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과 공동체 사이, 캄캄하고 빽빽한 노인의 밤

입력 2024.11.05 (13:54) 수정 2024.11.0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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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에 걸친 연작 기사를 차례로 전한다. 다큐멘터리 <시사기획 창 : 가난한 노인의 낮과 밤, 흔적>에 대한 심층 분석 기사다. 본방송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https://youtu.be/4NrZHGbAnUo?si=wAGulFJKSPueb-Jg

■밤의 극단값. 캄캄한 돈의동 쪽방촌의 밤

정부 지원 대상자 할인 요금제를 이용하는 가난한 노인은 밤을 어디서 보내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휴대전화 데이터가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머문 흔적을 수집했다. 그리고 서울 전역을 가로세로 250미터 단위로 나눠 '가난한 노인의 밀도'를 표시한 지도를 만들었다.

도심에서 밀도가 높은 곳에는 어김없이 쪽방촌이 있었다. 이 가운데 영등포 쪽방촌을 다녀왔다. 방송에 담았다.

그러나 영등포는 쪽방촌 가운데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은 아니었다. 가장 높은 곳은 아래 지역이었다.


빨간색이 가장 밀도가 높은 지역이다. 2,348명, KT 빅데이터는 가로세로 250미터에 불과한 이 지역에 이만큼의 가난한 노인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했다. (KT 이용자 데이터 기반으로 나온 숫자를 전 국민 인구에 맞춰 보정한 숫자이므로 정확한 숫자는 아니고 추정이다.)

가난한 노인의 밤 부분 분석을 한 강범준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당연히 어느 정도 높을 것이라고 예상을 했는데, 실제 데이터를 보니 굉장히 높았다, 어떻게 저렇게 좁은 격자 안에 (저렇게) 높은 숫자가 나올 수 있을까를 생각할 정도로 굉장히 높았다. 주거 밀도가 굉장히 높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가로세로 250미터 공간에 2,348명, 조금 더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로 바꿔보자면 가로세로 10미터 정도 되는 공간을 떠올리면 된다. 그만한 공간마다 대략 4명의 가난한 노인이 있다. 이 공간의 절반 정도는 탑골공원과 도로, 기타 상업지로 구성되어 있으니, 실제로는 8명 정도가 그 공간에 있다. 밤에 누워있다.

이 일대의 노인들은 주로 돈의동 쪽방촌, 그리고 고시원에 광범위하게 거주할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서울시 실태조사를 보면 '도심의 가장 열악한 주거지 쪽방촌' 인구의 70%는 60대 이상의 노인이다. 사법고시 등 상당수의 고시가 사라진 지금, 고시원은 노인원이 되어가고 있다.


빅데이터는 바로 그 현주소를 어떤 조사보다 정확하고, 빠르고, 세밀하게 보여주었다. 강 교수는 "행정 자료를 쓰지 않고 이 분들이 어디에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지 위치정보를 다른 어떤 데이터보다 정확히 특정할 수 있다"고 했다.

더 정확히 볼 때, 그에 대응하는 정책도 더 정확히 수립할 수 있다.

■ 가난한 노인의 캄캄한 밤...정부 정책은 실패하고 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노인정책은 아직 그렇게 정확하지도, 치밀하지도 않다.

사실 정부는 고시원과 쪽방촌을 '비적정 주거 형태'로 분류하고 있다. 사람이 살기 적합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뜻이다. 인구주택 총조사 부가 조사에서 정기적인 통계도 내고 있다.

이 통계에서 드러나는 특징, '점점 이런 곳에서 사는 아동, 청년, 중장년이 줄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급속히 줄고 있다. 2015년과 20년 사이, 청년과 아동 가구는 절반 가까이 줄었다. 평균적이고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는 나아지고 있다.

다만, 노인 앞에서 이 개선은 멈춘다. 고시원, 쪽방촌과 반지하, 옥탑 등 비적정 주거 전체를 포함한 장소에서 사는 노인 인구는 줄지 않는다. 오히려 고시원 등은 조금씩이나마 늘고 있다.

