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카로 마트 쇼핑” 북한 MZ의 슬기로운 군대 생활 [뒷北뉴스]
입력 2025.02.22 (07:01)
수정 2025.02.2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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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청년들은 대부분 군대에 갑니다. 북한의 병영 생활은 남한과 다른 부분이 많지요. 확실한 건 북한 군대도 변하고 있다는 겁니다. 통일연구원이 군 생활 경험이 있는 탈북민 27명을 심층 면접해 지난 18일 펴낸 <KINU 연구총서: 북한 주민의 군대 생활>의 주요 내용을 소개합니다.
■ '작업'하려 늘어난 복무기간
북한은 '전민 군사복무제', 사실상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통념과 달리 의무 복무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입대해야 한다는 사회적, 암묵적 분위기는 있지만, '안 가겠다'하면 군대에 가지 않는다고 탈북민들은 증언했습니다. 입대를 위한 최소 기준도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부모가 고령이거나 출신 성분이 좋지 않은 경우 입영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합니다.
북한군의 복무 기간은 시기에 따라 들쑥날쑥입니다. 2022년에는 남성 8년, 여성 5년 정도였지만 2023년에는 각각 10년과 7년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탈북민들은 늘어난 기간 동안 건설이나 농사에 동원됐다고 말했습니다.
![건설 공사에 투입된 북한 군인들 [조선중앙TV]](/data/fckeditor/new/image/2025/02/21/315831740094864461.jpg)
북한은 지난해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가주력사업인 '지방발전 20Ⅹ10'(지방공업공장을 매년 20개씩 건설해 10년 안에 경제 성장)에 군을 대규모로 투입하고 있습니다. 공사 현장에서 사고로 죽는 경우도 꽤 많은데, 금전적 보상은 없고 '애국열사증'을 주는 식으로 부모들을 달랜다는 게 탈북민들의 설명입니다.
■ 염장 3형제로 끼니 때우다 '엄카 찬스'
북한 군인의 기본 식단은 옥수수밥과 이른바 '염장 3형제'라고 합니다. 염장 3형제란 배추, 무를 소금에 절여 놓은 것을 모양만 다르게 세 가지를 내놓는 걸 뜻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군인들의 영양 개선을 위해 "반찬 세 가지는 보장하라"고 지시했는데, 이걸 지키기 위해 염장 채소를 사각이나 원형 등 다른 모양으로 썰어 반찬 가짓수를 억지로 늘리는 겁니다. 탈북민은 "대대마다 '염장 탱크'가 있고 유통기한 없이, 썩을 때까지 먹는다"라고 했습니다.
군대 내 식량 배급이 형편없다 보니 부대 내에서 음식을 '자급자족'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부대에서 돼지와 토끼 등 가축을 직접 기르거나 병사들이 직접 인근 농경지에서 옥수수와 콩을 비롯해 채소 등을 경작하는 겁니다. 해군의 경우 병사들이 군사용 선박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어선 출항 허가권을 남용해 민간으로부터 어획물을 상납받기도 합니다.
2020년 이후에는 새로운 현상도 나타났다고 합니다. 우체국에서 부모로부터 카드를 받아다가, PX나 마트 같은 곳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겁니다. 이 내용은 보고서 원문 그대로 싣습니다.
연구자 : 부모님이 돈을 어떻게 보내세요? 구술자(탈북민) : 카드로 보냈어요. 연구자 : 카드요? 구술자 : 네, 우체국에 가서. 송금으로 받았죠. 제 카드에다가 돈을 넣으면 저는 우체국 가서 그 카드에 있는 돈을 뽑아 쓰는 거죠. 연구자 : 부모님한테 돈을 받고 하는 게 흔한 일이에요? 구술자 : 그죠. 저희 때(해당 구술자는 2021년까지 복무)는 흔했어요. 연구자 : 어떻게 쓰세요? 구술자 : 아무래도 간식 같은 거. 식생활에 좀 사용을 하고 …(중략)…너무 배고파가지고. 돈 있는 사람들은 사실 쉴 때 피엑스라든가 그리고 뭐 다른 시장 마트 같은 데에 가서 간식 같은 거 사 먹기도 하고. |
통일연구원의 서보혁 선임연구위원은 "카드를 받아 생활비로 쓰는 사례는 도시와 가까운 군 부대에서 이뤄지는 일들로 보인다"라면서 "북한에서 출신 성분이 좋은 병사들은 부대에서 부모가 보낸 전용 차량으로 생필품을 전달받고, 부모가 간부에게 준 뇌물 덕분에 휴가를 길게 가는 일들이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 연애로 버티는 북한의 여군 생활
북한에도 여군이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성 20% 정도가 군에 입대한다고 합니다. 특이한 점은 '연애'가 고된 군 생활을 견디는 하나의 방편이라는 겁니다. 당연히 북한 당국은 군대에서 연애를 엄격히 통제하지만, 청춘 남녀가 오랜 시기 집단생활을 같이하다 보면 사랑을 피해가기 어렵습니다. 결국 군 생활이 5년 이상 되고 어느 정도 '짬이 차면' 남녀 연애에 눈을 감아주는 군대 문화가 있다고 탈북민들은 증언했습니다.
