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출신 99m ‘지장보살’ 동상

입력 2013.09.07 (08:30) 수정 2013.09.0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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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중국에서 얼마전 99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지장보살 동상이 세워져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 크기에 놀라고 또 600억 원이 넘는 엄청난 돈이 투자 됐다는데 또 놀랐는데요.

특히 중국인들은 신라 출신의 고승 김교각 스님을 '인간 세상에 내려온 지장보살', '지장보살의 현신'이라 해서 추앙한다고 하는데..

정말 관심을 끄는 대목입니다.

김교각 스님이 어떻게 지장보살로 추앙받게 됐는지, 그 역사의 비밀을 중국 안후이성 구화산에서 손관수 특파원이 풀어드립니다.

<리포트>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산세가 범상치 않은 중국 안후이성의 구화산.

해발 1342미터 정상 부근에선 뛰어노는 야생 원숭이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생태 보존도 양호합니다.

곳곳에 있는 크고 작은 사찰에서 사시사철 법회가 열릴 정도로 지금도 불교 문화가 성해 4대 불교 명산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구화산 자락에 불교 성지로 조성된 따위앤 문화원 입구.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대부분 후원금을 내고 지장보살 개안식 법회에 온 사람들.

현장에서 입장권을 구하려 해도 기부가 필수입니다.

<인터뷰> 정쥐엔전(저장성 후저우시) : " 이거 어떤 성격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일정하게 헌금을 하고 표를 사는 것이죠 뭐. 그래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고요. 가지고 온 현금이 부족해서요. 돌아갈 여비만 남겨 놓고 2000위안(약 36만원) 헌금 했어요."

더구나 이번 지장보살상은 그 높이가 세계 최고여서 일찍부터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법회에는 중국 전역뿐만 아니라 타이완과 태국, 한국 등지에서 2만 명 넘는 신자가 참석했습니다.

<인터뷰> 리치(상하이시) : " (뒷부분 좀 덮었음) 지장보살의 큰 소망이 '지옥이 텅 비지 않으면 성불을 하지 않겠다, 그때까지 중생구제를 계속하겠다'라는 것 아닙니까? 우리같은 신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존경스러운거죠. 그러니 지장보살 개안식을 한다고 하니 반드시 와봐야죠."

석가모니 부처가 입적한 뒤, 미륵불이 오기 전까지 중생 구제의 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지장보살.

동상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규모가 정말 압도적입니다.

15미터 높이인 연꽃 기단을 포함해 99미터 높이로 세워진 동상.

엄지발가락 하나의 높이가 1미터에 이를 정도입니다.

당초엔 동상 안에 엘리베이터 설치 계획도 있었습니다.

<인터뷰> 루야징(구화산 지장보살 성역관리처) : " 엘리베이터를 타고 불상의 눈에 도착해서 그 불상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는 아이디어는 참 좋은데, 그런데 불상에는 좀 불경스러운거죠. 그래서 이 계획은 후에 취소되었습니다."

10년 전 첫 삽을 뜬 뒤 지장보살 동상 건립엔 구리 1,100톤, 도금을 위한 황금 65킬로그램 등 600억 원이 넘는 거액이 투입됐습니다.

우리에게 더 놀라운 것은 중국 불교도들이 지장보살을 신라 고승 김교각 스님과 동일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차오웨이(구화산 수도승) : " 지장보살은 원래 한국의 태자였죠. 배를 타고 이쪽 서쪽으로 오셨죠. 우리와 한국은 하나의 민족입니다. 하하하.."

신라의 왕자는 어떻게 중국 구화산에서 지장 보살이 되었을까?

우리에게 낯익은 이 석탑들은 왜 여기에 서있는 것일까?

제뒤로 보이는 석탑. 바로 알아보시겠죠?

그렇습니다.

바로 불국사의 다보탑인데요.

이처럼 이곳에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는 이유는 그만큼 구화산과 불국사, 지장보살과 신라가 깊은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화산 옛거리 초입에 있는 사찰 화성사.

신라의 고승 김교각 스님이 손수 지은 첫번째 절입니다.

<인터뷰> 리빠오션(화성사 박물관 연구사) : " 서기 781년에 건립이됐고요. 황제가 직접 쓴 화성사 현판을 받았습니다. 이 사찰은 지장보살(김교각 스님)께서 직접 지은 첫 사찰이고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김교각 스님과 동시대인인이 지은 '화성사기'에는 스님이 지장보살로 추앙 받게 된 과정이 잘 기술돼 있습니다.

일찍이 지장이라는 법호를 가진 승려가 있었다.. 그는 신라 왕자 출신이었으며 신장이 7척으로 힘이 장사였다.

한.중 불교계와 역사학자들의 합동 연구로 이 내용은 역사적 사실로 고증됐습니다.

