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청구권 없다고? 일본 정부가 틀린 ‘100가지 이유’

입력 2018.12.02 (08:08) 수정 2018.12.0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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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을 놓고 일본 정부의 반발이 나날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이미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한국에는 돈을 지급했고, 협정으로 한국 국민은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단순 논리는 일본 국민 사이에 '이상한 나라 한국'이라는 이미지를 스며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논리는 95%의 일본 국민이 이번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는 여론 조사 결과로 이어졌는데, 일본 정부의 정치적 화법이 먹힌 결과다.

하지만 이러한 일본 정부의 단순 논리에 대해 일본 내 법률 전문가들은 많은 면에서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일본의 단순한 논리를 반박한 명쾌한 논리들을 소개한다.


중국과 한국..."청구권은 살아있다"

2007년 일본의 최고재판소는 중국 강제 노동 피해자들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기각하며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평화조약에 의해 개인의 청구권이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평화조약을 체결한 목적이 무수한 민사소송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는 만큼, 재판소를 사용해 개인을 구제할 수는 없게 됐다. 원고(중국인 노동자)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맛본 것은 사실이다. 피고 기업은 재판소를 통한 과정 외에 있어 책임 있게 성실하게 대응하는 것을 기대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 인사인 하시모토 전 오사카 시장(변호사)조차 판결을 소개하며 이를 이렇게 풀이하고는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즉 재판소는 구제할 수 없지만, 개인 청구권 자체가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다. 이를 바탕으로 피고 기업(미쓰비시)은 재판 외의 방법으로 성실히 대응할 것을 기대한다는 뜻이 된다."

이후 중국 피해자들은 재판받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중국 내에서 2014년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미쓰비시는 이 재판 과정에서 화해해 중국인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게 된다.

미쓰비시는 2016년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고 1인당 10만 위안(약 1,625만 원)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또 일본 외무성이 작성한 '중국인 노동자 사업장별 취로 조사 보고서'에 올라 있는 화해금 지급 대상 3,765명에게 모두 찾아 돈을 지급하기 위해 '역사인권평화기금'을 올해 안에 설치하기로 했다.

중국의 소송 과정을 보면 일본에서의 패소, 자국 내 재판으로 해결 등 우리 징용 피해자들의 소송 과정과 거의 비슷함을 알 수 있다. 화해금이 1인당 10만 위안이고 우리 대법원이 1억 원인 것은 '불법 행위에 대한 그 사회가 상정하는 위자료'에 해당하는 범위에서 결정됐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도 '청구권'은 있다고 봤다.

그럼 중국과 한국의 피해자를 같은 선상에서 놓고 볼 수 있을까? 그 답은 최근 일본 국회 답변에서 고노 외무상이 내놓았다.

고노 외무상은 지난 14일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구타케 일본 공산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답하며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의해 개인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개인청구권을 포함해 한일간의 재산청구권 문제는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이 끝났다"는 주장도 되풀이하는 자기 모순적 발언을 한다.

고노 외무상이 이렇게 논리적 모순에 빠진 것은 이미 외무성이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당시 작성한 대외비 내부 문서에서 "한일청구권 협정 2조(청구권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내용)는 개인이 상대국 국내법상의 청구권을 갖는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미카미 외무성 국제법국장도 이날 답변에서 개인의 권리 자체는 소멸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한국과 중국의 결정적 차이는 결국 일본 정부가 상대를 어느 정도 존중해 이에 대응했느냐에 따라 갈렸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감히 건드릴 수 없는, 경제 이익이 걸린 중국에 대해서는 '화해'를 한국에 대해서는 '겁박'을 택한 아베 정권이다.

일본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기업에 손해를 낳는다.

일본 내 법률 전문가들이 현재 일본 정부의 대응이 각 기업에 손해를 끼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 한일 협정으로 청구권이 소멸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이 법적으로 맞지 않는다며 공동 성명을 채택하고 서명 운동을 제안한 가와카미 변호사는 "아베 정부가 각 기업에 배상금을 지불하지 말라고 하면서 지연 이자(해당 시일 내에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이자가 붙는다)가 발생하는 등 오히려 각 기업들에 손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청구권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정보 등을 모두 감춘 채 단편적인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26일 현재 변호사 198명과 법률학자 11명 등 모두 209명의 법률 전문가가 아베 정부의 '청구권 소멸' 주장이 잘못됐다며 공동 성명에 서명한 상태다.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 정부가 나서 참견하는 것 자체가 극히 보기 드문 경우다. 중국 재판의 경우에서는 이러한 대응을 볼 수 없었다.