■ 가난한 노인을 고시원으로 내모는 정책

정부는 그냥 실패하는 게 아니다. 잘못된 정책이 가난한 노인을 이런 비적정 주거로 내몰고 있다.

2015년 도입한 주거급여 정책. 10년 정도 됐다. 저소득층 주거 안정을 위해서다. 생계가 어려운 분들께 일정 한도 내에서 월세를 지원한다.

우선 문제는 지원금의 규모다. 정부 재원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서울의 경우 월 34만 원이 최대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서울에서 최대로 받을 수 있는 돈이 34만 원이기 때문에 이 돈으로 갈 수 있는 곳은 고시원 아니면 쪽방, 지하, 단칸방이다. 그래서 고시원을 조사해 보면 빠르게 고령화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서울의 고시원은 노인이 많이 살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수급자는 돈에 맞춰 고시원을 찾는다. "매번 반복되고 있는 일이, 지하에서 참사가 발생하거나 고시원에서 화재로 참사가 발생하거나 할 때마다 수급자분들이 사망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요.”

고시원은 이제 노인원으로 변해가고 있다. 요양병원도 요양원도 갈 수 없는 가난한 노인의 보금자리다.


또 주거급여 대상 주택의 적정성도 문제다. GDP 대비 주거급여 예산을 가장 많이 책정한 영국은 아무 공간에나 주거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방의 면적, 화장실과 부엌과 욕실의 상태, 창문의 수와 같은 기본적인 요건을 따져 합격한 집에만 지급한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정부가 돈을 지급하는데 주택의 꼴을 갖추지 못한 집에 지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미국도 마찬가지다. 사실 주거급여를 도입한 선진국은 대부분 그런 기준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저주거기준 자체는 있다. 방의 개수, 면적, 시설, 화장실, 욕실, 부엌을 갖추었는지 살핀다. 하지만 주거급여를 지급할 때는 따지지 않는다. 김태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필요하긴 한데, 아직 못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월세 산다고 계약서를 제출하면 주거급여를 준다. 최저주거기준이 만들어지고는 있지만, 주거급여 대상 주택에 적용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한다.

해외 사례를 꾸준히 조사해 정리하는 한국도시연구소의 최 소장은 "다른 나라는 주거급여, 주거비 지원을 이렇게 설계하지 않는다. 주거권이란 것은 주거비도 부담할 수 있어야 하지만 살만한 집이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정부는 만약 주거 기준을 적용하면 당장 가난한 노인이 살 곳이 없어진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렇다면 조금씩이라도 개선이라도 해나가 보자는 게 전문가들 제언이다. 집주인이 에어컨을 달고, 창문을 만들고, 집의 면적을 넓히고, 위생을 개선하는 노력을 하게 만들자는 얘기다. 한 해에 하나 씩이라도 이행하도록 경과 제도라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정부는 계속 머뭇거리고 있다.

정부가 적은 돈으로 제대로 된 기준 없이 제도를 운영하는 사이, 가난한 노인은 계속해서 쪽방과 고시원과 반지하로 내몰리고 있다.

■ 사실 더 나은 정책은 따로 있다

오세열 할아버지는 LH 장기 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LH가 집주인이고, 저렴한 월세로 오래 살 수 있다. 실제로 오 할아버지의 집은 낡고 좁은 빌라이긴 하지만 방이 두 개 있고, 시설도 깨끗했다. 월세지원 보다는 이런 공공임대가 본질적 대안이다. (정부 공공임대 아파트를 이번 취재 대상에 넣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공공 임대아파트만 해도 살 만한 곳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또 예산이다. LH 매입임대는 인기가 많다. 신청해도 언제 들어갈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경쟁률이 높다. 정부 예산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정부 공공 임대 정책의 무게추가 요즘은 청년, 신혼부부 쪽으로 쏠리고 있다. 저출산 때문이다. 최 소장은 "박근혜 정부 이후 현재까지 모든 정부는 신혼부부와 청년 중심의 주거정책을 구성해 왔다. 노인들이 비적정 주거로 몰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이 정부 정책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노인에 대한 자원 배분이 상대적으로 줄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해결의 기미가 없다는 진단을 내린다.