'군대 연애'를 단순히 기강 해이로 보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워낙 군 생활이 곤궁하다 보니, '생활형 커플'로 만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겁니다. 한 탈북민은 "남성은 훈련 도구를 만들어 주거나, 여성은 세탁을 해주는 방식으로 역할이 나눠 제대를 준비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여군들 [조선중앙TV]](/data/fckeditor/new/image/2025/02/21/315831740094898536.jpg)
북한 여군들의 열악한 사정은 보급품을 팔아 생활비를 마련하는 데에도 드러납니다. 북한 여군은 남성과 달리 세탁비누를 추가 지급받고, 생리대는 한 달에 10개, 상반기와 하반기에 분(파우더) 3개와 크림(로션) 4개를 배급받는다고 하는데요. 이 생리대를 팔아 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생리를 안 하면 좋다"라는 말이 돈다고 합니다. 북한 군대는 군인들 개인의 생일상을 차려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부대원들의 생리대를 십시일반 모아 미역국이나 떡을 살 돈을 마련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 "군 부정부패로 식량 부족 심각"
통일연구원은 북한 군인에 대한 식량 배급이 김정은 정권 들어 다소 개선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상급 기관이나 간부의 중간 빼돌리기로 여전히 충분한 공급은 아니며, 식량을 빼돌린 결과 대대, 중대, 소대를 거치면서 원래 식량 공급량의 60~70% 정도만 공급된다는 증언도 있었습니다. 군의 만연한 부정부패로 식량 부족 문제가 심각해, 민간인의 재산을 훔치는 일도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이 군의 기강을 철저히 단속하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NK는 북한이 군 검찰에 군법 처벌 규정을 엄격히 준수할 것을 지시했다고 지난 18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통일연구원은 "기강 확립을 위해 북한 당국은 군대 내 정치사상 교육을 강화하고 있지만, 일선 군부대 현장에서는 당국의 의도가 제대로 관철되지 않고 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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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2-22 07:01:00
- 수정2025-02-22 0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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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청년들은 대부분 군대에 갑니다. 북한의 병영 생활은 남한과 다른 부분이 많지요. 확실한 건 북한 군대도 변하고 있다는 겁니다. 통일연구원이 군 생활 경험이 있는 탈북민 27명을 심층 면접해 지난 18일 펴낸 <KINU 연구총서: 북한 주민의 군대 생활>의 주요 내용을 소개합니다.
■ '작업'하려 늘어난 복무기간
북한은 '전민 군사복무제', 사실상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통념과 달리 의무 복무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입대해야 한다는 사회적, 암묵적 분위기는 있지만, '안 가겠다'하면 군대에 가지 않는다고 탈북민들은 증언했습니다. 입대를 위한 최소 기준도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부모가 고령이거나 출신 성분이 좋지 않은 경우 입영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합니다.
북한군의 복무 기간은 시기에 따라 들쑥날쑥입니다. 2022년에는 남성 8년, 여성 5년 정도였지만 2023년에는 각각 10년과 7년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탈북민들은 늘어난 기간 동안 건설이나 농사에 동원됐다고 말했습니다.
![건설 공사에 투입된 북한 군인들 [조선중앙TV]](/data/fckeditor/new/image/2025/02/21/315831740094864461.jpg)
북한은 지난해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가주력사업인 '지방발전 20Ⅹ10'(지방공업공장을 매년 20개씩 건설해 10년 안에 경제 성장)에 군을 대규모로 투입하고 있습니다. 공사 현장에서 사고로 죽는 경우도 꽤 많은데, 금전적 보상은 없고 '애국열사증'을 주는 식으로 부모들을 달랜다는 게 탈북민들의 설명입니다.
■ 염장 3형제로 끼니 때우다 '엄카 찬스'
북한 군인의 기본 식단은 옥수수밥과 이른바 '염장 3형제'라고 합니다. 염장 3형제란 배추, 무를 소금에 절여 놓은 것을 모양만 다르게 세 가지를 내놓는 걸 뜻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군인들의 영양 개선을 위해 "반찬 세 가지는 보장하라"고 지시했는데, 이걸 지키기 위해 염장 채소를 사각이나 원형 등 다른 모양으로 썰어 반찬 가짓수를 억지로 늘리는 겁니다. 탈북민은 "대대마다 '염장 탱크'가 있고 유통기한 없이, 썩을 때까지 먹는다"라고 했습니다.
