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어 제네바까지 ‘빨간불’…속사정은?

입력 2025.08.11 (15:15) 수정 2025.08.1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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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개막한 UN 주최 플라스틱 국제 협약을 위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 속개 회의(INC-5.2)가 전체 일정상 반환점을 지났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팔레 데 나시옹에서 진행 중인 INC-5.2에는 각국 정부 대표단과 환경 및 시민단체, 플라스틱 업계 관계자 등이 모여 일주일째 협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회의는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열린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의 협약 성안 실패 이후 추가로 열린 회의입니다.

하지만, 현지에 파견된 정부 관계자와 환경단체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플라스틱 생산 감축, 제품 내 화학물질 규제, 재원 등 여러 핵심 쟁점을 놓고 여전히 견해차가 큰 상황입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플라스틱 국제 협약을 위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 속개 회의(INC-5.2)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플라스틱 국제 협약을 위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 속개 회의(INC-5.2)

■'적극 지지' vs '소극 지지' vs '사실상 반대'

각국 입장이 제각각이지만, '생산량 감축'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적극적인 지지'입니다. '적극 지지'를 표명하고 있는 그룹의 국가들은 유럽연합과 영국, 캐나다, 호주, 태평양 도서 국가 등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우호국 연합' 소속이 대부분입니다. 플라스틱 폐기물로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과 페루 등도 적극 지지 그룹에 들어갑니다.

이들은 '플라스틱 생산 및 문제성 플라스틱 사용 제한', '인권 중심의 접근법', '플라스틱 내 독성 화학물질 감축 및 퇴출'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소극적인 지지'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인도네시아,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이 많고, 브라질도 이 그룹으로 분류됩니다.

원칙적으로 감축은 지지하지만, 국가별 의무 규정 도입보다 자발적 감축 노력 등을 선호하는 국가들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INC-5의 의장국으로서 탈 플라스틱을 위한 적극적인 입장을 요구받고 있는데요. 플라스틱 폴리머 등 원료 제품을 많이 생산하다 보니, 주도적으로 나서기엔 '애매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실상 반대' 그룹이 있습니다. 플라스틱의 원료인 석유를 생산하는 중동 국가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국제 규제가 국가 주권을 침해한다는 입장입니다.

INC-5.2에 파견 중인 한국 정부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중동 국가들이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뿐만 아니라 일회용품 규제나 화학물질 규제까지 세세하게 하나하나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입장 바꾼 미국…석유화학 업계는 로비 총력전

위에 소개한 세 그룹 간의 이견도 문제이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달라진 미국의 입장도 협약 논의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플라스틱 규제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외신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INC-5.2 회의 시작 직후, 다수의 국가에 공식 서한을 보내 이번 협약의 핵심 조항인 ‘플라스틱 생산 제한 및 특정 화학첨가물 규제'를 거부할 것을 요청했다고 최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국제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7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 출입문에 올라 ‘거대 석유화학 업계가 협상장을 오염시키고 있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은 거래 대상이 아니다’ 라고 쓰인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국제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7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 출입문에 올라 ‘거대 석유화학 업계가 협상장을 오염시키고 있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은 거래 대상이 아니다’ 라고 쓰인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 역시 필사적으로 협약 성안을 저지하고 있습니다. 거대 석유화학 기업들은 역대 최대 규모의 로비스트를 이번 협상장에 파견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국제환경법센터(CIEL: The Center for International Environmental Law)는 UNEP의 공식 참가자 리스트를 확인해, 이번 회의에 역대 최대 규모인 234명의 화석연료 및 석유화학 업계 로비스트가 참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부산에서 열린 INC5의 221명보다도 더 늘어난 것으로, 유럽연합(EU) 대표단 233명보다 많으며, 한국 정부 대표단 25명의 10배에 이릅니다.

■남은 협상 시나리오는?

그렇다면 막바지 일정을 향해가고 있는 INC-5.2는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요? 크게 보면 3가지의 시나리오가 가능합니다.

1) 운영 규칙에 따라 협약 참여국 3분의 2 이상의 다수결 찬성으로 협약이 채택되거나, 2) 협상을 연장해 추가 회의(INC-5.3)를 열거나 3) 제7차 유엔환경총회 등 다른 회의를 통해 새로운 위임 권한을 부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의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2), 3)의 경우 또다시 결론을 못 내고 시간만 흘려보내는 셈이어서 환경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환경단체들은 또, 1) 에 따라 협약이 채택되더라도, 협약 내용에 실질적인 생산량 감축 등의 조치가 포함되지 않으면 그게 '더 큰 실패' 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박민혜 한국WWF(세계자연기금) 사무총장은 "플라스틱 감축에 부정적인 일 부 소수 국가가 주도권을 쥐고 ‘합의를 위한 합의’로 끌고 가려는 움직임이 우려된다"며 "구속력 있는 조항을 담은 실질적 협약만이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의미 있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협약 논의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제네바 현지에서 회담 모니터링과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김나라 그린피스 활동가는 "한국 정부는 이전 회의의 개최국이자 우호국 연합의 소속 국가로서 큰 영향력도 가지고 있다"며 "강력한 협약이 성안될 수 있게 도움을 줘야 하는 역할을 한국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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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11 15:15:10
    • 수정2025-08-11 18: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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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개막한 UN 주최 플라스틱 국제 협약을 위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 속개 회의(INC-5.2)가 전체 일정상 반환점을 지났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팔레 데 나시옹에서 진행 중인 INC-5.2에는 각국 정부 대표단과 환경 및 시민단체, 플라스틱 업계 관계자 등이 모여 일주일째 협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회의는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열린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의 협약 성안 실패 이후 추가로 열린 회의입니다.