게다가 임대주택 예산은 최근 예산 철마다 가장 먼저 줄어들어 왔다. 정부 재정이 부족할 때마다 가장 먼저 손대는 예산 가운데 하나였다. '필요에 따라 예산을 책정하는 게 아니고, 남는 만큼 예산을 배정하다보니 빈곤 문제에 대응할 수 없게 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 대한민국의 노인이라 가난하다

이번 기획 기사를 쓰면서 수많은 시청자, 독자 반응을 확인했다. 아래 댓글은 가장 핵심을 관통하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화려한 겉모습 속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움이 있는 나라다. 전후 70년 이후 고속 성장만 비추지 그 속에서 죽어가는 어두움은 잘 조명하려 하지 않지. 밥만 먹고 살기만 했음하고 바란 세대들이 지금 노인이 되었다. 그들을 조명해야 한다.이건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노인은 대한민국의 구조적 문제다. 개인의 게으름, 어리석음, 방종의 문제가 아니다. OECD 평균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게 치솟는 빈곤율을 개인의 품성 문제로 설명할 것인가?

구조적 문제는 '고속 성장' 속에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지 못한 데 있다. 일하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 젊은 사람, 가족이 있는 사람은 문제없이 소비하고 살아갈 수 있다. 반대로 혼자 된, 일할 수 없으면서, 능력이 없고, 나이 든 사람은 비참해진다.

다큐에 등장하는 노인을 되새겨보자. 폐지를 줍는 이영구 할아버지는 88살이 될 때까지 쉬어본 적이 없다. 한여름에도 매일 폐지를 주웠다. 윤후순 할머니도 홀로된 후 김치공장에도 다니고 각종 날품 일도 하면서 생계를 자신의 힘으로 꾸려왔다. 오세열 할아버지는 대우 부평공장에서 일하다 IMF 이후 일자리를 잃었고, 고시촌 황경문 할아버지는 서울대 공사 현장에서 인부로 일하다가 대학동 고시원에 자리 잡았다. 어느 사람도 게으르게, 혹은 방탕하게 살지 않았다.


그들의 잘못이라면 너무 일찍 태어난 죄다. 단지 대한민국이 너무 가난할 때 태어나 경제활동을 하다가, 미처 부자가 되어 소득이 높아지기 전에 경제활동을 마칠 나이가 되었던 게 문제였다. 국민연금을 가입할 수 없었거나 짧게 가입한 게 문제다.

김도헌 KDI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제도 안에도 사실은 소득분배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평균 소득이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 소득보다 낮게 됐을 경우 좀 더 얹어서 주고 그런 구조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노인들은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국민연금 급여액이 굉장히 낮기 때문에 이 국민연금에 탑재된 소득 분배 기능의 특혜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노인은 왜 가난한가? 라는 질문에 노인은 한국이라 가난하다고 답해야 하는 나라다.

"이 세상은 형태만 도시화되며 변화했을지라도, 결국 본질은 정글이다."

또 다른 댓글이다. 마음 아파하지만 '나는 낙오하면 안 되기 때문에' 노인들을 반면교사로 삼고 이를 악물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계속 앞만 보면서, 낙오를 두려워하면서 이런 사회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기사모음
-본방송 : 가난한 노인의 낮과 밤, 흔적 (유튜브)
https://youtu.be/4NrZHGbAnUo?si=-XwxRDVh1V7Nfbzm

-텍스트 기사
①가난한 노인은 왜 선릉역에 갔을까?…‘흔적’이 남았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56/0011827496
②가난한 노인의 흔적, 빅데이터가 말하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56/0011831080
③선릉역 다단계 찾는 가난한 노인, 주말은 000간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56/0011831750
④정글과 공동체 사이, 캄캄하고 빽빽한 노인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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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글과 공동체 사이, 캄캄하고 빽빽한 노인의 밤
    • 입력 2024-11-05 13:54:56
    • 수정2024-11-05 14:06:30
    심층K

