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1일, 인천시 옹진군 소청도의 한 주택에서 70대 남성이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남성은 소방헬기로 인천의 한 병원에 이송됐지만 3일 뒤 숨졌습니다.
흔히 뇌출혈 '골든타임'은 3시간으로 알려져 있는데, 남성이 신고 후 육지의 병원으로 옮겨지는 데만 5시간 30여 분이 걸렸던 겁니다.
지난해 3월에는 인천 강화군 볼음도에서 뇌출혈 증세를 보인 60대 남성이 배편으로 2시간여 만에 김포의 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상태가 악화해 결국 숨졌습니다.
의료접근성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우리나라에서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숨지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역 간 의료 격차가 문제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시군구별 활동의사인력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1명도 없는 시군구는 전체 229곳의 28.8%인 66곳에 달합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없는 시군구가 14곳, 산부인과 전문의가 없는 시군구는 11곳이었습니다.
■ 열악한 지역 의료… “병원 유지도 어려워”

충북 보은군은 평균연령이 56.9세,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41.3%에 달하는 초고령 지역입니다. 환자가 제때 치료 받지 못해 숨지는 '치료 가능 사망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충청북도 안에서도 대표적인 의료 취약지입니다.
보은한양병원은 인구 3만 명인 충북 보은군의 유일한 응급의료기관입니다.
70대 현용희 씨는 5년 전, 급성신부전으로 쓰러진 남편의 투석 치료를 위해 일주일에 세 번씩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하루 4시간, 일주일에 3~4회 치료를 받아야 하는 혈액 투석의 특성상 환자들은 먼 병원으로 이동하기 어렵습니다.
현 씨는 "인근 청주에 있는 병원은 차로 1시간 거리인데, 치료 시간까지 고려하면 하루 종일 걸린다"며 "노인이 많은 보은에 투석 치료를 받을 병원이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병원에서 5년째 투석 치료를 받는 정 모 씨 역시 "농촌 지역이 고령화 사회가 되다 보니, 어르신들은 농사철 같은 때 다치는 경우가 있어도 큰 병원을 못 나간다"면서 "이 병원이 군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보은한양병원은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이 없는 보은군의 유일한 '병원급' 의료 기관입니다.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의료 분야의 7개 진료과와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달 4천여 명의 환자가 병원을 찾습니다.
그러나 재작년 15억, 지난해 8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운영난에 시달리는 상황입니다. 직원을 줄이고, 임금을 삭감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해 봤지만 경영난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김형성 보은한양병원 본부장은 "응급실에 10명 가까운 인력이 항상 대기 중"이라면너 "환자 수와 의료진 수가 비슷해, 응급실을 유지하면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습니다.

■ 농촌 의료기반 붕괴 위기… “의료취약지 특별법 절실”
충북 보은군과 같은 응급의료 취약지는 전국적으로 98곳에 달합니다. 응급의료 취약지는 권역 응급의료센터로는 1시간, 지역 응급의료센터로는 30분 안에 이동하지 못하는 인구가 30% 이상인 지역입니다.
응급의료 취약지, 분만 취약지 등 의료 취약지의 유형은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108개 시·군·구가 1시간 이내에 분만실 접근이 불가능하면서 가임인구 비율이 30% 이상인 '분만 취약지'에 해당합니다.
또, 1시간 안에 소아청소년과 접근이 불가능한 인구 비율이 30% 이상인 '소아청소년과 취약지'는 전국적으로 22곳, 1시간 이내에 혈액투석 의료 이용률이 30% 미만이고 혈액투석 의료기관에 접근이 불가능한 인구 비율이 30% 이상인 '혈액투석 의료취약지'는 11곳에 이릅니다.
이런 의료 취약지 병원들은 필수 의료를 담당하며 환자들의 골든타임을 확보합니다. 하지만 의료 취약지 병원에는 의사도, 최신 의료 장비도, 이를 운용할 인력도 없습니다.
농어촌 기피 현상으로 의료진의 급여를 아무리 올려도 의사를 초빙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만성 적자로 최신 의료시설, 장비를 도입하기도 어렵습니다. 의료진이 부족해 의료의 질이 떨어지면서 환자들이 의료 취약지 병원을 기피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농어촌의 인구가 줄면서 병원을 찾는 환자도 감소하고, 응급실에서 환자를 치료하면 대도시 종합병원으로 보내야 해 적자가 심해지는 상황입니다.

상황이 이렇자 지역 의료의 '최후 보루'인 취약지 병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현행 공공보건의료법은 의료취약지에 거점의료기관을 지정해 시설, 장비, 인력을 지원하는 등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취약지병원 관계자들은 현행법안은 구체성,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합니다.
한 취약지병원 관계자는 "현행법은 공모사업을 통해 각 분야당 한두 곳만을 지원하고, 재정적 지원도 필수 의료를 유지하기에 턱없이 부족해 사업에 참여할수록 적자가 누적된다"며 "현행법은 선언적 의미만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의료 취약지를 종합적으로 관리·지원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옥민수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부교수는 "의료는 소방, 교육, 경찰처럼 인구가 있든 없든 갖춰야 할 필수적인 여건"이라며 "의료 취약지 지정과 운영에 대한 문제가 각 법률에서 파편적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에 특별법을 제정해 시설, 장비, 인력 등 구체적인 항목 하나하나의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농어촌에 산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사는 지역, 소득 수준 등에 구애받지 않고 안정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는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이런 안정적인 의료 서비스를 고루 제공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소외된 지역 환자들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한 때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벼랑 끝 내몰린 농어촌 병원…“의료취약지 특별법 제정해야”
-
- 입력 2025-03-18 08:03:39

