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시각 어제(9일) 0시를 갓 넘긴 무렵, 미국과 영국이 무역 합의 발표합니다.
지난달 미국이 전 세계에 상호 관세 폭탄을 떨어뜨린 이후, 첫 번째 합의였습니다.
협상만 잘하면, 관세 0%도 가능하다는 선례를 보여줬습니다. 협상 앞 순번인 한국 입장에서도 나름 반가울 법한 대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에는 반가움이 묻어나지 않았습니다. 달러가 다시 비싸지며, 1달러에 1,400원 대로 다시 올라섰습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영국의 무역 합의가 태평양 건너의 미국과 한국 환율에 어떤 영향을 주는 걸까요.
■ 이제 좀 나아지려나?
지난주 원·달러 환율이 1,300원 대로 떨어진 원화 강세 요인은 복합적이지만, 가장 뚜렷한 건 타이완이었습니다.
최근 대만 달러가 갑자기 강해졌습니다. 4월 초만 해도 대만달러 환율은 미국 달러당 약 32~33달러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5일엔 29.95대만달러까지 떨어졌습니다.
시장에선 타이완 정부가 대만 달러 절상(값비싸짐)을 용인했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타이완 외환 시장에서 달러가 더 약해질 거란 예측으로 이어졌고, 투자자들은 달러를 내다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불똥은 타이완 보험사들로 튀었습니다. 보험사들이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해 대만 달러를 대량으로 사들였습니다.
문제는 타이완 외환시장이 작다는 점입니다. 대만 달러를 더 사고 싶어도 살 물량이 부족해졌습니다. 그러자 경제 구조가 유사해 대체 통화로 쓰이는 한국 원화도 사들였습니다. 한국 원화가 갑자기 강해진 이유입니다.
그랬던 원화가 왜 다시 약해지며 1달러가 1,400원대에 다시 진입했을까요.
민경원 우리은행 선임연구원은 이달 초 '징검다리 연휴'가 끝나고, 수입 업체들이 달러를 적극적으로 사들인 탓이라고 설명합니다.
수입하려면 늘 달러가 필요하겠죠? 연휴 기간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로 떨어진 만큼, 요즘 치고는 달러를 싸게 사 둘 기회였던 겁니다.
민 선임연구원은 "(연휴 직후) 개장과 동시에 매수세가 엄청나게 몰렸다"고 말했는데, "수입업체들이 '이 가격 다시는 안 온다' 싶어서 무조건 산 것"이란 설명입니다. 이런 수요들이 다시 원·달러 환율을 1,400원대로 끌어올린 핵심 요인이 됐습니다.
미국과 영국의 무역 합의도 한몫한 거로 보입니다.
주요 6개국 통화(유로, 엔, 파운드, 캐나다 달러, 크로네, 프랑) 대비 달러화의 가치를 표시한 '달러 인덱스', 달러지수를 보면요. 미·영 무역 합의 소식이 들려온 지난 9일 자정 무렵을 전후해 달러 지수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문정희 국민은행 수석 차장은 "지난 3~4월 달러가 약세를 보인 건 달러 자산에 대한 회피 심리가 있었던 것"이라며 "지금은 무역 협상을 하다 보니까 미국 경제가 최악은 아니라고 시장에서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달러의 약세에는 미국에 대한 신뢰도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관세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수입품에 대한 관세는 결국 미국 내 소비자 가격을 올려 경기에 악영향을 끼칠 거란 경고가 지속적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영국을 필두로 무역 합의가 잇따르면,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전엔 달러 자산이 미덥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런 심리가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민 선임연구원은 "관세를 올린다는 것 자체가 미국의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고, 스태그플레이션을 불러올 거란 우려가 있었다"며 "경제 전망이 안 좋은데 미국 주식 등 자산을 들고 있으면 안 되지 않나. 그런데 관세 협상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된단 기대감이 생겨 달러화 자산 수요가 회복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신뢰도 회복 → 달러 자산 매입 → 달러 강세로 이어졌다는 얘기입니다.

■ 오늘, 더 중요한 게 온다
더 중요한 건 오늘(10일) 입니다.
한국 입장에서 미국과 중국과의 무역 협상이 훨씬 중요합니다.
원화를 갑자기 강하게 만든 대만 달러의 강세도 미국과 중국이 협상에 나선다는 기대감과 무관치 않았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협상하니까, 시장은 무역전쟁 완화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고, 이게 대만 달러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 전반의 강세로 확산했다는 거죠.
미국과 중국의 현재 관계는 사실상 최악입니다. 미국은 중국에 관세를 무려 145% 매기겠다고 했고, 중국도 첨단산업에 꼭 필요한 희토류 수출 통제로 맞섰습니다.
