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에 대한 흔한 착각, 거기에 올라탄 정치권

입력 2025.03.12 (17:13) 수정 2025.03.12 (17:3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세부담 경감과 과세 형평성을 위해…"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바꾸는 상속세 대개편을 추진하며 정부가 내세운 취지입니다.

[연관 기사] 상속세 완전 재건축, ‘유산취득세’ 뭐길래 (2025.03.12 KBS뉴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98186

상속세는 지난해부터 부쩍 뜨거워진 감자였습니다. 유산취득세 전환은 공제 한도, 세율 조정과 함께 일종의 '3대 쟁점'이었습니다.

여야는 공제 한도와 세율에 더 집중해 왔습니다. 유산취득세 전환은 워낙 큰 공사여서 상대적으로 뒷순위였는데, 정부가 로드맵을 내놓은 만큼 논의는 더 불붙을 거로 보입니다.

■ '감세 전쟁' 복판에 선 상속세

요즘 정치권은 '감세 전쟁' 중입니다. 국민의힘은 원래 '감세' 쪽입니다. 전선에 불을 붙인 건 더불어민주당의 방향 전환입니다.

대체로 '증세' 쪽에 가까웠던 정당인데,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최근 물길을 바꿨습니다.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세제 완화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이 던진 '감세'라는 공을, 예전 같으면 받아쳤을 민주당이 받아주는 구도입니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가상자산 과세 유예가 그렇게 이뤄졌습니다.

근로소득세를 물가와 연동해 깎아주자는 논의는 민주당이 더 선제적입니다. 곧 법안을 발의할 태세입니다.

[연관 기사] 상속세 깎자, 소득세 깎자…그럼 ‘세수’는 누가 키우나 (2025.03.08 KBS1 뉴스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95046

그리고 최근엔 상속세가 최전면에 섰습니다.

여야가 배우자 공제 한도와 최고세율 인하 등을 두고 여러 차례 공방을 주고받긴 했지만, 대체로 상속세 개편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의견이 모이고 있습니다.

공제 한도를 늘리는 대목은 이견이 거의 없습니다.

현재 10억 원인 공제 한도를 여당인 국민의힘은 20억 원으로, 야당인 민주당은 18억 원으로 확대하자는 입장입니다. 2억 원 정도의 이견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에 배우자 상속세 폐지가 추가됐습니다. 배우자 공제 한도를 없애자는 건데, 여야 대표 모두 동의했습니다. 사실상 합의에 가깝습니다.

22대 국회에서 제출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은 36건입니다. 법안 숫자로만 보면, 이보다 뜨거울 수 없어 보입니다. 너도나도 '상속세 깎아주기'에 열심입니다.


■ 상속세에 대한 흔한 착각들

정치권이 뜨겁고, 정부까지 대개편에 나선 상황. 국민 관심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상속세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가장 기초부터… 상속세는 한 해 몇 명 정도 내고 있을까요? 50만 명? 10만 명?

답은 2만 명입니다. 2023년 기준 만 9천9백 명이 냈습니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으로 납세자가 대폭 늘어난 결과입니다. 전 국민의 0.04% 정도입니다. 한해 사망자와 비교하면 5% 정도입니다.

상속세에 대한 착각은 어느 정도일까요. 최근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난 7일 열린 제59회 납세자의 날 기념 심포지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권성오 세제연구센터장이 '설문실험을 이용한 납세자 인식 및 선호 분석'을 발표했습니다. 전국 만 19~64세 국민 3천 명을 대상으로, 적정 세 부담 등에 대해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내용을 분석한 겁니다.

우선, 국민들은 상속세를 꽤 많은 이가 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훨씬 적은데 말입니다.

상속세 납부 피상속인 비율 추정치를 보니, 응답자는 평균 25.2%라고 답했습니다. 100명이 사망할 때 25명 정도가 상속세를 낼 거라는 믿음입니다.

지난해 실제 비율은 6.8%였습니다. 단 1원이라도 상속을 받은 전체 인원(결정 인원) 중 각종 공제 한도를 넘어 실제 상속세를 낸 인원(과세 인원)이 6.8%를 차지한다는 뜻입니다.


세율에 대한 착각도 컸습니다.

유산 5억 원어치를 물려받을 때, 상속세는 0원입니다. 5억 원까지 일괄 공제되기 때문입니다. 실효세율이 0%입니다.

하지만, 설문에 응답한 국민 중 실효세율을 0%라고 답한 이들은 17.2%에 그쳤습니다.

현재 누진 세율 체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실제로는 상속재산이 많을수록 세율이 올라가지만, 국민들 인식은 사실과 달랐습니다.

