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가 싫어하는 국가성공 절대공식

입력 2024.10.19 (08:03) 수정 2024.10.1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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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실패한 채로 화석이 된 왕조

긴말이 필요할까. 북한은 실패한 체제다. 이 사진이 웅변한다. 밤이면 깜깜한 북한, 한반도 북쪽 반쪽에는 남쪽에 있는 것과 같은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언어, 문화, 역사를 공유하는 한 민족의 운명이 이토록 극명하게 엇갈린 적이 인류 문명사에 있을까.


북한은 결과적으로 산업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했고, 국민의 삶이 나아지게 하지 못했다. 경제성장에 실패했다.

그뿐 아니다. 정치적 자유도 억압한다. 생각의 자유를 보장할 수 없다. 집회와 결사를 통제한다. 사실 남쪽의 드라마와 음악을 들을 자유마저 강압적으로 틀어막아야 하니 나머지 정치 사회적 자유를 말하는 건 사치다. 그래야 간신히 지탱하는 실패한 국가가 되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AJR(대런 아제모을루의 A, 사이먼 존슨의 J, 제임스 로빈슨의 R) 이야기를 한국에서 하려면 여기서 시작하는 게 좋겠다. 질문을 던져보자.


왜 그렇게 됐을까?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0. 경제학 원론을 배운 똘똘이가 대답한다. 경제적 산출물을 증가시키려면 노동(L)과 자본(K)과 그 외 노력(TFP)을 충분히 더하면 되지 않을까요?

1. 그러자 뉴스를 많이 본 눈썰미가 대답한다. 정부의 미시적 개입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중앙은행이 금융정책으로 금리를 내리거나, 재정정책으로 정부가 돈을 풀면 되지 않을까요?

2. 아닙니다. 역사를 잘 아는 학습이가 말한다.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정부가 필요합니다. 저개발 상태에서는 때로는 누군가 '독재'라고 비난해도, 역시 리더십이 필요하죠. 결국 가난한 국가를 부국의 반열에 올려놓는 힘은 카리스마적 리더의 정치적 역량 아닐까요?

3. 뒤에 있던 검은 포스의 지관이가 나지막이 말한다. 아니죠. 아니죠, 다 운이 좋아야 합니다. 천운이 필요합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식민지가 되지 않은 타이 같은 행운, 아니면 미국처럼 연이은 세계대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졌으면서도 충분한 땅과 자원과 인구를 가진 행운이 필요합니다. 이게 갖춰지지 않으면 다 말짱 황이죠.

누구 말이 맞을까, 대체 무엇일까? 한 국가를 궁극적으로 부강한 체제로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기인할까?


AJR은 있다고 했다. 그들이 노벨상을 받은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위에 거론한 모든 요소에 앞선 뭔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해 인류에 공헌했다.

■ AJR의 속삭임 : 절대공식은 00야

500년 전에는 미국도 캐나다도 호주도 보잘것없는 땅이었다. 서기 1,500년쯤, 도시화는커녕 사람이 살지도 않았다. 그땐 이집트, 모로코, 알제리, 방글라데시, 르완다가 더 도시화하였거나 인구밀도가 높은 국가였다. 심지어 1800년대까지도 쿠바나 멕시코가 오히려 나았다.
노벨 위원회 자료, 〈부의 역전〉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노벨 위원회 자료, 〈부의 역전〉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운명을 바꾼 건 '질병'이다. 서구의 발전된 문명은 각 국가에 '질병' 때문에 불균등하게 전달됐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질병 등으로 인해 정주 여건이 나쁜 곳에서 서구는 '제국의 시민 수가 적어도 착취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착취적이다.

반면, 살기 좋은 곳에는 '제국의 시민이 많이 가서 정착했을 때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좀 더 포용적이고 민주적이다. 그 차이가 500년 뒤 국가의 '성공'과 '실패'를 가른 결정적 차이다. (저자들이 제국주의나 식민지 정책을 합리화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이 역사적 과정을 '자연 실험'으로 활용했다.)

〈노벨 위원회〉 식민지에 정착한 본국 시민의 사망률이 높으면 정착민이 적어도 유지 가능한 ‘착취적 제도’가 형성된다. 반대로 미국이나 호주 같은 지역에선 사망률이 높지 않아 영국 시민이 많이 정착했고 식미지지만 ‘포용적 제도’가 자리잡았다.〈노벨 위원회〉 식민지에 정착한 본국 시민의 사망률이 높으면 정착민이 적어도 유지 가능한 ‘착취적 제도’가 형성된다. 반대로 미국이나 호주 같은 지역에선 사망률이 높지 않아 영국 시민이 많이 정착했고 식미지지만 ‘포용적 제도’가 자리잡았다.

