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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기자들Q] 소수자 인권에 무관심한 언론
입력 2022.01.15 (10:07) 취재K

"어마어마한 욕을 먹었습니다. 병X 육X하네. 집에 처박혀서 가만히 있지 그렇게 아침부터 나와서 그러니까 너희들 도와주고 싶어도 동정하고 싶어도 해줄 수가 없다 그런 욕을 먹고 있습니다!"

지난 5일, 혜화역 출근길 시위에서 이형숙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외친 말입니다.

이들 단체는 지난해 12월부터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저상버스와 장애인 콜택시 등을 늘려 교통약자의 대중교통 접근성을 높여달라는 요구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하철이 연착돼 출근길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시위가 계속되면서 크고 작은 충돌은 일상이 됐습니다. 이들은 욕먹을걸 알면서 왜 이런 시위를 벌이는 걸까요?

"그동안 장애인들을 무심히 아는 척도 안 했다면 이렇게 좀 부정적이라도 '야, 니네 장애인들 왜 돌아다녀?'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엄청난 호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욕이지만 이후에는 그래도 '너희가 이렇게 하니까 좀 바뀌었구나'. 실질적으로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니까 노인, 아이 같은 교통약자가 다 이용하잖아요? 분명히 저상버스가 100% 도입돼서 운행이 된다면 이것은 모든 시민의 안전이거든요."
-이형숙 /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목소리에 언론과 시민이 귀기울이지 않아 이런 과격한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언론 보도 추이를 분석해보면 이 대표의 말대로 평소 언론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출근길 선전전이 집중됐던 지난해 12월 한 달간 중앙일간지 9곳이 보도한 장애인 이동권 관련 기사는 모두 합쳐 12건. 같은 기간 7개 지상파·종편방송의 저녁 종합뉴스에는 총 5건의 보도만 이뤄졌습니다.

장애인들의 시위가 계속됐음에도 한달 간 '메인뉴스'로 거의 다뤄지지 않은 겁니다.



인터넷 기사는 이보다 훨씬 많았지만 내용이 문제였습니다. 취재진이 네이버 제휴 900여 개 매체를 대상으로 분석해보니 12월 한 달간 장애인 이동권을 다룬 기사는 85개 매체 320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출근길 시민 불편을 강조한 기사가 많았고 '장애인 이동권', '저상버스', '교통약자법' 등 장애인들이 시위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습니다.

그러면 지난해 전체로 범위를 넓혀서 보면 어떨까요? 장애인 단체는 지난해 내내 이동권 보장을 외쳤습니다.


역시 대다수 언론이 눈길을 끌 만한 특정 이벤트가 있었던 날에만 '반짝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장애인 전문 매체를 빼면 평소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들여다본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도가 이렇게 이벤트성으로만 다뤄질 경우 자칫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로 출근길 시민 불편을 강조한 인터넷 기사에는 비판·비난 댓글로 도배됐지만 조금이라도 그 맥락을 전한 기사에는 "일부 이해한다"는 댓글이 달려 미묘하게 대비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예 보도하지 않는 것도 나쁜 보도에 속하지만, 보도를 했는데 본질을 보도하지 않아서 오히려 장애인들에 대한 오해를 더 높이고 사회 갈등을 조장하거나 초래하게 되면 사실은 이게 더 나쁜 보도가 될 수 있다라는 생각이고요. 어떻게 보도하느냐가 더 본질적으로 우리 언론인들이 좀 고민해야 될 지점이다..."
-신미희 /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장애인뿐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나 노인 등 사회적 소수자를 다루는 언론의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정한 사건이 없으면 잘 보도되지 않은 게 일반적인 현실인데요. 언론이 평소 소수자 이슈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지적이 지속되는 이유입니다.

이와 관련해 언론사 주요 인적 구성 자체가 '고학력 남성층'에 쏠려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그래서 최근 국내외 언론계에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뉴스룸의 다양성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별과 연령, 인종, 출신 지역 등을 고려해 뉴스룸 인적 구성을 지금보다 다양하게 하고 서로 간 소통을 강화하면 언론사의 편향된 시각을 상당 부분 바꿔나갈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의도적으로 더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방송에 반영하려는 노력도 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BBC 등 120여 개 유럽 방송사들이 앞장서서 시도하고 있는데요. 나름 유의미한 성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국내 언론계에서도 몇몇 신문과 방송을 중심으로 젠더 감수성을 높이고 소통을 확대하는 등 뉴스룸 내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현실적인 한계도 많습니다. 한국적 상황에 맞는 다양성 확보 방안을 지속적으로 고민해봐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실효성 여부를 떠나 땅에 떨어진 언론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가용한 모든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기자들도 많습니다.

뉴스의 다양성을 높이면 정말 언론의 '고질병' 같았던 소수자에 대한 무관심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까요?


16일(일) 저녁 8시 10분 KBS1TV에서 방송되는 <질문하는 기자들 Q> 36회에서는 소수자 인권에 무관심한 언론의 실태를 살펴보고 그 대안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뉴스룸 내 다양성 확보 시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김솔희 KBS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이 날 방송에는 최근 관련 연구 보고서를 낸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이 특별 출연하고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임주현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질문하는 기자들 Q> 는 KBS 홈페이지와 유튜브 계정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 프로그램 홈페이지 : 질문하는 기자들 Q (https://program.kbs.co.kr/1tv/culture/question)
▲ 유튜브 계정 : 질문하는 기자들 Q (www.youtube.com/c/질문하는기자들Q/featured)
  • [질문하는 기자들Q] 소수자 인권에 무관심한 언론
    • 입력 2022-01-15 10:07:27
    취재K

"어마어마한 욕을 먹었습니다. 병X 육X하네. 집에 처박혀서 가만히 있지 그렇게 아침부터 나와서 그러니까 너희들 도와주고 싶어도 동정하고 싶어도 해줄 수가 없다 그런 욕을 먹고 있습니다!"