조사를 보면 "유산 규모 5억 원, 10억 원, 20억 원, 50억 원에 대한 실제 실효 세율은 각각 0%, 5%, 10%, 20%"이지만, "응답자들의 실효세율 인식 평균은 모두 약 20% 수준"이었다고 했습니다.

이어 "유산 규모가 100억 원과 200억 원인 경우, 실제 실효세율은 30%와 35%"이지만, "실효세율 인식 평균은 각각 26.6%와 29.0%"였다고도 밝혔습니다.

권 센터장은 이에 대해 "응답자들이 상속세 과세 대상 비율을 과대평가"하고, 세율에 대해선 "유산 규모가 작은 구간에선 과대평가, 큰 구간에선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정리하면, 상속세 '폭탄'이 '내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입니다.

■ 깎고 깎고…'세수'는 누가 키우나

상속세에 대한 착각이 이 정도임을 감안하면, 정치권에서 너도나도 상속세를 깎아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무리는 아닙니다. 지지자·유권자들이 '내 일'로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 해답을 내놓는 것이니까요.

오늘(12일) 나온 정부의 유산취득세 개편안도 거듭된 정치권 내에서의 문제 제기에 호응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소는 누가 키우냐' 입니다.

당장 지난해만 해도 30조 원 넘게 세수 결손이 났습니다. 재작년에는 세수 결손이 50조 원을 넘었습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성호 민주당 의원이 기재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정부는 이 같은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기존에 '당겨쓰겠다'고 하지 않았던 각종 기금과 특별회계에서 재원을 이른바 '돌려막기'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번 유산취득세 개편안에 따라 앞으로 세수가 2조 원가량 줄어들 거로도 예상합니다. 그 2조 원은 뭐로 메우려는 계획일까요. 이 부분에 대해선 정부는 말이 없습니다.

이 세금 깎으면 이 사람이 기쁘고, 저 세금 깎으면 저 사람이 기쁠 겁니다. 세금 내기 좋아하는 이는 없으니까요. 근데 다 깎기만 하면, 세수는 누가 키울까요.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지금 과연 이렇게 산발적인 세 부담 경감만을 얘기하고 있는 게 과연 올바를까?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먼저 제대로 된 논의가 되려면 조세 정책의 기조하고 주요 세목을 모두 망라한 전체적인 세제 개편 방향을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자는 얘기. 지극히 상식적인 주문인데, 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권의 귀엔 쉽게 먹혀들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상속세에 대한 흔한 착각, 거기에 올라탄 정치권
    • 입력 2025-03-12 17:13:12
    • 수정2025-03-12 17:31:04
    심층K

"세부담 경감과 과세 형평성을 위해…"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바꾸는 상속세 대개편을 추진하며 정부가 내세운 취지입니다.

[연관 기사] 상속세 완전 재건축, ‘유산취득세’ 뭐길래 (2025.03.12 KBS뉴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98186

상속세는 지난해부터 부쩍 뜨거워진 감자였습니다. 유산취득세 전환은 공제 한도, 세율 조정과 함께 일종의 '3대 쟁점'이었습니다.

여야는 공제 한도와 세율에 더 집중해 왔습니다. 유산취득세 전환은 워낙 큰 공사여서 상대적으로 뒷순위였는데, 정부가 로드맵을 내놓은 만큼 논의는 더 불붙을 거로 보입니다.

■ '감세 전쟁' 복판에 선 상속세

요즘 정치권은 '감세 전쟁' 중입니다. 국민의힘은 원래 '감세' 쪽입니다. 전선에 불을 붙인 건 더불어민주당의 방향 전환입니다.

대체로 '증세' 쪽에 가까웠던 정당인데,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최근 물길을 바꿨습니다.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세제 완화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이 던진 '감세'라는 공을, 예전 같으면 받아쳤을 민주당이 받아주는 구도입니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가상자산 과세 유예가 그렇게 이뤄졌습니다.

근로소득세를 물가와 연동해 깎아주자는 논의는 민주당이 더 선제적입니다. 곧 법안을 발의할 태세입니다.

[연관 기사] 상속세 깎자, 소득세 깎자…그럼 ‘세수’는 누가 키우나 (2025.03.08 KBS1 뉴스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95046

그리고 최근엔 상속세가 최전면에 섰습니다.

여야가 배우자 공제 한도와 최고세율 인하 등을 두고 여러 차례 공방을 주고받긴 했지만, 대체로 상속세 개편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의견이 모이고 있습니다.

공제 한도를 늘리는 대목은 이견이 거의 없습니다.

현재 10억 원인 공제 한도를 여당인 국민의힘은 20억 원으로, 야당인 민주당은 18억 원으로 확대하자는 입장입니다. 2억 원 정도의 이견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에 배우자 상속세 폐지가 추가됐습니다. 배우자 공제 한도를 없애자는 건데, 여야 대표 모두 동의했습니다. 사실상 합의에 가깝습니다.