지난달 21일, 인천시 옹진군 소청도의 한 주택에서 70대 남성이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남성은 소방헬기로 인천의 한 병원에 이송됐지만 3일 뒤 숨졌습니다.
흔히 뇌출혈 '골든타임'은 3시간으로 알려져 있는데, 남성이 신고 후 육지의 병원으로 옮겨지는 데만 5시간 30여 분이 걸렸던 겁니다.
지난해 3월에는 인천 강화군 볼음도에서 뇌출혈 증세를 보인 60대 남성이 배편으로 2시간여 만에 김포의 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상태가 악화해 결국 숨졌습니다.
의료접근성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우리나라에서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숨지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역 간 의료 격차가 문제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시군구별 활동의사인력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1명도 없는 시군구는 전체 229곳의 28.8%인 66곳에 달합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없는 시군구가 14곳, 산부인과 전문의가 없는 시군구는 11곳이었습니다.
■ 열악한 지역 의료… “병원 유지도 어려워”

충북 보은군은 평균연령이 56.9세,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41.3%에 달하는 초고령 지역입니다. 환자가 제때 치료 받지 못해 숨지는 '치료 가능 사망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충청북도 안에서도 대표적인 의료 취약지입니다.
보은한양병원은 인구 3만 명인 충북 보은군의 유일한 응급의료기관입니다.
70대 현용희 씨는 5년 전, 급성신부전으로 쓰러진 남편의 투석 치료를 위해 일주일에 세 번씩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하루 4시간, 일주일에 3~4회 치료를 받아야 하는 혈액 투석의 특성상 환자들은 먼 병원으로 이동하기 어렵습니다.
현 씨는 "인근 청주에 있는 병원은 차로 1시간 거리인데, 치료 시간까지 고려하면 하루 종일 걸린다"며 "노인이 많은 보은에 투석 치료를 받을 병원이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병원에서 5년째 투석 치료를 받는 정 모 씨 역시 "농촌 지역이 고령화 사회가 되다 보니, 어르신들은 농사철 같은 때 다치는 경우가 있어도 큰 병원을 못 나간다"면서 "이 병원이 군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보은한양병원은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이 없는 보은군의 유일한 '병원급' 의료 기관입니다.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의료 분야의 7개 진료과와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달 4천여 명의 환자가 병원을 찾습니다.
그러나 재작년 15억, 지난해 8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운영난에 시달리는 상황입니다. 직원을 줄이고, 임금을 삭감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해 봤지만 경영난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김형성 보은한양병원 본부장은 "응급실에 10명 가까운 인력이 항상 대기 중"이라면너 "환자 수와 의료진 수가 비슷해, 응급실을 유지하면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습니다.

■ 농촌 의료기반 붕괴 위기… “의료취약지 특별법 절실”
충북 보은군과 같은 응급의료 취약지는 전국적으로 98곳에 달합니다. 응급의료 취약지는 권역 응급의료센터로는 1시간, 지역 응급의료센터로는 30분 안에 이동하지 못하는 인구가 30% 이상인 지역입니다.
응급의료 취약지, 분만 취약지 등 의료 취약지의 유형은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108개 시·군·구가 1시간 이내에 분만실 접근이 불가능하면서 가임인구 비율이 30% 이상인 '분만 취약지'에 해당합니다.
또, 1시간 안에 소아청소년과 접근이 불가능한 인구 비율이 30% 이상인 '소아청소년과 취약지'는 전국적으로 22곳, 1시간 이내에 혈액투석 의료 이용률이 30% 미만이고 혈액투석 의료기관에 접근이 불가능한 인구 비율이 30% 이상인 '혈액투석 의료취약지'는 11곳에 이릅니다.
이런 의료 취약지 병원들은 필수 의료를 담당하며 환자들의 골든타임을 확보합니다. 하지만 의료 취약지 병원에는 의사도, 최신 의료 장비도, 이를 운용할 인력도 없습니다.
농어촌 기피 현상으로 의료진의 급여를 아무리 올려도 의사를 초빙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만성 적자로 최신 의료시설, 장비를 도입하기도 어렵습니다. 의료진이 부족해 의료의 질이 떨어지면서 환자들이 의료 취약지 병원을 기피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농어촌의 인구가 줄면서 병원을 찾는 환자도 감소하고, 응급실에서 환자를 치료하면 대도시 종합병원으로 보내야 해 적자가 심해지는 상황입니다.

상황이 이렇자 지역 의료의 '최후 보루'인 취약지 병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현행 공공보건의료법은 의료취약지에 거점의료기관을 지정해 시설, 장비, 인력을 지원하는 등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취약지병원 관계자들은 현행법안은 구체성,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합니다.
한 취약지병원 관계자는 "현행법은 공모사업을 통해 각 분야당 한두 곳만을 지원하고, 재정적 지원도 필수 의료를 유지하기에 턱없이 부족해 사업에 참여할수록 적자가 누적된다"며 "현행법은 선언적 의미만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의료 취약지를 종합적으로 관리·지원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옥민수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부교수는 "의료는 소방, 교육, 경찰처럼 인구가 있든 없든 갖춰야 할 필수적인 여건"이라며 "의료 취약지 지정과 운영에 대한 문제가 각 법률에서 파편적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에 특별법을 제정해 시설, 장비, 인력 등 구체적인 항목 하나하나의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농어촌에 산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사는 지역, 소득 수준 등에 구애받지 않고 안정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는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이런 안정적인 의료 서비스를 고루 제공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소외된 지역 환자들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한 때입니다.
-
-
이자현 기자 interest@kbs.co.kr
이자현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