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몰랐던 수상한 공사…알고 보니 ‘미군 사격장’ [취재후]

입력 2023.05.11 (08:03) 수정 2023.05.1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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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 전화를 받았습니다. 경남 창원 도심 야산에서 대규모 벌목 작업이 이뤄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녹지에서 벌목 행위는 법률로 엄격히 제한되지만, 담당구청은 이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시민도, 자치단체도 모르게 진행된 수상한 벌목 공사!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걸까요.

■ 거대한 민둥산의 정체는?…'주한미군 전용 사격장'

벌목 공사가 진행된 곳,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도심 한가운데 있는 팔룡산 자락입니다.

경남 창원시 의창구 팔룡산. 산비탈이 대규모 벌목 작업으로 텅 비었다.경남 창원시 의창구 팔룡산. 산비탈이 대규모 벌목 작업으로 텅 비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숲으로 울창했던 산은 나무 수백 그루가 잘려 곳곳이 텅 비어버렸습니다.

추정되는 벌목 규모는 최대 만 5천여㎡입니다. 산비탈이 갑자기 민둥산이 된 모습에 주민들은 당황했습니다.

윤주열/경남 창원시 의창구

"어느 날 창문 밖을 내다봤는데, 산 중턱에 있는 나무들이 다 잘려있었습니다. 주민들 사이에서 '무슨 벌목 공사를 저렇게 크게 하느냐'는 말도 나오고, 다들 놀라고 궁금해했습니다."

벌목 작업을 벌인 주체는 국방부와 주한미군!

KBS 취재결과, 이들은 이곳에 주한미군 전용 사격장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3월 벌목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2025년 3월 완공을 목표로 공사를 진행했으며, 공식 사업명은 '한강 이남 주한미군 전용 소총 사격장'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방부는 "해당 사격장이 1972년 우리 정부가 미군에게 공여한 땅에 조성된 것으로, 원래 있던 사격장을 개선하는 공사"라고 해명했습니다.

■ 산비탈 텅 비었는데 '개선 공사'?…"주거지도 가까워"

하지만 '개선'이라고 표현하기엔 이번 공사 규모가 꽤 큽니다. 만㎡가 넘는 벌목 면적을 볼 때, 시설 개선보다는 사격장 규모 '확장'에 더 가깝습니다.

경남 창원시 주한미군 전용 소총 사격장 주변 모습경남 창원시 주한미군 전용 소총 사격장 주변 모습

게다가 입지는 도심 주거지와 매우 가깝습니다. 공사 현장에서 2km 안으로 천 가구 이상 아파트 단지 5곳과 학교 2곳이 있고, 버스터미널과 대형상점·공장 등은 더 가까이 있습니다.

소음이나 오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한 겁니다. 아파트 거실에서 미군 사격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은 보안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KBS 취재진이 공사 현장에서 직선 거리로 1.1km 떨어진 아파트 거실에서 내려다본 모습KBS 취재진이 공사 현장에서 직선 거리로 1.1km 떨어진 아파트 거실에서 내려다본 모습

지역 주민

"아파트 거실 창문을 열면 사격장 공사 현장이 훤히 내려다보입니다. 훈련이나 사격하는 모습을 주민들이 다 지켜볼텐데, 군사 보안 시설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짓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 "자치단체 협의 의무 아냐"…SOFA 협정 살펴봤더니

하지만 국방부는 미군 전용 사격장 공사 관련 내용을 경상남도와 창원시에 전혀 알리지 않았습니다.


주한미군 지위협정, SOFA에 따라 공여지 안 시설 사업은 국내법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자치단체 협의가 의무가 아니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또, 군사 보안을 이유로 사격장 면적과 규모·향후 활용 여부 등 관련 정보도 일절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2001년 개정된 ‘주한미군 지위협정’(SOFA) 양해사항 제3조2001년 개정된 ‘주한미군 지위협정’(SOFA) 양해사항 제3조

하지만 2001년 개정된 SOFA 양해사항에는 "지역사회 건강과 공공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신축 또는 개축 공사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가 지방정부와 조정을 하며 건축 계획을 검토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둬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사실상 국방부가 지방정부와 협의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던 것인데, 이를 간과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권정호/ 변호사

"소파 협정 '양해사항(understanding)'이 구속력 있는 조항은 아니지만, 양해사항도 소파의 한 부속 협정이라고 봐야 합니다. 거기에 나와 있는 '시설'이라는 단어는 예시적 규정이기 때문에, 확장 공사도 포함시켜서 해석해야 한다고 봅니다."

■ 도심 미군 사격장 공사에 '반발 확산'…"당장 폐쇄하라"

대한민국 땅에서 벌어지는 주한미군 전용 사격장 공사입니다.

