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수 피하려 양육비 ‘꼼수’ 입금?…선지급제 과제는

입력 2025.07.0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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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자녀와 따로 살면서 꼬박꼬박 양육비를 보내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요.

아이를 홀로 키우는 한부모 열에 일곱은 단 한 번도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양육은 물론 경제적 부담까지 혼자 감당해야 하는 한부모 가정을 위해 '양육비 선지급제'가 지난 1일 시행됐지만, 벌써부터 제도의 허점을 노린 꼼수 사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 선지급제 첫 날 '찔끔' 입금… "만 원만 받아도 신청 못해"

30대 안 모 씨는 6년 전 이혼한 뒤 초등학생 1·2학년 자녀를 홀로 키우고 있습니다.

연락이 끊긴 전 남편으로부터 밀린 양육비는 6,700만 원에 달합니다.

이처럼 양육비를 못 받고 있는 한부모 가정 자녀에게 국가가 먼저 매달 20만 원씩 양육비를 지급하고, 추후 채무자에게 돈을 징수하는 것이 이번에 도입된 '양육비 선지급제'입니다.

그런데 지난 1일 아침, 전 남편으로부터 돌연 11만 원이 입금됐습니다.

자녀 한 명당 5만 5천 원꼴인 이 돈 때문에 안 씨는 선지급 신청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선지급 대상이 되려면 3개월 혹은 3회 연속 양육비를 받지 못한 상태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돈을 안 주다 선지급제 시행 첫날 새벽에 갑자기 입금이 된 거예요. 누가 봐도 악의적이고 꼼수잖아요. 너무 화가 났죠. 양육비이행관리원에 문의하니 돈을 받아서 선지급 신청을 못 한대요. '단 돈 만 원이 들어와도 안 되는 거냐'고 물으니 그렇대요."

안 씨는 "3개월에 한 번씩 1만 원만 들어와도 원칙적으로 저는 또 신청을 못하는 것"이라며 "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 안위를 위해서 입금을 한 게 뻔한 데도 별 방법이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서도 "1년간 양육비를 주지 않다가 지난달 지급일도 아닌 날에 갑자기 7만 원을 입금했다", "여태 안 주다 6월 중순에 소액 입금을 했다"는 성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양육 부모가 양육비를 계속 안 주다가 꼼수 지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양육자가 선지급제 대상으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돈을 받게 되면 비양육자는 정부로부터 회수 대상이 됩니다. 정부는 나중에 이 비양육자에게 양육비를 독촉하고 그래도 안 내면 강제 징수까지 할 수 있습니다.

곧, 강제 징수 대상이 되는 걸 피하기 위해 '찔끔', '꼼수' 입금을 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제도 시행 이후 비정기적이고 악의적인 소액 양육비 지급 사례를 분석해 보완 지침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 신청 건수 첫 날만 500건… '강제 회수'가 관건

양육비 선지급제 시행 첫날에만 약 500건의 신청이 몰렸습니다. 양육비 공백이 막막했던 한부모들에겐 한 줄기 빛과 같은 제도지만, 남은 과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올해 선지급제에 편성된 예산은 162억 원 규모로, 최대 1만 3,500명의 미성년 자녀가 수혜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국가가 대신 지급한 돈은 결국 양육비 미이행 채무자로부터 받아내야 하는데, 강제 징수가 원활히 이뤄질 지가 관건입니다.

여가부는 '6개월 단위 회수' 방침에 따라 내년 1월부터 회수 절차에 본격 들어갑니다. '통지-독촉-채무자 동의 없는 재산 조회-강제 징수' 수순을 밟게 됩니다.

하지만 양육비 채무자들이 수입이나 재산을 고의로 숨기는 경우가 많아 난항이 예상됩니다.

안 씨의 전 남편도 통장 압류, 신상공개, 운전면허 정지를 당하고, 민·형사 소송으로 감치 명령과 징역형 집행유예 판결까지 받았지만 양육비를 제대로 주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서류상 퇴사 처리만 해 놓고 일은 계속해요. 운전면허 정지를 당해도 계속 차도 끌고 다녀요. 감치 명령을 받았지만 거주지를 옮겨서 경찰이 집행을 못 한다고 하다가 흐지부지 됐어요. 형사고소까지 가서 1심에서 실형이 나오니까 양육비를 찔끔 주고 그걸로 2심에서는 감형됐어요. 소송 걸려있을 때 잠깐 돈을 주고 끝나면 또 바로 끊어버리고…."

강민서 양육비해결모임 대표는 "차명 계좌로 재산을 숨겨 추심을 방해하는 일은 지금도 비일비재하다"면서 "6개월을 기다리지 말고 바로 재산 내역을 확보해둬야 하고, 건강보험급여 정지 같은 강한 제재 수단을 동반해야 회수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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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제징수 피하려 양육비 ‘꼼수’ 입금?…선지급제 과제는
    • 입력 2025-07-03 15:5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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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자녀와 따로 살면서 꼬박꼬박 양육비를 보내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요.

