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남북이 닮았어요­…탈북민의 설맞이

입력 2025.01.18 (08:12) 수정 2025.01.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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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설 명절 연휴가 열흘 정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명절 때면 가족 친지들과 함께 모여 따뜻한 음식들을 나눠 먹게 될 텐데요.

명절에 앞서 탈북민들이 참여해 남북한 전통음식을 함께 만들어보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북한의 음식 이야기와 명절에 담긴 추억을 나누면서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달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자리를 넘어, 진정한 화합과 교류의 장이 된 현장에 장예진 리포터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드넓은 평야가 지평선처럼 펼쳐진 풍요의 고장, 전북 김제시.

이곳엔 오랜 역사를 간직한 저수지 유적 ‘벽골제’가 자리잡고 있는데요.

설맞이 음식을 만들기 위해 김제주민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정병현/민주평통 김제시협의회 간사 : "지금 김제에 거주하시는 북한이탈주민들이 18분 정도 되시는데요. 14분이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하셨고요. 개성주악하고요. 평양만두, 우리 음식인 고추전, 파전, 떡국 등으로 해서 설 명절 분위기를 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음식을 장만해 설을 쇠는 풍습은 북녘에서도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하는데요.

[이순실/탈북민 : "(북한도) 설 명절 똑같아요. 떡국 먹고 그다음에 즐겁게 한집안 식구들이 앉아서 전도 부치고 떡도 하는 문화는 같아요."]

명절날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남녘 음식이든 북녘 음식이든 맛있는 음식은 많을수록 다양할수록 나눌수록 더 즐거워지는데요. 맛보고 즐기면서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이웃들을 만나보겠습니다.

요리에 앞서, 앞치마 위에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며 적어 내려갑니다.

오곡백과에 풍년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부터, 이웃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는 소망까지.

저마다의 앞치마에는 희망과 꿈, 설렘이 가득합니다.

[우영자/민주평통 김제시협의회 : "(뭐라고 쓰신 거예요?) 저는 김제시 발전을 위해서 2025년도 김제시 신생아가 많이 태어나서 앞으로 미래가 있는 김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음식 만들기에 나섭니다.

북한식 만두, 과연 어떤 점이 달랐을까요.

[이경순/탈북민 : "(북한에서) 당면은 안 넣어요. 김치 볶음하고 고기를 같이 볶아서 각종 채소가 들어가서 만드는 음식이에요."]

만두피에 만두소를 채우고 빚어내는 손길이 무척이나 바쁩니다.

정성과 손맛은 물론 만두에 얽힌 속설도 남북한이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요.

[이경순/탈북민 : "만두를 예쁘게 만들면 딸을 낳고 예쁘게 못 만들면 아들 낳는다고 했어요."]

[강순애/민주평통 김제시협의회 : "만두를 예쁘게 빚고 송편을 예쁘게 만들면 예쁜 딸을 낳는다고 우리 한국도 그랬는데, 북한도 똑같은가 봐요."]

탐스러운 만두가 하나둘 완성될 때마다 웃음과 온기가 행사장을 가득 채웁니다.

[이경순/탈북민 : "(딸일까요? 아들일까요?) 제가 봤을 때 저는 딸이고 선생님은 아들일 것 같아요. (못 만들었다는 이야기군요.)"]

한편에서는 특별한 간식이 눈길을 사로잡았는데요.

["(여기는 뭐 만들고 있는 거예요?) 지금 개성주악을 만들고 있습니다."]

찹쌀 반죽을 기름에 지져 조청이나 꿀에 버무린 달콤한 별미로, 개성 지역에서 사랑받아온 간식이라고 합니다.

[손미자/요리강사 : "개성지방에서 예전 고려시대 때 귀족들이 먹었던 간식이고요. 약과와 같이 폐백하고 이바지 음식을 보낼 때 쓰던 귀한 음식이에요."]

개성 출신인 옥순 씨에게 개성주악은 친숙한 음식이라는데요.

[김옥순/탈북민 : "(북에서는 뭐라고 해요?) ‘오구래’라고 해요. 북한에서는 동짓날에 빨간 팥 있잖아요. 그거 넣고 그다음에 찹쌀을 조금 넣고 그다음에 물을 부어서 이걸 반죽해서 손으로 이렇게 해서 기름에 넣거든요."]

찹쌀 하나하나를 기름에 익혀내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손미자/요리강사 : "90도 정도의 온도에서 튀겨낼 거예요. 그래서 아주 천천히 오래 걸리거든요. 인내의 디저트."]

이렇게 천천히 만들어지는 동안, 북쪽 지방 고유의 풍미를 담게 된다고 합니다.

[손미자/요리강사 : "천천히 시간을 갖고 만드는 그런 기다림 같은 음식, 약간 그런 거에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하나 둘 완성돼가는 음식들.

