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위반 첫 공기업’ 석탄공사 전 사장 1심 무죄, 왜?

입력 2025.08.13 (16:19) 수정 2025.08.1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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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2022년 강원도 태백 장성광업소에서 40대 광원이 매몰 사고로 숨졌습니다. 당시 석탄공사 사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공기업 대표로는 처음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사고가 난 지 3년 만에, 법원은 1심에서 당시 석탄공사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노동계에서는 법원이 '공공기관장에 면죄부를 줬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첫 공기업 사장 기소 사건…3년 만에 '무죄' 선고

2022년 9월 14일 오전, 강원도 태백 장성광업소에서 매몰 사고가 났습니다. 부장급 40대 광원 김 모 씨가 작업 현장 확인을 하다가 갱도 지하 675m 지점에서 석탄과 물이 뒤섞인, 이른바 '죽탄'에 휩쓸린 겁니다. 이 사고로 김 씨는 사고 발생 30여 시간 만에 발견됐지만 숨졌습니다.

2022년 9월, 사고 발생 당시 태백 장성광업소 모습2022년 9월, 사고 발생 당시 태백 장성광업소 모습

2022년 9월, 사고 발생 당시 태백 장성광업소 모습
이 사업장을 운영한 곳은 대한석탄공사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면서 이 사고는 경영 책임자까지 형사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공기업 대표로는 처음으로 원경환 당시 석탄공사 사장이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검찰은 법원에 원 전 사장에게는 징역 2년 6개월, 안전 관리자 각각 징역 8개월과 6개월, 석탄공사 벌금 2억 5천만 원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은 어제 원 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원 전 사장과 함께 광산안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당시 광업소 안전관리자 2명과 이들과 함께 법인 자격으로 재판에 넘겨진 대한석탄공사도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 1심 재판부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1심 재판부는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 책임자의 의무는 직접적인 안전 조치라기보다는 인적, 물적, 제도적인 체계를 만들고 이를 점검하는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예를 들어 석탄공사 사장이 '광업소 현장에서 분기에 한 번 안전 점검을 한다'가 아니라, 석탄공사 사장은 이런 '안전 규정을 만들어 놓고 제대로 운영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판결문에서 설명했습니다.


재판에서 핵심 쟁점은 석탄공사의 안전 관리가 적절했는지 여부였습니다. 공사의 '안전관리 개선 계획'에는 본연층만 운영했을 뿐 분연층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본연층(또는 본선)은 주요 채굴 경로, 분연층은 본연층에서 90도 각도로 파놓은 굴을 뜻합니다. 검찰은 사고 현장에 분연층이 없어서 사고 당시 출수 관리가 되지 않았던 점을 석탄과 물이 섞인 '죽탄' 사고가 나게 된 주요 원인으로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광업소 평소 운영 방식 등을 검토했을 때 분연층은 출수 관리나 대피 등의 안전 목적이라기보다 석탄을 더 많이 캐는 목적으로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오히려 분연층 안에서 사고가 났을 때 본연층보다 대피하기 어렵다고도 봤습니다.

재판부는 석탄공사의 '안전관리 개선 계획'이 작업자를 위험한 환경에 처하게 했는지에 대해 문제 소지가 없다고 판단했고, 안전 매뉴얼을 만들고 점검할 의무가 있는 원 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같은 취지로 광산안전법 위반 혐의 등으로 함께 기소된 당시 장성광업소의 안전관리자 두 명도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이번 사고가 암반 균열의 확대와 암반 내 수압 증가, 지하수의 움직임 등 미처 대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제출된 증거들로는 안전관리자들이 업무상 주의 의무를 다했다 해도,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다고 증명됐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 "죽탄 사고, 대비 방법 없어" vs "공공기관장에 면죄부 준 판결"

원 전 사장은 재판을 마치고 "직원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해 죄스럽고, 유족에게도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 자신이 재임 시절 죽탄 사고를 막을 방법을 찾아봤지만, 과학적인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원 전 사장은 광업소가 존재하는 한 같은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이 때문에 재임 시절 조기 폐광을 위해 노동조합과 정부를 설득하는 데 노력했다고도 말했습니다.


1심 무죄 판결을 두고 노동계에서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는 성명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취지를 무너뜨리는 법원 판결을 규탄한다"면서 앞으로 공공기관장 면죄부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 책임자의 총괄 책임과 엄중 처벌로 강력한 재해 예방을 위해 도입됐지만, 법정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며 검찰의 항소를 촉구했습니다.


