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픽]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국민 가수 송대관, 마지막 인사
입력 2025.02.10 (18:19)
수정 2025.02.10 (18:2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1970년대 탄생한 조용필의 노래.
부산 사람들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떼창할 때 전 국민이 열창한 노래는 따로 있었습니다.
['해뜰날' :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이제는 고인이 된 가수 송대관 씨의 노래 '해뜰날'.
당시 중동 산유국의 건설 붐에 한국 기업들이 올라탔던 시절, 고단한 노동을 뒤로하고 가사 그대로 "쨍하고 해뜰날”을 예감하던 시대였습니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모두 비켜라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애창곡으로 알려지며 현대그룹의 사가가 된 일화도 유명한데요.
송대관 씨는 1980년 대 돌연 미국으로 떠났지만, 80년대 후반 다시 귀국했습니다.
'차표 한장’ ‘네 박자',‘유행가’ 등 쉴 새 없이 히트곡을 내놓으며 최고 전성기를 구가한 게 바로 이때부텁니다.
[송대관/유행가 : "유행가. 유행가. 신나는 노래 나도 한번 불러본다."]
태진아, 현철, 설운도와 함께 연 트로트 4대 천왕 시대.
2013년 대형 사기 사건에 연루되며 곤욕을 겪기도 했지만 대법원 무죄 판결을 받고 다시 팬들 앞에 섭니다.
[송대관/KBS '아침 뉴스타임' : "당연한 결과인데요.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 심정은 떨리기도 했지만, 무죄라는 한 마디가 저를 하얗게 만들었어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송대관 씨.
어린 시절 새벽엔 신문 배달, 방과 후엔 이발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도맡았던 억척스러운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수년간 수억 원대 빚을 청산하고 담도암 선고 후 5년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던 송 씨.
올 초만 해도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는데요.
["사랑은 박력 있게, 눈치는 센스 있게."]
하지만 여기까지.
지난 6일 컨디션 난조로 응급실을 찾았지만, 다음 날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영면에 들었습니다.
향년 79세였습니다.
평소 송대관 씨를 형이라 부르던 절친 태진아 씨.
5년 전 송 씨가 위궤양 수술로 전국 투어가 취소되자 치료비와 생활비로 쓰라며 수천만 원의 현금다발을 송 씨에게 가져다준 미담은 유명하죠.
[태진아/가수 : "한쪽 날개를 완전히 잃은 거나 다름없어요. 형님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태진아 씨는 추도사를 낭독하며, “지난 3일 동안 밥을 안 먹고 술로 배를 채웠다"며, "대관이 형 잘 가. 영원한 나의 라이벌이여"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후배들은 영결식장에서 고인이 생전 가장 좋아했던 노래 '해뜰날'로 고인의 마지막 여정을 추모했습니다.
영상편집:김근환
1970년대 탄생한 조용필의 노래.
부산 사람들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떼창할 때 전 국민이 열창한 노래는 따로 있었습니다.
['해뜰날' :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이제는 고인이 된 가수 송대관 씨의 노래 '해뜰날'.
당시 중동 산유국의 건설 붐에 한국 기업들이 올라탔던 시절, 고단한 노동을 뒤로하고 가사 그대로 "쨍하고 해뜰날”을 예감하던 시대였습니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모두 비켜라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애창곡으로 알려지며 현대그룹의 사가가 된 일화도 유명한데요.
송대관 씨는 1980년 대 돌연 미국으로 떠났지만, 80년대 후반 다시 귀국했습니다.
'차표 한장’ ‘네 박자',‘유행가’ 등 쉴 새 없이 히트곡을 내놓으며 최고 전성기를 구가한 게 바로 이때부텁니다.
[송대관/유행가 : "유행가. 유행가. 신나는 노래 나도 한번 불러본다."]
태진아, 현철, 설운도와 함께 연 트로트 4대 천왕 시대.
2013년 대형 사기 사건에 연루되며 곤욕을 겪기도 했지만 대법원 무죄 판결을 받고 다시 팬들 앞에 섭니다.
[송대관/KBS '아침 뉴스타임' : "당연한 결과인데요.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 심정은 떨리기도 했지만, 무죄라는 한 마디가 저를 하얗게 만들었어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송대관 씨.
어린 시절 새벽엔 신문 배달, 방과 후엔 이발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도맡았던 억척스러운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수년간 수억 원대 빚을 청산하고 담도암 선고 후 5년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던 송 씨.
올 초만 해도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는데요.
["사랑은 박력 있게, 눈치는 센스 있게."]
하지만 여기까지.
지난 6일 컨디션 난조로 응급실을 찾았지만, 다음 날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영면에 들었습니다.
향년 79세였습니다.
평소 송대관 씨를 형이라 부르던 절친 태진아 씨.
5년 전 송 씨가 위궤양 수술로 전국 투어가 취소되자 치료비와 생활비로 쓰라며 수천만 원의 현금다발을 송 씨에게 가져다준 미담은 유명하죠.
[태진아/가수 : "한쪽 날개를 완전히 잃은 거나 다름없어요. 형님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태진아 씨는 추도사를 낭독하며, “지난 3일 동안 밥을 안 먹고 술로 배를 채웠다"며, "대관이 형 잘 가. 영원한 나의 라이벌이여"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후배들은 영결식장에서 고인이 생전 가장 좋아했던 노래 '해뜰날'로 고인의 마지막 여정을 추모했습니다.
