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인 하이닉스, 세 번째 사과가 두려운 삼성

입력 2025.01.25 (08:00) 수정 2025.01.2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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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는 이번에도 서프라이즈다. 3분기도 사상 최대 매출이었는데, 4분기는 또 훌쩍 뛰어넘었다. (3분기 매출 17.5조 원→ 4분기 19.7조 원) 연간 매출은 아예 배가 되었다. (2023년 32조 원→2024년 66조 원) 영업이익은 23조 원. 영업이익률은 무려 35%에 달한다.

비결은 HBM이다. 4분기 매출의 40%가 HBM에서 나왔다. 이 고수익 제품의 비중이 극도로 높다. 이 때문에 SK하이닉스 실적은 올해도 희망적이다.

세계 메모리 업황을 감안하면 놀라울 일이다. 지금 범용 D램 사이클은 내려가고 있다. 범용 D램에 의존하면 이 사이클에 따라 올해 전망은 어둡다. 그러나 HBM은 범용 D램이 아니다. 사이클도 없다. 없어서 못 파니까.

쉽게 말해서 지금 D램은 범용과 HBM 양 갈래로 '양극화'되고 있다. 그래서 D램 사이클이 내려가는데도, 시장은 SK하이닉스가 올해도 사상 최고 실적을 경신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런데 삼성은

삼성의 표정은 정반대다. 똑같은 메모리가 주력사업이고, 세계 메모리 시장에는 삼성,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이 세 기업 밖에 없는데 희비가 정반대로 교차한다.

충격적인 신용등급 전망도 나왔다. 무디스는 1월 24일, 삼성전자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신용등급 자체는 Aa2로 유지했지만 향후 전망을 부정적으로 본 것이다. 등급 하향 자체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이후 전례가 없다. 높아지기만 했던 삼성의 신용등급 전망도 이제 낮아지려 하고 있다.

이유는 메모리, 특히 AI칩 분야 리더십 회복의 불확실성이다. 무디스는 삼성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약 11%로 나빴는데, 향후 1년 정도 이런 낮은 성과가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쉽게 말하면, '삼성은 SK하이닉스와 달리 HBM 같은 고수익 제품에서 성과가 뒤처진다'는 냉정한 평가다.

실제로 삼성은 현존하는 최고 HBM 제품인 HBM3E을 엔비디아 최신 칩세트용으로 납품하는 데 실패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얼마 전 미국 CES에 참석해서 '엔비디아 요구보다 더 빠른 속도로 HBM을 개발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건 차세대인 HBM4 제품을 말한다. 삼성은 HBM4 개발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지난해 실적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0년 동안 어떻게 달라졌나를 장기적 시각에서 비교하면 구조적 차이가 드러난다. 삼성의 2013년 매출은 달러 기준으로 2,167억 달러다. 지난해 잠정 매출은 2,200억 달러를 소폭 상회한다. 10년 동안 거의 멈춰있었다.

하이닉스의 2013년 매출은 125억 달러다. 지난해 매출은 480억 달러가 넘는다. 거의 4배가 됐다.

기업 흥망은 규모가 아닌 성장의 속도에 달려있다. 삼성이 멈춰있는 동안 SK하이닉스는 달렸다.


■ 처절한 사과를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8일, 삼성전자 전영현 부회장은 사과문을 발표한다. 전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양대 축(메모리 중심의 반도체 부문 DS, 스마트폰과 가전 같은 완제품 부문 DX)인 DS 부문의 수장이다.

이 사과는 삼성전자 기업 역사에 유례가 없는 표현이 들어있다.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쳤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삼성의 위기를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책임은 사업을 이끄는 저희에게 있습니다.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을 복원하겠습니다. 기술과 품질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삼성전자의 자존심입니다. 단기적인 해결책보다는 근원적 경쟁력을 확보하겠습니다."

삼성전자라는 기업의 본원적 경쟁력인 메모리 부문에서 위기에 있다고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 위기가 '일시적이거나 부문적인'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기술 위기"라고 인정했다.

[연관 기사] 젠슨, 삼성이 왜 HBM을 새로 설계해야 하죠?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48051&ref=A

그동안 삼성은 이런 사과를 하지 않았다. 우선 할 일이 없었다. 언제나 메모리에서 세계 최초는 삼성이었다. 삼성 이외의 기업이 삼성을 앞설 수 있다는 생각은 30년 동안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과할 일이 없었다.

