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행적 알리는 것도 독립운동” [광복80주년]⑧

입력 2025.08.16 (09:00) 수정 2025.08.1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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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무장과 의열 투쟁 등으로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가들.
주변인들의 밀고와 대대적인 색출로 끌려가 범죄자로 낙인찍혔습니다.
독립운동가를 범죄자로 내몰던 이들 일부는 해방 이후, 미군정에서까지 승승장구했습니다.

이런 친일 인물과 행적을 일일이 살펴보는 '역사 바로 세우기'가 활기를 띠기도 했습니다.
상당수 성과도 거뒀습니다.

하지만 한때의 노력, 미완의 프로젝트에 멈춰있단 비판이 큽니다. 왜 그럴까요?

일제 강점기였던 1938년 3월, 경남 밀양군 단장면에서 이런 말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이) 이번 중국사변에 출정하는 군인을 위안하기 위해 16살에서 20살 사이의 처녀와 16살에서 30살 사이의 과부를 강제적으로 모아 전쟁터에 보내고 있다.
낮에는 취사와 세탁의 노무에 사역하고, 밤에는 성적 관계를 하게 하니 자녀를 둔 자는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은 퍼지고 퍼져 결국, 3명이 일제에 붙잡혀 투옥됩니다.

훗날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장인식, 장봉학, 강성옥 선생입니다.

이들에게 씌워진 혐의는 '육군형법위반'. '허구의 사실을 날조해 소문을 냈다'는 건데요.

 판결문 [1938년 6월 24일/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 판결문 [1938년 6월 24일/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

■ "주문, 피고인 3명을 각 금고 4월에 처한다"

석 달 뒤인 1938년 6월 2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

군사에 관한 조언 비어, 즉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이유로 육군형법 제99조에 해당한다며 법정에 선 독립 유공자들.

이들에게 금고 4월을 판결한 사람은 서정국 판사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된 인물입니다.

사전에는 1928년 쇼와 천황 즉위 기념 대례 기념장을 받고 1930년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 1932년 공주지방법원 홍성지청, 1935년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 1939년 신의주지방법원 등으로 옮겨 다니며 재판을 담당했다고 적혀있습니다.

해방 후 서정국 판사가 옮겨간 곳은 충북 청주지방법원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재판장으로 승진했고, 이후 1948년 대전지방법원 법원장, 1949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등 사법기관장을 두루 역임했습니다.

 충북 청주지방법원 역대 법원장들 (친일인명사전 등재 인물) 충북 청주지방법원 역대 법원장들 (친일인명사전 등재 인물)

■ 주요 법원장 '친일 행적' 기록 지지부진

친일 행적이 확인된 인물들이 거쳐 간 기관이나 단체는 이들에 대한 과거 기록을 어떻게 표기하고 있을까요?

앞서 판결문에서 확인된 서정국 판사의 행적부터 확인해 봤습니다. 청주지방법원 누리집부터 살펴봤습니다.

역대 법원장에 초대 법원장으로 서 판사와 그의 사진이 올라와 있습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더 궁금해졌습니다. 나머지 역대 법원장의 이름을 친일인명사전으로 검색해 봤습니다.

누리집에 공개된 청주지방법원장을 역임한 연도와 이름이 같은 동일인이 3명 더 확인됩니다.

2대 남정숙 법원장, 4대 이화종 법원장, 5대 최윤모 법원장까지, 이들 또한 친일 행적 기록이 누리집에서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누리집은 시민들이 공개적으로 그 기관의 다양한 활동 정보와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인데요.

친일 여부에 대한 기록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역대 기관장의 친일 행적을 공개하지 않은 충북의 기관·단체는 최소 8곳으로 추정된다. 역대 기관장의 친일 행적을 공개하지 않은 충북의 기관·단체는 최소 8곳으로 추정된다.

■ 친일 기록 남겨놓지 않는 기관·단체들

KBS 청주방송총국은 기관과 단체장을 거쳐 간 친일 인물의 행적 기록 실태를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충북의 기관과 단체장을 역임했던 친일 인물을 그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충청북도 역사문화연구원(전 충청북도 문화재연구원)이 2020년 충북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기초 조사를 하면서 친일인명사전에서 충북 출신·출생, 또는 활동 인물을 304명으로 추려 공개한 적이 있습니다.

KBS는 이 304명이 거쳐 간 기관·단체가 이들의 친일 행적을 제대로 기록하고 알리고 있는지 일일이 살펴봤습니다.

그 결과 최소 8곳이 확인됐습니다.

청주지방법원, 충북지방경찰청, 공군사관학교, 청주 청원경찰서, 영동경찰서, 보은경찰서, 청주동부소방서, 진천군입니다.

인물은 10여 명 확인됩니다.