22대 국회에서 제출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은 36건입니다. 법안 숫자로만 보면, 이보다 뜨거울 수 없어 보입니다. 너도나도 '상속세 깎아주기'에 열심입니다.


■ 상속세에 대한 흔한 착각들

정치권이 뜨겁고, 정부까지 대개편에 나선 상황. 국민 관심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상속세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가장 기초부터… 상속세는 한 해 몇 명 정도 내고 있을까요? 50만 명? 10만 명?

답은 2만 명입니다. 2023년 기준 만 9천9백 명이 냈습니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으로 납세자가 대폭 늘어난 결과입니다. 전 국민의 0.04% 정도입니다. 한해 사망자와 비교하면 5% 정도입니다.

상속세에 대한 착각은 어느 정도일까요. 최근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난 7일 열린 제59회 납세자의 날 기념 심포지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권성오 세제연구센터장이 '설문실험을 이용한 납세자 인식 및 선호 분석'을 발표했습니다. 전국 만 19~64세 국민 3천 명을 대상으로, 적정 세 부담 등에 대해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내용을 분석한 겁니다.

우선, 국민들은 상속세를 꽤 많은 이가 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훨씬 적은데 말입니다.

상속세 납부 피상속인 비율 추정치를 보니, 응답자는 평균 25.2%라고 답했습니다. 100명이 사망할 때 25명 정도가 상속세를 낼 거라는 믿음입니다.

지난해 실제 비율은 6.8%였습니다. 단 1원이라도 상속을 받은 전체 인원(결정 인원) 중 각종 공제 한도를 넘어 실제 상속세를 낸 인원(과세 인원)이 6.8%를 차지한다는 뜻입니다.


세율에 대한 착각도 컸습니다.

유산 5억 원어치를 물려받을 때, 상속세는 0원입니다. 5억 원까지 일괄 공제되기 때문입니다. 실효세율이 0%입니다.

하지만, 설문에 응답한 국민 중 실효세율을 0%라고 답한 이들은 17.2%에 그쳤습니다.

현재 누진 세율 체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실제로는 상속재산이 많을수록 세율이 올라가지만, 국민들 인식은 사실과 달랐습니다.

조사를 보면 "유산 규모 5억 원, 10억 원, 20억 원, 50억 원에 대한 실제 실효 세율은 각각 0%, 5%, 10%, 20%"이지만, "응답자들의 실효세율 인식 평균은 모두 약 20% 수준"이었다고 했습니다.

이어 "유산 규모가 100억 원과 200억 원인 경우, 실제 실효세율은 30%와 35%"이지만, "실효세율 인식 평균은 각각 26.6%와 29.0%"였다고도 밝혔습니다.

권 센터장은 이에 대해 "응답자들이 상속세 과세 대상 비율을 과대평가"하고, 세율에 대해선 "유산 규모가 작은 구간에선 과대평가, 큰 구간에선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정리하면, 상속세 '폭탄'이 '내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입니다.

■ 깎고 깎고…'세수'는 누가 키우나

상속세에 대한 착각이 이 정도임을 감안하면, 정치권에서 너도나도 상속세를 깎아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무리는 아닙니다. 지지자·유권자들이 '내 일'로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 해답을 내놓는 것이니까요.

오늘(12일) 나온 정부의 유산취득세 개편안도 거듭된 정치권 내에서의 문제 제기에 호응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소는 누가 키우냐' 입니다.

당장 지난해만 해도 30조 원 넘게 세수 결손이 났습니다. 재작년에는 세수 결손이 50조 원을 넘었습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성호 민주당 의원이 기재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정부는 이 같은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기존에 '당겨쓰겠다'고 하지 않았던 각종 기금과 특별회계에서 재원을 이른바 '돌려막기'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번 유산취득세 개편안에 따라 앞으로 세수가 2조 원가량 줄어들 거로도 예상합니다. 그 2조 원은 뭐로 메우려는 계획일까요. 이 부분에 대해선 정부는 말이 없습니다.

이 세금 깎으면 이 사람이 기쁘고, 저 세금 깎으면 저 사람이 기쁠 겁니다. 세금 내기 좋아하는 이는 없으니까요. 근데 다 깎기만 하면, 세수는 누가 키울까요.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지금 과연 이렇게 산발적인 세 부담 경감만을 얘기하고 있는 게 과연 올바를까?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먼저 제대로 된 논의가 되려면 조세 정책의 기조하고 주요 세목을 모두 망라한 전체적인 세제 개편 방향을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자는 얘기. 지극히 상식적인 주문인데, 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권의 귀엔 쉽게 먹혀들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