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박근혜 청와대 “침실 문 여러 번 두드렸다”

입력 2019.04.16 (09:32) 수정 2019.04.1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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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오늘(4월 16일) 아침,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을 때 박근혜 청와대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었을까.

이른바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해서 박근혜 청와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2016년 11월 19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을 앞두고 청와대는 홈페이지에 '세월호 당일, 이것이 팩트입니다'라는 글을 올려 세월호 당일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을 공개했다.

이 해명에 의하면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이 사고 당일 아침 10시 국가안보실로부터 최초 서면 보고를 받고 사고 내용을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은 15분 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인명 구조를 지시했고, 10시 22분에 추가로 전화 지시를 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의 대처는 적절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검찰 수사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심지어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공문서까지 조작했다. 지난해 3월 28일 검찰 발표 내용을 토대로 5년 전 아침 청와대 상황을 되짚어 본다.

침실에서 답이 없었던 박 전 대통령

세월호가 침몰하던 2014년 4월 16일, 박 전 대통령은 본관 집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있었다.

오전 9시 19분 방송사 속보를 통해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9시 24분경 청와대 문자 메시지 발송 시스템을 통해 문자 메시지가 발송됐다.

김장수 안보실장은 오전 10시쯤 국가안보실 직원으로부터 사고 관련 소식들 듣고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로 마음먹는다. 박 전 대통령이 관저에 머물고 있음을 감안해 휴대전화를 걸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초조해진 김 실장은 안봉근 비서관에게 "대통령이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지금 대통령에게 세월호 관련 상황 보고서 1보가 올라갈 예정이니 대통령에게 보고될 수 있게 조치해 달라"고 말한다.

이어 김 실장은 부하 직원을 통해 상황보고서를 관저에 전달하라고 지시했고, 상황병은 오전 10시 19~20분쯤 관저 근무 경호관을 통해 내실 근무자인 김모(여, 71)에게 보고서를 전달한다.

김 씨는 별도의 구두 전달 없이 박 전 대통령 침실 앞에 있는 탁자 위에 보고서를 올려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무렵까지도 박 전 대통령은 연락되지 않았다.

김 실장은 위기관리센터로 내려가 박 전 대통령에게 휴대전화를 걸었지만, 이때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침실 문 두드린 안봉근

박 전 대통령이 연락이 안 되자 안 비서관은 관저로 출발했다.

오전 10시 20분쯤 부하 직원인 이영선 행정관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관저로 간다.

이어 내실로 들어가서 침실 앞에서 여러 차례 대통령을 불렀고, 이 소리에 박 전 대통령은 침실 밖으로 나온다.

여기서 안 비서관은 "국가안보실장이 급한 통화를 원하십니다."라는 보고를 했고, 박 전 대통령은 "그래요?"라 말한 뒤 침실로 들어가 김장수 실장과 첫 통화가 이뤄진다. 이때가 오전 10시 22분이다.

이때 이뤄진 첫 보고에서 박 전 대통령은 김 실장에게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여객선 내 객실, 엔진실 등을 철저히 수색하여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한다.


골든타임 지나 보고받은 박 전 대통령

문제는 이때는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시간이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탑승객 구조 골든타임의 마지막 시간을 10시 17분으로 봤다.

10시 17분에 세월호는 108도로 전도돼 구조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검찰이 각종 회의자료를 확인한 결과 당시 청와대는 세월호 선내에서 발송된 마지막 카카오톡 시간인 오전 10시 17분을 탑승자를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 종료 시점으로 간주했다. 박근혜 청와대가 당초 해명에서 박 전 대통령의 사고 인지 시점을 오전 10시로 설명한 것도 이런 인식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에 의하면 이는 거짓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고 인지 시점은 골든타임을 5분이나 넘긴 10시 22분이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세월호 골든타임 이전에 대통령의 보고와 지시가 있었다고 가장하기 위해 국회 답변서 등 공문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공무원에게 부당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 검찰의 수사 결과다. 검찰은 지난해 3월 수사 발표에서 "사고 무렵 박 전 대통령은 정호성 비서관에게 매주 수요일은 가급적 공식 일정을 잡지 말도록 지시했다"며 "세월호 보고가 늦었던 것도 사고 당일인 4월 16일이 수요일인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의 혐의로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장수 전 국가 안보실장을 기소했고, 현재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다.


최순실도 청와대에 있었다

5년 전 오늘, 청와대에는 최순실도 있었다.

탄핵심판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7시간' 의혹과 관련해 당일 간호장교와 미용사를 제외하고 어떤 외부인도 관저에 들어온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에 의하면 이마저도 거짓이었다.

최순실 씨는 세월호 사고 당일 이영선 전 경호관이 모는 차를 타고 오후 2시 15분께 청와대로 들어와 '문고리 3인 방'인 정호성·안봉근·비서관이 참여한 가운데 박 전 대통령과 회의를 연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도 최씨가 참여한 당시 '5인 회의'에서 결정됐다.

