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심을 통해 53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김양진 할아버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김양진(94) 할아버지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서울고등법원 제1-2형사부는 최근 303호 법정에서 열린 김양진 할아버지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등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김 할아버지는 1972년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서울고법은 1972년 재판에 대해 "당시 공소사실을 보면 검찰은 피고인의 진술을 증거로 들고 있지만, 이 진술은 불법 체포와 강제 구금 상태에서 이뤄졌고, 이 역시 가혹 행위가 있었을 개연성이 상당하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진술은 공소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되지 못하고 수사기관이 증거로 제출한 트랜지스터라디오와 수신기 역시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위법한 절차에 따라 수집된 만큼 증거 능력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특히 재판부는 "인생 황금기에 징역 15년이라는 장기 복역으로 느꼈을 피고인의 좌절감과 분노는 상상하기 어렵고, 피고인의 아내와 자녀들이 받은 고통 역시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 수사기관과 법원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오늘 이 판결이 조그만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간첩 누명 쓴 50년 세월…"일본에 살다 온 게 죄"
▲1972년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을 받은 김양진 할아버지는 1심에서 무기징역, 최종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1930년생(주민등록상 1931년)인 김양진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 유년 시절 부모를 따라 일본 히로시마로 건너갔습니다. 김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병환으로 아버지를 여의었고,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피해로 어머니와 동생까지 잃었습니다.
원자폭탄 피해 속에서도 형, 누나와 함께 살아남은 김 할아버지는 이후 오사카에 새로운 터를 잡고 재일본조선인연맹(조련) 활동을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결성된 조련은 당시 일본 내 조선인의 권리옹호에 노력하며 국어 강습소를 운영하는 등 재일본 조선인에게 인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김 할아버지는 조련이 점차 북한 김일성을 찬양하는 단체로 변질되자 인연을 끊었지만, 이러한 활동이 훗날 자신에게 간첩이라는 굴레를 씌울지 몰랐습니다.
아버지 사촌형제의 양자 입적이 약속된 김 할아버지는 1964년 고향 제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1966년에는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농사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평온한 삶이 이어지던 1972년, 공안당국에 잡힌 한 사람이 김 할아버지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삶은 뒤바뀌었습니다.
불법 체포와 강제 구금, 고문 등이 이어졌고 짜맞추기 식 증거에 김 할아버지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항소심과 상고심을 거쳐 징역 15년으로 감형받긴 했지만 김 할아버지는 13년을 복역한 뒤 1988년에서야 가석방됐습니다.
■ 전국 첫 간첩조작 실태조사…뒤늦은 명예회복
▲제주특별자치도는 전국 최초로 2022년부터 간첩조작 피해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누구에게도 말 못 했던 김 할아버지의 기구한 사연은 2022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제주도가 실시한 간첩조작 실태조사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제주도는 2021년 '제주도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등의 인권증진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며 실태조사에 나섰습니다.
현재 3차 조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고, 올해는 4차 실태조사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2022년과 2023년에 진행한 1차, 2차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제주출신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는 24건, 60명에 달합니다.
이러한 실태조사를 통해 김양진 할아버지의 사례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간첩조작 의혹사건으로 확인됐습니다.
이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와 재심 권고 결정을 이끌어내며 실제 재심청구까지 이뤄졌고, 끝내 무죄가 선고된 겁니다.
제주도는 올해 4차 실태조사를 마무리한 뒤 간첩조작 피해자에 대한 지원 방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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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첩 누명 15년 옥살이…53년 만에 재심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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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1-20 16:50:29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김양진(94) 할아버지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서울고등법원 제1-2형사부는 최근 303호 법정에서 열린 김양진 할아버지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등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김 할아버지는 1972년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서울고법은 1972년 재판에 대해 "당시 공소사실을 보면 검찰은 피고인의 진술을 증거로 들고 있지만, 이 진술은 불법 체포와 강제 구금 상태에서 이뤄졌고, 이 역시 가혹 행위가 있었을 개연성이 상당하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진술은 공소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되지 못하고 수사기관이 증거로 제출한 트랜지스터라디오와 수신기 역시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위법한 절차에 따라 수집된 만큼 증거 능력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특히 재판부는 "인생 황금기에 징역 15년이라는 장기 복역으로 느꼈을 피고인의 좌절감과 분노는 상상하기 어렵고, 피고인의 아내와 자녀들이 받은 고통 역시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 수사기관과 법원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오늘 이 판결이 조그만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간첩 누명 쓴 50년 세월…"일본에 살다 온 게 죄"
1930년생(주민등록상 1931년)인 김양진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 유년 시절 부모를 따라 일본 히로시마로 건너갔습니다. 김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병환으로 아버지를 여의었고,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피해로 어머니와 동생까지 잃었습니다.
원자폭탄 피해 속에서도 형, 누나와 함께 살아남은 김 할아버지는 이후 오사카에 새로운 터를 잡고 재일본조선인연맹(조련) 활동을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결성된 조련은 당시 일본 내 조선인의 권리옹호에 노력하며 국어 강습소를 운영하는 등 재일본 조선인에게 인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김 할아버지는 조련이 점차 북한 김일성을 찬양하는 단체로 변질되자 인연을 끊었지만, 이러한 활동이 훗날 자신에게 간첩이라는 굴레를 씌울지 몰랐습니다.
아버지 사촌형제의 양자 입적이 약속된 김 할아버지는 1964년 고향 제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1966년에는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농사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평온한 삶이 이어지던 1972년, 공안당국에 잡힌 한 사람이 김 할아버지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삶은 뒤바뀌었습니다.
불법 체포와 강제 구금, 고문 등이 이어졌고 짜맞추기 식 증거에 김 할아버지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항소심과 상고심을 거쳐 징역 15년으로 감형받긴 했지만 김 할아버지는 13년을 복역한 뒤 1988년에서야 가석방됐습니다.
■ 전국 첫 간첩조작 실태조사…뒤늦은 명예회복
누구에게도 말 못 했던 김 할아버지의 기구한 사연은 2022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제주도가 실시한 간첩조작 실태조사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제주도는 2021년 '제주도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등의 인권증진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며 실태조사에 나섰습니다.
현재 3차 조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고, 올해는 4차 실태조사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2022년과 2023년에 진행한 1차, 2차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제주출신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는 24건, 60명에 달합니다.
이러한 실태조사를 통해 김양진 할아버지의 사례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간첩조작 의혹사건으로 확인됐습니다.
이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와 재심 권고 결정을 이끌어내며 실제 재심청구까지 이뤄졌고, 끝내 무죄가 선고된 겁니다.
제주도는 올해 4차 실태조사를 마무리한 뒤 간첩조작 피해자에 대한 지원 방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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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훈 기자 n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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