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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연 후 연주자가 한 일 - ‘바이올린 여제’ 율리아 피셔의 ‘파격’
입력 2019.03.09 (10:50) 수정 2019.03.09 (13:29) 취재K
▲ 지난 7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LPO와 협연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사진제공 : 빈체로)


지난 7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9년 만에 대한민국 예술의전당을 다시 찾은 런던 필하모닉(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LPO)의 공연 2부에서는 청중들의 눈이 무대 중앙의 지휘자(블라디미르 유롭스키-현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예술감독 및 상임지휘자이며 러시아 국립 스베틀라노프 심포니 예술감독) 쪽이 아닌 무대 맨 왼쪽 뒷편에 쏠렸다.

물론 알아채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았겠지만 오케스트라 제1바이올린 파트 맨 뒤 어깨 부분에, 1부 협연자로 나섰던 '바이올린의 여제' 율리아 피셔(Julia Fischer)가 마치 오케스트라의 단원인 양 천연덕스레(?)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정경화와 안네 소피 무터를 잇는 '여제'로 자리매김 중인 피셔는 1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작품번호 64 협연이 끝난 후 협연 때와는 다른 수수한 검정색 옷으로 갈아입고 조용하게 보일 듯 말 듯 맨 뒷열에 앉아 있었다. 얼핏 보면 그냥 런던 필하모닉의 금발머리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 같아 보였지만 좀 더 자세히 보면 분명 활을 켜는 모습이나 그 품새에서 가히 독보적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걸 감출 수는 없었다.


음악평론가 장일범 씨는 공연 후 자신의 SNS에 "너무나 완벽한 그녀 율리아 피셔! 2부에는 제1바이올린 맨 가장자리에서 태연하게 런던필 단원이 되어 브람스 2번을 연주해 주는 선물까지!역시 율리아 피셔!"라는 글을 남겼고, 또 다른 팬은 "2부 때 1바이올린 맨 뒤에 재등장한 율리아 피셔는 정말 '깜짝 선물'이었다"며 감탄했다.

과연 이런 일이 자주 있을까?

1983년 생으로 다양한 재능을 겸비한 율리아 피셔는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로서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하다. 독일에서 태어난 피셔는 3세에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 9세에 뮌헨 음악 아카데미에 최연소로 입학했고, 12세에 예후디 메뉴힌 국제 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하며 이후 거장 지휘자들과의 협연을 통해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섰다. 특히 2008년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테 오퍼에서 피아니스트로 데뷔 무대를 갖기도 했는데, 1부에서는 생상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을 연주하고 2부에서는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해 크나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어릴 때 역시 영재 바이올리니스트로도 각광받았던 천재 지휘자 로린 마젤은 어린 피셔와 직접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연주할 정도로 오랫 동안 기꺼이 그녀의 멘토가 되어 주었다.


현재 힐러리 한, 재닌 얀센 등과 함께 21세기 바이올린계를 이끌어 갈 '현의 여제'로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는 그녀는 바이올린을 마치 '독일 기계'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면서도 깔끔하게 연주했는데 왜 클래식 팬들이 '비교 불가'라고 하는지 단숨에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피셔는 상체를 거의 움직이지 않고 너무나 편안해 보이면서 쉽게 연주를 했는데 '연주'라는 행위 자체를 진정 '즐긴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협연을 마치고 2부에서도 남다른 '파격'을 선보인 게 아니었을지.

뒷 이야기가 궁금해 기획사 측에 질의를 넣었고, 피셔가 지난 5일 오후에 들어와 연일 두 개의 공연을 마치고 바로 다음 날 출국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연주'라는 피셔의 '깜짝 선물'은 기획사도, 오케스트라도, 지휘자의 제안도 아닌 순전히 본인의 결정이었으며 사전 조율도 없이 이뤄져 기획사 관계자들도 결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정단원이 아니니 당연히(?) 맨 뒤에 앉았지만, 정단원들조차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율리아 피셔는 협연을 하고 나서 케미가 잘 맞은 오케스트라와는 가끔 본인이 요청해서 2부 때 단원으로 들어간다는 사실도 듣게 되었다. 말도 행동도 언제나 적극적이고, 어디에서건 빼는 법 없이 당당하다는 피셔다운 습관(?)이었다. 특히 이번 내한 공연에서는 2부 때 무대에 나가면서 "(1부 협연 때) 관객들의 반응도 완벽했고, 오케스트라 또한 좋아서 2부 무대에서도 꼭 함께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그럼 다른 연주자들은 어떨까? 협연이 끝나고 함께 호흡을 맞췄던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모두 마칠 때까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지난해 6월 14일 일본 도쿄 산토리홀에서 있었던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hr-Sinfonieorchester)의 협연에서 조성진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마친 뒤 객석에 앉아 '관객'으로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말러 교향곡 5번을 감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또한 흔치는 않은 일로서 대개의 경우 협연자들은 1부를 마친 뒤 2부에서는 지휘자나 오케스트라를 존중하는 뜻으로 객석에서 관람을 하기도 하지만, 또 많은 경우에 무대 뒷편 출연자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지휘자와 인사를 하기도 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경우에는 싸인회 같은 일정이 없을 경우 먼저 숙소로 돌아가기도 한다고.