다시 말하면 정치, 사회, 문화적 시스템... 통틀어서 말하면 <제도 Institution>다. 국가의 성공은 일차적으로 '경제성장'의 문제이지만,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공은 그 성장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포용적 제도 Inclusive institutions>에 달려있다는 통찰이다.

포용적 제도를 쉽게 말하면, 구성원들이 지속적으로 기술 혁신을 할 수 있고, 그래서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제도다. 우선은 사적소유의 권리가 중요하다. 지식재산권을 보호해야 한다. 나의 성공은 나의 소유다. 이게 경제 인센티브의 본질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기회가 균등해야 한다.

또 정치적 안정을 해야 하는데 이는 정 반대되는 제도인 <착취적 제도 Extractive Institutions>를 타파함으로서 달성할 수 있다. 독재와 왕정은 시민을 착취하는 제도다. 그러면 장기 지속하는 성장은 불가능하다. 여기에 저항해 민주주의를 달성해 내는 '사람의 힘(민주화)'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영국처럼 피 흘리지 않고 달성할 수도 있지만, 한국처럼 민중의 희생과 저항을 통해 한 발 한 발 내딛기도 한다. 즉, 민주주의로 향하는 <결정적 분기점 Critical Juncture>이 있어야 제도의 차이가 안착하고 지속가능하다.

경제를 논하면서 장기적인 정치, 사회, 문화적 조건(즉, 제도)을 가져온 AJR 3인방을 '제도학파'로 분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노벨 위원회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까지만 언급했다

대중들에 알려진 AJR의 중요 저작은 모두 세 권이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2012, Why Nations Fail)?
-좁은 회랑(2019, The Narrow Corridor)
-권력과 진보 (2023, Power and Progress)

(논문으로는 <장기 성장의 근본 원인으로서의 제도 2005, Institutions as a Fundamental Cause of Long-Run Growth>가 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AJR을 글로벌 슈퍼스타로 만든 저작이다. 노벨상을 받은 내용이 압축되어 있다. 국가의 장기적 흥망을 결정하는 제도의 힘을 다룬다. 착취적 제도와 포용적 제도를 비교한다. 이 책으로 '이미 노벨상을 예약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대한민국과 북한의 대조 또한 이 책에 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노벨 위원회는 유튜브에 공개한 선정 사유와 수상자 인터뷰(아제모을루) 동영상에서 이 책에서 논의한 내용까지만 거론했다는 점이다.
https://www.youtube.com/live/GX55YHSjZWA?si=nHU-pfmjtmPSNjTH

<좁은 회랑>(2019, 성장의 장기 지속을 위해서는 국가의 힘과 사회적 힘 사이의 섬세한 균형이 필요하다)이나 <권력과 진보>(2023, 기술 그 자체는 번영을 약속하지 않는다. 공동의 번영을 향하도록 기술을 구부려야 한다.)와 같은 후속 저작 역시 세 학자 모두가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평가를 받는데, 별도로 소개하지 않았다.

단, 마지막 기자 질의·답변 과정에서 이 내용이 등장한다. 스웨덴 기자가 '당신이 국가 성공의 열쇠로 지목한 제도의 질(Quality)이나 궤적(Trajectory)이 오늘날 미국 등 국가에서 어때보여요?'라고 묻는다. 즉, 지금 세상의 제도는 당신이 말한 '포용적 제도'에 부합합니까? 하는 질문이다.


■ 시대불만 "사실은 제가 상당히 걱정하는 부분입니다"

아제모을루는 '데이터를 보면 걱정스럽다'며 입을 연다.

"미국과 몇몇 유럽, 그리고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데이터상으로 제도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가 사상 최저 수준(All time low)이다. (국제기구는 물론 미국의 퓨리서치나 이코노미스트지의 조사를 참조해도 그렇다.)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신뢰하지 않으면 빠른 성장과 사회적 합의가 어렵다. 좋은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부패를 막고, 불평등을 완화해 공동의 번영을 이뤄야 하는데 지금은 어려운 시절이다. 따라서 더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힘을 믿고 또 그에 따라 경제적 성과를 이뤄낼 잠재력을 회복하는게 중요하다."