역대 기관장의 이름과 근무 기간은 동일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일부 기관장의 한자 이름이 일치하지 않은 인물도 있어 정확한 숫자를 알리기에는 다소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정확한 사료 확인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충청북도 청사 2층 소회의실에 걸려있는 역대 도지사 사진과 친일 기록충청북도 청사 2층 소회의실에 걸려있는 역대 도지사 사진과 친일 기록

■ 일제 부역한 도지사 기록 남긴 충청북도… "친일 기록도 역사의 일부"

반면 친일 기록을 상세히 공개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바로 충청북도입니다.

역대 도지사 가운데 3대 이명구, 5대 정낙훈, 6대 김학응, 7대 정인택, 8대 황종률, 5명입니다.

충청북도는 간부들이 회의하는 소회의실에도 이들의 사진을 걸어놓으며 얼굴, 친일 기록을 모두 공개해 놓았습니다.

특히 6대 김학응 도지사가 초대 군수를 거쳐 간 옥천군도 똑같이 친일 행적을 누리집에 공개했습니다.

2020년 당시 충청북도 문화재연구원이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기초 조사를 한 뒤 그 후속 조치로 충청북도가 2021년 3월 역대 도지사의 친일 행적을 공개한 건데요.

친일 기록도 역사의 일부로 후대에 교훈을 남겨야 한다는 취지에서입니다.

2020년 공개된 충청북도 문화재연구원의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기초 조사’ 자료집2020년 공개된 충청북도 문화재연구원의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기초 조사’ 자료집

친일 행적 실태 조사 부진… "공개는 또 다른 의미에서 독립운동"

친일 행적이 확인된 대다수의 기관장과 단체장들은 행정, 치안, 사법기관장들로, 해방 이후 미군정 아래 자리를 이어간 인물들입니다.

상당수가 충북 등 다양한 지역으로 옮겨 다닌 만큼 이들의 행적에 대한 기록도, 정확한 실태 조사도 아직 부진합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친일 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부작위에 의한 역사 왜곡"이라고 말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고, 그 누리집을 보는 많은 시민들은 그 기관·단체장들이 다 훌륭한 일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친일 행적 공개는 각 기관, 단체의 의지 문제로, 그들이 역사적인 사실 속에서 행한 공적 행위이기 때문에 행적 공개는 당연하다"는 겁니다. "또 공개는 또 다른 의미에서 독립운동 계승"이라고도 말합니다.

박경목 충남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도 "과거의 행적은 현재 우리의 잘못이 아니며 당시의 모습들을 정확히 밝혀내고 사실대로 인정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비극적인 반민족 실상의 역사까지 기록화해 뼈아픈 반성과 성찰의 계기로 삼는 것이 우리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관련 기사] “친일 부역 행적 알리는 것도 독립운동”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328287&ref=A

촬영기자 강사완 / 그래픽 박소현·조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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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16 09:00:55
    • 수정2025-08-16 09: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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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무장과 의열 투쟁 등으로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가들.
주변인들의 밀고와 대대적인 색출로 끌려가 범죄자로 낙인찍혔습니다.
독립운동가를 범죄자로 내몰던 이들 일부는 해방 이후, 미군정에서까지 승승장구했습니다.

이런 친일 인물과 행적을 일일이 살펴보는 '역사 바로 세우기'가 활기를 띠기도 했습니다.
상당수 성과도 거뒀습니다.

하지만 한때의 노력, 미완의 프로젝트에 멈춰있단 비판이 큽니다. 왜 그럴까요?

일제 강점기였던 1938년 3월, 경남 밀양군 단장면에서 이런 말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이) 이번 중국사변에 출정하는 군인을 위안하기 위해 16살에서 20살 사이의 처녀와 16살에서 30살 사이의 과부를 강제적으로 모아 전쟁터에 보내고 있다.
낮에는 취사와 세탁의 노무에 사역하고, 밤에는 성적 관계를 하게 하니 자녀를 둔 자는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은 퍼지고 퍼져 결국, 3명이 일제에 붙잡혀 투옥됩니다.

훗날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장인식, 장봉학, 강성옥 선생입니다.

이들에게 씌워진 혐의는 '육군형법위반'. '허구의 사실을 날조해 소문을 냈다'는 건데요.

 판결문 [1938년 6월 24일/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
■ "주문, 피고인 3명을 각 금고 4월에 처한다"

석 달 뒤인 1938년 6월 2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

군사에 관한 조언 비어, 즉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이유로 육군형법 제99조에 해당한다며 법정에 선 독립 유공자들.

이들에게 금고 4월을 판결한 사람은 서정국 판사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된 인물입니다.

사전에는 1928년 쇼와 천황 즉위 기념 대례 기념장을 받고 1930년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 1932년 공주지방법원 홍성지청, 1935년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 1939년 신의주지방법원 등으로 옮겨 다니며 재판을 담당했다고 적혀있습니다.

해방 후 서정국 판사가 옮겨간 곳은 충북 청주지방법원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재판장으로 승진했고, 이후 1948년 대전지방법원 법원장, 1949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등 사법기관장을 두루 역임했습니다.

