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와 개미, 그리고 재벌

입력 2025.06.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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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죽어도 죽지 않는 존재죠. 움직이긴 하지만 생명은 없습니다.

좀비 기업도 비슷합니다. 파산이나 폐업한 건 아닙니다. 그러나 영업 실적이 나빠 자립이 어렵습니다. 외부에서 돈을 끌어와야 겨우 명맥을 유지합니다.

공식 용어는 아닌 만큼 딱 잘라 여기서부터 좀비 기업이라고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보통은 앞으로 벌어들일 미래의 현금흐름이 현재 가치로 마이너스거나 (계속기업영업가치가 0 이하) 또는 버는 돈으로 이자도 못 갚을 지경(이자보상배율이 1 이하)인 한계 기업을 의미합니다.

■ 좀비 주식, 풍년일세

상장사 중에도 좀비 기업이 상당합니다. 이들 좀비 주식이 한국 주식시장을 좀먹고 있습니다.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닌데, 해결도 난망해 보입니다.

좀비는 인간을 공격합니다. 물린 인간은 좀비가 됩니다. 좀비를 물리치지 못해 세상천지가 좀비가 되는 게 좀비 영화의 흔한 줄거리죠.

좀비 주식도 비슷합니다. 개미 투자자들을 공격합니다. 그럴듯한 정보로 속이고, 등치고…개미 투자자를 잡아먹는 '개미귀신'이 되기 십상입니다.

좀비 주식이 개미 투자자를 잡아먹는 데 조력자가 있습니다. 이른바 주식 시장의 '큰 손'들입니다. 그 '큰 손'들 중에는 유력한 재벌가 인사도 있습니다.

좀비 주식과 개미 투자자, 그리고 재벌 2세 사이에 벌어진 잔혹극을 추적했습니다.

[관련 기사] 죽어도 죽지 않는다…좀비 주식의 생존법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85628

■ 양자 기술로 혈당 측정을…?

2023년 당시 '퀀타피아'는 코스닥 상장사였습니다. 원래 '코드네이처'라는 회사였는데, 2023년 9월 이름을 바꿨습니다.

전체 매출의 60%가 베어링 제조와 태양광 에너지 발전소 유지 보수 쪽에서 나오던 회사였습니다.

그런데 최대 주주가 바뀐 뒤, 사업 영역을 급선회합니다.

양자 이미지 센서 기술을 통해, 피 없이도 혈당을 측정할 수 있다고 홍보하기 시작합니다.

아래 이미지처럼 손가락을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혈당 수치에 맞춰 계산할 수 있는 양자 이미지 센서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6월 23일 KBS뉴스9 화면 중. 퀀타피아 홍보 동영상 중.6월 23일 KBS뉴스9 화면 중. 퀀타피아 홍보 동영상 중.

'큰 손'이 여기에 거액을 투자한다는 소식이 뒤따랐습니다.

모 투자조합이 천억 원을 투자하기로 약속했다는 공시가 나왔습니다.

2022년, 2021년 퀀타피아의 재무 상태를 보면, 매우 파격적인 투자였습니다.

당시 퀀타피아는 계속 사업을 영위하는 것 보다 문을 닫는 게 더 나을 부실한 회사였습니다. 2021년과 2022년의 계속영업이익이 각각 -57억 원, -168억 원. 같은 기간 매출은 각각 133억 원, 43억 원. 영업이익은 각각 -43억 원, -120억 원이었습니다.

회생 가능성이 잘 안 보이는 전형적 '좀비 주식'이었는데, 한 투자조합이 연 매출의 스무 배가 넘는 거액을 한 방에 집어넣겠다고 나온 겁니다.

원래 기계 제조업체였던 퀀타피아는 순식간에 '양자 관련주'가 됩니다. 주가는 급등했습니다. 한 달 만에 6배가 뜁니다.

6월 23일 KBS뉴스9 화면 중. 퀀타피아의 주가.6월 23일 KBS뉴스9 화면 중. 퀀타피아의 주가.

■ '쩐주'는 재벌가 2세

화제의 투자금 천억 원은 외형은 투자조합에서 나오는 형태였지만, 실은 두 명의 투자자가 각각 500억 원씩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KBS 취재 결과, 그중 한 명이 최 모 씨였습니다. 누구나 들으면 아는 굴지의 재벌 일가 2세로, 지금도 해당 그룹의 복지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최 씨가 이른바 '쩐주'라는 사실은 퀀타피아 공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일종의 '기술'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6월 23일 KBS뉴스9 화면. KBS가 확보한 재벌 2세 최 씨 측의 투자확약서.6월 23일 KBS뉴스9 화면. KBS가 확보한 재벌 2세 최 씨 측의 투자확약서.

