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핵우산’은 유럽을 지킬 수 있나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5.03.12 (06:00)
수정 2025.03.12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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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뿐 아니라 안보에서도 '미국 우선주의'를 천명한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유럽에선 '자체 핵무장론'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유럽이 냉전 시기 가장 큰 위협으로 여겼던 러시아를 최근 미국이 거듭 옹호하면서, '미국 없는 안보'에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 '핵우산' 꺼내든 '핵보유국' 프랑스
먼저 깃발을 든 건 핵보유국인 프랑스입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5일 밤 생중계 대국민 연설에서 "유럽이 러시아의 잠재적 위협에 맞서 스스로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며 "유럽의 동맹국 보호를 위한 핵 억지력에 대해 전략적 대화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프랑스, 유럽의 안전을 위해 지체 없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 결정은 군 통수권자인 공화국 대통령의 손에 달려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동안 프랑스 내에선 프랑스가 보유한 핵억지력은 유럽 다른 국가가 아닌 자국을 위해서만 써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했는데, 이를 의식한 듯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의 핵무기 사용 결정은 언제나 프랑스 국가 원수가 한다"고 못 박기도 했습니다.
■ '유럽 자체 핵무장'에 동의한 '비(非) 핵보유국' 독일
이에 화답한 건 독일입니다. 비(非) 핵보유국인 독일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핵 공유 정책에 따라 그동안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 아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독일의 차기 총리로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가 "미국의 핵 보호 없이도 유럽이 스스로 방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유럽의 핵보유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함께 핵을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유럽 독자 방위보다 미국과의 협력을 중요시했던 독일의 안보 정책 전환을 예고하는 듯한 파격적 발언입니다. 앞선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독일에 핵무기 공유 방안을 제안했으나, 당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거절한 바 있습니다.
핵 공유를 위한 실무적인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습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지난달 프랑스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군의 유럽 철수를 우려해 프랑스의 핵무기를 탑재한 전투기가 독일에 배치될 수 있다"며 "이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 푸틴 대통령 "나폴레옹의 최후 잊지 말아야"
이에 푸틴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의 연설은 매우 극도로 대립적이고 평화를 생각하는 국가 수장의 연설로 보기 어렵다"면서 "프랑스가 정말 전쟁을 지속하길 원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면서 "나폴레옹의 시대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그의 최후가 어땠는지는 잊은 채"라고 저격했습니다.
프랑스 나폴레옹이 1812년 러시아를 침공했다가 가혹한 겨울 수많은 병력을 잃고 패퇴했던 역사를 거론하면서 마크롱 대통령의 전날 대국민 연설 내용을 비판한 겁니다.
과연 유럽이 주장하는 자체 핵우산이 미국 없는 자리를 메울 수 있을까요?

■ 유럽, 핵 보유량 적지만…'세력 구도' 재편 가능
핵억지력은 단순히 핵무기 보유 여부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국가가 보유한 핵탄두 개수와 핵탄두를 원하는 장소에 보낼 수 있는 투발 수단, 즉 장거리 미사일 기술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스웨덴 외교정책 연구기관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표한 '2023년 핵무기 연감'에 따르면, 전 세계 핵무기 보유량은 1만 2천512기로 이 가운데 사용 가능한 핵무기는 9,576기입니다.
핵무기 보유량은 매년 경쟁적인 군비 증강의 결과로 꾸준히 늘고 있는데, 핵확산금지조약(NPT) 이 공식 인정하는 핵무기 보유국은 미국과 영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등 5개 국가뿐입니다.
1위는 러시아(5,889) 2위는 미국으로(5,244기), 그다음 중국(410기)과 프랑스(290기), 영국(225기) 순입니다. 핵무기 보유국으로 공식 인정되지는 않지만, 파키스탄(170기), 인도(164기), 이스라엘(90기), 북한(30기) 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들 국가는 핵 보유량을 바탕으로 자국의 안보를 강화하는데, 한국과 미국처럼 동맹 체제 속에서 핵을 공유하거나 수많은 전략적 논의로 동맹 간 핵 보유량의 이합집산을 반복합니다. 가령 미국은 러시아보다 핵탄두 보유량이 적지만, 우방국인 유럽과 이스라엘의 핵을 동원하면 러시아와 중국의 핵탄두를 합친 것과 비슷해집니다.
미국이 빠진 유럽 자체 방위론은 수치상으로 러시아에 강한 위협을 주기엔 부족하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입니다. 다만 파괴력이 큰 핵무기 특성상, 유럽의 자체 핵우산은 러시아를 압박하고 국제 안보 구도를 일부 바꿀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 유럽연합, 국방비 증액 박차…"미국 무한 의존 환상 깨라"
여기에 유럽은 국방비 증가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유럽연합은 회원국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각각 GDP의 3%와 60%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고 있어 국방예산의 급격한 증액이 불가능했지만, 최근 잇따른 정상회의를 통해 이 제한을 없애고 1조 원이 넘는 공동 국방비를 마련하자는데 목소리를 모으고 있습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연일 "미국에 무한 의존하는 환상을 깨라"면서 "지금은 단합과 힘을 통해 우리 대륙의 평화를 보장하는 유럽의 방위동맹을 구축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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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핵우산’은 유럽을 지킬 수 있나 [특파원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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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3-12 06:00:30
- 수정2025-03-12 06:04:45