1980년 당시 경남 창원시 의창구 일대 모습.  주한미군은 1972년부터 이곳 야산 땅을 공여받아 사격장으로 사용했다.1980년 당시 경남 창원시 의창구 일대 모습. 주한미군은 1972년부터 이곳 야산 땅을 공여받아 사격장으로 사용했다.

미군에 사격장 부지를 처음 공여했던 50년 전과 달리, 도시 개발로 주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인근 학교 운동장에서도, 고층 아파트에서도 사격장 공사 현장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소파(SOFA)협정에 따라 국내법 적용을 받지 않아도, 관할 자치단체와 협의 한 번 하지 않았던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KBS 취재진은 시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미군 전용 사격장 공사를 단독 보도했습니다.


도심 한복판에 주한미군 전용 사격장이 있는 지도 몰랐던 시민들은 50년 만에 처음 마주한 주한미군 전용 사격장에 깜짝 놀랐습니다.

곧바로 공사 중단과 시설 이전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창원시 홈페이지에는 "사격장을 당장 폐쇄해야 한다", "최근 분양받은 아파트가 '총알 품은 아파트'가 됐다"는 시민 반발이 이어졌습니다.

■ 주한 미군 "공사 잠정 중단"…주민 "사격장 이전해야"


시민 반발과 우려가 커지자, 주한미군과 국방부는 지난 4일 사격장 공사를 일단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안전상 문제 등 주민 우려 사항은 창원시와 함께 해결 방안을 찾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신속하고 이례적인 결정이었지만 주민 불안은 여전합니다. 사격장 폐쇄나 이전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논란이 되는 사격장 명칭은 ‘마산사격장(Masan Range)’이다. M16/M4 소총과 M249 기관총 등 총기 종류가 적혀 있다.논란이 되는 사격장 명칭은 ‘마산사격장(Masan Range)’이다. M16/M4 소총과 M249 기관총 등 총기 종류가 적혀 있다.

공사가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는 만큼, 시민단체들은 '사격장 이전 대책위원회'를 꾸렸습니다. 창원시는 시민 안전을 위해 조만간 국방부를 찾아 사격장 이전을 공식 건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 도심 속 주한미군 전용 사격장, 이전 가능성은?

2019년 3월, 주한미군이 ‘마산 사격장’에서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2019년 3월, 주한미군이 ‘마산 사격장’에서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50년 만에 실체가 알려진 도심 속 주한미군 전용 사격장, 이제 관심은 사격장 이전과 폐쇄로 쏠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협의 과정에서 상당한 난관이 따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격장을 이전하는 데는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데다, 대체 부지를 찾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이번 사격장은 공여지 내 군사 시설이라 이전하려면 주한미군 측 동의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주한미군 전용 사격장의 군사적 목적과 함께, 주민 불안과 우려까지 해소할 수 있는 합리적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까요?
KBS 취재진은 해당 사격장의 향후 경과와 조치에 대해 꾸준히 취재를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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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도 몰랐던 수상한 공사…알고 보니 ‘미군 사격장’ [취재후]
    • 입력 2023-05-11 08:03:45
    • 수정2023-05-11 09:51:28
    취재후·사건후

제보 전화를 받았습니다. 경남 창원 도심 야산에서 대규모 벌목 작업이 이뤄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녹지에서 벌목 행위는 법률로 엄격히 제한되지만, 담당구청은 이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시민도, 자치단체도 모르게 진행된 수상한 벌목 공사!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걸까요.

■ 거대한 민둥산의 정체는?…'주한미군 전용 사격장'

벌목 공사가 진행된 곳,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도심 한가운데 있는 팔룡산 자락입니다.

경남 창원시 의창구 팔룡산. 산비탈이 대규모 벌목 작업으로 텅 비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숲으로 울창했던 산은 나무 수백 그루가 잘려 곳곳이 텅 비어버렸습니다.

추정되는 벌목 규모는 최대 만 5천여㎡입니다. 산비탈이 갑자기 민둥산이 된 모습에 주민들은 당황했습니다.

윤주열/경남 창원시 의창구

"어느 날 창문 밖을 내다봤는데, 산 중턱에 있는 나무들이 다 잘려있었습니다. 주민들 사이에서 '무슨 벌목 공사를 저렇게 크게 하느냐'는 말도 나오고, 다들 놀라고 궁금해했습니다."

벌목 작업을 벌인 주체는 국방부와 주한미군!

KBS 취재결과, 이들은 이곳에 주한미군 전용 사격장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3월 벌목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2025년 3월 완공을 목표로 공사를 진행했으며, 공식 사업명은 '한강 이남 주한미군 전용 소총 사격장'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방부는 "해당 사격장이 1972년 우리 정부가 미군에게 공여한 땅에 조성된 것으로, 원래 있던 사격장을 개선하는 공사"라고 해명했습니다.

