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만에 냉장고가 ‘둥둥’…마을이 순식간에 침수된 이유는?

입력 2025.07.2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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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극한 호우와 집중 호우로 전국에 크고 작은 피해가 발생한 지난 17일, 대구는 비교적 조용했습니다.
단, 한 마을만 빼고 말입니다. 시간당 최대 48.5mm의 비에도 대구시 북구 노곡동은 순식간에 침수됐습니다.
주민들은 이번 침수가 전형적인 인재라고 호소합니다. KBS는 당시 마을 상황을 담은 CCTV를 확보했습니다.

지난 17일 대구시 북구 노곡동. 침수로 생긴 토사를 주민, 공무원 등이 치우고 있다.지난 17일 대구시 북구 노곡동. 침수로 생긴 토사를 주민, 공무원 등이 치우고 있다.

대구에 호우경보가 내려진 지난 17일 오후 2시쯤. 대구시 북구 노곡동 일대가 침수됐습니다. 주택과 사업장 25곳, 차량 40여 대가 물에 잠겼고 주민 26명이 구명보트 등으로 구조됐습니다. 정확한 재산 피해 금액은 집계 중입니다.

그런데 이번 침수 당시, 마을이 급속도로 물에 잠겼다는 증언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KBS는 마을을 찾아 침수 당시 현장을 담은 CCTV를 확보했습니다. 영상을 분 단위로 나눠보니, 마을이 물에 잠기는 건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습니다.


■ 현장 CCTV 봤더니, 5분 만에 냉장고가 '둥둥'

▲ 오후 2시 13분
오후 2시 10분쯤부터 물이 차차 고이기 시작합니다. 3분 뒤 영상에선 물이 어른 종아리 높이까지 차올랐습니다. 화면 위쪽 맨홀에선 물이 역류하는 모습이 보입니다.주차된 흰색 차 바퀴 타이어만 살짝 잠긴 상태. 이때까지만 해도 차량이 큰 무리 없이 통행할 수 있었습니다.

▲ 오후 2시 14분
불과 1분 지났지만, 수위가 눈에 띄게 올랐습니다. 주차된 흰색 차량 아랫부분이 완전히 물에 잠겼습니다. 파도치듯 흙탕물이 넘실거리고 차량은 아슬아슬하게 물이 찬 도로를 운행합니다.

▲ 오후 2시 15분
주차된 흰색 차를 보면 2분 만에 차량 본체 하단까지 물이 차올랐습니다. 수위가 높아지면서 고무대야 등 집기들이 어지럽게 물에 떠다닙니다. 심지어 냉장고까지 둥둥 떠내려옵니다. 집배원은 오토바이 휠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긴 채 아슬아슬 운전을 이어갑니다.

▲ 오후 2시 16분
물에 절반이 잠긴 채 검은색 차 한 대가 지나갑니다. 순간 큰 파도가 일렁이면서 흰색 차가 충격에 들썩입니다.
차량 바퀴 아래 정도였던 수위는 3분 만에 차 번호판 높이까지 올라왔습니다. 보닛까지 물에 잠긴 검은색 차량은 침수 지역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결국 멈추어 섭니다. 후미등이 켜진 것을 끝으로 차 본체가 물에 잠겼고 운전자는 차를 버리고 피신했습니다.


"전형적인 인재"…수문 관리 부실 정황 '속속'

5분 만에 마을이 잠긴 대구시 노곡동 침수는 전형적인 인재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노곡동은 상습 침수 지역이어서 빗물펌프장과 고지 배수터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정작 필요할 때 이들 시설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번 침수 피해의 핵심 원인은 수문 관리 입니다.

대구시 북구 노곡동의 빗물펌프장. 침수 피해로 주변에 나뭇가지와 쓰레기 등이 쌓여 있는 모습.대구시 북구 노곡동의 빗물펌프장. 침수 피해로 주변에 나뭇가지와 쓰레기 등이 쌓여 있는 모습.