다른 한편, 삼성은 사과할 일이 있어도 이렇게 처절한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건 3년 전의 사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확인할 수 있다.

■ 표면적인 사과, 2022년 3월의 사과

스마트폰 위기, GOS 사태 당시다. 딱 3년 전, 새 갤럭시S 시리즈를 발표한 직후 벌어진 일이다.

당시 문제가 된 것은 최신 스마트폰이던 갤럭시S 22 제품이다. 핵심 반도체인 AP 성능을 강제로 제한하는 소프트웨어를 작동시켰다가 반발에 직면했다. 처음에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그러다가 벤치마크 측정 전문가와 유튜버, 그다음에는 해외 언론이 들불처럼 끓어올랐다.

"게임에 지장이 없다고 판단한 적정 한도까지 CPU, GPU의 성능을 제한하려 했었습니다. 주주와 고객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송구합니다."


3월 16일, 주주총회 단상 위에서 한종희 부회장이 위와 같은 사과를 한다. 얼핏 적절한 사과처럼 보인다. 게임 성능을 제한하려 했는데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고 했으니까.

그러나 당시의 GOS는 보다 심대한 위기를 상징한다. 단순한 게임 성능 억제가 문제가 아니었다. ①파운드리에서 실패하고 ②설계 능력에서 뒤처지고 ③스마트폰에서 정체되던 삼성의 위기였다.

그렇다면 '게임 성능 제한에 대한 사과'는 본질을 가린 사과다. 파운드리와 설계와 스마트폰 부문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어서 삼성의 장래가 어둡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으니까. (실제로 한 부회장은 당시 주총에서 파운드리 부문의 문제에 대한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세 위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

우선 AP, 스마트폰의 핵심 제품인 AP는 퀄컴의 스냅드래곤이지만, 이 칩을 실제로 만든 것은 삼성전자다. 삼성이 파운드리를 맡았다. 그 제품의 발열이 너무 심했다. 그래서 게임을 할 때 성능을 제한해서 발열이 더 큰 문제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 했다.

이 차원에서 보면 근본적인 문제는 '게임 성능에 지장'을 준 것이 아니라, AP 칩 제조를 잘 못해서 발열을 잡지 못한 것- 즉 파운드리의 한계다.

다른 한편 ②설계기술의 위기다. 이제 최신 최고 스마트폰에는 퀄컴의 AP만 쓴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삼성의 자체 AP인 엑시노스는 퀄컴과 동등한 성능을 냈다. 어느 순간 이 자체 설계 AP는 도태됐다. 삼성의 설계 부문인 LSI사업부의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게다가 파운드리와 설계 위기는 악순환 관계에 있다. 자체적으로 설계한 엑시노스를 자체 파운드리에서 만들면 발열 등의 문제가 심각했다. 그래서 엑시노스 파운드리를 TSMC에 맡기려 했지만, TSMC는 최근 이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파운드리로 IP나 파운드리 기술이 유출될 것을 우려했다는 풍문이다. 엑시노스는 이제 생산하기조차 어려운 칩이 되어가고 있다.

이 둘이 합쳐서 ③ 삼성 스마트폰의 위기가 되었다. 자체 AP 경쟁력을 잃고 퀄컴에 의존해야 한다. 안 그래도 애플에 소프트웨어 경쟁력에서 뒤진다. 그런데 하드웨어에서도 뒤진다. 그 결과 세계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존재감을 잃고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기사를 참고하면 된다.


[연관 기사] ‘삼성의 기술 우위는 끝나버렸다’ GOS 사태의 본질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419301

■ 삼성의 양대 부문장 모두가 사과했다

3년 전 사과를 한 한 부회장은 스마트폰 등 완제품 부문인 DX 부문의 수장이다. 지난해 사과를 한 전영현 부회장은 DS 부문의 수장이다. 그러니까 2022년과 2024년에 걸쳐 삼성전자의 양대(DX, DS) 부문장이 모두 사과를 했다.

두 사과는 거대한 상징이다.
2022년, 첫 번째 사과를 한 한 부회장은 표면적으로 사과했고
2024년, 두 번째 사과를 한 전 부회장은 정면으로 사과했다는 점에서 다르긴 하지만, 본질은 같다.
삼성이 영위하는 사실상 거의 모든 주력 부문의 위기를 상징한다.

메모리 위기이며, 파운드리 위기이며, 설계기술 위기이며, 스마트폰 위기다.