지난 5일, 혜화역 출근길 시위에서 이형숙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외친 말입니다.

이들 단체는 지난해 12월부터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저상버스와 장애인 콜택시 등을 늘려 교통약자의 대중교통 접근성을 높여달라는 요구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하철이 연착돼 출근길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시위가 계속되면서 크고 작은 충돌은 일상이 됐습니다. 이들은 욕먹을걸 알면서 왜 이런 시위를 벌이는 걸까요?

"그동안 장애인들을 무심히 아는 척도 안 했다면 이렇게 좀 부정적이라도 '야, 니네 장애인들 왜 돌아다녀?'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엄청난 호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욕이지만 이후에는 그래도 '너희가 이렇게 하니까 좀 바뀌었구나'. 실질적으로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니까 노인, 아이 같은 교통약자가 다 이용하잖아요? 분명히 저상버스가 100% 도입돼서 운행이 된다면 이것은 모든 시민의 안전이거든요."
-이형숙 /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목소리에 언론과 시민이 귀기울이지 않아 이런 과격한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언론 보도 추이를 분석해보면 이 대표의 말대로 평소 언론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출근길 선전전이 집중됐던 지난해 12월 한 달간 중앙일간지 9곳이 보도한 장애인 이동권 관련 기사는 모두 합쳐 12건. 같은 기간 7개 지상파·종편방송의 저녁 종합뉴스에는 총 5건의 보도만 이뤄졌습니다.

장애인들의 시위가 계속됐음에도 한달 간 '메인뉴스'로 거의 다뤄지지 않은 겁니다.



인터넷 기사는 이보다 훨씬 많았지만 내용이 문제였습니다. 취재진이 네이버 제휴 900여 개 매체를 대상으로 분석해보니 12월 한 달간 장애인 이동권을 다룬 기사는 85개 매체 320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출근길 시민 불편을 강조한 기사가 많았고 '장애인 이동권', '저상버스', '교통약자법' 등 장애인들이 시위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습니다.

그러면 지난해 전체로 범위를 넓혀서 보면 어떨까요? 장애인 단체는 지난해 내내 이동권 보장을 외쳤습니다.


역시 대다수 언론이 눈길을 끌 만한 특정 이벤트가 있었던 날에만 '반짝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장애인 전문 매체를 빼면 평소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들여다본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도가 이렇게 이벤트성으로만 다뤄질 경우 자칫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로 출근길 시민 불편을 강조한 인터넷 기사에는 비판·비난 댓글로 도배됐지만 조금이라도 그 맥락을 전한 기사에는 "일부 이해한다"는 댓글이 달려 미묘하게 대비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예 보도하지 않는 것도 나쁜 보도에 속하지만, 보도를 했는데 본질을 보도하지 않아서 오히려 장애인들에 대한 오해를 더 높이고 사회 갈등을 조장하거나 초래하게 되면 사실은 이게 더 나쁜 보도가 될 수 있다라는 생각이고요. 어떻게 보도하느냐가 더 본질적으로 우리 언론인들이 좀 고민해야 될 지점이다..."
-신미희 /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장애인뿐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나 노인 등 사회적 소수자를 다루는 언론의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정한 사건이 없으면 잘 보도되지 않은 게 일반적인 현실인데요. 언론이 평소 소수자 이슈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지적이 지속되는 이유입니다.

이와 관련해 언론사 주요 인적 구성 자체가 '고학력 남성층'에 쏠려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그래서 최근 국내외 언론계에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뉴스룸의 다양성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별과 연령, 인종, 출신 지역 등을 고려해 뉴스룸 인적 구성을 지금보다 다양하게 하고 서로 간 소통을 강화하면 언론사의 편향된 시각을 상당 부분 바꿔나갈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의도적으로 더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방송에 반영하려는 노력도 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BBC 등 120여 개 유럽 방송사들이 앞장서서 시도하고 있는데요. 나름 유의미한 성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국내 언론계에서도 몇몇 신문과 방송을 중심으로 젠더 감수성을 높이고 소통을 확대하는 등 뉴스룸 내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현실적인 한계도 많습니다. 한국적 상황에 맞는 다양성 확보 방안을 지속적으로 고민해봐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실효성 여부를 떠나 땅에 떨어진 언론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가용한 모든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기자들도 많습니다.

뉴스의 다양성을 높이면 정말 언론의 '고질병' 같았던 소수자에 대한 무관심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까요?


16일(일) 저녁 8시 10분 KBS1TV에서 방송되는 <질문하는 기자들 Q> 36회에서는 소수자 인권에 무관심한 언론의 실태를 살펴보고 그 대안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뉴스룸 내 다양성 확보 시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김솔희 KBS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이 날 방송에는 최근 관련 연구 보고서를 낸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이 특별 출연하고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임주현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질문하는 기자들 Q> 는 KBS 홈페이지와 유튜브 계정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 프로그램 홈페이지 : 질문하는 기자들 Q (https://program.kbs.co.kr/1tv/culture/question)
▲ 유튜브 계정 : 질문하는 기자들 Q (www.youtube.com/c/질문하는기자들Q/featu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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