돈을 가지고 있으면 다 없어지니 나에게 맡겨라. 그러면 돈을 불려서 돌려주겠다"고 노골적으로 금전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최 씨를 강하게 신뢰하고 있던 김 씨는 점차 정신적인 예속 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소위 '가스라이팅'을 당한 겁니다.
최 씨는 이런 김 씨의 심리를 악용해 "액운을 막아주겠다"는 등의 명목으로 여러 차례 돈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범행을 계속하기 위해 김 씨에게 "자녀들을 집에서 내보내고 연락하지 말라"고 가족의 연까지 끊게 했습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김 씨는 올바른 판단력을 잃어 갔고, 점점 더 최 씨에게만 의존했습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최 씨에게 돈을 바치는 일은 무려 15년이나 이어졌습니다. 김 씨가 139차례에 걸쳐 최 씨에게 건넨 돈은 14억 원.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금액이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가스라이팅' 당한 김 씨는 이런 판단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 1심 재판부 "피해자 인생 송두리째 망가져"...징역 12년 선고
하마터면 평생 '심리적 노예'가 될뻔한 김 씨. 이런 김 씨의 불행은 예전과 다른 모습을 수상하게 여긴 지인의 설득과 신고로 겨우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는 김 씨의 '일기장'이 결정적 증거가 됐습니다.
김 씨는 2015년과 2018년을 제외하고 2006년~2021년까지 해마다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썼습니다. 일기장에는 최 씨와 주고받은 대화를 비롯해 금전 지출 내역 등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수사 결과, "살아있는 부처"라던 최 씨는 종단에 소속된 승려도 아니었고, 대학에 강의를 나간 일도 없었습니다. 김 씨는 '가짜 스님'의 언변에 속아 10억 원이 넘는 재산을 잃은 겁니다.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은 지난해 5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최 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가족과 단란하게 지내던 피해자의 인생은 피고인의 범행으로 경제적·사회적·, 육체적·정신적 모든 면에서 송두리째 망가졌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그럼에도 피고인은 범행을 부인하면서 피해자가 한 증언이 거짓이라고 비난하고, 자신이 한 일은 피해자가 잘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진정 어린 반성이나 참회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 피해자 엄벌 탄원에도...항소심서 '징역 8년' 감형
하지만 최 씨는 항소심에서 일부 감형을 받았습니다.
대전고등법원 청주 제1형사부는 최 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8년을 선고했습니다.
1심에서 범행을 부인하던 최 씨가 항소심에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변제 노력까지 보였다는 이유입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항소심에 이르러 자신의 잘못을 대부분 인정하며 깊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피해자에게 편취한 금원의 일부를 변제하거나, 피해자가 대출받은 금원을 금융기관에 대신 변제하는 등 피해 회복을 위해 일정 부분 노력했다"고 감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또 유사한 사기 범죄의 양형 사례나 권고 형량 등에 비춰볼 때 '징역 12년'을 선고한 1심의 형은 너무 무겁다고도 판단했습니다.
가짜 스님의 뻔뻔한 범행에 속아 가정도, 재산도 잃은 피해자 김 씨. 김 씨는 항소심 선고 직전까지 최 씨에 대한 엄벌 탄원서를 냈지만, 재판부의 판단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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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근섭 기자 sks85@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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