■ 세 번째 사과가 나올까?

돌이켜보면 아쉬운 것은 한종희 부회장의 사과다. 이 사과는 보다 명료해야 했다.

“기술의 삼성이 스마트폰 기술에서 낙오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이 아닌 기술에서 낙오하고 있습니다. 그 내면을 살펴보았더니, 설계 경쟁력을 잃고(LSI 사업부) 위탁생산 경쟁력도 상실(파운드리 사업부)한 풍경이 자리합니다."

3년 전의 사과가 이런 형식의 사과였다면, 그리고 그 때 확실한 처방을 함께 제시했다면 지금 삼성의 위치가 조금은 달라져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삼성은 3년 전 본원적 사과를 꺼렸다. 그리고 2025년에는 메모리마저 위기에 놓이면서 사면초가에 있다.

다행인 점은 지난해의 사과다. 본원적인 위기를 솔직히 드러냈다. 또 경쟁력을 회복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다짐도 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상처를 드러내고 도려내면서 나아간다면 개선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회복 대신 세 번째 사과가 나온다면 그것은 최종적 위기 신호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본원적 사업에서 위기 혹은 정체되어 있는데 다시 한번 사과하게 된다면 그것은 '회복이 어렵다'는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삼성은 지금 재기와 '세 번째 사과'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 갈림길에 멈춰서서 SK하이닉스의 축제를 바라보고 있다.

시사기획창 “삼성, 잃어버린 10년” 유튜브 다시보기
https://youtu.be/W-rzA6GXkwk

위기의 삼성을 조망하는 연속기사입니다. 다양한 기업과 비교하고, 여러 전문가의 분석을 경청하며 삼성의 현주소를 살핍니다. 구독해 두시면, 1월 한 달 동안 삼성 위기의 이유와 극복의 실마리를 살필 수 있습니다.

① [D램] 젠슨, 삼성이 왜 HBM을 새로 설계해야 하죠?
② [모바일] 애플과 삼성의 격차, 이제는 17배
③ [파운드리] 삼성도 TSMC처럼 망하던 기업 '세계 1위' 만들 수 있나
④ [세 번째 사과] 축제인 하이닉스, 세 번째 사과가 두려운 삼성
(추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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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제인 하이닉스, 세 번째 사과가 두려운 삼성
    • 입력 2025-01-25 08:00:13
    • 수정2025-01-25 15: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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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는 이번에도 서프라이즈다. 3분기도 사상 최대 매출이었는데, 4분기는 또 훌쩍 뛰어넘었다. (3분기 매출 17.5조 원→ 4분기 19.7조 원) 연간 매출은 아예 배가 되었다. (2023년 32조 원→2024년 66조 원) 영업이익은 23조 원. 영업이익률은 무려 35%에 달한다.

비결은 HBM이다. 4분기 매출의 40%가 HBM에서 나왔다. 이 고수익 제품의 비중이 극도로 높다. 이 때문에 SK하이닉스 실적은 올해도 희망적이다.

세계 메모리 업황을 감안하면 놀라울 일이다. 지금 범용 D램 사이클은 내려가고 있다. 범용 D램에 의존하면 이 사이클에 따라 올해 전망은 어둡다. 그러나 HBM은 범용 D램이 아니다. 사이클도 없다. 없어서 못 파니까.

쉽게 말해서 지금 D램은 범용과 HBM 양 갈래로 '양극화'되고 있다. 그래서 D램 사이클이 내려가는데도, 시장은 SK하이닉스가 올해도 사상 최고 실적을 경신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런데 삼성은

삼성의 표정은 정반대다. 똑같은 메모리가 주력사업이고, 세계 메모리 시장에는 삼성,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이 세 기업 밖에 없는데 희비가 정반대로 교차한다.

충격적인 신용등급 전망도 나왔다. 무디스는 1월 24일, 삼성전자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신용등급 자체는 Aa2로 유지했지만 향후 전망을 부정적으로 본 것이다. 등급 하향 자체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이후 전례가 없다. 높아지기만 했던 삼성의 신용등급 전망도 이제 낮아지려 하고 있다.

이유는 메모리, 특히 AI칩 분야 리더십 회복의 불확실성이다. 무디스는 삼성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약 11%로 나빴는데, 향후 1년 정도 이런 낮은 성과가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쉽게 말하면, '삼성은 SK하이닉스와 달리 HBM 같은 고수익 제품에서 성과가 뒤처진다'는 냉정한 평가다.