군대 내 식량 배급이 형편없다 보니 부대 내에서 음식을 '자급자족'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부대에서 돼지와 토끼 등 가축을 직접 기르거나 병사들이 직접 인근 농경지에서 옥수수와 콩을 비롯해 채소 등을 경작하는 겁니다. 해군의 경우 병사들이 군사용 선박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어선 출항 허가권을 남용해 민간으로부터 어획물을 상납받기도 합니다.
2020년 이후에는 새로운 현상도 나타났다고 합니다. 우체국에서 부모로부터 카드를 받아다가, PX나 마트 같은 곳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겁니다. 이 내용은 보고서 원문 그대로 싣습니다.
연구자 : 부모님이 돈을 어떻게 보내세요? 구술자(탈북민) : 카드로 보냈어요. 연구자 : 카드요? 구술자 : 네, 우체국에 가서. 송금으로 받았죠. 제 카드에다가 돈을 넣으면 저는 우체국 가서 그 카드에 있는 돈을 뽑아 쓰는 거죠. 연구자 : 부모님한테 돈을 받고 하는 게 흔한 일이에요? 구술자 : 그죠. 저희 때(해당 구술자는 2021년까지 복무)는 흔했어요. 연구자 : 어떻게 쓰세요? 구술자 : 아무래도 간식 같은 거. 식생활에 좀 사용을 하고 …(중략)…너무 배고파가지고. 돈 있는 사람들은 사실 쉴 때 피엑스라든가 그리고 뭐 다른 시장 마트 같은 데에 가서 간식 같은 거 사 먹기도 하고. |
통일연구원의 서보혁 선임연구위원은 "카드를 받아 생활비로 쓰는 사례는 도시와 가까운 군 부대에서 이뤄지는 일들로 보인다"라면서 "북한에서 출신 성분이 좋은 병사들은 부대에서 부모가 보낸 전용 차량으로 생필품을 전달받고, 부모가 간부에게 준 뇌물 덕분에 휴가를 길게 가는 일들이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 연애로 버티는 북한의 여군 생활
북한에도 여군이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성 20% 정도가 군에 입대한다고 합니다. 특이한 점은 '연애'가 고된 군 생활을 견디는 하나의 방편이라는 겁니다. 당연히 북한 당국은 군대에서 연애를 엄격히 통제하지만, 청춘 남녀가 오랜 시기 집단생활을 같이하다 보면 사랑을 피해가기 어렵습니다. 결국 군 생활이 5년 이상 되고 어느 정도 '짬이 차면' 남녀 연애에 눈을 감아주는 군대 문화가 있다고 탈북민들은 증언했습니다.
'군대 연애'를 단순히 기강 해이로 보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워낙 군 생활이 곤궁하다 보니, '생활형 커플'로 만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겁니다. 한 탈북민은 "남성은 훈련 도구를 만들어 주거나, 여성은 세탁을 해주는 방식으로 역할이 나눠 제대를 준비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여군들 [조선중앙TV]](/data/fckeditor/new/image/2025/02/21/315831740094898536.jpg)
북한 여군들의 열악한 사정은 보급품을 팔아 생활비를 마련하는 데에도 드러납니다. 북한 여군은 남성과 달리 세탁비누를 추가 지급받고, 생리대는 한 달에 10개, 상반기와 하반기에 분(파우더) 3개와 크림(로션) 4개를 배급받는다고 하는데요. 이 생리대를 팔아 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생리를 안 하면 좋다"라는 말이 돈다고 합니다. 북한 군대는 군인들 개인의 생일상을 차려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부대원들의 생리대를 십시일반 모아 미역국이나 떡을 살 돈을 마련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 "군 부정부패로 식량 부족 심각"
통일연구원은 북한 군인에 대한 식량 배급이 김정은 정권 들어 다소 개선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상급 기관이나 간부의 중간 빼돌리기로 여전히 충분한 공급은 아니며, 식량을 빼돌린 결과 대대, 중대, 소대를 거치면서 원래 식량 공급량의 60~70% 정도만 공급된다는 증언도 있었습니다. 군의 만연한 부정부패로 식량 부족 문제가 심각해, 민간인의 재산을 훔치는 일도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이 군의 기강을 철저히 단속하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NK는 북한이 군 검찰에 군법 처벌 규정을 엄격히 준수할 것을 지시했다고 지난 18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통일연구원은 "기강 확립을 위해 북한 당국은 군대 내 정치사상 교육을 강화하고 있지만, 일선 군부대 현장에서는 당국의 의도가 제대로 관철되지 않고 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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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혁진 기자 analog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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