■ 산비탈 텅 비었는데 '개선 공사'?…"주거지도 가까워"

하지만 '개선'이라고 표현하기엔 이번 공사 규모가 꽤 큽니다. 만㎡가 넘는 벌목 면적을 볼 때, 시설 개선보다는 사격장 규모 '확장'에 더 가깝습니다.

경남 창원시 주한미군 전용 소총 사격장 주변 모습
게다가 입지는 도심 주거지와 매우 가깝습니다. 공사 현장에서 2km 안으로 천 가구 이상 아파트 단지 5곳과 학교 2곳이 있고, 버스터미널과 대형상점·공장 등은 더 가까이 있습니다.

소음이나 오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한 겁니다. 아파트 거실에서 미군 사격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은 보안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KBS 취재진이 공사 현장에서 직선 거리로 1.1km 떨어진 아파트 거실에서 내려다본 모습
지역 주민

"아파트 거실 창문을 열면 사격장 공사 현장이 훤히 내려다보입니다. 훈련이나 사격하는 모습을 주민들이 다 지켜볼텐데, 군사 보안 시설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짓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 "자치단체 협의 의무 아냐"…SOFA 협정 살펴봤더니

하지만 국방부는 미군 전용 사격장 공사 관련 내용을 경상남도와 창원시에 전혀 알리지 않았습니다.


주한미군 지위협정, SOFA에 따라 공여지 안 시설 사업은 국내법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자치단체 협의가 의무가 아니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또, 군사 보안을 이유로 사격장 면적과 규모·향후 활용 여부 등 관련 정보도 일절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2001년 개정된 ‘주한미군 지위협정’(SOFA) 양해사항 제3조
하지만 2001년 개정된 SOFA 양해사항에는 "지역사회 건강과 공공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신축 또는 개축 공사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가 지방정부와 조정을 하며 건축 계획을 검토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둬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사실상 국방부가 지방정부와 협의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던 것인데, 이를 간과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권정호/ 변호사

"소파 협정 '양해사항(understanding)'이 구속력 있는 조항은 아니지만, 양해사항도 소파의 한 부속 협정이라고 봐야 합니다. 거기에 나와 있는 '시설'이라는 단어는 예시적 규정이기 때문에, 확장 공사도 포함시켜서 해석해야 한다고 봅니다."

■ 도심 미군 사격장 공사에 '반발 확산'…"당장 폐쇄하라"

대한민국 땅에서 벌어지는 주한미군 전용 사격장 공사입니다.

1980년 당시 경남 창원시 의창구 일대 모습.  주한미군은 1972년부터 이곳 야산 땅을 공여받아 사격장으로 사용했다.
미군에 사격장 부지를 처음 공여했던 50년 전과 달리, 도시 개발로 주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인근 학교 운동장에서도, 고층 아파트에서도 사격장 공사 현장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소파(SOFA)협정에 따라 국내법 적용을 받지 않아도, 관할 자치단체와 협의 한 번 하지 않았던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KBS 취재진은 시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미군 전용 사격장 공사를 단독 보도했습니다.


도심 한복판에 주한미군 전용 사격장이 있는 지도 몰랐던 시민들은 50년 만에 처음 마주한 주한미군 전용 사격장에 깜짝 놀랐습니다.

곧바로 공사 중단과 시설 이전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창원시 홈페이지에는 "사격장을 당장 폐쇄해야 한다", "최근 분양받은 아파트가 '총알 품은 아파트'가 됐다"는 시민 반발이 이어졌습니다.

■ 주한 미군 "공사 잠정 중단"…주민 "사격장 이전해야"


시민 반발과 우려가 커지자, 주한미군과 국방부는 지난 4일 사격장 공사를 일단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안전상 문제 등 주민 우려 사항은 창원시와 함께 해결 방안을 찾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신속하고 이례적인 결정이었지만 주민 불안은 여전합니다. 사격장 폐쇄나 이전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논란이 되는 사격장 명칭은 ‘마산사격장(Masan Range)’이다. M16/M4 소총과 M249 기관총 등 총기 종류가 적혀 있다.
공사가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는 만큼, 시민단체들은 '사격장 이전 대책위원회'를 꾸렸습니다. 창원시는 시민 안전을 위해 조만간 국방부를 찾아 사격장 이전을 공식 건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 도심 속 주한미군 전용 사격장, 이전 가능성은?

2019년 3월, 주한미군이 ‘마산 사격장’에서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50년 만에 실체가 알려진 도심 속 주한미군 전용 사격장, 이제 관심은 사격장 이전과 폐쇄로 쏠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협의 과정에서 상당한 난관이 따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격장을 이전하는 데는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데다, 대체 부지를 찾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이번 사격장은 공여지 내 군사 시설이라 이전하려면 주한미군 측 동의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주한미군 전용 사격장의 군사적 목적과 함께, 주민 불안과 우려까지 해소할 수 있는 합리적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까요?
KBS 취재진은 해당 사격장의 향후 경과와 조치에 대해 꾸준히 취재를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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