실제로 삼성은 현존하는 최고 HBM 제품인 HBM3E을 엔비디아 최신 칩세트용으로 납품하는 데 실패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얼마 전 미국 CES에 참석해서 '엔비디아 요구보다 더 빠른 속도로 HBM을 개발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건 차세대인 HBM4 제품을 말한다. 삼성은 HBM4 개발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지난해 실적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0년 동안 어떻게 달라졌나를 장기적 시각에서 비교하면 구조적 차이가 드러난다. 삼성의 2013년 매출은 달러 기준으로 2,167억 달러다. 지난해 잠정 매출은 2,200억 달러를 소폭 상회한다. 10년 동안 거의 멈춰있었다.

하이닉스의 2013년 매출은 125억 달러다. 지난해 매출은 480억 달러가 넘는다. 거의 4배가 됐다.

기업 흥망은 규모가 아닌 성장의 속도에 달려있다. 삼성이 멈춰있는 동안 SK하이닉스는 달렸다.


■ 처절한 사과를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8일, 삼성전자 전영현 부회장은 사과문을 발표한다. 전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양대 축(메모리 중심의 반도체 부문 DS, 스마트폰과 가전 같은 완제품 부문 DX)인 DS 부문의 수장이다.

이 사과는 삼성전자 기업 역사에 유례가 없는 표현이 들어있다.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쳤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삼성의 위기를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책임은 사업을 이끄는 저희에게 있습니다.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을 복원하겠습니다. 기술과 품질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삼성전자의 자존심입니다. 단기적인 해결책보다는 근원적 경쟁력을 확보하겠습니다."

삼성전자라는 기업의 본원적 경쟁력인 메모리 부문에서 위기에 있다고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 위기가 '일시적이거나 부문적인'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기술 위기"라고 인정했다.

[연관 기사] 젠슨, 삼성이 왜 HBM을 새로 설계해야 하죠?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48051&ref=A

그동안 삼성은 이런 사과를 하지 않았다. 우선 할 일이 없었다. 언제나 메모리에서 세계 최초는 삼성이었다. 삼성 이외의 기업이 삼성을 앞설 수 있다는 생각은 30년 동안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과할 일이 없었다.

다른 한편, 삼성은 사과할 일이 있어도 이렇게 처절한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건 3년 전의 사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확인할 수 있다.

■ 표면적인 사과, 2022년 3월의 사과

스마트폰 위기, GOS 사태 당시다. 딱 3년 전, 새 갤럭시S 시리즈를 발표한 직후 벌어진 일이다.

당시 문제가 된 것은 최신 스마트폰이던 갤럭시S 22 제품이다. 핵심 반도체인 AP 성능을 강제로 제한하는 소프트웨어를 작동시켰다가 반발에 직면했다. 처음에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그러다가 벤치마크 측정 전문가와 유튜버, 그다음에는 해외 언론이 들불처럼 끓어올랐다.

"게임에 지장이 없다고 판단한 적정 한도까지 CPU, GPU의 성능을 제한하려 했었습니다. 주주와 고객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송구합니다."


3월 16일, 주주총회 단상 위에서 한종희 부회장이 위와 같은 사과를 한다. 얼핏 적절한 사과처럼 보인다. 게임 성능을 제한하려 했는데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고 했으니까.

그러나 당시의 GOS는 보다 심대한 위기를 상징한다. 단순한 게임 성능 억제가 문제가 아니었다. ①파운드리에서 실패하고 ②설계 능력에서 뒤처지고 ③스마트폰에서 정체되던 삼성의 위기였다.

그렇다면 '게임 성능 제한에 대한 사과'는 본질을 가린 사과다. 파운드리와 설계와 스마트폰 부문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어서 삼성의 장래가 어둡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으니까. (실제로 한 부회장은 당시 주총에서 파운드리 부문의 문제에 대한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세 위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

우선 AP, 스마트폰의 핵심 제품인 AP는 퀄컴의 스냅드래곤이지만, 이 칩을 실제로 만든 것은 삼성전자다. 삼성이 파운드리를 맡았다. 그 제품의 발열이 너무 심했다. 그래서 게임을 할 때 성능을 제한해서 발열이 더 큰 문제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 했다.