경제뿐 아니라 안보에서도 '미국 우선주의'를 천명한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유럽에선 '자체 핵무장론'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유럽이 냉전 시기 가장 큰 위협으로 여겼던 러시아를 최근 미국이 거듭 옹호하면서, '미국 없는 안보'에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 '핵우산' 꺼내든 '핵보유국' 프랑스
먼저 깃발을 든 건 핵보유국인 프랑스입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5일 밤 생중계 대국민 연설에서 "유럽이 러시아의 잠재적 위협에 맞서 스스로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며 "유럽의 동맹국 보호를 위한 핵 억지력에 대해 전략적 대화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프랑스, 유럽의 안전을 위해 지체 없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 결정은 군 통수권자인 공화국 대통령의 손에 달려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동안 프랑스 내에선 프랑스가 보유한 핵억지력은 유럽 다른 국가가 아닌 자국을 위해서만 써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했는데, 이를 의식한 듯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의 핵무기 사용 결정은 언제나 프랑스 국가 원수가 한다"고 못 박기도 했습니다.
■ '유럽 자체 핵무장'에 동의한 '비(非) 핵보유국' 독일
이에 화답한 건 독일입니다. 비(非) 핵보유국인 독일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핵 공유 정책에 따라 그동안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 아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독일의 차기 총리로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가 "미국의 핵 보호 없이도 유럽이 스스로 방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유럽의 핵보유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함께 핵을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유럽 독자 방위보다 미국과의 협력을 중요시했던 독일의 안보 정책 전환을 예고하는 듯한 파격적 발언입니다. 앞선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독일에 핵무기 공유 방안을 제안했으나, 당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거절한 바 있습니다.
핵 공유를 위한 실무적인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습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지난달 프랑스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군의 유럽 철수를 우려해 프랑스의 핵무기를 탑재한 전투기가 독일에 배치될 수 있다"며 "이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 푸틴 대통령 "나폴레옹의 최후 잊지 말아야"
이에 푸틴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의 연설은 매우 극도로 대립적이고 평화를 생각하는 국가 수장의 연설로 보기 어렵다"면서 "프랑스가 정말 전쟁을 지속하길 원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면서 "나폴레옹의 시대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그의 최후가 어땠는지는 잊은 채"라고 저격했습니다.
프랑스 나폴레옹이 1812년 러시아를 침공했다가 가혹한 겨울 수많은 병력을 잃고 패퇴했던 역사를 거론하면서 마크롱 대통령의 전날 대국민 연설 내용을 비판한 겁니다.
과연 유럽이 주장하는 자체 핵우산이 미국 없는 자리를 메울 수 있을까요?

■ 유럽, 핵 보유량 적지만…'세력 구도' 재편 가능
핵억지력은 단순히 핵무기 보유 여부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국가가 보유한 핵탄두 개수와 핵탄두를 원하는 장소에 보낼 수 있는 투발 수단, 즉 장거리 미사일 기술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스웨덴 외교정책 연구기관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표한 '2023년 핵무기 연감'에 따르면, 전 세계 핵무기 보유량은 1만 2천512기로 이 가운데 사용 가능한 핵무기는 9,576기입니다.
핵무기 보유량은 매년 경쟁적인 군비 증강의 결과로 꾸준히 늘고 있는데, 핵확산금지조약(NPT) 이 공식 인정하는 핵무기 보유국은 미국과 영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등 5개 국가뿐입니다.
1위는 러시아(5,889) 2위는 미국으로(5,244기), 그다음 중국(410기)과 프랑스(290기), 영국(225기) 순입니다. 핵무기 보유국으로 공식 인정되지는 않지만, 파키스탄(170기), 인도(164기), 이스라엘(90기), 북한(30기) 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들 국가는 핵 보유량을 바탕으로 자국의 안보를 강화하는데, 한국과 미국처럼 동맹 체제 속에서 핵을 공유하거나 수많은 전략적 논의로 동맹 간 핵 보유량의 이합집산을 반복합니다. 가령 미국은 러시아보다 핵탄두 보유량이 적지만, 우방국인 유럽과 이스라엘의 핵을 동원하면 러시아와 중국의 핵탄두를 합친 것과 비슷해집니다.
미국이 빠진 유럽 자체 방위론은 수치상으로 러시아에 강한 위협을 주기엔 부족하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입니다. 다만 파괴력이 큰 핵무기 특성상, 유럽의 자체 핵우산은 러시아를 압박하고 국제 안보 구도를 일부 바꿀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 유럽연합, 국방비 증액 박차…"미국 무한 의존 환상 깨라"
여기에 유럽은 국방비 증가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유럽연합은 회원국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각각 GDP의 3%와 60%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고 있어 국방예산의 급격한 증액이 불가능했지만, 최근 잇따른 정상회의를 통해 이 제한을 없애고 1조 원이 넘는 공동 국방비를 마련하자는데 목소리를 모으고 있습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연일 "미국에 무한 의존하는 환상을 깨라"면서 "지금은 단합과 힘을 통해 우리 대륙의 평화를 보장하는 유럽의 방위동맹을 구축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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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진 기자 hosk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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