춘천지방검찰청 영월지청은 판결문 내용을 검토해 항소 여부를 정할 방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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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강원도 태백 장성광업소에서 40대 광원이 매몰 사고로 숨졌습니다. 당시 석탄공사 사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공기업 대표로는 처음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사고가 난 지 3년 만에, 법원은 1심에서 당시 석탄공사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노동계에서는 법원이 '공공기관장에 면죄부를 줬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첫 공기업 사장 기소 사건…3년 만에 '무죄' 선고

2022년 9월 14일 오전, 강원도 태백 장성광업소에서 매몰 사고가 났습니다. 부장급 40대 광원 김 모 씨가 작업 현장 확인을 하다가 갱도 지하 675m 지점에서 석탄과 물이 뒤섞인, 이른바 '죽탄'에 휩쓸린 겁니다. 이 사고로 김 씨는 사고 발생 30여 시간 만에 발견됐지만 숨졌습니다.

2022년 9월, 사고 발생 당시 태백 장성광업소 모습
2022년 9월, 사고 발생 당시 태백 장성광업소 모습
이 사업장을 운영한 곳은 대한석탄공사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면서 이 사고는 경영 책임자까지 형사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공기업 대표로는 처음으로 원경환 당시 석탄공사 사장이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검찰은 법원에 원 전 사장에게는 징역 2년 6개월, 안전 관리자 각각 징역 8개월과 6개월, 석탄공사 벌금 2억 5천만 원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은 어제 원 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원 전 사장과 함께 광산안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당시 광업소 안전관리자 2명과 이들과 함께 법인 자격으로 재판에 넘겨진 대한석탄공사도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 1심 재판부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1심 재판부는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 책임자의 의무는 직접적인 안전 조치라기보다는 인적, 물적, 제도적인 체계를 만들고 이를 점검하는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예를 들어 석탄공사 사장이 '광업소 현장에서 분기에 한 번 안전 점검을 한다'가 아니라, 석탄공사 사장은 이런 '안전 규정을 만들어 놓고 제대로 운영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판결문에서 설명했습니다.


재판에서 핵심 쟁점은 석탄공사의 안전 관리가 적절했는지 여부였습니다. 공사의 '안전관리 개선 계획'에는 본연층만 운영했을 뿐 분연층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본연층(또는 본선)은 주요 채굴 경로, 분연층은 본연층에서 90도 각도로 파놓은 굴을 뜻합니다. 검찰은 사고 현장에 분연층이 없어서 사고 당시 출수 관리가 되지 않았던 점을 석탄과 물이 섞인 '죽탄' 사고가 나게 된 주요 원인으로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광업소 평소 운영 방식 등을 검토했을 때 분연층은 출수 관리나 대피 등의 안전 목적이라기보다 석탄을 더 많이 캐는 목적으로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오히려 분연층 안에서 사고가 났을 때 본연층보다 대피하기 어렵다고도 봤습니다.

재판부는 석탄공사의 '안전관리 개선 계획'이 작업자를 위험한 환경에 처하게 했는지에 대해 문제 소지가 없다고 판단했고, 안전 매뉴얼을 만들고 점검할 의무가 있는 원 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같은 취지로 광산안전법 위반 혐의 등으로 함께 기소된 당시 장성광업소의 안전관리자 두 명도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이번 사고가 암반 균열의 확대와 암반 내 수압 증가, 지하수의 움직임 등 미처 대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제출된 증거들로는 안전관리자들이 업무상 주의 의무를 다했다 해도,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다고 증명됐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 "죽탄 사고, 대비 방법 없어" vs "공공기관장에 면죄부 준 판결"

원 전 사장은 재판을 마치고 "직원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해 죄스럽고, 유족에게도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 자신이 재임 시절 죽탄 사고를 막을 방법을 찾아봤지만, 과학적인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원 전 사장은 광업소가 존재하는 한 같은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이 때문에 재임 시절 조기 폐광을 위해 노동조합과 정부를 설득하는 데 노력했다고도 말했습니다.


1심 무죄 판결을 두고 노동계에서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는 성명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취지를 무너뜨리는 법원 판결을 규탄한다"면서 앞으로 공공기관장 면죄부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 책임자의 총괄 책임과 엄중 처벌로 강력한 재해 예방을 위해 도입됐지만, 법정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며 검찰의 항소를 촉구했습니다.


춘천지방검찰청 영월지청은 판결문 내용을 검토해 항소 여부를 정할 방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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