이 차원에서 보면 근본적인 문제는 '게임 성능에 지장'을 준 것이 아니라, AP 칩 제조를 잘 못해서 발열을 잡지 못한 것- 즉 파운드리의 한계다.

다른 한편 ②설계기술의 위기다. 이제 최신 최고 스마트폰에는 퀄컴의 AP만 쓴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삼성의 자체 AP인 엑시노스는 퀄컴과 동등한 성능을 냈다. 어느 순간 이 자체 설계 AP는 도태됐다. 삼성의 설계 부문인 LSI사업부의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게다가 파운드리와 설계 위기는 악순환 관계에 있다. 자체적으로 설계한 엑시노스를 자체 파운드리에서 만들면 발열 등의 문제가 심각했다. 그래서 엑시노스 파운드리를 TSMC에 맡기려 했지만, TSMC는 최근 이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파운드리로 IP나 파운드리 기술이 유출될 것을 우려했다는 풍문이다. 엑시노스는 이제 생산하기조차 어려운 칩이 되어가고 있다.

이 둘이 합쳐서 ③ 삼성 스마트폰의 위기가 되었다. 자체 AP 경쟁력을 잃고 퀄컴에 의존해야 한다. 안 그래도 애플에 소프트웨어 경쟁력에서 뒤진다. 그런데 하드웨어에서도 뒤진다. 그 결과 세계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존재감을 잃고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기사를 참고하면 된다.


[연관 기사] ‘삼성의 기술 우위는 끝나버렸다’ GOS 사태의 본질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419301

■ 삼성의 양대 부문장 모두가 사과했다

3년 전 사과를 한 한 부회장은 스마트폰 등 완제품 부문인 DX 부문의 수장이다. 지난해 사과를 한 전영현 부회장은 DS 부문의 수장이다. 그러니까 2022년과 2024년에 걸쳐 삼성전자의 양대(DX, DS) 부문장이 모두 사과를 했다.

두 사과는 거대한 상징이다.
2022년, 첫 번째 사과를 한 한 부회장은 표면적으로 사과했고
2024년, 두 번째 사과를 한 전 부회장은 정면으로 사과했다는 점에서 다르긴 하지만, 본질은 같다.
삼성이 영위하는 사실상 거의 모든 주력 부문의 위기를 상징한다.

메모리 위기이며, 파운드리 위기이며, 설계기술 위기이며, 스마트폰 위기다.


■ 세 번째 사과가 나올까?

돌이켜보면 아쉬운 것은 한종희 부회장의 사과다. 이 사과는 보다 명료해야 했다.

“기술의 삼성이 스마트폰 기술에서 낙오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이 아닌 기술에서 낙오하고 있습니다. 그 내면을 살펴보았더니, 설계 경쟁력을 잃고(LSI 사업부) 위탁생산 경쟁력도 상실(파운드리 사업부)한 풍경이 자리합니다."

3년 전의 사과가 이런 형식의 사과였다면, 그리고 그 때 확실한 처방을 함께 제시했다면 지금 삼성의 위치가 조금은 달라져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삼성은 3년 전 본원적 사과를 꺼렸다. 그리고 2025년에는 메모리마저 위기에 놓이면서 사면초가에 있다.

다행인 점은 지난해의 사과다. 본원적인 위기를 솔직히 드러냈다. 또 경쟁력을 회복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다짐도 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상처를 드러내고 도려내면서 나아간다면 개선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회복 대신 세 번째 사과가 나온다면 그것은 최종적 위기 신호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본원적 사업에서 위기 혹은 정체되어 있는데 다시 한번 사과하게 된다면 그것은 '회복이 어렵다'는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삼성은 지금 재기와 '세 번째 사과'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 갈림길에 멈춰서서 SK하이닉스의 축제를 바라보고 있다.

시사기획창 “삼성, 잃어버린 10년” 유튜브 다시보기
https://youtu.be/W-rzA6GXkwk

위기의 삼성을 조망하는 연속기사입니다. 다양한 기업과 비교하고, 여러 전문가의 분석을 경청하며 삼성의 현주소를 살핍니다. 구독해 두시면, 1월 한 달 동안 삼성 위기의 이유와 극복의 실마리를 살필 수 있습니다.

① [D램] 젠슨, 삼성이 왜 HBM을 새로 설계해야 하죠?
② [모바일] 애플과 삼성의 격차, 이제는 17배
③ [파운드리] 삼성도 TSMC처럼 망하던 기업 '세계 1위' 만들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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