아이를 홀로 키우는 한부모 열에 일곱은 단 한 번도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양육은 물론 경제적 부담까지 혼자 감당해야 하는 한부모 가정을 위해 '양육비 선지급제'가 지난 1일 시행됐지만, 벌써부터 제도의 허점을 노린 꼼수 사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 선지급제 첫 날 '찔끔' 입금… "만 원만 받아도 신청 못해"

30대 안 모 씨는 6년 전 이혼한 뒤 초등학생 1·2학년 자녀를 홀로 키우고 있습니다.

연락이 끊긴 전 남편으로부터 밀린 양육비는 6,700만 원에 달합니다.

이처럼 양육비를 못 받고 있는 한부모 가정 자녀에게 국가가 먼저 매달 20만 원씩 양육비를 지급하고, 추후 채무자에게 돈을 징수하는 것이 이번에 도입된 '양육비 선지급제'입니다.

그런데 지난 1일 아침, 전 남편으로부터 돌연 11만 원이 입금됐습니다.

자녀 한 명당 5만 5천 원꼴인 이 돈 때문에 안 씨는 선지급 신청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선지급 대상이 되려면 3개월 혹은 3회 연속 양육비를 받지 못한 상태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돈을 안 주다 선지급제 시행 첫날 새벽에 갑자기 입금이 된 거예요. 누가 봐도 악의적이고 꼼수잖아요. 너무 화가 났죠. 양육비이행관리원에 문의하니 돈을 받아서 선지급 신청을 못 한대요. '단 돈 만 원이 들어와도 안 되는 거냐'고 물으니 그렇대요."

안 씨는 "3개월에 한 번씩 1만 원만 들어와도 원칙적으로 저는 또 신청을 못하는 것"이라며 "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 안위를 위해서 입금을 한 게 뻔한 데도 별 방법이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서도 "1년간 양육비를 주지 않다가 지난달 지급일도 아닌 날에 갑자기 7만 원을 입금했다", "여태 안 주다 6월 중순에 소액 입금을 했다"는 성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양육 부모가 양육비를 계속 안 주다가 꼼수 지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양육자가 선지급제 대상으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돈을 받게 되면 비양육자는 정부로부터 회수 대상이 됩니다. 정부는 나중에 이 비양육자에게 양육비를 독촉하고 그래도 안 내면 강제 징수까지 할 수 있습니다.

곧, 강제 징수 대상이 되는 걸 피하기 위해 '찔끔', '꼼수' 입금을 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제도 시행 이후 비정기적이고 악의적인 소액 양육비 지급 사례를 분석해 보완 지침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 신청 건수 첫 날만 500건… '강제 회수'가 관건

양육비 선지급제 시행 첫날에만 약 500건의 신청이 몰렸습니다. 양육비 공백이 막막했던 한부모들에겐 한 줄기 빛과 같은 제도지만, 남은 과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올해 선지급제에 편성된 예산은 162억 원 규모로, 최대 1만 3,500명의 미성년 자녀가 수혜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국가가 대신 지급한 돈은 결국 양육비 미이행 채무자로부터 받아내야 하는데, 강제 징수가 원활히 이뤄질 지가 관건입니다.

여가부는 '6개월 단위 회수' 방침에 따라 내년 1월부터 회수 절차에 본격 들어갑니다. '통지-독촉-채무자 동의 없는 재산 조회-강제 징수' 수순을 밟게 됩니다.

하지만 양육비 채무자들이 수입이나 재산을 고의로 숨기는 경우가 많아 난항이 예상됩니다.

안 씨의 전 남편도 통장 압류, 신상공개, 운전면허 정지를 당하고, 민·형사 소송으로 감치 명령과 징역형 집행유예 판결까지 받았지만 양육비를 제대로 주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서류상 퇴사 처리만 해 놓고 일은 계속해요. 운전면허 정지를 당해도 계속 차도 끌고 다녀요. 감치 명령을 받았지만 거주지를 옮겨서 경찰이 집행을 못 한다고 하다가 흐지부지 됐어요. 형사고소까지 가서 1심에서 실형이 나오니까 양육비를 찔끔 주고 그걸로 2심에서는 감형됐어요. 소송 걸려있을 때 잠깐 돈을 주고 끝나면 또 바로 끊어버리고…."

강민서 양육비해결모임 대표는 "차명 계좌로 재산을 숨겨 추심을 방해하는 일은 지금도 비일비재하다"면서 "6개월을 기다리지 말고 바로 재산 내역을 확보해둬야 하고, 건강보험급여 정지 같은 강한 제재 수단을 동반해야 회수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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