빗물을 가두고 빼는 수문 관리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집중호우에 마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고지대 수문을 닫아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물을 막고, 마을에서 강으로 빠져나가는 수문은 열어야 합니다. 그런데 17일에는 두 가지 모두 부실하게 운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노곡동 일대에 설치된 수문은 모두 5개입니다. 마을 고지대에 있는 고지 배수터널 수문 1개와 마을과 접한 빗물펌프장 수문 2개, 빗물펌프장을 거친 물이 금호강으로 빠져나가는 수문 2개입니다. 그런데 이번 침수 당시, 마을로 들어오는 물을 막아야 할 고지 배수터널 수문은 열려 있었고, 마을의 물을 빼줘야 하는 빗물펌프장 수문은 닫혀 있었습니다.

두 수문의 관리 주체는 각각 다릅니다. 고지 배수터널 수문은 대구 북구청, 나머지 수문은 대구시 도시관리본부 관할입니다.

대구시 북구 노곡동 빗물펌프장 시설 일부.대구시 북구 노곡동 빗물펌프장 시설 일부.

대구시와 북구청의 '책임 공방'... 누구 잘못?

노곡동 침수 책임을 두고 두 행정기관은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대구 북구청은 당시 고지 배수터널 수문 운영 지침을 따랐다는 입장입니다. 금호강 수위가 21m가 넘을 경우 수문을 닫게 돼 있는데 당시 수위는 19m였다는 겁니다. 오후 2시 26분에야 대구시의 연락을 받고 뒤늦게 문을 닫았지만, CCTV 영상에서 보듯 마을은 이미 물에 잠긴 상태였습니다.

대구시 도시관리본부는 빗물이 금호강으로 바로 빠져나가는 직관로 수문이 고장 난 상태였다고 설명합니다. 이에 비가 오기 전부터 쇠 파이프로 문을 고정해 인위적으로 열어뒀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쇠 파이프가 빠졌고 결국 침수로 이어졌다는 겁니다.

분명 피해를 본 사람들은 있는데 두 기관은 서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 대구시는 이번 침수 피해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조사위원회를 꾸렸습니다. 민간 전문가와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는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 대책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대구시와 북구청의 책임 공방 속, 다음 달 조사위원회가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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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분 만에 냉장고가 ‘둥둥’…마을이 순식간에 침수된 이유는?
    • 입력 2025-07-24 17: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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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극한 호우와 집중 호우로 전국에 크고 작은 피해가 발생한 지난 17일, </strong><strong>대구는 비교적 조용했습니다. <br /></strong><strong>단, 한 마을만 빼고 말입니다. 시간당 최대 48.5mm의 비에도 대구시 북구 노곡동은 순식간에 침수됐습니다. </strong><br /><strong> 주민들은 이번 침수가 전형적인 인재라고 호소합니다. KBS는 당시 마을 상황을 담은 CCTV를 확보했습니다. </strong><br />
지난 17일 대구시 북구 노곡동. 침수로 생긴 토사를 주민, 공무원 등이 치우고 있다.
대구에 호우경보가 내려진 지난 17일 오후 2시쯤. 대구시 북구 노곡동 일대가 침수됐습니다. 주택과 사업장 25곳, 차량 40여 대가 물에 잠겼고 주민 26명이 구명보트 등으로 구조됐습니다. 정확한 재산 피해 금액은 집계 중입니다.

그런데 이번 침수 당시, 마을이 급속도로 물에 잠겼다는 증언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KBS는 마을을 찾아 침수 당시 현장을 담은 CCTV를 확보했습니다. 영상을 분 단위로 나눠보니, 마을이 물에 잠기는 건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습니다.


■ 현장 CCTV 봤더니, 5분 만에 냉장고가 '둥둥'

▲ 오후 2시 13분
오후 2시 10분쯤부터 물이 차차 고이기 시작합니다. 3분 뒤 영상에선 물이 어른 종아리 높이까지 차올랐습니다. 화면 위쪽 맨홀에선 물이 역류하는 모습이 보입니다.주차된 흰색 차 바퀴 타이어만 살짝 잠긴 상태. 이때까지만 해도 차량이 큰 무리 없이 통행할 수 있었습니다.