세 편에 걸친 연작 기사를 차례로 전한다. 다큐멘터리 <시사기획 창 : 가난한 노인의 낮과 밤, 흔적>에 대한 심층 분석 기사다. 본방송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https://youtu.be/4NrZHGbAnUo?si=wAGulFJKSPueb-Jg

■밤의 극단값. 캄캄한 돈의동 쪽방촌의 밤

정부 지원 대상자 할인 요금제를 이용하는 가난한 노인은 밤을 어디서 보내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휴대전화 데이터가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머문 흔적을 수집했다. 그리고 서울 전역을 가로세로 250미터 단위로 나눠 '가난한 노인의 밀도'를 표시한 지도를 만들었다.

도심에서 밀도가 높은 곳에는 어김없이 쪽방촌이 있었다. 이 가운데 영등포 쪽방촌을 다녀왔다. 방송에 담았다.

그러나 영등포는 쪽방촌 가운데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은 아니었다. 가장 높은 곳은 아래 지역이었다.


빨간색이 가장 밀도가 높은 지역이다. 2,348명, KT 빅데이터는 가로세로 250미터에 불과한 이 지역에 이만큼의 가난한 노인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했다. (KT 이용자 데이터 기반으로 나온 숫자를 전 국민 인구에 맞춰 보정한 숫자이므로 정확한 숫자는 아니고 추정이다.)

가난한 노인의 밤 부분 분석을 한 강범준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당연히 어느 정도 높을 것이라고 예상을 했는데, 실제 데이터를 보니 굉장히 높았다, 어떻게 저렇게 좁은 격자 안에 (저렇게) 높은 숫자가 나올 수 있을까를 생각할 정도로 굉장히 높았다. 주거 밀도가 굉장히 높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가로세로 250미터 공간에 2,348명, 조금 더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로 바꿔보자면 가로세로 10미터 정도 되는 공간을 떠올리면 된다. 그만한 공간마다 대략 4명의 가난한 노인이 있다. 이 공간의 절반 정도는 탑골공원과 도로, 기타 상업지로 구성되어 있으니, 실제로는 8명 정도가 그 공간에 있다. 밤에 누워있다.

이 일대의 노인들은 주로 돈의동 쪽방촌, 그리고 고시원에 광범위하게 거주할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서울시 실태조사를 보면 '도심의 가장 열악한 주거지 쪽방촌' 인구의 70%는 60대 이상의 노인이다. 사법고시 등 상당수의 고시가 사라진 지금, 고시원은 노인원이 되어가고 있다.


빅데이터는 바로 그 현주소를 어떤 조사보다 정확하고, 빠르고, 세밀하게 보여주었다. 강 교수는 "행정 자료를 쓰지 않고 이 분들이 어디에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지 위치정보를 다른 어떤 데이터보다 정확히 특정할 수 있다"고 했다.

더 정확히 볼 때, 그에 대응하는 정책도 더 정확히 수립할 수 있다.

■ 가난한 노인의 캄캄한 밤...정부 정책은 실패하고 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노인정책은 아직 그렇게 정확하지도, 치밀하지도 않다.

사실 정부는 고시원과 쪽방촌을 '비적정 주거 형태'로 분류하고 있다. 사람이 살기 적합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뜻이다. 인구주택 총조사 부가 조사에서 정기적인 통계도 내고 있다.

이 통계에서 드러나는 특징, '점점 이런 곳에서 사는 아동, 청년, 중장년이 줄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급속히 줄고 있다. 2015년과 20년 사이, 청년과 아동 가구는 절반 가까이 줄었다. 평균적이고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는 나아지고 있다.

다만, 노인 앞에서 이 개선은 멈춘다. 고시원, 쪽방촌과 반지하, 옥탑 등 비적정 주거 전체를 포함한 장소에서 사는 노인 인구는 줄지 않는다. 오히려 고시원 등은 조금씩이나마 늘고 있다.

