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도 산후도우미 신청에 ‘예산 벌써 바닥’ [취재후]
입력 2025.08.01 (21:03)
수정 2025.08.0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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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률 반등'이 국가적 의제인 상황, 정부에선 출생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산후도우미 비용을 지원하는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사업'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올해, 정부가 지원하기로 했던 산후도우미 지원금을 상당수 지역에서 줄 수 없게 됐다는 겁니다.
■"산후조리 도와주시는 부모님이 지원을 받을 수는 없나?"
먼저 배경부터 알아보겠습니다. '가족을 산후도우미로 쓰면 안 될까?'라는 생각, 한 번쯤 해보셨을 건데요.
지난해까진 이게 불가능했습니다. 정부가 '일은 하지 않고 돈만 받아 가는', 부정 수급을 우려해 산모의 민법상 '가족'은 산후도우미 비용 지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규제가 불합리하다는 불만이 제기됐습니다.
민법 제779조(가족의 범위) ① 다음의 자는 가족으로 한다. 1.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2.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② 제1항 제2호의 경우에는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 한한다. |
법대로라면, 산모의 친정어머니는 산후도우미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시어머니의 경우 '따로 살 때만' 가능한 상황입니다. (시어머니라도 같이 살면 불가)

"어차피 산후조리에 도움받는 건 가족인데 왜 안 되지? 그리고 안 되면 다 같이 안되는 거지, 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나?"라며 민원이 빗발쳤습니다.
그 결과 이 규정은 올해부터 사라지면서 가족도 산후도우미 비용 지원이 허용됐습니다.
이렇게 규정이 바뀌며 산후도우미 수요가 폭증했습니다.
■수요 폭증으로 예산 소진
열흘 동안 친정어머니를 산후도우미로 등록하고 지원받을 경우, 산모가 28만 원가량을 내면 친정어머니는 107만 원 가까운 돈을 지원받습니다. 적지 않은 돈이죠.
이렇게 되면서, 그동안 외부 도우미를 쓰는 걸 꺼렸던 산모들도, 친정어머니를 포함한 가족들을 산후도우미로 등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기준 부산에서 태어난 아이의 50% 정도만 산후도우미 지원을 받았는데, 이게 올해는 80% 정도로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부산에서 등록된 산후도우미의 수도 701명에서 1,700명으로 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수요가 급증하며 자치단체가 산후도우미 비용을 지원하려 받아둔 돈을 다 써버린 것입니다.
부산시와 구·군은 산후도우미 지원 사업을 위해 100억 원 정도의 예산을 편성하고, 5억 원가량을 더 받았습니다.
그런데 7월 초 기준 남은 예산은 1억 5천만 원에 불과합니다.

부산 16개 구·군 중 6곳은 다음 달 안에, 다른 곳은 10월 안에 1년 치 예산을 다 써버릴 상황입니다. 정책 자체의 취지는 좋은데, 이걸 살리지 못할 상황에 부닥친 겁니다.
■ 취지는 좋아도, 절차는 거쳐야
이 대목에서,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럼, 수요가 늘어날 걸 예측 못하고 예산 편성한 공무원 잘못 아냐? 미리 알고 돈을 더 많이 받았어야지!" |
그러나, 자치단체가 이를 예측해 반영하기는 어려웠을 걸로 보입니다.
보통 지자체 예산은 8월부터 11월 사이에 편성되는데, 가족을 산후도우미 지원 대상으로 허용한 건 지난해 12월 중순이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황당 규제 공모전'이라는 걸 통해 관련 규정을 갑자기 바꿨는데요, 12월 4일부터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규제에 대한 온라인 투표를 일주일간 벌였습니다.
그 뒤, 일주일 만에 정책 검토를 거쳐, 12월 18일 '내년부터 가족도 산후도우미 등록을 허용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2주도 지나지 않아, 올해 바로 시행됐습니다.
보통 정책을 만들 땐 관련 부서, 산하 기관 의견을 듣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런 과정이 생략된 거죠.
실제로 부산시 관계자는 "지침이 발표될 때 관련 내용을 처음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피해는 업체의 몫

이런 상황 때문에, 지원금은 뒤늦게 내년에 예산이 확보된 뒤 지급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산후도우미들과 산후도우미 업체의 몫입니다. 한 산후도우미 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 달에 도우미 1명 당 150만 원 정도를 줘야 하는데, 20명이면 3천만 원이에요. 9월부터 적어도 석 달 이상은 월급을 제 돈으로 메꿔야 해 1억 원 정도 대출을 신청했습니다. 막상 업체 운영을 중단할 수도 없는 게,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기 때문에 매출을 줄일 수도 없어요. 대출 이자는 계산도 안 해봤습니다." (한 산후도우미 업체 대표) |
앞서 규정이 바뀌며 지원이 허용된 산모의 가족들도 결국 업체에 등록해 돈을 받아야 하는데, 업체가 무너진다면 이들 역시 지원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예산을 거의 다 써버린 만큼 마땅한 대책도 없는 만큼, 보건복지부 재정을 통해 해결하거나 자치단체의 저리 대출을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규제를 풀고 속도감 있게 지원하는 것도 좋지만, 어떤 정책이건 가장 중요한 건 사업이 제대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좋은 사업 취지를 살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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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도 산후도우미 신청에 ‘예산 벌써 바닥’ [취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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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8-01 21:03:27
- 수정2025-08-01 21:05:04