독주자로서 뿐 아니라 협연자로도 각광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사진제공: 빈체로)독주자로서 뿐 아니라 협연자로도 각광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사진제공: 빈체로)

그러니 율리아 피셔에게도 계속 이어서 연주를 하는 것 말고 분명히 다른 선택이 있었을 터인데 그녀는 팬들을 위해, 또 스스로를 위해 공연이 끝나는 순간까지 열정으로 함께한 것이다. 물론 '무료 봉사'로. 그저 좋아서 말이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면 베토벤이나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같은 연주 시간이 긴 대곡이 아닌 멘델스존 협주곡은 상대적으로 연주 시간이 짧아 좀 더 심적 여유가 생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건 이번 공연으로 그녀는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와 내공이 뒷받침된 탄탄한 실력으로 3년 만의 내한에서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겼다.

낭중지추. 게다가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면서 즐기기까지 하는 자타 공인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는 오는 7월(7월 6일 서울 예술의전당) 다시 한국을 찾는다. 이번엔 모국 드레스덴 필하모닉과 함께.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때도 벌써부터 예상 가능한 모종의 '파격'이 예정돼 있다는 점. 피셔가 드레스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미하일 잔데를링과 매우 돈독한 사이인데 특이하게도 이번엔 1부에서 협주곡을 하는 게 아니라 2부에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다고. 특별한 그녀를 특별하게 배려하는 차원인 것 같다는 게 기획자 관계자 분의 전언이다. 그럼 이번에는 1부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깜짝 등장하는 피셔를 볼 수 있을지?

  • 협연 후 연주자가 한 일 - ‘바이올린 여제’ 율리아 피셔의 ‘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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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9-03-09 13:29:08
    취재K
▲ 지난 7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LPO와 협연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사진제공 : 빈체로)


지난 7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9년 만에 대한민국 예술의전당을 다시 찾은 런던 필하모닉(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LPO)의 공연 2부에서는 청중들의 눈이 무대 중앙의 지휘자(블라디미르 유롭스키-현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예술감독 및 상임지휘자이며 러시아 국립 스베틀라노프 심포니 예술감독) 쪽이 아닌 무대 맨 왼쪽 뒷편에 쏠렸다.

물론 알아채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았겠지만 오케스트라 제1바이올린 파트 맨 뒤 어깨 부분에, 1부 협연자로 나섰던 '바이올린의 여제' 율리아 피셔(Julia Fischer)가 마치 오케스트라의 단원인 양 천연덕스레(?)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정경화와 안네 소피 무터를 잇는 '여제'로 자리매김 중인 피셔는 1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작품번호 64 협연이 끝난 후 협연 때와는 다른 수수한 검정색 옷으로 갈아입고 조용하게 보일 듯 말 듯 맨 뒷열에 앉아 있었다. 얼핏 보면 그냥 런던 필하모닉의 금발머리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 같아 보였지만 좀 더 자세히 보면 분명 활을 켜는 모습이나 그 품새에서 가히 독보적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걸 감출 수는 없었다.


음악평론가 장일범 씨는 공연 후 자신의 SNS에 "너무나 완벽한 그녀 율리아 피셔! 2부에는 제1바이올린 맨 가장자리에서 태연하게 런던필 단원이 되어 브람스 2번을 연주해 주는 선물까지!역시 율리아 피셔!"라는 글을 남겼고, 또 다른 팬은 "2부 때 1바이올린 맨 뒤에 재등장한 율리아 피셔는 정말 '깜짝 선물'이었다"며 감탄했다.

과연 이런 일이 자주 있을까?