■ 가난한 노인을 고시원으로 내모는 정책

정부는 그냥 실패하는 게 아니다. 잘못된 정책이 가난한 노인을 이런 비적정 주거로 내몰고 있다.

2015년 도입한 주거급여 정책. 10년 정도 됐다. 저소득층 주거 안정을 위해서다. 생계가 어려운 분들께 일정 한도 내에서 월세를 지원한다.

우선 문제는 지원금의 규모다. 정부 재원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서울의 경우 월 34만 원이 최대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서울에서 최대로 받을 수 있는 돈이 34만 원이기 때문에 이 돈으로 갈 수 있는 곳은 고시원 아니면 쪽방, 지하, 단칸방이다. 그래서 고시원을 조사해 보면 빠르게 고령화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서울의 고시원은 노인이 많이 살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수급자는 돈에 맞춰 고시원을 찾는다. "매번 반복되고 있는 일이, 지하에서 참사가 발생하거나 고시원에서 화재로 참사가 발생하거나 할 때마다 수급자분들이 사망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요.”

고시원은 이제 노인원으로 변해가고 있다. 요양병원도 요양원도 갈 수 없는 가난한 노인의 보금자리다.


또 주거급여 대상 주택의 적정성도 문제다. GDP 대비 주거급여 예산을 가장 많이 책정한 영국은 아무 공간에나 주거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방의 면적, 화장실과 부엌과 욕실의 상태, 창문의 수와 같은 기본적인 요건을 따져 합격한 집에만 지급한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정부가 돈을 지급하는데 주택의 꼴을 갖추지 못한 집에 지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미국도 마찬가지다. 사실 주거급여를 도입한 선진국은 대부분 그런 기준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저주거기준 자체는 있다. 방의 개수, 면적, 시설, 화장실, 욕실, 부엌을 갖추었는지 살핀다. 하지만 주거급여를 지급할 때는 따지지 않는다. 김태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필요하긴 한데, 아직 못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월세 산다고 계약서를 제출하면 주거급여를 준다. 최저주거기준이 만들어지고는 있지만, 주거급여 대상 주택에 적용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한다.

해외 사례를 꾸준히 조사해 정리하는 한국도시연구소의 최 소장은 "다른 나라는 주거급여, 주거비 지원을 이렇게 설계하지 않는다. 주거권이란 것은 주거비도 부담할 수 있어야 하지만 살만한 집이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정부는 만약 주거 기준을 적용하면 당장 가난한 노인이 살 곳이 없어진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렇다면 조금씩이라도 개선이라도 해나가 보자는 게 전문가들 제언이다. 집주인이 에어컨을 달고, 창문을 만들고, 집의 면적을 넓히고, 위생을 개선하는 노력을 하게 만들자는 얘기다. 한 해에 하나 씩이라도 이행하도록 경과 제도라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정부는 계속 머뭇거리고 있다.

정부가 적은 돈으로 제대로 된 기준 없이 제도를 운영하는 사이, 가난한 노인은 계속해서 쪽방과 고시원과 반지하로 내몰리고 있다.

■ 사실 더 나은 정책은 따로 있다

오세열 할아버지는 LH 장기 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LH가 집주인이고, 저렴한 월세로 오래 살 수 있다. 실제로 오 할아버지의 집은 낡고 좁은 빌라이긴 하지만 방이 두 개 있고, 시설도 깨끗했다. 월세지원 보다는 이런 공공임대가 본질적 대안이다. (정부 공공임대 아파트를 이번 취재 대상에 넣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공공 임대아파트만 해도 살 만한 곳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또 예산이다. LH 매입임대는 인기가 많다. 신청해도 언제 들어갈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경쟁률이 높다. 정부 예산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정부 공공 임대 정책의 무게추가 요즘은 청년, 신혼부부 쪽으로 쏠리고 있다. 저출산 때문이다. 최 소장은 "박근혜 정부 이후 현재까지 모든 정부는 신혼부부와 청년 중심의 주거정책을 구성해 왔다. 노인들이 비적정 주거로 몰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이 정부 정책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노인에 대한 자원 배분이 상대적으로 줄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해결의 기미가 없다는 진단을 내린다.