구화산 가장 높은 봉우리 중의 하나인 천대봉 부근의 한 동굴.

바로 김교각 스님이 머문 곳입니다.

<인터뷰> 스님 : " 신라국에서 넘어오셔서 이곳을 찾으셨죠. 당시에는 사찰이랄 거 하나 없었죠. 여기를 찾으신 다음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수행을 하신 거죠.

보수를 했어도 비가 새고 누추할 정도로 험한 공간.

당시 스님의 정진 수도가 얼마나 힘들었을 지 짐작케 합니다.

동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자그마한 불당.

스님이 남겼다는 발자국이 칠척 장사였다는 기록이 실감날 정도로 큽니다.

<인터뷰> 궈산 스님 : " 이곳은 김교각 스님이 경을 읽던 곳인데요. 원래 작은 돌무대같은 곳이었죠. 후대 사람들이 그분이 성불을 한 후에 남긴 두개의 큰 발자국을 발견하고서는 이곳에 절을 지어 모시게됐죠. 그래서 이곳을 '불경을 읽던 곳'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김교각 스님이 남겼다는 발자국, 일반인보다 많이 크죠?

그의 큰 발자국처럼 김지장, 김교각 스님은 중국 불교사에, 한반도와 중국간의 문화교류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습니다.

구화산을 찾는 신자들과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육신보전'.

지장보살로 승화한 김교각 스님의, '미라가 된 진짜 시신'이 탑 안에 안치돼 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인터뷰> 후징(구화산 가이드 ) : "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3년후에 사도들이 항아리를 열어보니 지장왕보살(김교각 스님)의 육신이 부패한 흔적이 없고 관절에서 쇳소리가 나는 걸 들었습니다 .그래서 '보살은 몸 전체 골격에서 쇠사슬 소리가 난다'는 불경 말씀에 근거해 이분이 바로 지장보살이구나 이렇게 믿게 됐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봉양을 하게 됐습니다."

석양녘이면 지는 해를 바로 받아 더욱 금빛으로 빛나는 지장보살 동상.

동상 높이가 99미터인 것도 바로 아흔 아홉에 입적한 김교각 스님을 기린 것입니다.

각고의 수행과 정진으로 당나라의 중생들을 깨우친 신라의 김교각 스님, 지장보살.

천 3백년을 넘어 한.중 두 나라 국민들의 마음을 다시 일깨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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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 출신 99m ‘지장보살’ 동상
    • 입력 2013-09-07 10:15:11
    • 수정2013-09-07 10:26:59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중국에서 얼마전 99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지장보살 동상이 세워져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 크기에 놀라고 또 600억 원이 넘는 엄청난 돈이 투자 됐다는데 또 놀랐는데요.

특히 중국인들은 신라 출신의 고승 김교각 스님을 '인간 세상에 내려온 지장보살', '지장보살의 현신'이라 해서 추앙한다고 하는데..

정말 관심을 끄는 대목입니다.

김교각 스님이 어떻게 지장보살로 추앙받게 됐는지, 그 역사의 비밀을 중국 안후이성 구화산에서 손관수 특파원이 풀어드립니다.

<리포트>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산세가 범상치 않은 중국 안후이성의 구화산.

해발 1342미터 정상 부근에선 뛰어노는 야생 원숭이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생태 보존도 양호합니다.

곳곳에 있는 크고 작은 사찰에서 사시사철 법회가 열릴 정도로 지금도 불교 문화가 성해 4대 불교 명산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구화산 자락에 불교 성지로 조성된 따위앤 문화원 입구.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대부분 후원금을 내고 지장보살 개안식 법회에 온 사람들.

현장에서 입장권을 구하려 해도 기부가 필수입니다.

<인터뷰> 정쥐엔전(저장성 후저우시) : " 이거 어떤 성격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일정하게 헌금을 하고 표를 사는 것이죠 뭐. 그래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고요. 가지고 온 현금이 부족해서요. 돌아갈 여비만 남겨 놓고 2000위안(약 36만원) 헌금 했어요."

더구나 이번 지장보살상은 그 높이가 세계 최고여서 일찍부터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법회에는 중국 전역뿐만 아니라 타이완과 태국, 한국 등지에서 2만 명 넘는 신자가 참석했습니다.

<인터뷰> 리치(상하이시) : " (뒷부분 좀 덮었음) 지장보살의 큰 소망이 '지옥이 텅 비지 않으면 성불을 하지 않겠다, 그때까지 중생구제를 계속하겠다'라는 것 아닙니까? 우리같은 신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존경스러운거죠. 그러니 지장보살 개안식을 한다고 하니 반드시 와봐야죠."

석가모니 부처가 입적한 뒤, 미륵불이 오기 전까지 중생 구제의 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지장보살.