사실 아제모을루의 관심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제도의 공식>을 찾는 데서 시작한 뒤, <그 흥망성쇠가 장기 지속하게 만드는 섬세한 균형상태 : 좁은회랑>에 대한 탐구로 이어져서, 이윽고 <처음에는 무조건 좋은 것으로만 여겨졌던 기술 혁신에 대한 우려 : 권력과진보>에 이른다.

여정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기술(특히 AI 기술)에 대한 우려'는 <권력과 진보>에 잘 담겨있다. 현재의 기술 발전 궤도는 우려스럽다. 우리는 기술이 일부 소수의 매우 똑똑한 사람들의 전유물이고, 그들이 혁신의 과실을 다 가져가는 것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강요받고 있다. 그리고 그 기술이 결국은 많은 불평등과 사회 왜곡을 낳는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

AI 기술은 단적으로 묘사하면 아마존(쿠팡)이 노동자를 더 잘 감시해 노동자 몫의 파이를 기업과 주주에게 옮겨가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혁신의 과실은 일부가 나누고, 수많은 낙오자를 만들고 있다. 테슬라나 일론 머스크 같은 빅테크 기업과 경영인, 그리고 참가자와 주주는 점점 가치 있는 기업이 되고 부자가 된다. 낙오자들은 화가나 '누가 나를 이렇게 상대적 빈곤으로 밀어넣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이 화에 반응하는 포퓰리스트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그래서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낮아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이 '승자독식'이 아닌 '공유된 번영'으로 향하게 만들 힘, 즉 길항권력(Countervailing Power)이라는 것이 올해 노벨상 수상자가 긴 학문적 여정에서 다다른 결론이다. (최신저작 <권력과 진보>가 궁금하다면 이 기사를 참고할 것 =>
테슬라 주가 말고, 당신 월급이 올라야 진보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775371&ref=A


■그런데... 중국은요?

사실 제도주의는 수많은 논쟁을 양산한다. 당장의 정부 정책이나 상황보다 장기적인 제도가 중요하다는 말은 때로는 '당신은 지금 뭘 해도 안돼, 당신의 바탕인 제도가 글러 먹었거든.'이라는 말이 될 수 있다. 사회와 문화 영역에 뿌리내린 장기적 제도는 쉽게 바꿀 수 없기에'다 소용없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더 중요하게는 '포용적이지 않은 제도'로 성공하면? 하는 비판이다. 즉, AJR의 연구는 '결국 민주주의가 최선이다'라는 논리에 가까운데, 그 반례가 있다.

중국이다. 중국은요? 라고 물었을 때 어떻게 답해야하는가?

실제로 중국은 사유재산을 중시하고 경제적 인센티브를 잘 조작해 통해 성장했지만, 의문의 여지 없이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고 강제력으로 억압한다. 민주주의를 향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성장에 성공했다. 미국을 위협할 정도다.

특히 자원을 신속히 동원하고 강제로 배분해서 더 빠른 성장을 촉진하기도 했다. AI 같은 첨단 기술을 권위주의 유지라는 목적에 결합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CCTV로 감시하고, 도청하고, 빅데이터를 통제하는 모든 수단은 AI 기술 발전에 기대고 있다. 수많은 권위주의 국가가 그 모델을 복제하고 있고, 심지어 일부 민주국가도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그런데도 반세기 가까이 지속적으로 거대한 성장을 달성해 오고 있다. 이래도 '포용적 제도'가 정답인가?


아제모을루도 <중국>이 도전적 질문이라고 인정한다. 그래서 대답도 아직은 제한적이다.

'더 장기적으로 본다면 (앞서 살펴보았지만 AJR 연구 범위는 500년, 적어도 100년 혹은 200년이다) 권위주의적 발전은 불안정하다. 지속 불가능할 것이다.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인민의 저항일수도, 권력 투쟁일 수도, 생산성 향상의 한계일 수도 있다.' 정도다.

