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물이 없는 정부”…우리가 몰랐던 임시정부의 속사정

입력 2019.04.13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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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흔적을 남깁니다. 호랑이는 가죽을,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죠. 옛 정부는 무엇을 남길까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기록 유산'일 겁니다. 정부의 공식 기록이면 그 가치는 더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생각해보면 그 중요성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 기록 유산의 중요성…그런데 임시정부는?

그렇다면 11일 수립 100주년을 기념한 임시정부는 어떤 기록을 남겼을까요. 놀랍게도 거의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많은 기록을 남겼지만 대부분 잃어버렸습니다. 여태 못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찾으려고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관인이다. 임시의정원은 지금의 국회와 같은 곳이다. 하지만 행정부 역할을 했던 임시정부의 관인은 없다. 문서도 거의 없다.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관인이다. 임시의정원은 지금의 국회와 같은 곳이다. 하지만 행정부 역할을 했던 임시정부의 관인은 없다. 문서도 거의 없다.

기록 유산의 차원에서 보자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마치 이런 존재입니다. 3·1 운동 이후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나타났다 광복과 함께 땅으로 쑥 꺼지 듯 사라진 정부입니다. 정책은 어떻게 결정됐는지, 인사와 예산은 어땠는지 등을 알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 그 많던 기록물은 어디로?…두 차례의 결정적 순간

비록 임시정부는 힘겨운 살림이었지만 공식 문서와 기록물을 다수 생산했습니다. 비교적 기록물이 잘 보존된 임시의정원의 기록물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중한 기록 유산들은 두 차례에 걸쳐 송두리째 사라집니다. 두 차례의 결정적 순간이 있었습니다.


1950년 9월 서울 수복 직후1950년 9월 서울 수복 직후

사라진 임시정부의 기록물은 어떤 문서들이었을까요. 간접 자료 등으로 추정할 때 ① 임시정부 국무회의 회의록 ② 대국민 포고문 ③ 법률 제정안 ④ 각 부서 인사 자료 ⑤ 각 부서 재정 자료 등이었을 걸로 보입니다.

■ 이벤트도 좋지만…'임정 문서' 환수는 뒷전

분실된 임시정부 문서의 행방은 지금까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모두 불에 타거나 파기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랬다면 되돌릴 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보관돼 있을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제라도 되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정부는 임정 문서의 행방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0여 년 전 국사편찬위원회가 임정 자료집을 내기 위해 해외 사료를 확보하려 애썼지만 실패한 것이 마지막이라고 합니다. 해외 반출된 문화재 환수에는 신경을 써온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열린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식. 2시간 미만의 행사를 위해 정부 예산 8억 5천만 원이 쓰였다. 반면 임정 문서 환수 노력은 10년째 중단됐다.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열린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식. 2시간 미만의 행사를 위해 정부 예산 8억 5천만 원이 쓰였다. 반면 임정 문서 환수 노력은 10년째 중단됐다.

■ "여기 있을 것 같다" 일부 학자들의 노력

정부가 손을 놓은 사이 학자들은 그 행방을 추적해 왔습니다. 임시정부에 대한 손꼽히는 연구자인 단국대 한시준 명예교수는 1932년에 분실된 문서는 중국 상하이 당안관(정부기록보관소)에, 6·25 때 분실된 문서는 북한 인민대학습당에 보관돼 있을 걸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행정력의 한계와 네트워크의 부족으로 공식 확인은 못 하고 있습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었다고 강조하면서 임정이 남긴 기록물도 못 찾는 현실. 역사는 기억의 전쟁임을 생각한다면 답답한 노릇입니다. 임시정부 연구자의 말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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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록물이 없는 정부”…우리가 몰랐던 임시정부의 속사정
    • 입력 2019-04-13 07:07:17
    취재K
과거는 흔적을 남깁니다. 호랑이는 가죽을,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죠. 옛 정부는 무엇을 남길까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기록 유산'일 겁니다. 정부의 공식 기록이면 그 가치는 더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생각해보면 그 중요성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 기록 유산의 중요성…그런데 임시정부는?

그렇다면 11일 수립 100주년을 기념한 임시정부는 어떤 기록을 남겼을까요. 놀랍게도 거의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많은 기록을 남겼지만 대부분 잃어버렸습니다. 여태 못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찾으려고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관인이다. 임시의정원은 지금의 국회와 같은 곳이다. 하지만 행정부 역할을 했던 임시정부의 관인은 없다. 문서도 거의 없다.
기록 유산의 차원에서 보자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마치 이런 존재입니다. 3·1 운동 이후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나타났다 광복과 함께 땅으로 쑥 꺼지 듯 사라진 정부입니다. 정책은 어떻게 결정됐는지, 인사와 예산은 어땠는지 등을 알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 그 많던 기록물은 어디로?…두 차례의 결정적 순간

비록 임시정부는 힘겨운 살림이었지만 공식 문서와 기록물을 다수 생산했습니다. 비교적 기록물이 잘 보존된 임시의정원의 기록물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중한 기록 유산들은 두 차례에 걸쳐 송두리째 사라집니다. 두 차례의 결정적 순간이 있었습니다.


1950년 9월 서울 수복 직후
사라진 임시정부의 기록물은 어떤 문서들이었을까요. 간접 자료 등으로 추정할 때 ① 임시정부 국무회의 회의록 ② 대국민 포고문 ③ 법률 제정안 ④ 각 부서 인사 자료 ⑤ 각 부서 재정 자료 등이었을 걸로 보입니다.

■ 이벤트도 좋지만…'임정 문서' 환수는 뒷전

분실된 임시정부 문서의 행방은 지금까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모두 불에 타거나 파기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랬다면 되돌릴 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보관돼 있을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제라도 되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정부는 임정 문서의 행방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0여 년 전 국사편찬위원회가 임정 자료집을 내기 위해 해외 사료를 확보하려 애썼지만 실패한 것이 마지막이라고 합니다. 해외 반출된 문화재 환수에는 신경을 써온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열린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식. 2시간 미만의 행사를 위해 정부 예산 8억 5천만 원이 쓰였다. 반면 임정 문서 환수 노력은 10년째 중단됐다.
■ "여기 있을 것 같다" 일부 학자들의 노력

정부가 손을 놓은 사이 학자들은 그 행방을 추적해 왔습니다. 임시정부에 대한 손꼽히는 연구자인 단국대 한시준 명예교수는 1932년에 분실된 문서는 중국 상하이 당안관(정부기록보관소)에, 6·25 때 분실된 문서는 북한 인민대학습당에 보관돼 있을 걸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행정력의 한계와 네트워크의 부족으로 공식 확인은 못 하고 있습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었다고 강조하면서 임정이 남긴 기록물도 못 찾는 현실. 역사는 기억의 전쟁임을 생각한다면 답답한 노릇입니다. 임시정부 연구자의 말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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