여기에 노릇노릇 잘 익은 전도 빠질 수 없죠.

탈북민들은 새록새록 고향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송재호/탈북민 :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이렇게 전을 부치면서 설 명절 음식 준비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음식에 마음의 정을 보태, 서로에게 덕담도 전하는데요.

[정성주/김제시장 : "이제부터의 삶은 우리 김제에서 이분들이 더 행복하고 편안하게 우리 김제시민과 더불어 어울릴 수 있는 그런 삶이 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직접 만든 음식을 나누며 점심 식사를 즐기는 자리가 이어집니다.

곳곳에서 웃음꽃이 피어나고, 한쪽에서는 흥겨운 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온 세상 다하도록."]

자연스레 손뼉을 치며 어우러지는 순간.

온기 가득한 식사 시간이 모두에게 따뜻한 추억으로 남습니다.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 되면 조금은 쓸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요. 따뜻한 정을 나누면서 서로 의지하고 북돋아 주면 어느새 고향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훌쩍 달아난다고 합니다.

고즈넉한 멋을 자랑하는 벽골제의 한옥들.

식사를 마친 참가자들이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한옥마을로 향합니다.

[이순실/탈북민 : "같이 윷놀이도 하고 즐기려고 왔어요."]

한복의 단아한 맵시는 남북한이 서로 닮아 있다고 합니다.

["색깔은 똑같아요. 꽃 나고 이렇게 옷에 무지개처럼 색동저고리처럼 무지개도 있고..."]

곧이어 시작된 한 판 윷놀이.

["개요, 개!"]

추위를 잊게 할 만큼 윷놀이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경쾌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 시간.

15년 전, 한국에 온 재호 씨.

명절 즈음이면 그리움이 사무치지만, 김제에서 사귄 벗들과 함께하며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곤 한다는데요.

[송재호/탈북민 : "한국에서 좀 많이 혼자 외롭게 보내다 보니까 북에 있는 가족들 생각이 많이 나죠. (오늘은 어떠세요?) 오늘은 다 같이 모여 노니까, 기분이 많이 좋습니다."]

탈북민들은 오늘의 따뜻한 만남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이순실/탈북민 : "남한이든 북한이든 서로가 함께 모여서 함께 명절을 보내는 이런 기쁜 날로 계속 영원히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음식으로 나눈 정, 놀이로 더한 즐거움이 함께한 순간.

모두에게 오래도록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이 채워진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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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남북이 닮았어요­…탈북민의 설맞이
    • 입력 2025-01-18 08:12:31
    • 수정2025-01-18 08:3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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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설 명절 연휴가 열흘 정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명절 때면 가족 친지들과 함께 모여 따뜻한 음식들을 나눠 먹게 될 텐데요.

명절에 앞서 탈북민들이 참여해 남북한 전통음식을 함께 만들어보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북한의 음식 이야기와 명절에 담긴 추억을 나누면서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달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자리를 넘어, 진정한 화합과 교류의 장이 된 현장에 장예진 리포터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드넓은 평야가 지평선처럼 펼쳐진 풍요의 고장, 전북 김제시.

이곳엔 오랜 역사를 간직한 저수지 유적 ‘벽골제’가 자리잡고 있는데요.

설맞이 음식을 만들기 위해 김제주민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정병현/민주평통 김제시협의회 간사 : "지금 김제에 거주하시는 북한이탈주민들이 18분 정도 되시는데요. 14분이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하셨고요. 개성주악하고요. 평양만두, 우리 음식인 고추전, 파전, 떡국 등으로 해서 설 명절 분위기를 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음식을 장만해 설을 쇠는 풍습은 북녘에서도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하는데요.

[이순실/탈북민 : "(북한도) 설 명절 똑같아요. 떡국 먹고 그다음에 즐겁게 한집안 식구들이 앉아서 전도 부치고 떡도 하는 문화는 같아요."]

명절날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남녘 음식이든 북녘 음식이든 맛있는 음식은 많을수록 다양할수록 나눌수록 더 즐거워지는데요. 맛보고 즐기면서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이웃들을 만나보겠습니다.

요리에 앞서, 앞치마 위에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며 적어 내려갑니다.

오곡백과에 풍년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부터, 이웃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는 소망까지.

저마다의 앞치마에는 희망과 꿈, 설렘이 가득합니다.

[우영자/민주평통 김제시협의회 : "(뭐라고 쓰신 거예요?) 저는 김제시 발전을 위해서 2025년도 김제시 신생아가 많이 태어나서 앞으로 미래가 있는 김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음식 만들기에 나섭니다.

북한식 만두, 과연 어떤 점이 달랐을까요.

[이경순/탈북민 : "(북한에서) 당면은 안 넣어요. 김치 볶음하고 고기를 같이 볶아서 각종 채소가 들어가서 만드는 음식이에요."]