사족 : 그들의 수상을 한국적 맥락에서 해석한 기사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수상자들은 한국을 '대표적인 성공모델'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다만 일부 아전인수가 보인다. 일부 기사는 북한과의 체제 대결을 강조하기도, 독재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초기 발전에서 독재의 불가피성'은 그들 연구의 본질이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이들은 '한국이 민주화를 통해 포용적 제도를 탄탄히 한 점'을 중시한다.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성장'의 비결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독재도 일시적인 성장을 가능케 한다, 다만 (100년, 200년) 장기 지속하는 성장은 늘 포용적 제도의 기반 아래서 가능하다.'라는 화법, 그리고 '길항권력'이나 '결정적 분기점'과 같은 개념에 주목해보길 바란다. 독재자는 AJR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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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재자가 싫어하는 국가성공 절대공식
    • 입력 2024-10-19 08:03:18
    • 수정2024-10-19 11: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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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실패한 채로 화석이 된 왕조

긴말이 필요할까. 북한은 실패한 체제다. 이 사진이 웅변한다. 밤이면 깜깜한 북한, 한반도 북쪽 반쪽에는 남쪽에 있는 것과 같은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언어, 문화, 역사를 공유하는 한 민족의 운명이 이토록 극명하게 엇갈린 적이 인류 문명사에 있을까.


북한은 결과적으로 산업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했고, 국민의 삶이 나아지게 하지 못했다. 경제성장에 실패했다.

그뿐 아니다. 정치적 자유도 억압한다. 생각의 자유를 보장할 수 없다. 집회와 결사를 통제한다. 사실 남쪽의 드라마와 음악을 들을 자유마저 강압적으로 틀어막아야 하니 나머지 정치 사회적 자유를 말하는 건 사치다. 그래야 간신히 지탱하는 실패한 국가가 되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AJR(대런 아제모을루의 A, 사이먼 존슨의 J, 제임스 로빈슨의 R) 이야기를 한국에서 하려면 여기서 시작하는 게 좋겠다. 질문을 던져보자.


왜 그렇게 됐을까?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0. 경제학 원론을 배운 똘똘이가 대답한다. 경제적 산출물을 증가시키려면 노동(L)과 자본(K)과 그 외 노력(TFP)을 충분히 더하면 되지 않을까요?

1. 그러자 뉴스를 많이 본 눈썰미가 대답한다. 정부의 미시적 개입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중앙은행이 금융정책으로 금리를 내리거나, 재정정책으로 정부가 돈을 풀면 되지 않을까요?

2. 아닙니다. 역사를 잘 아는 학습이가 말한다.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정부가 필요합니다. 저개발 상태에서는 때로는 누군가 '독재'라고 비난해도, 역시 리더십이 필요하죠. 결국 가난한 국가를 부국의 반열에 올려놓는 힘은 카리스마적 리더의 정치적 역량 아닐까요?

3. 뒤에 있던 검은 포스의 지관이가 나지막이 말한다. 아니죠. 아니죠, 다 운이 좋아야 합니다. 천운이 필요합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식민지가 되지 않은 타이 같은 행운, 아니면 미국처럼 연이은 세계대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졌으면서도 충분한 땅과 자원과 인구를 가진 행운이 필요합니다. 이게 갖춰지지 않으면 다 말짱 황이죠.

누구 말이 맞을까, 대체 무엇일까? 한 국가를 궁극적으로 부강한 체제로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기인할까?


AJR은 있다고 했다. 그들이 노벨상을 받은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위에 거론한 모든 요소에 앞선 뭔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해 인류에 공헌했다.

■ AJR의 속삭임 : 절대공식은 00야

500년 전에는 미국도 캐나다도 호주도 보잘것없는 땅이었다. 서기 1,500년쯤, 도시화는커녕 사람이 살지도 않았다. 그땐 이집트, 모로코, 알제리, 방글라데시, 르완다가 더 도시화하였거나 인구밀도가 높은 국가였다. 심지어 1800년대까지도 쿠바나 멕시코가 오히려 나았다.
노벨 위원회 자료, 〈부의 역전〉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운명을 바꾼 건 '질병'이다. 서구의 발전된 문명은 각 국가에 '질병' 때문에 불균등하게 전달됐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질병 등으로 인해 정주 여건이 나쁜 곳에서 서구는 '제국의 시민 수가 적어도 착취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착취적이다.

반면, 살기 좋은 곳에는 '제국의 시민이 많이 가서 정착했을 때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좀 더 포용적이고 민주적이다. 그 차이가 500년 뒤 국가의 '성공'과 '실패'를 가른 결정적 차이다. (저자들이 제국주의나 식민지 정책을 합리화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이 역사적 과정을 '자연 실험'으로 활용했다.)