최 씨는 해당 투자조합 대표에게 투자 확약서를 써주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투자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재벌 2세여도 500억 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최 씨는 2,600개가 넘는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가운데 하필 이곳을 왜 골랐을까요.

취재진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서 최 씨가 투자한 기업을 더 찾아봤습니다.

퀀타피아와 비슷비슷한, 속칭 고만고만한 코스닥 상장사 7곳에 더 투자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최 씨는 2023년부터 최근까지 모두 8개의 코스닥 상장사에 투자했습니다. 전환사채(CB) 인수로 투자하기도 했고, 주요 주주로 지분 투자를 한 곳도 있습니다. 취재진이 확인한 것만 이렇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8개 상장사의 공통점입니다. 이른바 '좀비 주식'의 징후입니다.

6월 23일 KBS뉴스9 화면6월 23일 KBS뉴스9 화면

전체 8곳 중 퀀타피아를 포함한 2곳은 검찰 수사를 받았습니다. 혐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피고인은 이 모 씨입니다.

이 씨는 퀀타피아 등 코스닥 상장사 두 곳에 대한 시세조종을 했단 혐의를 받고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 씨는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 씨가 전환사채를 인수한 또다른 상장사는 현재 관리종목으로 지정됐습니다. 이곳도 원래는 반도체 검사장비 제조기업이었는데, 최대 주주가 바뀌며 갑자기 리튬 생산 업체로 변신합니다.

관리종목은 자본 잠식이나 영업손실 지속처럼 재무 상태에 빨간 불이 들어온 기업으로, 한국 거래소가 지정합니다. 투자자들이 각별히 더 조심하란 의미입니다.

최 씨가 지분을 투자한 한 또 다른 상장사 1곳도 거래정지 상태입니다. 최대 주주의 횡령·배임 사건이 터졌습니다.

모두 8곳 가운데 이상 징후가 수면 위로 드러난 곳만 4곳입니다. 이쯤 되면 '좀비 주식'을 유난히 사랑하는 전문 투자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 "나도 속았다"

최 씨 측은 KBS에 자신도 속았다고 해명했습니다.

퀀타피아 투자에 대해서는 1) 시세 조종 계획을 전혀 들은 바 없으며, 2) 회사의 열악한 재무 상태에 대해서도 본인에게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지 않았다고 밝혀왔습니다.

그런데 KBS 취재 결과는 달랐습니다.

최 씨는 검찰 수사 대상 기업 한 곳,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기업 한 곳에 투자해 40억 원 넘는 이익을 봤습니다. 이 이익의 원천은 전환사채에 대한 투자 정보였습니다.

전환사채 투자 정보가 모두에게 공개돼 있느냐? 전혀 아닙니다. 공모가 아니라 '사모'이기 때문입니다. 최대주주의 측근이 아니면 알기 어렵습니다.

검찰 수사 자료를 보면, 최 씨에게 해당 정보를 넘겨준 이는 시세조종 혐의로 기소된 이 모 씨 측 인사였습니다.

정리하면, 주가조작 피의자에게서 정보를 넘겨받은 뒤 시세 차익을 거뒀는데, 최 씨는 KBS에 "속았다"는 입장을 전해 온 겁니다. 석연치 않습니다.

문제의 '좀비 주식'들에 투자자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문제는 더 있습니다.

이른바 '큰 손'인 최 씨 등이 천억 원을 투자한다고 나서면서, 그럴 법한 계획이 있는 유망 기업으로 포장될 수 있었습니다.

신사업 추진→ 투자자 유치를 통한 자금 확보→ 주가 상승→ 개미 투자자 추격 매수

이른바 '작전주', '세력주'로 불리는 주가조작의 전형적 시나리오 중 하나가 완성되는 데, 최 씨는 어느 정도 관여했고, 동시에 본인도 상당한 돈을 벌었습니다.

최 씨 해명처럼 정말 "자신도 속았다"고 하더라도, 이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KBS는 아래와 같은 질문을 최 씨 측에 던졌습니다.

"최 이사장님의 투자로 주식시장에서 퇴출당해야 하는 부실기업이 마치 성공적으로 투자자를 유치해 유망한 듯 보이게 됐습니다. 개인 투자자의 매수세를 이끄는 역할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일부 종목의 경우 검찰 수사 대상이 되거나 거래정지 돼 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이사장님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최 씨 측은 아래와 같이 답해왔습니다.