만두피에 만두소를 채우고 빚어내는 손길이 무척이나 바쁩니다.

정성과 손맛은 물론 만두에 얽힌 속설도 남북한이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요.

[이경순/탈북민 : "만두를 예쁘게 만들면 딸을 낳고 예쁘게 못 만들면 아들 낳는다고 했어요."]

[강순애/민주평통 김제시협의회 : "만두를 예쁘게 빚고 송편을 예쁘게 만들면 예쁜 딸을 낳는다고 우리 한국도 그랬는데, 북한도 똑같은가 봐요."]

탐스러운 만두가 하나둘 완성될 때마다 웃음과 온기가 행사장을 가득 채웁니다.

[이경순/탈북민 : "(딸일까요? 아들일까요?) 제가 봤을 때 저는 딸이고 선생님은 아들일 것 같아요. (못 만들었다는 이야기군요.)"]

한편에서는 특별한 간식이 눈길을 사로잡았는데요.

["(여기는 뭐 만들고 있는 거예요?) 지금 개성주악을 만들고 있습니다."]

찹쌀 반죽을 기름에 지져 조청이나 꿀에 버무린 달콤한 별미로, 개성 지역에서 사랑받아온 간식이라고 합니다.

[손미자/요리강사 : "개성지방에서 예전 고려시대 때 귀족들이 먹었던 간식이고요. 약과와 같이 폐백하고 이바지 음식을 보낼 때 쓰던 귀한 음식이에요."]

개성 출신인 옥순 씨에게 개성주악은 친숙한 음식이라는데요.

[김옥순/탈북민 : "(북에서는 뭐라고 해요?) ‘오구래’라고 해요. 북한에서는 동짓날에 빨간 팥 있잖아요. 그거 넣고 그다음에 찹쌀을 조금 넣고 그다음에 물을 부어서 이걸 반죽해서 손으로 이렇게 해서 기름에 넣거든요."]

찹쌀 하나하나를 기름에 익혀내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손미자/요리강사 : "90도 정도의 온도에서 튀겨낼 거예요. 그래서 아주 천천히 오래 걸리거든요. 인내의 디저트."]

이렇게 천천히 만들어지는 동안, 북쪽 지방 고유의 풍미를 담게 된다고 합니다.

[손미자/요리강사 : "천천히 시간을 갖고 만드는 그런 기다림 같은 음식, 약간 그런 거에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하나 둘 완성돼가는 음식들.

여기에 노릇노릇 잘 익은 전도 빠질 수 없죠.

탈북민들은 새록새록 고향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송재호/탈북민 :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이렇게 전을 부치면서 설 명절 음식 준비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음식에 마음의 정을 보태, 서로에게 덕담도 전하는데요.

[정성주/김제시장 : "이제부터의 삶은 우리 김제에서 이분들이 더 행복하고 편안하게 우리 김제시민과 더불어 어울릴 수 있는 그런 삶이 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직접 만든 음식을 나누며 점심 식사를 즐기는 자리가 이어집니다.

곳곳에서 웃음꽃이 피어나고, 한쪽에서는 흥겨운 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온 세상 다하도록."]

자연스레 손뼉을 치며 어우러지는 순간.

온기 가득한 식사 시간이 모두에게 따뜻한 추억으로 남습니다.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 되면 조금은 쓸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요. 따뜻한 정을 나누면서 서로 의지하고 북돋아 주면 어느새 고향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훌쩍 달아난다고 합니다.

고즈넉한 멋을 자랑하는 벽골제의 한옥들.

식사를 마친 참가자들이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한옥마을로 향합니다.

[이순실/탈북민 : "같이 윷놀이도 하고 즐기려고 왔어요."]

한복의 단아한 맵시는 남북한이 서로 닮아 있다고 합니다.

["색깔은 똑같아요. 꽃 나고 이렇게 옷에 무지개처럼 색동저고리처럼 무지개도 있고..."]

곧이어 시작된 한 판 윷놀이.

["개요, 개!"]

추위를 잊게 할 만큼 윷놀이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경쾌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 시간.

15년 전, 한국에 온 재호 씨.

명절 즈음이면 그리움이 사무치지만, 김제에서 사귄 벗들과 함께하며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곤 한다는데요.

[송재호/탈북민 : "한국에서 좀 많이 혼자 외롭게 보내다 보니까 북에 있는 가족들 생각이 많이 나죠. (오늘은 어떠세요?) 오늘은 다 같이 모여 노니까, 기분이 많이 좋습니다."]

탈북민들은 오늘의 따뜻한 만남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이순실/탈북민 : "남한이든 북한이든 서로가 함께 모여서 함께 명절을 보내는 이런 기쁜 날로 계속 영원히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음식으로 나눈 정, 놀이로 더한 즐거움이 함께한 순간.

모두에게 오래도록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이 채워진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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