하지만, 현지에 파견된 정부 관계자와 환경단체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플라스틱 생산 감축, 제품 내 화학물질 규제, 재원 등 여러 핵심 쟁점을 놓고 여전히 견해차가 큰 상황입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플라스틱 국제 협약을 위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 속개 회의(INC-5.2)
■'적극 지지' vs '소극 지지' vs '사실상 반대'

각국 입장이 제각각이지만, '생산량 감축'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적극적인 지지'입니다. '적극 지지'를 표명하고 있는 그룹의 국가들은 유럽연합과 영국, 캐나다, 호주, 태평양 도서 국가 등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우호국 연합' 소속이 대부분입니다. 플라스틱 폐기물로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과 페루 등도 적극 지지 그룹에 들어갑니다.

이들은 '플라스틱 생산 및 문제성 플라스틱 사용 제한', '인권 중심의 접근법', '플라스틱 내 독성 화학물질 감축 및 퇴출'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소극적인 지지'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인도네시아,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이 많고, 브라질도 이 그룹으로 분류됩니다.

원칙적으로 감축은 지지하지만, 국가별 의무 규정 도입보다 자발적 감축 노력 등을 선호하는 국가들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INC-5의 의장국으로서 탈 플라스틱을 위한 적극적인 입장을 요구받고 있는데요. 플라스틱 폴리머 등 원료 제품을 많이 생산하다 보니, 주도적으로 나서기엔 '애매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실상 반대' 그룹이 있습니다. 플라스틱의 원료인 석유를 생산하는 중동 국가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국제 규제가 국가 주권을 침해한다는 입장입니다.

INC-5.2에 파견 중인 한국 정부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중동 국가들이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뿐만 아니라 일회용품 규제나 화학물질 규제까지 세세하게 하나하나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입장 바꾼 미국…석유화학 업계는 로비 총력전

위에 소개한 세 그룹 간의 이견도 문제이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달라진 미국의 입장도 협약 논의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플라스틱 규제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외신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INC-5.2 회의 시작 직후, 다수의 국가에 공식 서한을 보내 이번 협약의 핵심 조항인 ‘플라스틱 생산 제한 및 특정 화학첨가물 규제'를 거부할 것을 요청했다고 최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국제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7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 출입문에 올라 ‘거대 석유화학 업계가 협상장을 오염시키고 있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은 거래 대상이 아니다’ 라고 쓰인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 역시 필사적으로 협약 성안을 저지하고 있습니다. 거대 석유화학 기업들은 역대 최대 규모의 로비스트를 이번 협상장에 파견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국제환경법센터(CIEL: The Center for International Environmental Law)는 UNEP의 공식 참가자 리스트를 확인해, 이번 회의에 역대 최대 규모인 234명의 화석연료 및 석유화학 업계 로비스트가 참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부산에서 열린 INC5의 221명보다도 더 늘어난 것으로, 유럽연합(EU) 대표단 233명보다 많으며, 한국 정부 대표단 25명의 10배에 이릅니다.

■남은 협상 시나리오는?

그렇다면 막바지 일정을 향해가고 있는 INC-5.2는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요? 크게 보면 3가지의 시나리오가 가능합니다.

1) 운영 규칙에 따라 협약 참여국 3분의 2 이상의 다수결 찬성으로 협약이 채택되거나, 2) 협상을 연장해 추가 회의(INC-5.3)를 열거나 3) 제7차 유엔환경총회 등 다른 회의를 통해 새로운 위임 권한을 부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의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2), 3)의 경우 또다시 결론을 못 내고 시간만 흘려보내는 셈이어서 환경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환경단체들은 또, 1) 에 따라 협약이 채택되더라도, 협약 내용에 실질적인 생산량 감축 등의 조치가 포함되지 않으면 그게 '더 큰 실패' 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박민혜 한국WWF(세계자연기금) 사무총장은 "플라스틱 감축에 부정적인 일 부 소수 국가가 주도권을 쥐고 ‘합의를 위한 합의’로 끌고 가려는 움직임이 우려된다"며 "구속력 있는 조항을 담은 실질적 협약만이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의미 있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협약 논의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제네바 현지에서 회담 모니터링과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김나라 그린피스 활동가는 "한국 정부는 이전 회의의 개최국이자 우호국 연합의 소속 국가로서 큰 영향력도 가지고 있다"며 "강력한 협약이 성안될 수 있게 도움을 줘야 하는 역할을 한국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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