 충북 청주지방법원 역대 법원장들 (친일인명사전 등재 인물)
■ 주요 법원장 '친일 행적' 기록 지지부진

친일 행적이 확인된 인물들이 거쳐 간 기관이나 단체는 이들에 대한 과거 기록을 어떻게 표기하고 있을까요?

앞서 판결문에서 확인된 서정국 판사의 행적부터 확인해 봤습니다. 청주지방법원 누리집부터 살펴봤습니다.

역대 법원장에 초대 법원장으로 서 판사와 그의 사진이 올라와 있습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더 궁금해졌습니다. 나머지 역대 법원장의 이름을 친일인명사전으로 검색해 봤습니다.

누리집에 공개된 청주지방법원장을 역임한 연도와 이름이 같은 동일인이 3명 더 확인됩니다.

2대 남정숙 법원장, 4대 이화종 법원장, 5대 최윤모 법원장까지, 이들 또한 친일 행적 기록이 누리집에서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누리집은 시민들이 공개적으로 그 기관의 다양한 활동 정보와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인데요.

친일 여부에 대한 기록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역대 기관장의 친일 행적을 공개하지 않은 충북의 기관·단체는 최소 8곳으로 추정된다.
■ 친일 기록 남겨놓지 않는 기관·단체들

KBS 청주방송총국은 기관과 단체장을 거쳐 간 친일 인물의 행적 기록 실태를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충북의 기관과 단체장을 역임했던 친일 인물을 그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충청북도 역사문화연구원(전 충청북도 문화재연구원)이 2020년 충북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기초 조사를 하면서 친일인명사전에서 충북 출신·출생, 또는 활동 인물을 304명으로 추려 공개한 적이 있습니다.

KBS는 이 304명이 거쳐 간 기관·단체가 이들의 친일 행적을 제대로 기록하고 알리고 있는지 일일이 살펴봤습니다.

그 결과 최소 8곳이 확인됐습니다.

청주지방법원, 충북지방경찰청, 공군사관학교, 청주 청원경찰서, 영동경찰서, 보은경찰서, 청주동부소방서, 진천군입니다.

인물은 10여 명 확인됩니다.

역대 기관장의 이름과 근무 기간은 동일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일부 기관장의 한자 이름이 일치하지 않은 인물도 있어 정확한 숫자를 알리기에는 다소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정확한 사료 확인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충청북도 청사 2층 소회의실에 걸려있는 역대 도지사 사진과 친일 기록
■ 일제 부역한 도지사 기록 남긴 충청북도… "친일 기록도 역사의 일부"

반면 친일 기록을 상세히 공개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바로 충청북도입니다.

역대 도지사 가운데 3대 이명구, 5대 정낙훈, 6대 김학응, 7대 정인택, 8대 황종률, 5명입니다.

충청북도는 간부들이 회의하는 소회의실에도 이들의 사진을 걸어놓으며 얼굴, 친일 기록을 모두 공개해 놓았습니다.

특히 6대 김학응 도지사가 초대 군수를 거쳐 간 옥천군도 똑같이 친일 행적을 누리집에 공개했습니다.

2020년 당시 충청북도 문화재연구원이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기초 조사를 한 뒤 그 후속 조치로 충청북도가 2021년 3월 역대 도지사의 친일 행적을 공개한 건데요.

친일 기록도 역사의 일부로 후대에 교훈을 남겨야 한다는 취지에서입니다.

2020년 공개된 충청북도 문화재연구원의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기초 조사’ 자료집
친일 행적 실태 조사 부진… "공개는 또 다른 의미에서 독립운동"

친일 행적이 확인된 대다수의 기관장과 단체장들은 행정, 치안, 사법기관장들로, 해방 이후 미군정 아래 자리를 이어간 인물들입니다.

상당수가 충북 등 다양한 지역으로 옮겨 다닌 만큼 이들의 행적에 대한 기록도, 정확한 실태 조사도 아직 부진합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친일 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부작위에 의한 역사 왜곡"이라고 말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고, 그 누리집을 보는 많은 시민들은 그 기관·단체장들이 다 훌륭한 일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친일 행적 공개는 각 기관, 단체의 의지 문제로, 그들이 역사적인 사실 속에서 행한 공적 행위이기 때문에 행적 공개는 당연하다"는 겁니다. "또 공개는 또 다른 의미에서 독립운동 계승"이라고도 말합니다.

박경목 충남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도 "과거의 행적은 현재 우리의 잘못이 아니며 당시의 모습들을 정확히 밝혀내고 사실대로 인정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비극적인 반민족 실상의 역사까지 기록화해 뼈아픈 반성과 성찰의 계기로 삼는 것이 우리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관련 기사] “친일 부역 행적 알리는 것도 독립운동”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328287&ref=A

촬영기자 강사완 / 그래픽 박소현·조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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