자국민에게는 청구권 살아있다 답한 일본 정부

또 다른 관점에서 일본 정부가 개인의 청구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왔는지 알 수 있는 사례는 일본 국민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드러난다.

일본의 미국에 의한 원폭 피해자들과 2차 세계 종전 후 구소련에 억류됐던 일본인들은 개인으로서의 전쟁 피해에 대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원래라면 연합국 등을 제소해야 하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등의 발효에 의해 개인의 청구권이 사라지고 말았다. 정부에 의해 개인의 청구권이 사라진 만큼 일본 정부가 그 몫만큼 보상해야 한다"는 게 소송의 논리다.

여기에 대해 일본 정부는 "평화조약은 국가와 국가 간의 약속이며 개인의 청구권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개인의 청구권을 일본 정부가 빼앗은 것이 아니다"라고 법정 답변하고, 미국과 러시아(구소련)를 상대로 소송을 하라고 했다. 즉 미·일, 소·일 간 청구권이 없다고 조약을 맺었더라도 이 조약이 개인의 청구권을 제약하지는 않는다고 규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에 대해서만 개인 청구권이 없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모습은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국제 조약에도 불구하고 자국민의 청구권은 사라지지 않았고, 한국인의 일본을 상대로한 청구권만 소멸됐다는 주장이다.

참고로 일본이 구소련과 맺은 '소·일 공동 선언(1956년)'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일본국 및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1945년 8월 9일부터 전쟁으로 생긴 각각의 나라, 그 단체 및 국민의 각각 다른 나라, 그 단체 및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을 상호 간에 포기한다."

한일 청구권 협정은 다음과 같다.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소·일 공동 선언 또한 개인 청구권을 명문상 확연히 포기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럼에도 개인 청구권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해석하고 법정에 관련 답변서를 제출했다.

징용이 문제가 아니라 가혹한 강제 노동이 문제

신일철을 방문한 징용 배상 변호인단신일철을 방문한 징용 배상 변호인단

또 한가지. 최근 일본 정부는 신일철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징용(강제성 포함)'된 것이 아닌 모집에 자발적으로 응한 것인 만큼 '한반도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징용이 아닌 만큼 불법행위로 보아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깔려있다. 지극히 대외적 논리 만들기를 위한 수사이다.

그러나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판결을 통해 이미 '징용'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본 기업이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강제했느냐가 문제라고 적시한 바 있다.

우리나라 신일본제철 피해자들이 낸 소송에서도 1심인 오사카 지방 재판소가 이미 노동의 강제성을 인정한 상태다.

결국, 현재 일본 정부의 주장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큰 목소리로 떠드는 '정치적 행위'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상당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제 재판으로 간다면?

일본 정부는 계속해 이 사안을 가지고 국제 재판으로 갈 수 있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발표 내용은 누가 말하듯 똑같다.

"국제 재판 등 대항 조치를 포함해 모든 선택지를 고려해 대응할 것"

국제 재판이라는 '단어'가 갖는 무거움으로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동시에 국제적으로 '우리는 국제 재판을 가도 자신 있다'는 정당성을 내보이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최근 접한 일본 정부 관계자는 고노 외상 등의 과격한 발언 등을 염려하며 "최근의 국제 사법 흐름이 인권을 존중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데..."라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은 공교롭게도 앞서 인용한 대표적 우익 인사인 하시모토 전 오사카 시장으로부터도 나온다. "한일 청구권협정이 있으니까 지금 와서 이것저것 이야기하지마! 라고 하는 태도는 인권과 법을 중시하는 성숙한 민주국가들로부터 외면받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 내 총리실에서 이 문제를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재판으로 가서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자는 무모한 자신감도 위험하고, 그동안 청구권 없다고 해왔는데라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듯한 우리 외교부의 소극적 자세도 우려스럽다.

지금 필요한 건 우리 국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전 세계에도 이를 밝힐 수 있는 간명한 논리이다.

