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 참사 ‘분향소’ 철거 막으려다…법정에 선 시민들

입력 2025.07.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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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청 임시청사에 마련된 오송 지하차도 참사 시민 분향소.(KBS 자료화면)청주시청 임시청사에 마련된 오송 지하차도 참사 시민 분향소.(KBS 자료화면)

■ 오송 참사 피해자 곁 지켰던 시민들...'피고인' 신세

2023년 7월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 2지하차도'가 침수돼 14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치는 참사가 났습니다.

당시 지하차도에서 400m 떨어진 거리에 있던 미호강 자연제방이 훼손돼, 호우에 불어난 강물을 막아내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근처에서 도로 확장공사를 하던 시공사 관계자들이 공사 편의를 위해 자연제방을 허가도 없이 무단 훼손하고, 장마철이 임박해서야 부실한 '흙 쌓기'로 임시 제방을 만든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여기에 '미호강 범람 우려' 신고에도 지하차도 진입 통제 등 대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충청북도와 청주시, 경찰의 부실 대응까지 더해져 안타까운 참사로 이어졌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2년. '오송 참사 추모 기간'을 맞아 지난 14일 이재명 대통령은 직접 현장을 찾아 유가족과 피해자들을 위로했습니다.
김영환 충북도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 등 지역 기관·단체장들도 추모 기간 청주시청 임시청사에 마련된 시민 분향소를 찾아 재발 방지를 약속했습니다. 이들 외에도 추모 기간 수많은 시민이 분향소를 찾아 희생자의 넋을 위로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민 분향소는 참사 직후 기습 철거됐다가 다시 설치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그것도 추모 기간 분향소를 찾았던 김영환 지사와 이범석 시장이 최고 책임자로 있는 충청북도와 청주시가 기습 철거를 주도했습니다.

자치단체의 기습 철거에 항의하고 시민 분향소를 지킨 건 참사 유가족 등 피해자, 그리고 시민대책위원회를 비롯한 '시민'들이었습니다. 이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나서야 청주시청 임시청사에 다시 분향소가 설치됐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정치권과 자치단체의 무관심 속에서 피해자들의 곁을 지켰던 시민들은 한순간에 피고인 신세가 돼 줄줄이 법정에 서야 했습니다.

올해 오송 참사 추모 기간 시민분향소를 찾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왼쪽부터, KBS 자료화면).올해 오송 참사 추모 기간 시민분향소를 찾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왼쪽부터, KBS 자료화면).

■ '분향소 철거 항의' 법원은 선처, 검찰은 항소

오송 참사 희생자들의 49재였던 2023년 9월 1일. 청주시 도시재생허브센터에 설치됐던 시민 분향소가 기습 철거됐습니다. 충청북도와 청주시가 '유가족 동의 없이는 분향소를 철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가, 행사 개최 등을 이유로 예고 없이 분향소를 철거한 겁니다.

사흘 뒤인 2023년 9월 4일, 유가족과 시민대책위 관계자들은 청주시청 임시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분향소를 다시 설치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시장 면담을 요구하자 청주시는 유가족 등이 들어오지 못하게 임시청사 출입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굳게 잠긴 출입문 앞에서 유가족들은 절규했고,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시민대책위 관계자들은 함께 분노했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김용직 전 시민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은 잠긴 출입문을 잡아당기며 항의했고, 이 과정에서 잠금장치가 일부 훼손됐습니다. 그리고 검찰은 김 전 위원장 등 2명을 공용물건손상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 주거침입) 혐의로 벌금 500만 원에 약식 기소했습니다.

김 전 위원장은 이에 반발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고, 청주지방법원 형사2단독은 지난달 김 전 위원장 등 2명에게 벌금 500만 원 형의 선고 유예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시정장치를 파손하고 청사를 침입한 행위는 분명히 위법하다"면서도 "그러나 아무런 대책없이 분향소가 철거되는 것을 보면서 괴로워하는 유가족들과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피고인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처분을 한 청주시가 원망스럽고 부당하다고 여겨 청주시장과의 면담을 통해 이를 시정하고 싶은 마음에 우발적으로 범행을 범한 것으로 보인다"고 선고를 유예한 사유를 설명했습니다.

또 불법의 정도가 크다고 보기 어렵고, 반성하는 태도 등을 참작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재판부의 '선처'로 당장 형사 처벌을 면했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검찰은 선고 유예 판결에 불복해, 엿새 만에 항소했습니다. 또다시 법정 다툼이 불가피해진 겁니다.

