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진실화해위 재심 권고에도…‘간첩 누명’ 피해자 재심 기각

입력 2025.07.18 (11:30) 수정 2025.07.1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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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간첩 누명' 사건에 대한 재심을 권고했지만, 법원이 재심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우인성)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12년형이 확정된 고 서병호 씨 유족의 재심 청구를 지난 10일 기각했습니다.

진실화해위의 재심 권고를 근거로 대부분의 재심 청구와 개시가 이루어져 왔다는 점에 비추었을 때 이례적인 판단입니다.

■'간첩 누명' 씌워 '이중간첩'으로 활용…계획 틀어지자 구속

1971년 5월 1일, 고 서병호 씨는 일본 유학 중 '조선장학회'의 장학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보안사(현 국군방첩사령부)에 의해 검거됐습니다.

서 씨에게는 '재일조선인총연합회 공작원에 의해 포섭돼 간첩 지령을 받고 국내로 잠입해 국가기밀을 탐지했다'는 내용의 간첩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보안사는 1971년 5월 19일, 서 씨에게 "대공 전선에 활약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전향서와 서약서 등을 작성하게 한 뒤 그를 '역용 공작'에 활용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습니다.

쉽게 말해 서 씨를 대남 공작원들을 유인하는 '이중간첩'으로 활용하기로 한 겁니다.

하지만 계획이 틀어져 더 이상 서 씨를 활용할 수 없게 됐고, 보안사는 넉 달 뒤인 9월 25일 서 씨를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겼습니다.

서 씨는 이듬해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2년을 선고받고 1983년 만기출소 했습니다.

■불법 구금에 가혹행위까지…서 씨 "고문에 허위로 진술"

서 씨는 2021년 숨졌지만, 이후 보안사의 수사 과정에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진실화해위는 서 씨가 검거된 1971년 5월 1일부터 전향서를 작성한 같은 달 19일까지의 기간에 주목했습니다.

이 기간 보안사가 보광동 수사 분실에서 서 씨와 수사관들의 식대가 포함된 특별수사비를 신청해 하루에 세 끼가 제공됐지만, 구속영장 집행 기록은 없었습니다.

진실화해위는 이 19일간 서 씨가 보안사에 불법 구금됐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나는 보안사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심한 고문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임의의 진술을 못 하고 허위 사실을 진술한 것도 많습니다." <검찰 제출 의견서, 1972년 3월 17일>

"처음 보안사에서 조사받을 때 사실대로 진술하려 했으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고 허위로 진술했으며 검찰에서도 허위로 진술하게 됐습니다." <서울형사지법 3차 공판조서, 1972년 2월 14일>

진실화해위는 불법 구금 기간에 고문과 가혹행위도 있었다고도 봤습니다.

서 씨뿐 아니라 함께 재판을 받은 3명은 자신들의 간첩 혐의에 대해 '보안사 수사관들의 고문에 못 이겨 허위로 진술했다'고 공통되게 진술했습니다.

진실화해위는 "불법적인 수사를 받은 후 '역용 공작원'으로 활용됐다가 반공법 위반 등으로 처벌받은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며 지난 2023년 진실규명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위법한 확정판결에 대해서 씨와 그 가족의 피해와 명예 회복을 위해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권고했습니다.

■법원 "불법 구금·고문 증거 없어"…서 씨 측 즉시항고

유족은 이미 숨진 서 씨를 대신해 결정문을 근거로 재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서 씨가 1971년 5월 1일부터 19일까지 불법 체포·감금돼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고,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어 "(해당 기간이)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가 이루어진 시기라고 보이지도 아니한다"며 "1971년 9월 23일경 피고인의 자택에서 임의동행된 이후 이루어진 수사 내용이 공소의 기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서 씨 측이 문제 삼은 1971년 5월에 조사된 내용은 증거로 남아있지 않아, 서 씨를 기소하는데 바탕이 된 수사는 역용 공작이 종료된 9월 23일 이후 이루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서 씨 측은 법원이 재심의 기준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했다며 어제(17일) 즉시항고를 제기했습니다.

서 씨를 대리하는 최정규 변호사는 "1971년 5월의 위법한 수사는 같은 해 9월 23일 이후 진행된 수사의 전제이자 실질적인 기초가 된 것이므로, 그 둘은 분리할 수 없는 일련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장기간의 불법 구금과 그 과정에서 있었을 심리적 압박과 회유는 서 씨가 이후에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음이 명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픽 반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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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7-18 11:30:40
    • 수정2025-07-18 11: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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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간첩 누명' 사건에 대한 재심을 권고했지만, 법원이 재심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우인성)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12년형이 확정된 고 서병호 씨 유족의 재심 청구를 지난 10일 기각했습니다.