게다가 임대주택 예산은 최근 예산 철마다 가장 먼저 줄어들어 왔다. 정부 재정이 부족할 때마다 가장 먼저 손대는 예산 가운데 하나였다. '필요에 따라 예산을 책정하는 게 아니고, 남는 만큼 예산을 배정하다보니 빈곤 문제에 대응할 수 없게 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 대한민국의 노인이라 가난하다

이번 기획 기사를 쓰면서 수많은 시청자, 독자 반응을 확인했다. 아래 댓글은 가장 핵심을 관통하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화려한 겉모습 속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움이 있는 나라다. 전후 70년 이후 고속 성장만 비추지 그 속에서 죽어가는 어두움은 잘 조명하려 하지 않지. 밥만 먹고 살기만 했음하고 바란 세대들이 지금 노인이 되었다. 그들을 조명해야 한다.이건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노인은 대한민국의 구조적 문제다. 개인의 게으름, 어리석음, 방종의 문제가 아니다. OECD 평균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게 치솟는 빈곤율을 개인의 품성 문제로 설명할 것인가?

구조적 문제는 '고속 성장' 속에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지 못한 데 있다. 일하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 젊은 사람, 가족이 있는 사람은 문제없이 소비하고 살아갈 수 있다. 반대로 혼자 된, 일할 수 없으면서, 능력이 없고, 나이 든 사람은 비참해진다.

다큐에 등장하는 노인을 되새겨보자. 폐지를 줍는 이영구 할아버지는 88살이 될 때까지 쉬어본 적이 없다. 한여름에도 매일 폐지를 주웠다. 윤후순 할머니도 홀로된 후 김치공장에도 다니고 각종 날품 일도 하면서 생계를 자신의 힘으로 꾸려왔다. 오세열 할아버지는 대우 부평공장에서 일하다 IMF 이후 일자리를 잃었고, 고시촌 황경문 할아버지는 서울대 공사 현장에서 인부로 일하다가 대학동 고시원에 자리 잡았다. 어느 사람도 게으르게, 혹은 방탕하게 살지 않았다.


그들의 잘못이라면 너무 일찍 태어난 죄다. 단지 대한민국이 너무 가난할 때 태어나 경제활동을 하다가, 미처 부자가 되어 소득이 높아지기 전에 경제활동을 마칠 나이가 되었던 게 문제였다. 국민연금을 가입할 수 없었거나 짧게 가입한 게 문제다.

김도헌 KDI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제도 안에도 사실은 소득분배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평균 소득이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 소득보다 낮게 됐을 경우 좀 더 얹어서 주고 그런 구조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노인들은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국민연금 급여액이 굉장히 낮기 때문에 이 국민연금에 탑재된 소득 분배 기능의 특혜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노인은 왜 가난한가? 라는 질문에 노인은 한국이라 가난하다고 답해야 하는 나라다.

"이 세상은 형태만 도시화되며 변화했을지라도, 결국 본질은 정글이다."

또 다른 댓글이다. 마음 아파하지만 '나는 낙오하면 안 되기 때문에' 노인들을 반면교사로 삼고 이를 악물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계속 앞만 보면서, 낙오를 두려워하면서 이런 사회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기사모음
-본방송 : 가난한 노인의 낮과 밤, 흔적 (유튜브)
https://youtu.be/4NrZHGbAnUo?si=-XwxRDVh1V7Nfbzm

-텍스트 기사
①가난한 노인은 왜 선릉역에 갔을까?…‘흔적’이 남았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56/0011827496
②가난한 노인의 흔적, 빅데이터가 말하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56/0011831080
③선릉역 다단계 찾는 가난한 노인, 주말은 000간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56/0011831750
④정글과 공동체 사이, 캄캄하고 빽빽한 노인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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