"유망한 기술 기업인 줄 알고 투자하려다 문제가 있어 철회했고, 일부 투자한 것은 대부분 정리했거나 정리 중에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주가 조작범들에게 이용당한 것 같아 매우 당황스럽습니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의 이 상황, 누가 더 당황스러울까요? 속아서 40억여 원을 번 '큰 손'일까요? 속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투자금을 다 날린 개미 투자자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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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좀비와 개미, 그리고 재벌
    • 입력 2025-06-28 06: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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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죽어도 죽지 않는 존재죠. 움직이긴 하지만 생명은 없습니다.

좀비 기업도 비슷합니다. 파산이나 폐업한 건 아닙니다. 그러나 영업 실적이 나빠 자립이 어렵습니다. 외부에서 돈을 끌어와야 겨우 명맥을 유지합니다.

공식 용어는 아닌 만큼 딱 잘라 여기서부터 좀비 기업이라고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보통은 앞으로 벌어들일 미래의 현금흐름이 현재 가치로 마이너스거나 (계속기업영업가치가 0 이하) 또는 버는 돈으로 이자도 못 갚을 지경(이자보상배율이 1 이하)인 한계 기업을 의미합니다.

■ 좀비 주식, 풍년일세

상장사 중에도 좀비 기업이 상당합니다. 이들 좀비 주식이 한국 주식시장을 좀먹고 있습니다.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닌데, 해결도 난망해 보입니다.

좀비는 인간을 공격합니다. 물린 인간은 좀비가 됩니다. 좀비를 물리치지 못해 세상천지가 좀비가 되는 게 좀비 영화의 흔한 줄거리죠.

좀비 주식도 비슷합니다. 개미 투자자들을 공격합니다. 그럴듯한 정보로 속이고, 등치고…개미 투자자를 잡아먹는 '개미귀신'이 되기 십상입니다.

좀비 주식이 개미 투자자를 잡아먹는 데 조력자가 있습니다. 이른바 주식 시장의 '큰 손'들입니다. 그 '큰 손'들 중에는 유력한 재벌가 인사도 있습니다.

좀비 주식과 개미 투자자, 그리고 재벌 2세 사이에 벌어진 잔혹극을 추적했습니다.

[관련 기사] 죽어도 죽지 않는다…좀비 주식의 생존법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85628

■ 양자 기술로 혈당 측정을…?

2023년 당시 '퀀타피아'는 코스닥 상장사였습니다. 원래 '코드네이처'라는 회사였는데, 2023년 9월 이름을 바꿨습니다.

전체 매출의 60%가 베어링 제조와 태양광 에너지 발전소 유지 보수 쪽에서 나오던 회사였습니다.

그런데 최대 주주가 바뀐 뒤, 사업 영역을 급선회합니다.

양자 이미지 센서 기술을 통해, 피 없이도 혈당을 측정할 수 있다고 홍보하기 시작합니다.

아래 이미지처럼 손가락을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혈당 수치에 맞춰 계산할 수 있는 양자 이미지 센서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6월 23일 KBS뉴스9 화면 중. 퀀타피아 홍보 동영상 중.
'큰 손'이 여기에 거액을 투자한다는 소식이 뒤따랐습니다.

모 투자조합이 천억 원을 투자하기로 약속했다는 공시가 나왔습니다.

2022년, 2021년 퀀타피아의 재무 상태를 보면, 매우 파격적인 투자였습니다.

당시 퀀타피아는 계속 사업을 영위하는 것 보다 문을 닫는 게 더 나을 부실한 회사였습니다. 2021년과 2022년의 계속영업이익이 각각 -57억 원, -168억 원. 같은 기간 매출은 각각 133억 원, 43억 원. 영업이익은 각각 -43억 원, -120억 원이었습니다.

회생 가능성이 잘 안 보이는 전형적 '좀비 주식'이었는데, 한 투자조합이 연 매출의 스무 배가 넘는 거액을 한 방에 집어넣겠다고 나온 겁니다.

원래 기계 제조업체였던 퀀타피아는 순식간에 '양자 관련주'가 됩니다. 주가는 급등했습니다. 한 달 만에 6배가 뜁니다.

6월 23일 KBS뉴스9 화면 중. 퀀타피아의 주가.
■ '쩐주'는 재벌가 2세

화제의 투자금 천억 원은 외형은 투자조합에서 나오는 형태였지만, 실은 두 명의 투자자가 각각 500억 원씩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KBS 취재 결과, 그중 한 명이 최 모 씨였습니다. 누구나 들으면 아는 굴지의 재벌 일가 2세로, 지금도 해당 그룹의 복지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최 씨가 이른바 '쩐주'라는 사실은 퀀타피아 공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일종의 '기술'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6월 23일 KBS뉴스9 화면. KBS가 확보한 재벌 2세 최 씨 측의 투자확약서.
최 씨는 해당 투자조합 대표에게 투자 확약서를 써주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투자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재벌 2세여도 500억 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최 씨는 2,600개가 넘는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가운데 하필 이곳을 왜 골랐을까요.