"일본은 왜 한 입으로 두 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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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청구권 없다고? 일본 정부가 틀린 ‘100가지 이유’
    • 입력 2018-12-02 08:08:23
    • 수정2018-12-02 09:35:34
    특파원 리포트
우리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을 놓고 일본 정부의 반발이 나날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이미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한국에는 돈을 지급했고, 협정으로 한국 국민은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단순 논리는 일본 국민 사이에 '이상한 나라 한국'이라는 이미지를 스며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논리는 95%의 일본 국민이 이번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는 여론 조사 결과로 이어졌는데, 일본 정부의 정치적 화법이 먹힌 결과다.

하지만 이러한 일본 정부의 단순 논리에 대해 일본 내 법률 전문가들은 많은 면에서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일본의 단순한 논리를 반박한 명쾌한 논리들을 소개한다.


중국과 한국..."청구권은 살아있다"

2007년 일본의 최고재판소는 중국 강제 노동 피해자들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기각하며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평화조약에 의해 개인의 청구권이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평화조약을 체결한 목적이 무수한 민사소송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는 만큼, 재판소를 사용해 개인을 구제할 수는 없게 됐다. 원고(중국인 노동자)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맛본 것은 사실이다. 피고 기업은 재판소를 통한 과정 외에 있어 책임 있게 성실하게 대응하는 것을 기대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 인사인 하시모토 전 오사카 시장(변호사)조차 판결을 소개하며 이를 이렇게 풀이하고는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즉 재판소는 구제할 수 없지만, 개인 청구권 자체가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다. 이를 바탕으로 피고 기업(미쓰비시)은 재판 외의 방법으로 성실히 대응할 것을 기대한다는 뜻이 된다."

이후 중국 피해자들은 재판받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중국 내에서 2014년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미쓰비시는 이 재판 과정에서 화해해 중국인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게 된다.

미쓰비시는 2016년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고 1인당 10만 위안(약 1,625만 원)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또 일본 외무성이 작성한 '중국인 노동자 사업장별 취로 조사 보고서'에 올라 있는 화해금 지급 대상 3,765명에게 모두 찾아 돈을 지급하기 위해 '역사인권평화기금'을 올해 안에 설치하기로 했다.

중국의 소송 과정을 보면 일본에서의 패소, 자국 내 재판으로 해결 등 우리 징용 피해자들의 소송 과정과 거의 비슷함을 알 수 있다. 화해금이 1인당 10만 위안이고 우리 대법원이 1억 원인 것은 '불법 행위에 대한 그 사회가 상정하는 위자료'에 해당하는 범위에서 결정됐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도 '청구권'은 있다고 봤다.

그럼 중국과 한국의 피해자를 같은 선상에서 놓고 볼 수 있을까? 그 답은 최근 일본 국회 답변에서 고노 외무상이 내놓았다.

고노 외무상은 지난 14일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구타케 일본 공산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답하며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의해 개인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개인청구권을 포함해 한일간의 재산청구권 문제는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이 끝났다"는 주장도 되풀이하는 자기 모순적 발언을 한다.

고노 외무상이 이렇게 논리적 모순에 빠진 것은 이미 외무성이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당시 작성한 대외비 내부 문서에서 "한일청구권 협정 2조(청구권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내용)는 개인이 상대국 국내법상의 청구권을 갖는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미카미 외무성 국제법국장도 이날 답변에서 개인의 권리 자체는 소멸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한국과 중국의 결정적 차이는 결국 일본 정부가 상대를 어느 정도 존중해 이에 대응했느냐에 따라 갈렸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감히 건드릴 수 없는, 경제 이익이 걸린 중국에 대해서는 '화해'를 한국에 대해서는 '겁박'을 택한 아베 정권이다.

일본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기업에 손해를 낳는다.

일본 내 법률 전문가들이 현재 일본 정부의 대응이 각 기업에 손해를 끼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 한일 협정으로 청구권이 소멸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이 법적으로 맞지 않는다며 공동 성명을 채택하고 서명 운동을 제안한 가와카미 변호사는 "아베 정부가 각 기업에 배상금을 지불하지 말라고 하면서 지연 이자(해당 시일 내에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이자가 붙는다)가 발생하는 등 오히려 각 기업들에 손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청구권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정보 등을 모두 감춘 채 단편적인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26일 현재 변호사 198명과 법률학자 11명 등 모두 209명의 법률 전문가가 아베 정부의 '청구권 소멸' 주장이 잘못됐다며 공동 성명에 서명한 상태다.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 정부가 나서 참견하는 것 자체가 극히 보기 드문 경우다. 중국 재판의 경우에서는 이러한 대응을 볼 수 없었다.