진실화해위의 재심 권고를 근거로 대부분의 재심 청구와 개시가 이루어져 왔다는 점에 비추었을 때 이례적인 판단입니다.

■'간첩 누명' 씌워 '이중간첩'으로 활용…계획 틀어지자 구속

1971년 5월 1일, 고 서병호 씨는 일본 유학 중 '조선장학회'의 장학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보안사(현 국군방첩사령부)에 의해 검거됐습니다.

서 씨에게는 '재일조선인총연합회 공작원에 의해 포섭돼 간첩 지령을 받고 국내로 잠입해 국가기밀을 탐지했다'는 내용의 간첩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보안사는 1971년 5월 19일, 서 씨에게 "대공 전선에 활약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전향서와 서약서 등을 작성하게 한 뒤 그를 '역용 공작'에 활용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습니다.

쉽게 말해 서 씨를 대남 공작원들을 유인하는 '이중간첩'으로 활용하기로 한 겁니다.

하지만 계획이 틀어져 더 이상 서 씨를 활용할 수 없게 됐고, 보안사는 넉 달 뒤인 9월 25일 서 씨를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겼습니다.

서 씨는 이듬해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2년을 선고받고 1983년 만기출소 했습니다.

■불법 구금에 가혹행위까지…서 씨 "고문에 허위로 진술"

서 씨는 2021년 숨졌지만, 이후 보안사의 수사 과정에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진실화해위는 서 씨가 검거된 1971년 5월 1일부터 전향서를 작성한 같은 달 19일까지의 기간에 주목했습니다.

이 기간 보안사가 보광동 수사 분실에서 서 씨와 수사관들의 식대가 포함된 특별수사비를 신청해 하루에 세 끼가 제공됐지만, 구속영장 집행 기록은 없었습니다.

진실화해위는 이 19일간 서 씨가 보안사에 불법 구금됐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나는 보안사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심한 고문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임의의 진술을 못 하고 허위 사실을 진술한 것도 많습니다." <검찰 제출 의견서, 1972년 3월 17일>

"처음 보안사에서 조사받을 때 사실대로 진술하려 했으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고 허위로 진술했으며 검찰에서도 허위로 진술하게 됐습니다." <서울형사지법 3차 공판조서, 1972년 2월 14일>

진실화해위는 불법 구금 기간에 고문과 가혹행위도 있었다고도 봤습니다.

서 씨뿐 아니라 함께 재판을 받은 3명은 자신들의 간첩 혐의에 대해 '보안사 수사관들의 고문에 못 이겨 허위로 진술했다'고 공통되게 진술했습니다.

진실화해위는 "불법적인 수사를 받은 후 '역용 공작원'으로 활용됐다가 반공법 위반 등으로 처벌받은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며 지난 2023년 진실규명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위법한 확정판결에 대해서 씨와 그 가족의 피해와 명예 회복을 위해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권고했습니다.

■법원 "불법 구금·고문 증거 없어"…서 씨 측 즉시항고

유족은 이미 숨진 서 씨를 대신해 결정문을 근거로 재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서 씨가 1971년 5월 1일부터 19일까지 불법 체포·감금돼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고,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어 "(해당 기간이)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가 이루어진 시기라고 보이지도 아니한다"며 "1971년 9월 23일경 피고인의 자택에서 임의동행된 이후 이루어진 수사 내용이 공소의 기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서 씨 측이 문제 삼은 1971년 5월에 조사된 내용은 증거로 남아있지 않아, 서 씨를 기소하는데 바탕이 된 수사는 역용 공작이 종료된 9월 23일 이후 이루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서 씨 측은 법원이 재심의 기준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했다며 어제(17일) 즉시항고를 제기했습니다.

서 씨를 대리하는 최정규 변호사는 "1971년 5월의 위법한 수사는 같은 해 9월 23일 이후 진행된 수사의 전제이자 실질적인 기초가 된 것이므로, 그 둘은 분리할 수 없는 일련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장기간의 불법 구금과 그 과정에서 있었을 심리적 압박과 회유는 서 씨가 이후에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음이 명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픽 반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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