더 이상 나빠질 게 없어 보이는 이 상황에서, 협상한다는 것 자체를 시장에선 호재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첫 합의에서 큰 진전을 이루긴 쉽지 않을 거로 보입니다. 그런데도, 조금이라도 건설적인 언급이 나온다면 그것 자체로 긴장을 완화하는 효과를 보일 수 있습니다.
■ "1달러에 1,350원 적정"
미국과 중국이 이야기가 잘 통한다면, 제삼자인 한국의 원·달러 환율에도 영향을 미칠 거란 분석이 나옵니다. 아시아 통화 전반의 평가 절하(값싸짐), 즉 디스카운트가 완화될 가능성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달러 약세에 따른 이득을 유로화나 엔화는 충분히 누렸습니다. 유로화나 엔화는 꽤 강해졌습니다.
반면, 원화나 대만 달러 같은 아시아 통화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달러는 확 약해졌는데, 원화 등은 찔끔 강해졌을 뿐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위안화, 중국 때문입니다.
문정희 차장은 "2020년 이후 4~5년 동안 달러지수와 원·달러 환율의 상관관계를 볼 때, 달러지수가 1포인트 떨어지면 달러 환율은 평균적으로 16원 정도 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계산해 볼 수 있습니다.
달러 지수는 올해 초 108포인트에서 최근 100포인트 약 8포인트 떨어졌죠. 8 × 16원은 128원이니까, 넉넉잡아 130원 정도는 환율이 빠졌어야 한단 계산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문 차장은 "미·중 무역 협상에 대해 시장에서 신뢰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른바) '차이나 리스크'가 있어서 아시아 시장이 디스카운트 됐다고 볼 수 있고, 미·중 협상이 진전되면 원·달러 환율은 1,350원까지 가는 게 적정하지 않겠나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이 각국, 특히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과 협상을 진행할수록 선진국 통화로 쏠림이 분산되고 원화도 강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물론 환율 예측은 매우 어렵습니다. 챗GPT도 하느님도 맞추기 어렵습니다.
다만, 외환 시장이 미국의 각국에 대한 협상을 주시하고, 결과에 반응하고 있다는 건 비교적 분명해 보입니다.
오늘과 내일(11일), 저녁 뉴스에 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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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영 무역 합의가 원·달러 환율 움직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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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5-10 08:00:16

한국 시각 어제(9일) 0시를 갓 넘긴 무렵, 미국과 영국이 무역 합의 발표합니다.
지난달 미국이 전 세계에 상호 관세 폭탄을 떨어뜨린 이후, 첫 번째 합의였습니다.
협상만 잘하면, 관세 0%도 가능하다는 선례를 보여줬습니다. 협상 앞 순번인 한국 입장에서도 나름 반가울 법한 대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에는 반가움이 묻어나지 않았습니다. 달러가 다시 비싸지며, 1달러에 1,400원 대로 다시 올라섰습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영국의 무역 합의가 태평양 건너의 미국과 한국 환율에 어떤 영향을 주는 걸까요.
■ 이제 좀 나아지려나?
지난주 원·달러 환율이 1,300원 대로 떨어진 원화 강세 요인은 복합적이지만, 가장 뚜렷한 건 타이완이었습니다.
최근 대만 달러가 갑자기 강해졌습니다. 4월 초만 해도 대만달러 환율은 미국 달러당 약 32~33달러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5일엔 29.95대만달러까지 떨어졌습니다.
시장에선 타이완 정부가 대만 달러 절상(값비싸짐)을 용인했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타이완 외환 시장에서 달러가 더 약해질 거란 예측으로 이어졌고, 투자자들은 달러를 내다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불똥은 타이완 보험사들로 튀었습니다. 보험사들이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해 대만 달러를 대량으로 사들였습니다.
문제는 타이완 외환시장이 작다는 점입니다. 대만 달러를 더 사고 싶어도 살 물량이 부족해졌습니다. 그러자 경제 구조가 유사해 대체 통화로 쓰이는 한국 원화도 사들였습니다. 한국 원화가 갑자기 강해진 이유입니다.
그랬던 원화가 왜 다시 약해지며 1달러가 1,400원대에 다시 진입했을까요.
민경원 우리은행 선임연구원은 이달 초 '징검다리 연휴'가 끝나고, 수입 업체들이 달러를 적극적으로 사들인 탓이라고 설명합니다.
수입하려면 늘 달러가 필요하겠죠? 연휴 기간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로 떨어진 만큼, 요즘 치고는 달러를 싸게 사 둘 기회였던 겁니다.