김용직 전 위원장은 "유가족 등 피해자들과 시민대책위원회가 2년 동안 투쟁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고 안전 대책도 강화됐는데, 검찰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실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오로지 현행법의 잣대로, 그것도 힘없는 유가족이나 시민대책위에만 편파적으로 책임을 물으려 하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2023년 9월 4일, 충북 청주시청 임시청사 앞에서 오송 참사 분향소 철거에 항의하다가 주저 앉은 유가족과 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KBS 자료화면)2023년 9월 4일, 충북 청주시청 임시청사 앞에서 오송 참사 분향소 철거에 항의하다가 주저 앉은 유가족과 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KBS 자료화면)

■ "사람의 도리로 달려가 함께 항의했는데"...돌아온 건 벌금 50만 원

분향소 기습 철거에 항의하다 법정에 서게 된 것은 이들뿐만이 아닙니다.

청주의 모 시내버스 회사 노동조합의 백광수 위원장도 분향소 철거에 항의하다가 재판을 받았습니다.

백 위원장은 2023년 9월 4일, 청주시청 임시청사 앞에서 버스 노동자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습니다. 당시 관할 경찰서에도 이런 목적으로 집회 신고를 낸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집회 현장 바로 앞에서, 분향소 철거를 두고 청주시와 유가족, 시민대책위 등의 충돌이 일자 임시청사로 이동해 1시간 20분가량 분향소 철거에 함께 항의했습니다. 그리고 검찰은 백 위원장이 집회 주최자로서 신고 목적과 일시, 장소 등을 벗어나 시위했다면서 재판에 넘겼습니다.

청주지방법원 형사3단독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백 위원장에게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집회 및 시위의 권리를 보장함과 동시에 공공의 안녕질서를 적절히 조화하도록 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목적에 비춰, 범행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후 검찰과 백 위원장 모두 항소하지 않아 벌금형은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백 위원장은 "유가족들이 고통받고, 울부짖는 모습을 보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면서 "다른 집회를 주최한 노동조합 위원장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 해야 할 도리, 그리고 참사 때 희생당한 버스 기사와도 알고 지냈던 동료로서 도리를 했던 것인데 이런 결과가 나와 씁쓸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굳이 항소해서 법정 다툼을 이어간다고 해도 참사 피해자들과 저의 심정을 누가 알아주겠느냐"면서 "참사 후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 그리고 그들의 곁을 지켰던 사람들만 상처받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습니다.

참사 피해자들을 도우려 했던 사람들에 대한 재판이 속전속결로 진행된 것과 달리, 참사 피해를 키운 혐의로 기소된 43명에 대한 재판은 갈 길이 먼 상황입니다.

제방을 무단 훼손하거나 이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한 시공사 현장소장과 감리단장에 대해 대법원에서 각각 징역 6년과 4년의 실형이 확정된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재판은 1심과 항소심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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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송 참사 ‘분향소’ 철거 막으려다…법정에 선 시민들
    • 입력 2025-07-16 16: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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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청 임시청사에 마련된 오송 지하차도 참사 시민 분향소.(KBS 자료화면)
■ 오송 참사 피해자 곁 지켰던 시민들...'피고인' 신세

2023년 7월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 2지하차도'가 침수돼 14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치는 참사가 났습니다.

당시 지하차도에서 400m 떨어진 거리에 있던 미호강 자연제방이 훼손돼, 호우에 불어난 강물을 막아내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근처에서 도로 확장공사를 하던 시공사 관계자들이 공사 편의를 위해 자연제방을 허가도 없이 무단 훼손하고, 장마철이 임박해서야 부실한 '흙 쌓기'로 임시 제방을 만든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여기에 '미호강 범람 우려' 신고에도 지하차도 진입 통제 등 대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충청북도와 청주시, 경찰의 부실 대응까지 더해져 안타까운 참사로 이어졌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2년. '오송 참사 추모 기간'을 맞아 지난 14일 이재명 대통령은 직접 현장을 찾아 유가족과 피해자들을 위로했습니다.
김영환 충북도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 등 지역 기관·단체장들도 추모 기간 청주시청 임시청사에 마련된 시민 분향소를 찾아 재발 방지를 약속했습니다. 이들 외에도 추모 기간 수많은 시민이 분향소를 찾아 희생자의 넋을 위로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민 분향소는 참사 직후 기습 철거됐다가 다시 설치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그것도 추모 기간 분향소를 찾았던 김영환 지사와 이범석 시장이 최고 책임자로 있는 충청북도와 청주시가 기습 철거를 주도했습니다.

자치단체의 기습 철거에 항의하고 시민 분향소를 지킨 건 참사 유가족 등 피해자, 그리고 시민대책위원회를 비롯한 '시민'들이었습니다. 이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나서야 청주시청 임시청사에 다시 분향소가 설치됐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정치권과 자치단체의 무관심 속에서 피해자들의 곁을 지켰던 시민들은 한순간에 피고인 신세가 돼 줄줄이 법정에 서야 했습니다.

