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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기획 창] 집값, 알면 뭐해
입력 2019.12.07 (09:02) 수정 2020.01.03 (13:29) 취재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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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2년마다인 거죠?


1989년과 1990년, 한국사회에서는 일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잇따랐다. 집값은 뛰고 살 집은 부족해지면서 삶의 위협을 받게 된 이들의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당시만 해도 1년이던 전세 계약기간이 2년으로 늘어난 것도 이때였다. 세입자의 권리를 이야기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올해 10월 100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를 출범시켰다.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발전 과정에서 늘 뒤로 밀리고 소외됐던 세입자 주거 안정을 위한 입법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었다.

주거는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조건 중 하나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아니다. 집주인이 집세를 올리고 싶으면 올린다. 집주인이 원하면 세입자는 2년만 살고 집을 비워줘야 한다. 상가는 보호해도 집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


"5년간 임대료 인상 동결"

독일 베를린 시는 올해 10월 주거안정을 위한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5년 동안 임대료 인상을 동결했다. 지난 10년간 임대료가 2배 이상 폭등하면서 베를린 시민이 소득에 맞는 집을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 집주인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법안은 통과됐다. 주거안정이라는 정부주거정책의 기본을 잊지 않았다. 법안이 시행되면 임대주택 공급이 부족해질 거란 주장에 대해서도 베를린 시 정부의 입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임대료 동결은 주택 공급 부족을 해결하는 정책이 아니라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집주인 이익이 세입자 희생 담보해선 안 돼"

일본은 세입자보호는 '차지차가법'에 근간을 두고 있다. '차지' 땅을 임대하고, '차가' 집을 임대한다는 의미로 임차인을 보호하는 데 주택과 상가 건물을 따로 구분짓지 않는다.

이 법은 일본제국주의 시기이던 1912~1926년 사이에 제정됐다. 당시 일본에는 징병제가 있었다. 남자들이 군대에 가 있는 동안 남은 가족들이 땅이나 집을 빌려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필요해졌고, 이것이 법을 만들게 된 취지였다.

이 정신은 지금도 이어지면서 세입자가 원하지 않으면 집주인은 세입자를 마음대로 내보낼 수 없다. 집주인이 소송을 걸어도 웬만해선 세입자 위주의 판결이 내려진다. 일본사회에서 세입자는 갑이고 집주인은 을이다. 집주인의 경제적 이익이 세입자의 희생을 담보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임대료 인상 규제 대상 확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돈을 많이 푸는 양적완화 정책을 폈다. 이 바람에 대도시를 중심으로 부동산 버블이 발생하고 임대료가 상승하고 있는 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뉴욕 시도 세입자 보호 정책을 강화했다. 임대료 인상률 제한을 받지 않던 월세 3백만 원 이상 건물에 대해서도 임대료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거꾸로 가는 한국 주거정책

하지만 한국정부의 해법은 달랐다. 임대료가 오르자 전세대출, 월세대출로 서민의 주거문제를 풀려고 시도했다. 임대등록사업을 확대해 집주인이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면 세입자에게 임대료 인상률을 연 5% 이하로 제한하고 거주 계약기간을 4~8년을 보장하도록 했다.

대신 집주인에게 각종 세제 혜택과 주택담보대출 확대 등 파격적인 혜택을 몰아줬다. 그 결과 갭투자가 유행처럼 번지고, 집값과 임대료는 오르면서 세입자는 더 큰 빚쟁이가 되거나 주거불안이 심해졌다. 주거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나만 이런 생각해?

지금 20대 국회는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를 빼고 임대기간을 늘리는 계약갱신청구권만 도입하는 걸 논의 중이다. 수레의 두 바퀴라며 함께 도입돼야 한다는 소리는 묻히고 있다. 주거불안을 느낀 세입자의 잇따른 죽음으로 전세 계약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난 지 올해로 꼭 30년이 됐다. 이제는 한국사회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2019년 12월 7일 저녁 8시 5분 KBS 1TV 방송, <시사기획 창 / 집값, 알면 뭐해>

  • [시사기획 창] 집값, 알면 뭐해
    • 입력 2019-12-07 09:02:00
    • 수정2020-01-03 13:29:56
    취재K

왜 우리는 2년마다인 거죠?


