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가 너를 사랑한단다”…스토킹 살인이 끝나지 않는 이유

입력 2025.07.3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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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살해 및 여성폭력 종합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여성살해 및 여성폭력 종합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

스토킹하던 여성을 향한 강력 범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6일 의정부에서는 50대 여성이 스토킹하던 남성에 의해 직장에서 숨졌고, 이틀 뒤 울산에서는 30대 남성이 스토킹하던 20대 여성을 흉기로 찌르고 도주하려다 경찰에 넘겨졌습니다.

두 여성 모두 경찰에 자신이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며 신고했고, 보호 조처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흉기 습격을 당했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요?

■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고, 그리고 사랑한답니다

"가해자가 행위를 반복할 위험성이 부족하다"
"스토킹 현장이지만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가해자가 앞으로 찾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가해자가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다"
"가해자가 너를 사랑한단다"

스토킹 범죄 피해자가 경찰과 검찰에 개입 요청을 했을 때, 되돌아온 답변들입니다.

여성단체들은 이러한 스토킹 범죄가 반복되는 이유가 수사기관과 법원, 나아가 국회와 정부 모두 미온적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노동자회 등은 오늘(31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복되는 여성 살해는 개인의 불운이 아닌 명백한 국가와 제도의 실패"라며 정부에 여성 폭력 종합대책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여성단체들은 "수사기관은 피해자 보호 조처를 하지 않거나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고 검찰과 법원은 구속에 미온적"이라며 "가정폭력처벌법과 스토킹 처벌법을 개정하지 않은 국회, 아무런 대책도 발표하지 않은 정부까지 총체적인 책임방기 사태"라고 지적했습니다.

■ 스토킹 접수 신고만 '31,947'건 … 분리 잠정조치 인용은 '43%'

31,947건.

지난해 112에 접수된 스토킹 관련 신고 건수입니다. 올해 5월까지만 해도 14,088건이 접수됐습니다.

현행법상 경찰은 스토킹 신고를 접수한 뒤 긴급 응급조치(100m 이내 접근금지명령·전기통신을 이용한 연락 금지) 등을 직권으로 명령할 수 있습니다.

또 검사를 통해 법원에 잠정조치 1호~4호의 신청도 가능합니다. 이 때부터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3호의 2)과 구금(4호)이 가능합니다.

잠정조치 1호~4호. 3호까지 사실상 구속력이 없다.잠정조치 1호~4호. 3호까지 사실상 구속력이 없다.

스토킹 범죄는 처음엔 단순한 연락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렇기 때문에 보다 즉각적이고 철저한 분리 조치가 가장 효과적인 범죄 예방이라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경찰청 자료(양부남 의원실 제공)를 보면 지난해 경찰이 가해자 신병확보를 위해 신청한 잠정조치(3호의 2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4호 유치장 ·구치소 유치)를 법원이 인용한 사례는 43%에 불과합니다. 두 건 중 한 건이 안 됩니다.

법원이 잠정조치를 인용해도 문제입니다. 잠정조치를 어기는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인데요. 2022년 533건, 2023년 636건에 이어 지난해 887건을 기록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잠정조치를 위반하는 행위는 다른 범죄로 넘어가는 위험한 신호라고 지적합니다.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검사가 청구하지 않거나 법원이 기각한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각률은 36%. 여전히 가해자를 직접 제재하는 방식에는 소극적입니다.

피해자들이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 피해자 아닌 가해자에게 책임 물어야

대신 경찰은 스토킹 피해자에게 '스마트 워치'를 지급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일시적인 방법인 데다 안전 확보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접근방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며 "눈앞에 가해자가 나타났을 때, 피해자가 스마트 워치를 누르고 경찰을 기다릴 시간이 있겠냐"고 꼬집었습니다.

실제 울산· 의정부 사건 역시 피해자가 스마트 워치를 제공받았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의정부 사건 피해자의 스마트워치는 핸드백 고리에 걸려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가해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 등을 부착하는 등 접근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교수는 "가해자가 일정 반경 안으로 접근하면 경고음이 울리고 곧바로 경찰이 출동 하는 등의 방식을 고안해야 한다"며 "가해자를 분리해야지 피해자에게 '네가 조심해라.', '네가 스마트 워치 눌러라'라고 하는 현 방식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또 "구속 영장 발부 시에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더 고민해 봐야 한다"며 "증거인멸, 도주 우려만을 사유로 삼을 것이 아니라 피해자 보호 등의 이유도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확실히 고쳐야

강력 범죄가 잇따르자, 검찰과 경찰 모두 개선 방안을 찾겠다고 했습니다.

대검은 어제(30일) 스토킹 행위의 반복성 여부 등 잠정조치의 요건이 경찰 신청 기록으로 소명되지 않을 경우, 스토킹 전담검사가 직접 피해자 진술을 들어 기록에 누락된 스토킹 행위 및 재발 우려 등을 보완 후 적극적으로 잠정조치를 청구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또한 관내 스토킹 담당 경찰과 상시 연락 체계를 구축해 피해자의 기존 신고 내역 등 기록 보완이 필요한 경우 경찰로부터 자료 등을 직접 제출받아 신속히 잠정조치를 청구하도록 했습니다.