올해 오송 참사 추모 기간 시민분향소를 찾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왼쪽부터, KBS 자료화면).
■ '분향소 철거 항의' 법원은 선처, 검찰은 항소

오송 참사 희생자들의 49재였던 2023년 9월 1일. 청주시 도시재생허브센터에 설치됐던 시민 분향소가 기습 철거됐습니다. 충청북도와 청주시가 '유가족 동의 없이는 분향소를 철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가, 행사 개최 등을 이유로 예고 없이 분향소를 철거한 겁니다.

사흘 뒤인 2023년 9월 4일, 유가족과 시민대책위 관계자들은 청주시청 임시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분향소를 다시 설치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시장 면담을 요구하자 청주시는 유가족 등이 들어오지 못하게 임시청사 출입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굳게 잠긴 출입문 앞에서 유가족들은 절규했고,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시민대책위 관계자들은 함께 분노했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김용직 전 시민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은 잠긴 출입문을 잡아당기며 항의했고, 이 과정에서 잠금장치가 일부 훼손됐습니다. 그리고 검찰은 김 전 위원장 등 2명을 공용물건손상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 주거침입) 혐의로 벌금 500만 원에 약식 기소했습니다.

김 전 위원장은 이에 반발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고, 청주지방법원 형사2단독은 지난달 김 전 위원장 등 2명에게 벌금 500만 원 형의 선고 유예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시정장치를 파손하고 청사를 침입한 행위는 분명히 위법하다"면서도 "그러나 아무런 대책없이 분향소가 철거되는 것을 보면서 괴로워하는 유가족들과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피고인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처분을 한 청주시가 원망스럽고 부당하다고 여겨 청주시장과의 면담을 통해 이를 시정하고 싶은 마음에 우발적으로 범행을 범한 것으로 보인다"고 선고를 유예한 사유를 설명했습니다.

또 불법의 정도가 크다고 보기 어렵고, 반성하는 태도 등을 참작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재판부의 '선처'로 당장 형사 처벌을 면했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검찰은 선고 유예 판결에 불복해, 엿새 만에 항소했습니다. 또다시 법정 다툼이 불가피해진 겁니다.

김용직 전 위원장은 "유가족 등 피해자들과 시민대책위원회가 2년 동안 투쟁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고 안전 대책도 강화됐는데, 검찰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실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오로지 현행법의 잣대로, 그것도 힘없는 유가족이나 시민대책위에만 편파적으로 책임을 물으려 하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2023년 9월 4일, 충북 청주시청 임시청사 앞에서 오송 참사 분향소 철거에 항의하다가 주저 앉은 유가족과 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KBS 자료화면)
■ "사람의 도리로 달려가 함께 항의했는데"...돌아온 건 벌금 50만 원

분향소 기습 철거에 항의하다 법정에 서게 된 것은 이들뿐만이 아닙니다.

청주의 모 시내버스 회사 노동조합의 백광수 위원장도 분향소 철거에 항의하다가 재판을 받았습니다.

백 위원장은 2023년 9월 4일, 청주시청 임시청사 앞에서 버스 노동자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습니다. 당시 관할 경찰서에도 이런 목적으로 집회 신고를 낸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집회 현장 바로 앞에서, 분향소 철거를 두고 청주시와 유가족, 시민대책위 등의 충돌이 일자 임시청사로 이동해 1시간 20분가량 분향소 철거에 함께 항의했습니다. 그리고 검찰은 백 위원장이 집회 주최자로서 신고 목적과 일시, 장소 등을 벗어나 시위했다면서 재판에 넘겼습니다.

청주지방법원 형사3단독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백 위원장에게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집회 및 시위의 권리를 보장함과 동시에 공공의 안녕질서를 적절히 조화하도록 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목적에 비춰, 범행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후 검찰과 백 위원장 모두 항소하지 않아 벌금형은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백 위원장은 "유가족들이 고통받고, 울부짖는 모습을 보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면서 "다른 집회를 주최한 노동조합 위원장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 해야 할 도리, 그리고 참사 때 희생당한 버스 기사와도 알고 지냈던 동료로서 도리를 했던 것인데 이런 결과가 나와 씁쓸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굳이 항소해서 법정 다툼을 이어간다고 해도 참사 피해자들과 저의 심정을 누가 알아주겠느냐"면서 "참사 후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 그리고 그들의 곁을 지켰던 사람들만 상처받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습니다.

참사 피해자들을 도우려 했던 사람들에 대한 재판이 속전속결로 진행된 것과 달리, 참사 피해를 키운 혐의로 기소된 43명에 대한 재판은 갈 길이 먼 상황입니다.

제방을 무단 훼손하거나 이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한 시공사 현장소장과 감리단장에 대해 대법원에서 각각 징역 6년과 4년의 실형이 확정된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재판은 1심과 항소심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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