1983년 생으로 다양한 재능을 겸비한 율리아 피셔는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로서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하다. 독일에서 태어난 피셔는 3세에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 9세에 뮌헨 음악 아카데미에 최연소로 입학했고, 12세에 예후디 메뉴힌 국제 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하며 이후 거장 지휘자들과의 협연을 통해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섰다. 특히 2008년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테 오퍼에서 피아니스트로 데뷔 무대를 갖기도 했는데, 1부에서는 생상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을 연주하고 2부에서는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해 크나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어릴 때 역시 영재 바이올리니스트로도 각광받았던 천재 지휘자 로린 마젤은 어린 피셔와 직접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연주할 정도로 오랫 동안 기꺼이 그녀의 멘토가 되어 주었다.


현재 힐러리 한, 재닌 얀센 등과 함께 21세기 바이올린계를 이끌어 갈 '현의 여제'로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는 그녀는 바이올린을 마치 '독일 기계'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면서도 깔끔하게 연주했는데 왜 클래식 팬들이 '비교 불가'라고 하는지 단숨에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피셔는 상체를 거의 움직이지 않고 너무나 편안해 보이면서 쉽게 연주를 했는데 '연주'라는 행위 자체를 진정 '즐긴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협연을 마치고 2부에서도 남다른 '파격'을 선보인 게 아니었을지.

뒷 이야기가 궁금해 기획사 측에 질의를 넣었고, 피셔가 지난 5일 오후에 들어와 연일 두 개의 공연을 마치고 바로 다음 날 출국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연주'라는 피셔의 '깜짝 선물'은 기획사도, 오케스트라도, 지휘자의 제안도 아닌 순전히 본인의 결정이었으며 사전 조율도 없이 이뤄져 기획사 관계자들도 결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정단원이 아니니 당연히(?) 맨 뒤에 앉았지만, 정단원들조차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율리아 피셔는 협연을 하고 나서 케미가 잘 맞은 오케스트라와는 가끔 본인이 요청해서 2부 때 단원으로 들어간다는 사실도 듣게 되었다. 말도 행동도 언제나 적극적이고, 어디에서건 빼는 법 없이 당당하다는 피셔다운 습관(?)이었다. 특히 이번 내한 공연에서는 2부 때 무대에 나가면서 "(1부 협연 때) 관객들의 반응도 완벽했고, 오케스트라 또한 좋아서 2부 무대에서도 꼭 함께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그럼 다른 연주자들은 어떨까? 협연이 끝나고 함께 호흡을 맞췄던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모두 마칠 때까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지난해 6월 14일 일본 도쿄 산토리홀에서 있었던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hr-Sinfonieorchester)의 협연에서 조성진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마친 뒤 객석에 앉아 '관객'으로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말러 교향곡 5번을 감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또한 흔치는 않은 일로서 대개의 경우 협연자들은 1부를 마친 뒤 2부에서는 지휘자나 오케스트라를 존중하는 뜻으로 객석에서 관람을 하기도 하지만, 또 많은 경우에 무대 뒷편 출연자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지휘자와 인사를 하기도 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경우에는 싸인회 같은 일정이 없을 경우 먼저 숙소로 돌아가기도 한다고.

독주자로서 뿐 아니라 협연자로도 각광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사진제공: 빈체로)독주자로서 뿐 아니라 협연자로도 각광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사진제공: 빈체로)

그러니 율리아 피셔에게도 계속 이어서 연주를 하는 것 말고 분명히 다른 선택이 있었을 터인데 그녀는 팬들을 위해, 또 스스로를 위해 공연이 끝나는 순간까지 열정으로 함께한 것이다. 물론 '무료 봉사'로. 그저 좋아서 말이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면 베토벤이나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같은 연주 시간이 긴 대곡이 아닌 멘델스존 협주곡은 상대적으로 연주 시간이 짧아 좀 더 심적 여유가 생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건 이번 공연으로 그녀는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와 내공이 뒷받침된 탄탄한 실력으로 3년 만의 내한에서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겼다.

낭중지추. 게다가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면서 즐기기까지 하는 자타 공인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는 오는 7월(7월 6일 서울 예술의전당) 다시 한국을 찾는다. 이번엔 모국 드레스덴 필하모닉과 함께.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때도 벌써부터 예상 가능한 모종의 '파격'이 예정돼 있다는 점. 피셔가 드레스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미하일 잔데를링과 매우 돈독한 사이인데 특이하게도 이번엔 1부에서 협주곡을 하는 게 아니라 2부에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다고. 특별한 그녀를 특별하게 배려하는 차원인 것 같다는 게 기획자 관계자 분의 전언이다. 그럼 이번에는 1부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깜짝 등장하는 피셔를 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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