〈노벨 위원회〉 식민지에 정착한 본국 시민의 사망률이 높으면 정착민이 적어도 유지 가능한 ‘착취적 제도’가 형성된다. 반대로 미국이나 호주 같은 지역에선 사망률이 높지 않아 영국 시민이 많이 정착했고 식미지지만 ‘포용적 제도’가 자리잡았다.
다시 말하면 정치, 사회, 문화적 시스템... 통틀어서 말하면 <제도 Institution>다. 국가의 성공은 일차적으로 '경제성장'의 문제이지만,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공은 그 성장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포용적 제도 Inclusive institutions>에 달려있다는 통찰이다.

포용적 제도를 쉽게 말하면, 구성원들이 지속적으로 기술 혁신을 할 수 있고, 그래서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제도다. 우선은 사적소유의 권리가 중요하다. 지식재산권을 보호해야 한다. 나의 성공은 나의 소유다. 이게 경제 인센티브의 본질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기회가 균등해야 한다.

또 정치적 안정을 해야 하는데 이는 정 반대되는 제도인 <착취적 제도 Extractive Institutions>를 타파함으로서 달성할 수 있다. 독재와 왕정은 시민을 착취하는 제도다. 그러면 장기 지속하는 성장은 불가능하다. 여기에 저항해 민주주의를 달성해 내는 '사람의 힘(민주화)'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영국처럼 피 흘리지 않고 달성할 수도 있지만, 한국처럼 민중의 희생과 저항을 통해 한 발 한 발 내딛기도 한다. 즉, 민주주의로 향하는 <결정적 분기점 Critical Juncture>이 있어야 제도의 차이가 안착하고 지속가능하다.

경제를 논하면서 장기적인 정치, 사회, 문화적 조건(즉, 제도)을 가져온 AJR 3인방을 '제도학파'로 분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노벨 위원회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까지만 언급했다

대중들에 알려진 AJR의 중요 저작은 모두 세 권이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2012, Why Nations Fail)?
-좁은 회랑(2019, The Narrow Corridor)
-권력과 진보 (2023, Power and Progress)

(논문으로는 <장기 성장의 근본 원인으로서의 제도 2005, Institutions as a Fundamental Cause of Long-Run Growth>가 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AJR을 글로벌 슈퍼스타로 만든 저작이다. 노벨상을 받은 내용이 압축되어 있다. 국가의 장기적 흥망을 결정하는 제도의 힘을 다룬다. 착취적 제도와 포용적 제도를 비교한다. 이 책으로 '이미 노벨상을 예약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대한민국과 북한의 대조 또한 이 책에 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노벨 위원회는 유튜브에 공개한 선정 사유와 수상자 인터뷰(아제모을루) 동영상에서 이 책에서 논의한 내용까지만 거론했다는 점이다.
https://www.youtube.com/live/GX55YHSjZWA?si=nHU-pfmjtmPSNjTH

<좁은 회랑>(2019, 성장의 장기 지속을 위해서는 국가의 힘과 사회적 힘 사이의 섬세한 균형이 필요하다)이나 <권력과 진보>(2023, 기술 그 자체는 번영을 약속하지 않는다. 공동의 번영을 향하도록 기술을 구부려야 한다.)와 같은 후속 저작 역시 세 학자 모두가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평가를 받는데, 별도로 소개하지 않았다.

단, 마지막 기자 질의·답변 과정에서 이 내용이 등장한다. 스웨덴 기자가 '당신이 국가 성공의 열쇠로 지목한 제도의 질(Quality)이나 궤적(Trajectory)이 오늘날 미국 등 국가에서 어때보여요?'라고 묻는다. 즉, 지금 세상의 제도는 당신이 말한 '포용적 제도'에 부합합니까? 하는 질문이다.


■ 시대불만 "사실은 제가 상당히 걱정하는 부분입니다"

아제모을루는 '데이터를 보면 걱정스럽다'며 입을 연다.

"미국과 몇몇 유럽, 그리고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데이터상으로 제도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가 사상 최저 수준(All time low)이다. (국제기구는 물론 미국의 퓨리서치나 이코노미스트지의 조사를 참조해도 그렇다.)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신뢰하지 않으면 빠른 성장과 사회적 합의가 어렵다. 좋은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부패를 막고, 불평등을 완화해 공동의 번영을 이뤄야 하는데 지금은 어려운 시절이다. 따라서 더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힘을 믿고 또 그에 따라 경제적 성과를 이뤄낼 잠재력을 회복하는게 중요하다."

사실 아제모을루의 관심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제도의 공식>을 찾는 데서 시작한 뒤, <그 흥망성쇠가 장기 지속하게 만드는 섬세한 균형상태 : 좁은회랑>에 대한 탐구로 이어져서, 이윽고 <처음에는 무조건 좋은 것으로만 여겨졌던 기술 혁신에 대한 우려 : 권력과진보>에 이른다.