자국민에게는 청구권 살아있다 답한 일본 정부

또 다른 관점에서 일본 정부가 개인의 청구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왔는지 알 수 있는 사례는 일본 국민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드러난다.

일본의 미국에 의한 원폭 피해자들과 2차 세계 종전 후 구소련에 억류됐던 일본인들은 개인으로서의 전쟁 피해에 대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원래라면 연합국 등을 제소해야 하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등의 발효에 의해 개인의 청구권이 사라지고 말았다. 정부에 의해 개인의 청구권이 사라진 만큼 일본 정부가 그 몫만큼 보상해야 한다"는 게 소송의 논리다.

여기에 대해 일본 정부는 "평화조약은 국가와 국가 간의 약속이며 개인의 청구권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개인의 청구권을 일본 정부가 빼앗은 것이 아니다"라고 법정 답변하고, 미국과 러시아(구소련)를 상대로 소송을 하라고 했다. 즉 미·일, 소·일 간 청구권이 없다고 조약을 맺었더라도 이 조약이 개인의 청구권을 제약하지는 않는다고 규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에 대해서만 개인 청구권이 없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모습은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국제 조약에도 불구하고 자국민의 청구권은 사라지지 않았고, 한국인의 일본을 상대로한 청구권만 소멸됐다는 주장이다.

참고로 일본이 구소련과 맺은 '소·일 공동 선언(1956년)'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일본국 및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1945년 8월 9일부터 전쟁으로 생긴 각각의 나라, 그 단체 및 국민의 각각 다른 나라, 그 단체 및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을 상호 간에 포기한다."

한일 청구권 협정은 다음과 같다.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소·일 공동 선언 또한 개인 청구권을 명문상 확연히 포기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럼에도 개인 청구권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해석하고 법정에 관련 답변서를 제출했다.

징용이 문제가 아니라 가혹한 강제 노동이 문제

신일철을 방문한 징용 배상 변호인단
또 한가지. 최근 일본 정부는 신일철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징용(강제성 포함)'된 것이 아닌 모집에 자발적으로 응한 것인 만큼 '한반도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징용이 아닌 만큼 불법행위로 보아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깔려있다. 지극히 대외적 논리 만들기를 위한 수사이다.

그러나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판결을 통해 이미 '징용'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본 기업이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강제했느냐가 문제라고 적시한 바 있다.

우리나라 신일본제철 피해자들이 낸 소송에서도 1심인 오사카 지방 재판소가 이미 노동의 강제성을 인정한 상태다.

결국, 현재 일본 정부의 주장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큰 목소리로 떠드는 '정치적 행위'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상당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제 재판으로 간다면?

일본 정부는 계속해 이 사안을 가지고 국제 재판으로 갈 수 있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발표 내용은 누가 말하듯 똑같다.

"국제 재판 등 대항 조치를 포함해 모든 선택지를 고려해 대응할 것"

국제 재판이라는 '단어'가 갖는 무거움으로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동시에 국제적으로 '우리는 국제 재판을 가도 자신 있다'는 정당성을 내보이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최근 접한 일본 정부 관계자는 고노 외상 등의 과격한 발언 등을 염려하며 "최근의 국제 사법 흐름이 인권을 존중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데..."라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은 공교롭게도 앞서 인용한 대표적 우익 인사인 하시모토 전 오사카 시장으로부터도 나온다. "한일 청구권협정이 있으니까 지금 와서 이것저것 이야기하지마! 라고 하는 태도는 인권과 법을 중시하는 성숙한 민주국가들로부터 외면받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 내 총리실에서 이 문제를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재판으로 가서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자는 무모한 자신감도 위험하고, 그동안 청구권 없다고 해왔는데라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듯한 우리 외교부의 소극적 자세도 우려스럽다.

지금 필요한 건 우리 국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전 세계에도 이를 밝힐 수 있는 간명한 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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