'출생률 반등'이 국가적 의제인 상황, 정부에선 출생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산후도우미 비용을 지원하는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사업'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올해, 정부가 지원하기로 했던 산후도우미 지원금을 상당수 지역에서 줄 수 없게 됐다는 겁니다.
■"산후조리 도와주시는 부모님이 지원을 받을 수는 없나?"
먼저 배경부터 알아보겠습니다. '가족을 산후도우미로 쓰면 안 될까?'라는 생각, 한 번쯤 해보셨을 건데요.
지난해까진 이게 불가능했습니다. 정부가 '일은 하지 않고 돈만 받아 가는', 부정 수급을 우려해 산모의 민법상 '가족'은 산후도우미 비용 지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규제가 불합리하다는 불만이 제기됐습니다.
민법 제779조(가족의 범위) ① 다음의 자는 가족으로 한다. 1.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2.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② 제1항 제2호의 경우에는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 한한다. |
법대로라면, 산모의 친정어머니는 산후도우미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시어머니의 경우 '따로 살 때만' 가능한 상황입니다. (시어머니라도 같이 살면 불가)

"어차피 산후조리에 도움받는 건 가족인데 왜 안 되지? 그리고 안 되면 다 같이 안되는 거지, 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나?"라며 민원이 빗발쳤습니다.
그 결과 이 규정은 올해부터 사라지면서 가족도 산후도우미 비용 지원이 허용됐습니다.
이렇게 규정이 바뀌며 산후도우미 수요가 폭증했습니다.
■수요 폭증으로 예산 소진
열흘 동안 친정어머니를 산후도우미로 등록하고 지원받을 경우, 산모가 28만 원가량을 내면 친정어머니는 107만 원 가까운 돈을 지원받습니다. 적지 않은 돈이죠.
이렇게 되면서, 그동안 외부 도우미를 쓰는 걸 꺼렸던 산모들도, 친정어머니를 포함한 가족들을 산후도우미로 등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기준 부산에서 태어난 아이의 50% 정도만 산후도우미 지원을 받았는데, 이게 올해는 80% 정도로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부산에서 등록된 산후도우미의 수도 701명에서 1,700명으로 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수요가 급증하며 자치단체가 산후도우미 비용을 지원하려 받아둔 돈을 다 써버린 것입니다.
부산시와 구·군은 산후도우미 지원 사업을 위해 100억 원 정도의 예산을 편성하고, 5억 원가량을 더 받았습니다.
그런데 7월 초 기준 남은 예산은 1억 5천만 원에 불과합니다.

부산 16개 구·군 중 6곳은 다음 달 안에, 다른 곳은 10월 안에 1년 치 예산을 다 써버릴 상황입니다. 정책 자체의 취지는 좋은데, 이걸 살리지 못할 상황에 부닥친 겁니다.
■ 취지는 좋아도, 절차는 거쳐야
이 대목에서,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럼, 수요가 늘어날 걸 예측 못하고 예산 편성한 공무원 잘못 아냐? 미리 알고 돈을 더 많이 받았어야지!" |
그러나, 자치단체가 이를 예측해 반영하기는 어려웠을 걸로 보입니다.
보통 지자체 예산은 8월부터 11월 사이에 편성되는데, 가족을 산후도우미 지원 대상으로 허용한 건 지난해 12월 중순이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황당 규제 공모전'이라는 걸 통해 관련 규정을 갑자기 바꿨는데요, 12월 4일부터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규제에 대한 온라인 투표를 일주일간 벌였습니다.
그 뒤, 일주일 만에 정책 검토를 거쳐, 12월 18일 '내년부터 가족도 산후도우미 등록을 허용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2주도 지나지 않아, 올해 바로 시행됐습니다.
보통 정책을 만들 땐 관련 부서, 산하 기관 의견을 듣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런 과정이 생략된 거죠.
실제로 부산시 관계자는 "지침이 발표될 때 관련 내용을 처음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피해는 업체의 몫

이런 상황 때문에, 지원금은 뒤늦게 내년에 예산이 확보된 뒤 지급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산후도우미들과 산후도우미 업체의 몫입니다. 한 산후도우미 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 달에 도우미 1명 당 150만 원 정도를 줘야 하는데, 20명이면 3천만 원이에요. 9월부터 적어도 석 달 이상은 월급을 제 돈으로 메꿔야 해 1억 원 정도 대출을 신청했습니다. 막상 업체 운영을 중단할 수도 없는 게,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기 때문에 매출을 줄일 수도 없어요. 대출 이자는 계산도 안 해봤습니다." (한 산후도우미 업체 대표) |
앞서 규정이 바뀌며 지원이 허용된 산모의 가족들도 결국 업체에 등록해 돈을 받아야 하는데, 업체가 무너진다면 이들 역시 지원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예산을 거의 다 써버린 만큼 마땅한 대책도 없는 만큼, 보건복지부 재정을 통해 해결하거나 자치단체의 저리 대출을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규제를 풀고 속도감 있게 지원하는 것도 좋지만, 어떤 정책이건 가장 중요한 건 사업이 제대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좋은 사업 취지를 살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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