동상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규모가 정말 압도적입니다.

15미터 높이인 연꽃 기단을 포함해 99미터 높이로 세워진 동상.

엄지발가락 하나의 높이가 1미터에 이를 정도입니다.

당초엔 동상 안에 엘리베이터 설치 계획도 있었습니다.

<인터뷰> 루야징(구화산 지장보살 성역관리처) : " 엘리베이터를 타고 불상의 눈에 도착해서 그 불상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는 아이디어는 참 좋은데, 그런데 불상에는 좀 불경스러운거죠. 그래서 이 계획은 후에 취소되었습니다."

10년 전 첫 삽을 뜬 뒤 지장보살 동상 건립엔 구리 1,100톤, 도금을 위한 황금 65킬로그램 등 600억 원이 넘는 거액이 투입됐습니다.

우리에게 더 놀라운 것은 중국 불교도들이 지장보살을 신라 고승 김교각 스님과 동일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차오웨이(구화산 수도승) : " 지장보살은 원래 한국의 태자였죠. 배를 타고 이쪽 서쪽으로 오셨죠. 우리와 한국은 하나의 민족입니다. 하하하.."

신라의 왕자는 어떻게 중국 구화산에서 지장 보살이 되었을까?

우리에게 낯익은 이 석탑들은 왜 여기에 서있는 것일까?

제뒤로 보이는 석탑. 바로 알아보시겠죠?

그렇습니다.

바로 불국사의 다보탑인데요.

이처럼 이곳에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는 이유는 그만큼 구화산과 불국사, 지장보살과 신라가 깊은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화산 옛거리 초입에 있는 사찰 화성사.

신라의 고승 김교각 스님이 손수 지은 첫번째 절입니다.

<인터뷰> 리빠오션(화성사 박물관 연구사) : " 서기 781년에 건립이됐고요. 황제가 직접 쓴 화성사 현판을 받았습니다. 이 사찰은 지장보살(김교각 스님)께서 직접 지은 첫 사찰이고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김교각 스님과 동시대인인이 지은 '화성사기'에는 스님이 지장보살로 추앙 받게 된 과정이 잘 기술돼 있습니다.

일찍이 지장이라는 법호를 가진 승려가 있었다.. 그는 신라 왕자 출신이었으며 신장이 7척으로 힘이 장사였다.

한.중 불교계와 역사학자들의 합동 연구로 이 내용은 역사적 사실로 고증됐습니다.

구화산 가장 높은 봉우리 중의 하나인 천대봉 부근의 한 동굴.

바로 김교각 스님이 머문 곳입니다.

<인터뷰> 스님 : " 신라국에서 넘어오셔서 이곳을 찾으셨죠. 당시에는 사찰이랄 거 하나 없었죠. 여기를 찾으신 다음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수행을 하신 거죠.

보수를 했어도 비가 새고 누추할 정도로 험한 공간.

당시 스님의 정진 수도가 얼마나 힘들었을 지 짐작케 합니다.

동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자그마한 불당.

스님이 남겼다는 발자국이 칠척 장사였다는 기록이 실감날 정도로 큽니다.

<인터뷰> 궈산 스님 : " 이곳은 김교각 스님이 경을 읽던 곳인데요. 원래 작은 돌무대같은 곳이었죠. 후대 사람들이 그분이 성불을 한 후에 남긴 두개의 큰 발자국을 발견하고서는 이곳에 절을 지어 모시게됐죠. 그래서 이곳을 '불경을 읽던 곳'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김교각 스님이 남겼다는 발자국, 일반인보다 많이 크죠?

그의 큰 발자국처럼 김지장, 김교각 스님은 중국 불교사에, 한반도와 중국간의 문화교류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습니다.

구화산을 찾는 신자들과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육신보전'.

지장보살로 승화한 김교각 스님의, '미라가 된 진짜 시신'이 탑 안에 안치돼 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인터뷰> 후징(구화산 가이드 ) : "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3년후에 사도들이 항아리를 열어보니 지장왕보살(김교각 스님)의 육신이 부패한 흔적이 없고 관절에서 쇳소리가 나는 걸 들었습니다 .그래서 '보살은 몸 전체 골격에서 쇠사슬 소리가 난다'는 불경 말씀에 근거해 이분이 바로 지장보살이구나 이렇게 믿게 됐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봉양을 하게 됐습니다."

석양녘이면 지는 해를 바로 받아 더욱 금빛으로 빛나는 지장보살 동상.

동상 높이가 99미터인 것도 바로 아흔 아홉에 입적한 김교각 스님을 기린 것입니다.

각고의 수행과 정진으로 당나라의 중생들을 깨우친 신라의 김교각 스님, 지장보살.

천 3백년을 넘어 한.중 두 나라 국민들의 마음을 다시 일깨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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