취재진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서 최 씨가 투자한 기업을 더 찾아봤습니다.

퀀타피아와 비슷비슷한, 속칭 고만고만한 코스닥 상장사 7곳에 더 투자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최 씨는 2023년부터 최근까지 모두 8개의 코스닥 상장사에 투자했습니다. 전환사채(CB) 인수로 투자하기도 했고, 주요 주주로 지분 투자를 한 곳도 있습니다. 취재진이 확인한 것만 이렇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8개 상장사의 공통점입니다. 이른바 '좀비 주식'의 징후입니다.

6월 23일 KBS뉴스9 화면
전체 8곳 중 퀀타피아를 포함한 2곳은 검찰 수사를 받았습니다. 혐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피고인은 이 모 씨입니다.

이 씨는 퀀타피아 등 코스닥 상장사 두 곳에 대한 시세조종을 했단 혐의를 받고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 씨는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 씨가 전환사채를 인수한 또다른 상장사는 현재 관리종목으로 지정됐습니다. 이곳도 원래는 반도체 검사장비 제조기업이었는데, 최대 주주가 바뀌며 갑자기 리튬 생산 업체로 변신합니다.

관리종목은 자본 잠식이나 영업손실 지속처럼 재무 상태에 빨간 불이 들어온 기업으로, 한국 거래소가 지정합니다. 투자자들이 각별히 더 조심하란 의미입니다.

최 씨가 지분을 투자한 한 또 다른 상장사 1곳도 거래정지 상태입니다. 최대 주주의 횡령·배임 사건이 터졌습니다.

모두 8곳 가운데 이상 징후가 수면 위로 드러난 곳만 4곳입니다. 이쯤 되면 '좀비 주식'을 유난히 사랑하는 전문 투자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 "나도 속았다"

최 씨 측은 KBS에 자신도 속았다고 해명했습니다.

퀀타피아 투자에 대해서는 1) 시세 조종 계획을 전혀 들은 바 없으며, 2) 회사의 열악한 재무 상태에 대해서도 본인에게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지 않았다고 밝혀왔습니다.

그런데 KBS 취재 결과는 달랐습니다.

최 씨는 검찰 수사 대상 기업 한 곳,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기업 한 곳에 투자해 40억 원 넘는 이익을 봤습니다. 이 이익의 원천은 전환사채에 대한 투자 정보였습니다.

전환사채 투자 정보가 모두에게 공개돼 있느냐? 전혀 아닙니다. 공모가 아니라 '사모'이기 때문입니다. 최대주주의 측근이 아니면 알기 어렵습니다.

검찰 수사 자료를 보면, 최 씨에게 해당 정보를 넘겨준 이는 시세조종 혐의로 기소된 이 모 씨 측 인사였습니다.

정리하면, 주가조작 피의자에게서 정보를 넘겨받은 뒤 시세 차익을 거뒀는데, 최 씨는 KBS에 "속았다"는 입장을 전해 온 겁니다. 석연치 않습니다.

문제의 '좀비 주식'들에 투자자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문제는 더 있습니다.

이른바 '큰 손'인 최 씨 등이 천억 원을 투자한다고 나서면서, 그럴 법한 계획이 있는 유망 기업으로 포장될 수 있었습니다.

신사업 추진→ 투자자 유치를 통한 자금 확보→ 주가 상승→ 개미 투자자 추격 매수

이른바 '작전주', '세력주'로 불리는 주가조작의 전형적 시나리오 중 하나가 완성되는 데, 최 씨는 어느 정도 관여했고, 동시에 본인도 상당한 돈을 벌었습니다.

최 씨 해명처럼 정말 "자신도 속았다"고 하더라도, 이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KBS는 아래와 같은 질문을 최 씨 측에 던졌습니다.

"최 이사장님의 투자로 주식시장에서 퇴출당해야 하는 부실기업이 마치 성공적으로 투자자를 유치해 유망한 듯 보이게 됐습니다. 개인 투자자의 매수세를 이끄는 역할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일부 종목의 경우 검찰 수사 대상이 되거나 거래정지 돼 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이사장님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최 씨 측은 아래와 같이 답해왔습니다.

"유망한 기술 기업인 줄 알고 투자하려다 문제가 있어 철회했고, 일부 투자한 것은 대부분 정리했거나 정리 중에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주가 조작범들에게 이용당한 것 같아 매우 당황스럽습니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의 이 상황, 누가 더 당황스러울까요? 속아서 40억여 원을 번 '큰 손'일까요? 속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투자금을 다 날린 개미 투자자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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