그 사이 세월호는 그렇게 가라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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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년 전 오늘 박근혜 청와대 “침실 문 여러 번 두드렸다”
    • 입력 2019-04-16 09:32:10
    • 수정2019-04-16 17:40:21
    취재K
5년 전 오늘(4월 16일) 아침,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을 때 박근혜 청와대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었을까.

이른바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해서 박근혜 청와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2016년 11월 19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을 앞두고 청와대는 홈페이지에 '세월호 당일, 이것이 팩트입니다'라는 글을 올려 세월호 당일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을 공개했다.

이 해명에 의하면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이 사고 당일 아침 10시 국가안보실로부터 최초 서면 보고를 받고 사고 내용을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은 15분 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인명 구조를 지시했고, 10시 22분에 추가로 전화 지시를 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의 대처는 적절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검찰 수사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심지어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공문서까지 조작했다. 지난해 3월 28일 검찰 발표 내용을 토대로 5년 전 아침 청와대 상황을 되짚어 본다.

침실에서 답이 없었던 박 전 대통령

세월호가 침몰하던 2014년 4월 16일, 박 전 대통령은 본관 집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있었다.

오전 9시 19분 방송사 속보를 통해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9시 24분경 청와대 문자 메시지 발송 시스템을 통해 문자 메시지가 발송됐다.

김장수 안보실장은 오전 10시쯤 국가안보실 직원으로부터 사고 관련 소식들 듣고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로 마음먹는다. 박 전 대통령이 관저에 머물고 있음을 감안해 휴대전화를 걸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초조해진 김 실장은 안봉근 비서관에게 "대통령이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지금 대통령에게 세월호 관련 상황 보고서 1보가 올라갈 예정이니 대통령에게 보고될 수 있게 조치해 달라"고 말한다.

이어 김 실장은 부하 직원을 통해 상황보고서를 관저에 전달하라고 지시했고, 상황병은 오전 10시 19~20분쯤 관저 근무 경호관을 통해 내실 근무자인 김모(여, 71)에게 보고서를 전달한다.

김 씨는 별도의 구두 전달 없이 박 전 대통령 침실 앞에 있는 탁자 위에 보고서를 올려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무렵까지도 박 전 대통령은 연락되지 않았다.

김 실장은 위기관리센터로 내려가 박 전 대통령에게 휴대전화를 걸었지만, 이때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침실 문 두드린 안봉근

박 전 대통령이 연락이 안 되자 안 비서관은 관저로 출발했다.

오전 10시 20분쯤 부하 직원인 이영선 행정관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관저로 간다.

이어 내실로 들어가서 침실 앞에서 여러 차례 대통령을 불렀고, 이 소리에 박 전 대통령은 침실 밖으로 나온다.

여기서 안 비서관은 "국가안보실장이 급한 통화를 원하십니다."라는 보고를 했고, 박 전 대통령은 "그래요?"라 말한 뒤 침실로 들어가 김장수 실장과 첫 통화가 이뤄진다. 이때가 오전 10시 22분이다.

이때 이뤄진 첫 보고에서 박 전 대통령은 김 실장에게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여객선 내 객실, 엔진실 등을 철저히 수색하여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한다.


골든타임 지나 보고받은 박 전 대통령

문제는 이때는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시간이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탑승객 구조 골든타임의 마지막 시간을 10시 17분으로 봤다.

10시 17분에 세월호는 108도로 전도돼 구조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검찰이 각종 회의자료를 확인한 결과 당시 청와대는 세월호 선내에서 발송된 마지막 카카오톡 시간인 오전 10시 17분을 탑승자를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 종료 시점으로 간주했다. 박근혜 청와대가 당초 해명에서 박 전 대통령의 사고 인지 시점을 오전 10시로 설명한 것도 이런 인식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에 의하면 이는 거짓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고 인지 시점은 골든타임을 5분이나 넘긴 10시 22분이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세월호 골든타임 이전에 대통령의 보고와 지시가 있었다고 가장하기 위해 국회 답변서 등 공문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공무원에게 부당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 검찰의 수사 결과다. 검찰은 지난해 3월 수사 발표에서 "사고 무렵 박 전 대통령은 정호성 비서관에게 매주 수요일은 가급적 공식 일정을 잡지 말도록 지시했다"며 "세월호 보고가 늦었던 것도 사고 당일인 4월 16일이 수요일인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의 혐의로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장수 전 국가 안보실장을 기소했고, 현재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다.


최순실도 청와대에 있었다

5년 전 오늘, 청와대에는 최순실도 있었다.

탄핵심판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7시간' 의혹과 관련해 당일 간호장교와 미용사를 제외하고 어떤 외부인도 관저에 들어온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에 의하면 이마저도 거짓이었다.

최순실 씨는 세월호 사고 당일 이영선 전 경호관이 모는 차를 타고 오후 2시 15분께 청와대로 들어와 '문고리 3인 방'인 정호성·안봉근·비서관이 참여한 가운데 박 전 대통령과 회의를 연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도 최씨가 참여한 당시 '5인 회의'에서 결정됐다.

그 사이 세월호는 그렇게 가라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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