영상편집:김근환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이슈픽]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국민 가수 송대관, 마지막 인사
-
- 입력 2025-02-10 18:19:51
- 수정2025-02-10 18:28:02
["돌아와요. 부산항에..."]
1970년대 탄생한 조용필의 노래.
부산 사람들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떼창할 때 전 국민이 열창한 노래는 따로 있었습니다.
['해뜰날' :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이제는 고인이 된 가수 송대관 씨의 노래 '해뜰날'.
당시 중동 산유국의 건설 붐에 한국 기업들이 올라탔던 시절, 고단한 노동을 뒤로하고 가사 그대로 "쨍하고 해뜰날”을 예감하던 시대였습니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모두 비켜라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애창곡으로 알려지며 현대그룹의 사가가 된 일화도 유명한데요.
송대관 씨는 1980년 대 돌연 미국으로 떠났지만, 80년대 후반 다시 귀국했습니다.
'차표 한장’ ‘네 박자',‘유행가’ 등 쉴 새 없이 히트곡을 내놓으며 최고 전성기를 구가한 게 바로 이때부텁니다.
[송대관/유행가 : "유행가. 유행가. 신나는 노래 나도 한번 불러본다."]
태진아, 현철, 설운도와 함께 연 트로트 4대 천왕 시대.
2013년 대형 사기 사건에 연루되며 곤욕을 겪기도 했지만 대법원 무죄 판결을 받고 다시 팬들 앞에 섭니다.
[송대관/KBS '아침 뉴스타임' : "당연한 결과인데요.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 심정은 떨리기도 했지만, 무죄라는 한 마디가 저를 하얗게 만들었어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송대관 씨.
어린 시절 새벽엔 신문 배달, 방과 후엔 이발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도맡았던 억척스러운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수년간 수억 원대 빚을 청산하고 담도암 선고 후 5년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던 송 씨.
올 초만 해도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는데요.
["사랑은 박력 있게, 눈치는 센스 있게."]
하지만 여기까지.
지난 6일 컨디션 난조로 응급실을 찾았지만, 다음 날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영면에 들었습니다.
향년 79세였습니다.
평소 송대관 씨를 형이라 부르던 절친 태진아 씨.
5년 전 송 씨가 위궤양 수술로 전국 투어가 취소되자 치료비와 생활비로 쓰라며 수천만 원의 현금다발을 송 씨에게 가져다준 미담은 유명하죠.
[태진아/가수 : "한쪽 날개를 완전히 잃은 거나 다름없어요. 형님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태진아 씨는 추도사를 낭독하며, “지난 3일 동안 밥을 안 먹고 술로 배를 채웠다"며, "대관이 형 잘 가. 영원한 나의 라이벌이여"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후배들은 영결식장에서 고인이 생전 가장 좋아했던 노래 '해뜰날'로 고인의 마지막 여정을 추모했습니다.
영상편집:김근환
1970년대 탄생한 조용필의 노래.
부산 사람들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떼창할 때 전 국민이 열창한 노래는 따로 있었습니다.
['해뜰날' :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이제는 고인이 된 가수 송대관 씨의 노래 '해뜰날'.
당시 중동 산유국의 건설 붐에 한국 기업들이 올라탔던 시절, 고단한 노동을 뒤로하고 가사 그대로 "쨍하고 해뜰날”을 예감하던 시대였습니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모두 비켜라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애창곡으로 알려지며 현대그룹의 사가가 된 일화도 유명한데요.
송대관 씨는 1980년 대 돌연 미국으로 떠났지만, 80년대 후반 다시 귀국했습니다.
'차표 한장’ ‘네 박자',‘유행가’ 등 쉴 새 없이 히트곡을 내놓으며 최고 전성기를 구가한 게 바로 이때부텁니다.
[송대관/유행가 : "유행가. 유행가. 신나는 노래 나도 한번 불러본다."]
태진아, 현철, 설운도와 함께 연 트로트 4대 천왕 시대.
2013년 대형 사기 사건에 연루되며 곤욕을 겪기도 했지만 대법원 무죄 판결을 받고 다시 팬들 앞에 섭니다.
[송대관/KBS '아침 뉴스타임' : "당연한 결과인데요.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 심정은 떨리기도 했지만, 무죄라는 한 마디가 저를 하얗게 만들었어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송대관 씨.
어린 시절 새벽엔 신문 배달, 방과 후엔 이발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도맡았던 억척스러운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수년간 수억 원대 빚을 청산하고 담도암 선고 후 5년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던 송 씨.
올 초만 해도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는데요.
["사랑은 박력 있게, 눈치는 센스 있게."]
하지만 여기까지.
지난 6일 컨디션 난조로 응급실을 찾았지만, 다음 날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영면에 들었습니다.
향년 79세였습니다.
평소 송대관 씨를 형이라 부르던 절친 태진아 씨.
5년 전 송 씨가 위궤양 수술로 전국 투어가 취소되자 치료비와 생활비로 쓰라며 수천만 원의 현금다발을 송 씨에게 가져다준 미담은 유명하죠.
[태진아/가수 : "한쪽 날개를 완전히 잃은 거나 다름없어요. 형님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태진아 씨는 추도사를 낭독하며, “지난 3일 동안 밥을 안 먹고 술로 배를 채웠다"며, "대관이 형 잘 가. 영원한 나의 라이벌이여"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후배들은 영결식장에서 고인이 생전 가장 좋아했던 노래 '해뜰날'로 고인의 마지막 여정을 추모했습니다.
영상편집:김근환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