여정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기술(특히 AI 기술)에 대한 우려'는 <권력과 진보>에 잘 담겨있다. 현재의 기술 발전 궤도는 우려스럽다. 우리는 기술이 일부 소수의 매우 똑똑한 사람들의 전유물이고, 그들이 혁신의 과실을 다 가져가는 것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강요받고 있다. 그리고 그 기술이 결국은 많은 불평등과 사회 왜곡을 낳는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

AI 기술은 단적으로 묘사하면 아마존(쿠팡)이 노동자를 더 잘 감시해 노동자 몫의 파이를 기업과 주주에게 옮겨가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혁신의 과실은 일부가 나누고, 수많은 낙오자를 만들고 있다. 테슬라나 일론 머스크 같은 빅테크 기업과 경영인, 그리고 참가자와 주주는 점점 가치 있는 기업이 되고 부자가 된다. 낙오자들은 화가나 '누가 나를 이렇게 상대적 빈곤으로 밀어넣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이 화에 반응하는 포퓰리스트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그래서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낮아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이 '승자독식'이 아닌 '공유된 번영'으로 향하게 만들 힘, 즉 길항권력(Countervailing Power)이라는 것이 올해 노벨상 수상자가 긴 학문적 여정에서 다다른 결론이다. (최신저작 <권력과 진보>가 궁금하다면 이 기사를 참고할 것 =>
테슬라 주가 말고, 당신 월급이 올라야 진보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775371&ref=A


■그런데... 중국은요?

사실 제도주의는 수많은 논쟁을 양산한다. 당장의 정부 정책이나 상황보다 장기적인 제도가 중요하다는 말은 때로는 '당신은 지금 뭘 해도 안돼, 당신의 바탕인 제도가 글러 먹었거든.'이라는 말이 될 수 있다. 사회와 문화 영역에 뿌리내린 장기적 제도는 쉽게 바꿀 수 없기에'다 소용없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더 중요하게는 '포용적이지 않은 제도'로 성공하면? 하는 비판이다. 즉, AJR의 연구는 '결국 민주주의가 최선이다'라는 논리에 가까운데, 그 반례가 있다.

중국이다. 중국은요? 라고 물었을 때 어떻게 답해야하는가?

실제로 중국은 사유재산을 중시하고 경제적 인센티브를 잘 조작해 통해 성장했지만, 의문의 여지 없이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고 강제력으로 억압한다. 민주주의를 향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성장에 성공했다. 미국을 위협할 정도다.

특히 자원을 신속히 동원하고 강제로 배분해서 더 빠른 성장을 촉진하기도 했다. AI 같은 첨단 기술을 권위주의 유지라는 목적에 결합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CCTV로 감시하고, 도청하고, 빅데이터를 통제하는 모든 수단은 AI 기술 발전에 기대고 있다. 수많은 권위주의 국가가 그 모델을 복제하고 있고, 심지어 일부 민주국가도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그런데도 반세기 가까이 지속적으로 거대한 성장을 달성해 오고 있다. 이래도 '포용적 제도'가 정답인가?


아제모을루도 <중국>이 도전적 질문이라고 인정한다. 그래서 대답도 아직은 제한적이다.

'더 장기적으로 본다면 (앞서 살펴보았지만 AJR 연구 범위는 500년, 적어도 100년 혹은 200년이다) 권위주의적 발전은 불안정하다. 지속 불가능할 것이다.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인민의 저항일수도, 권력 투쟁일 수도, 생산성 향상의 한계일 수도 있다.' 정도다.

사족 : 그들의 수상을 한국적 맥락에서 해석한 기사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수상자들은 한국을 '대표적인 성공모델'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다만 일부 아전인수가 보인다. 일부 기사는 북한과의 체제 대결을 강조하기도, 독재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초기 발전에서 독재의 불가피성'은 그들 연구의 본질이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이들은 '한국이 민주화를 통해 포용적 제도를 탄탄히 한 점'을 중시한다.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성장'의 비결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독재도 일시적인 성장을 가능케 한다, 다만 (100년, 200년) 장기 지속하는 성장은 늘 포용적 제도의 기반 아래서 가능하다.'라는 화법, 그리고 '길항권력'이나 '결정적 분기점'과 같은 개념에 주목해보길 바란다. 독재자는 AJR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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