경찰지휘부도 보다 높은 수준의 현장 조치를 당부했습니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그제(29일) 경찰 지휘부 화상회의에서 유치장 유치 등 가해자와 피해자를 효과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조치를 적극 실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또 기동순찰대가 접근금지 등 임시·잠정조치를 받는 피의자 주변을 순찰하는 등 추가 범행을 실질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제도 개선 방안도 마련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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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해자가 너를 사랑한단다”…스토킹 살인이 끝나지 않는 이유
    • 입력 2025-07-31 1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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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살해 및 여성폭력 종합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
스토킹하던 여성을 향한 강력 범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6일 의정부에서는 50대 여성이 스토킹하던 남성에 의해 직장에서 숨졌고, 이틀 뒤 울산에서는 30대 남성이 스토킹하던 20대 여성을 흉기로 찌르고 도주하려다 경찰에 넘겨졌습니다.

두 여성 모두 경찰에 자신이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며 신고했고, 보호 조처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흉기 습격을 당했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요?

■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고, 그리고 사랑한답니다

"가해자가 행위를 반복할 위험성이 부족하다"
"스토킹 현장이지만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가해자가 앞으로 찾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가해자가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다"
"가해자가 너를 사랑한단다"

스토킹 범죄 피해자가 경찰과 검찰에 개입 요청을 했을 때, 되돌아온 답변들입니다.

여성단체들은 이러한 스토킹 범죄가 반복되는 이유가 수사기관과 법원, 나아가 국회와 정부 모두 미온적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노동자회 등은 오늘(31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복되는 여성 살해는 개인의 불운이 아닌 명백한 국가와 제도의 실패"라며 정부에 여성 폭력 종합대책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여성단체들은 "수사기관은 피해자 보호 조처를 하지 않거나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고 검찰과 법원은 구속에 미온적"이라며 "가정폭력처벌법과 스토킹 처벌법을 개정하지 않은 국회, 아무런 대책도 발표하지 않은 정부까지 총체적인 책임방기 사태"라고 지적했습니다.

■ 스토킹 접수 신고만 '31,947'건 … 분리 잠정조치 인용은 '43%'

31,947건.

지난해 112에 접수된 스토킹 관련 신고 건수입니다. 올해 5월까지만 해도 14,088건이 접수됐습니다.

현행법상 경찰은 스토킹 신고를 접수한 뒤 긴급 응급조치(100m 이내 접근금지명령·전기통신을 이용한 연락 금지) 등을 직권으로 명령할 수 있습니다.

또 검사를 통해 법원에 잠정조치 1호~4호의 신청도 가능합니다. 이 때부터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3호의 2)과 구금(4호)이 가능합니다.

잠정조치 1호~4호. 3호까지 사실상 구속력이 없다.
스토킹 범죄는 처음엔 단순한 연락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렇기 때문에 보다 즉각적이고 철저한 분리 조치가 가장 효과적인 범죄 예방이라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경찰청 자료(양부남 의원실 제공)를 보면 지난해 경찰이 가해자 신병확보를 위해 신청한 잠정조치(3호의 2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4호 유치장 ·구치소 유치)를 법원이 인용한 사례는 43%에 불과합니다. 두 건 중 한 건이 안 됩니다.

법원이 잠정조치를 인용해도 문제입니다. 잠정조치를 어기는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인데요. 2022년 533건, 2023년 636건에 이어 지난해 887건을 기록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잠정조치를 위반하는 행위는 다른 범죄로 넘어가는 위험한 신호라고 지적합니다.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검사가 청구하지 않거나 법원이 기각한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각률은 36%. 여전히 가해자를 직접 제재하는 방식에는 소극적입니다.

피해자들이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 피해자 아닌 가해자에게 책임 물어야

대신 경찰은 스토킹 피해자에게 '스마트 워치'를 지급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일시적인 방법인 데다 안전 확보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접근방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며 "눈앞에 가해자가 나타났을 때, 피해자가 스마트 워치를 누르고 경찰을 기다릴 시간이 있겠냐"고 꼬집었습니다.

실제 울산· 의정부 사건 역시 피해자가 스마트 워치를 제공받았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의정부 사건 피해자의 스마트워치는 핸드백 고리에 걸려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가해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 등을 부착하는 등 접근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교수는 "가해자가 일정 반경 안으로 접근하면 경고음이 울리고 곧바로 경찰이 출동 하는 등의 방식을 고안해야 한다"며 "가해자를 분리해야지 피해자에게 '네가 조심해라.', '네가 스마트 워치 눌러라'라고 하는 현 방식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또 "구속 영장 발부 시에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더 고민해 봐야 한다"며 "증거인멸, 도주 우려만을 사유로 삼을 것이 아니라 피해자 보호 등의 이유도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확실히 고쳐야

강력 범죄가 잇따르자, 검찰과 경찰 모두 개선 방안을 찾겠다고 했습니다.

대검은 어제(30일) 스토킹 행위의 반복성 여부 등 잠정조치의 요건이 경찰 신청 기록으로 소명되지 않을 경우, 스토킹 전담검사가 직접 피해자 진술을 들어 기록에 누락된 스토킹 행위 및 재발 우려 등을 보완 후 적극적으로 잠정조치를 청구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또한 관내 스토킹 담당 경찰과 상시 연락 체계를 구축해 피해자의 기존 신고 내역 등 기록 보완이 필요한 경우 경찰로부터 자료 등을 직접 제출받아 신속히 잠정조치를 청구하도록 했습니다.

경찰지휘부도 보다 높은 수준의 현장 조치를 당부했습니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그제(29일) 경찰 지휘부 화상회의에서 유치장 유치 등 가해자와 피해자를 효과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조치를 적극 실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또 기동순찰대가 접근금지 등 임시·잠정조치를 받는 피의자 주변을 순찰하는 등 추가 범행을 실질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제도 개선 방안도 마련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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