민 선임연구원은 "(연휴 직후) 개장과 동시에 매수세가 엄청나게 몰렸다"고 말했는데, "수입업체들이 '이 가격 다시는 안 온다' 싶어서 무조건 산 것"이란 설명입니다. 이런 수요들이 다시 원·달러 환율을 1,400원대로 끌어올린 핵심 요인이 됐습니다.
미국과 영국의 무역 합의도 한몫한 거로 보입니다.
주요 6개국 통화(유로, 엔, 파운드, 캐나다 달러, 크로네, 프랑) 대비 달러화의 가치를 표시한 '달러 인덱스', 달러지수를 보면요. 미·영 무역 합의 소식이 들려온 지난 9일 자정 무렵을 전후해 달러 지수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문정희 국민은행 수석 차장은 "지난 3~4월 달러가 약세를 보인 건 달러 자산에 대한 회피 심리가 있었던 것"이라며 "지금은 무역 협상을 하다 보니까 미국 경제가 최악은 아니라고 시장에서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달러의 약세에는 미국에 대한 신뢰도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관세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수입품에 대한 관세는 결국 미국 내 소비자 가격을 올려 경기에 악영향을 끼칠 거란 경고가 지속적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영국을 필두로 무역 합의가 잇따르면,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전엔 달러 자산이 미덥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런 심리가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민 선임연구원은 "관세를 올린다는 것 자체가 미국의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고, 스태그플레이션을 불러올 거란 우려가 있었다"며 "경제 전망이 안 좋은데 미국 주식 등 자산을 들고 있으면 안 되지 않나. 그런데 관세 협상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된단 기대감이 생겨 달러화 자산 수요가 회복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신뢰도 회복 → 달러 자산 매입 → 달러 강세로 이어졌다는 얘기입니다.

■ 오늘, 더 중요한 게 온다
더 중요한 건 오늘(10일) 입니다.
한국 입장에서 미국과 중국과의 무역 협상이 훨씬 중요합니다.
원화를 갑자기 강하게 만든 대만 달러의 강세도 미국과 중국이 협상에 나선다는 기대감과 무관치 않았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협상하니까, 시장은 무역전쟁 완화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고, 이게 대만 달러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 전반의 강세로 확산했다는 거죠.
미국과 중국의 현재 관계는 사실상 최악입니다. 미국은 중국에 관세를 무려 145% 매기겠다고 했고, 중국도 첨단산업에 꼭 필요한 희토류 수출 통제로 맞섰습니다.
더 이상 나빠질 게 없어 보이는 이 상황에서, 협상한다는 것 자체를 시장에선 호재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첫 합의에서 큰 진전을 이루긴 쉽지 않을 거로 보입니다. 그런데도, 조금이라도 건설적인 언급이 나온다면 그것 자체로 긴장을 완화하는 효과를 보일 수 있습니다.
■ "1달러에 1,350원 적정"
미국과 중국이 이야기가 잘 통한다면, 제삼자인 한국의 원·달러 환율에도 영향을 미칠 거란 분석이 나옵니다. 아시아 통화 전반의 평가 절하(값싸짐), 즉 디스카운트가 완화될 가능성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달러 약세에 따른 이득을 유로화나 엔화는 충분히 누렸습니다. 유로화나 엔화는 꽤 강해졌습니다.
반면, 원화나 대만 달러 같은 아시아 통화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달러는 확 약해졌는데, 원화 등은 찔끔 강해졌을 뿐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위안화, 중국 때문입니다.
문정희 차장은 "2020년 이후 4~5년 동안 달러지수와 원·달러 환율의 상관관계를 볼 때, 달러지수가 1포인트 떨어지면 달러 환율은 평균적으로 16원 정도 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계산해 볼 수 있습니다.
달러 지수는 올해 초 108포인트에서 최근 100포인트 약 8포인트 떨어졌죠. 8 × 16원은 128원이니까, 넉넉잡아 130원 정도는 환율이 빠졌어야 한단 계산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문 차장은 "미·중 무역 협상에 대해 시장에서 신뢰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른바) '차이나 리스크'가 있어서 아시아 시장이 디스카운트 됐다고 볼 수 있고, 미·중 협상이 진전되면 원·달러 환율은 1,350원까지 가는 게 적정하지 않겠나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이 각국, 특히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과 협상을 진행할수록 선진국 통화로 쏠림이 분산되고 원화도 강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물론 환율 예측은 매우 어렵습니다. 챗GPT도 하느님도 맞추기 어렵습니다.
다만, 외환 시장이 미국의 각국에 대한 협상을 주시하고, 결과에 반응하고 있다는 건 비교적 분명해 보입니다.
오늘과 내일(11일), 저녁 뉴스에 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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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숙 기자 vox@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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