1989년과 1990년, 한국사회에서는 일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잇따랐다. 집값은 뛰고 살 집은 부족해지면서 삶의 위협을 받게 된 이들의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당시만 해도 1년이던 전세 계약기간이 2년으로 늘어난 것도 이때였다. 세입자의 권리를 이야기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올해 10월 100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를 출범시켰다.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발전 과정에서 늘 뒤로 밀리고 소외됐던 세입자 주거 안정을 위한 입법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었다.

주거는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조건 중 하나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아니다. 집주인이 집세를 올리고 싶으면 올린다. 집주인이 원하면 세입자는 2년만 살고 집을 비워줘야 한다. 상가는 보호해도 집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


"5년간 임대료 인상 동결"

독일 베를린 시는 올해 10월 주거안정을 위한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5년 동안 임대료 인상을 동결했다. 지난 10년간 임대료가 2배 이상 폭등하면서 베를린 시민이 소득에 맞는 집을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 집주인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법안은 통과됐다. 주거안정이라는 정부주거정책의 기본을 잊지 않았다. 법안이 시행되면 임대주택 공급이 부족해질 거란 주장에 대해서도 베를린 시 정부의 입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임대료 동결은 주택 공급 부족을 해결하는 정책이 아니라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집주인 이익이 세입자 희생 담보해선 안 돼"

일본은 세입자보호는 '차지차가법'에 근간을 두고 있다. '차지' 땅을 임대하고, '차가' 집을 임대한다는 의미로 임차인을 보호하는 데 주택과 상가 건물을 따로 구분짓지 않는다.

이 법은 일본제국주의 시기이던 1912~1926년 사이에 제정됐다. 당시 일본에는 징병제가 있었다. 남자들이 군대에 가 있는 동안 남은 가족들이 땅이나 집을 빌려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필요해졌고, 이것이 법을 만들게 된 취지였다.

이 정신은 지금도 이어지면서 세입자가 원하지 않으면 집주인은 세입자를 마음대로 내보낼 수 없다. 집주인이 소송을 걸어도 웬만해선 세입자 위주의 판결이 내려진다. 일본사회에서 세입자는 갑이고 집주인은 을이다. 집주인의 경제적 이익이 세입자의 희생을 담보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임대료 인상 규제 대상 확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돈을 많이 푸는 양적완화 정책을 폈다. 이 바람에 대도시를 중심으로 부동산 버블이 발생하고 임대료가 상승하고 있는 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뉴욕 시도 세입자 보호 정책을 강화했다. 임대료 인상률 제한을 받지 않던 월세 3백만 원 이상 건물에 대해서도 임대료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거꾸로 가는 한국 주거정책

하지만 한국정부의 해법은 달랐다. 임대료가 오르자 전세대출, 월세대출로 서민의 주거문제를 풀려고 시도했다. 임대등록사업을 확대해 집주인이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면 세입자에게 임대료 인상률을 연 5% 이하로 제한하고 거주 계약기간을 4~8년을 보장하도록 했다.

대신 집주인에게 각종 세제 혜택과 주택담보대출 확대 등 파격적인 혜택을 몰아줬다. 그 결과 갭투자가 유행처럼 번지고, 집값과 임대료는 오르면서 세입자는 더 큰 빚쟁이가 되거나 주거불안이 심해졌다. 주거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나만 이런 생각해?

지금 20대 국회는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를 빼고 임대기간을 늘리는 계약갱신청구권만 도입하는 걸 논의 중이다. 수레의 두 바퀴라며 함께 도입돼야 한다는 소리는 묻히고 있다. 주거불안을 느낀 세입자의 잇따른 죽음으로 전세 계약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난 지 올해로 꼭 30년이 됐다. 이제는 한국사회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2019년 12월 7일 저녁 8시 5분 KBS 1TV 방송, <시사기획 창 / 집값, 알면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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