▲ 오후 2시 14분
불과 1분 지났지만, 수위가 눈에 띄게 올랐습니다. 주차된 흰색 차량 아랫부분이 완전히 물에 잠겼습니다. 파도치듯 흙탕물이 넘실거리고 차량은 아슬아슬하게 물이 찬 도로를 운행합니다.

▲ 오후 2시 15분
주차된 흰색 차를 보면 2분 만에 차량 본체 하단까지 물이 차올랐습니다. 수위가 높아지면서 고무대야 등 집기들이 어지럽게 물에 떠다닙니다. 심지어 냉장고까지 둥둥 떠내려옵니다. 집배원은 오토바이 휠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긴 채 아슬아슬 운전을 이어갑니다.

▲ 오후 2시 16분
물에 절반이 잠긴 채 검은색 차 한 대가 지나갑니다. 순간 큰 파도가 일렁이면서 흰색 차가 충격에 들썩입니다.
차량 바퀴 아래 정도였던 수위는 3분 만에 차 번호판 높이까지 올라왔습니다. 보닛까지 물에 잠긴 검은색 차량은 침수 지역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결국 멈추어 섭니다. 후미등이 켜진 것을 끝으로 차 본체가 물에 잠겼고 운전자는 차를 버리고 피신했습니다.


"전형적인 인재"…수문 관리 부실 정황 '속속'

5분 만에 마을이 잠긴 대구시 노곡동 침수는 전형적인 인재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노곡동은 상습 침수 지역이어서 빗물펌프장과 고지 배수터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정작 필요할 때 이들 시설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번 침수 피해의 핵심 원인은 수문 관리 입니다.

대구시 북구 노곡동의 빗물펌프장. 침수 피해로 주변에 나뭇가지와 쓰레기 등이 쌓여 있는 모습.
빗물을 가두고 빼는 수문 관리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집중호우에 마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고지대 수문을 닫아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물을 막고, 마을에서 강으로 빠져나가는 수문은 열어야 합니다. 그런데 17일에는 두 가지 모두 부실하게 운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노곡동 일대에 설치된 수문은 모두 5개입니다. 마을 고지대에 있는 고지 배수터널 수문 1개와 마을과 접한 빗물펌프장 수문 2개, 빗물펌프장을 거친 물이 금호강으로 빠져나가는 수문 2개입니다. 그런데 이번 침수 당시, 마을로 들어오는 물을 막아야 할 고지 배수터널 수문은 열려 있었고, 마을의 물을 빼줘야 하는 빗물펌프장 수문은 닫혀 있었습니다.

두 수문의 관리 주체는 각각 다릅니다. 고지 배수터널 수문은 대구 북구청, 나머지 수문은 대구시 도시관리본부 관할입니다.

대구시 북구 노곡동 빗물펌프장 시설 일부.
대구시와 북구청의 '책임 공방'... 누구 잘못?

노곡동 침수 책임을 두고 두 행정기관은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대구 북구청은 당시 고지 배수터널 수문 운영 지침을 따랐다는 입장입니다. 금호강 수위가 21m가 넘을 경우 수문을 닫게 돼 있는데 당시 수위는 19m였다는 겁니다. 오후 2시 26분에야 대구시의 연락을 받고 뒤늦게 문을 닫았지만, CCTV 영상에서 보듯 마을은 이미 물에 잠긴 상태였습니다.

대구시 도시관리본부는 빗물이 금호강으로 바로 빠져나가는 직관로 수문이 고장 난 상태였다고 설명합니다. 이에 비가 오기 전부터 쇠 파이프로 문을 고정해 인위적으로 열어뒀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쇠 파이프가 빠졌고 결국 침수로 이어졌다는 겁니다.

분명 피해를 본 사람들은 있는데 두 기관은 서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 대구시는 이번 침수 피해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조사위원회를 꾸렸습니다. 민간 전문가와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는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 대책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대구시와 북구청의 책임 공방 속, 다음 달 조사위원회가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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