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상 죄송한 일을 만들었고, '잘못했습니다' '더 잘하겠습니다'라는 말만 반복하며 살았죠." (수입차 딜러사 영업사원 故 이 모 씨) "사는 게 너무너무 피곤합니다. (…) 내가 사랑하는 일을 마음껏 사랑만 할 수 없는 게 싫어요." (기상캐스터 故 오요안나 씨) |
생을 마감하기 전, 두 사람이 털어놓은 것은 '일하며 느꼈던 괴로움'이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며 최근 목숨을 끊은 전 바바리안모터스 영업사원 고(故) 이 모 씨와 전 MBC 기상캐스터 故오요안나 씨의 유서에 적힌 내용입니다.
[연관 기사]
“버틸 수 있으면 버텨봐”…세상 등진 수입차 영업사원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86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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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62426
유서를 공개한 유족들은 고인의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 당사자를 대신하여 고용노동부 조사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 절차가 끝난 뒤에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상 신청을 할 계획입니다. 이른바 '자살 산재' 신청입니다.
■ '자살 산재' 신청, 연평균 100건 안 돼…"누락 상당할 듯"
한국에선 매년 1만 3천 명이 넘는 사람이 자살로 사망하고 있습니다. 최근 10년간(2014~2023년) 연평균을 내면 13,380명입니다.
그럼, 자살의 원인으로 과로·직장 내 괴롭힘 등 '업무 관련성'을 주장한 자살 산재 신청은 얼마나 됐을까요?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9~2023년) 연평균 89건의 자살 산재 신청이 근로복지공단에 접수됐습니다.
같은 기간 전체 자살 사망자 수는 연평균 13,446명이었으니, 전체 사건의 0.66%만 유족들이 업무 관련성을 주장한 셈입니다.
산재보험 적용 대상자에 공무원·사립학교 교직원·군인이 빠져 있음을 고려하더라도 매우 낮은 비율인데요.
고인의 자살에 업무 관련성이 있었더라도 유족들이 이를 알지 못한 경우, 인지했어도 자살 산재 제도를 모르거나 이용하기 어려웠던 경우가 상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누락되는 건이 많을 거라는 추론인데, 이런 정황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경찰의 변사 사건 통계입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이 확보한 2019~2023년 경찰의 변사 사건 처리 결과를 보면,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로 인한 자살은 연평균 477명으로 확인됐습니다.
같은 기간 '자살 산재' 인정 건수(57.6명)보다 8.3 배가량 많은 수치입니다.
이와 관련해 김정민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은 지난 5일 국회 토론회에서, 경찰과 고용노동부 간의 협력 체계를 만들자고 제언했습니다.
변사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공무원이 자살 사망자의 사망 원인을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로 판단하면 고용노동부(근로복지공단)에 사건을 통보하고, 해당 사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심층 조사를 실시하자는 구상입니다.
김 운영위원은 "조사를 통해 자살 산재가 의심되는 경우, 공단이 유족에게 산재보상 제도를 안내하고 보상 절차를 진행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대기업·관리자·40대·남성 노동자, '자살 산재' 신청 많아

'자살 산재' 심사대에 오른 숨진 노동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정여진 정신건강의학과·예방의학과 전문의가 2019~2023년 근로복지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자살 산재' 신청 당사자(고인)의 82%는 남성이었습니다.
평균 연령은 44.5세, 평균 경력은 8.4년이었습니다.
일했던 회사 규모는 300인 이상 사업장이 37.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5인 미만 사업장이 13.7%로 가장 적었습니다. 직종을 보면 관리자 비중이 35%로 가장 높았습니다.
이 같은 통계는 업무로 인한 자살 사건 예방에 여러 시사점을 줄 수 있습니다.
법률사무소 '일과사람'의 권동희 노무사는 지난 5일 국회 토론회에서 "(자살 산재 신청에서) 300인 이상 사업장 비중이 높다는 건 대기업일수록 스트레스 관리가 오히려 안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권 노무사는 "일본의 경우 2014년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은 (노동자의) 스트레스를 측정해 일정 집단별로 분석한 뒤, 사용자가 심리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도록 노력할 의무를 법으로 부여하고 있다"면서 "예방의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 '자살 산재' 승인율 하락 추세…"진전된 이해·개방적 논의 필요"
앞서 살펴봤듯 '자살 산재' 신청까지 오는 사건 자체도 많지 않지만, 실제 산재로 인정되는 사건은 당연히 더 적습니다.
산재보험법 시행령 36조는 '자살 산재' 인정 기준을 아래와 같이 정하고 있습니다.
1.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2.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3. 그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 |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 행위를 한 경우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고인이 자살 당시 '정신적 이상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되지 않으면, 자살 산재가 승인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정신적 이상 상태가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도 일관되지 않습니다.
정여진 정신건강의학과·예방의학과 전문의는 "고인이 유서를 남기고 매우 '구체적인' 계획적 자살을 감행했단 이유로 '정신적 이상 상태'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우울증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죽음만이 답이다'는 식의 인지왜곡을 '정신적 이상 상태'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5년(2019~2023년)간 자살 산재 최초 승인율은 평균 50%를 겨우 넘겼습니다.

김정민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은 지난 5일 국회 토론회에서 "프랑스와 벨기에에선 업무 수행성이 인정되는 자살은 반증이 없는 한 업무상 재해로 추정한다"면서 "'정신적 이상 상태'라는 (자살 산재 인정의) 전제 조건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살은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완전히 코너에 몰렸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하는 행위이며, 따라서 자살만으로도 정신적 이상 상태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산재 신청을 심의하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산재 여부를 최종 판단하는 법원조차 업무와 자살의 인과관계를 판단할 때 '정신적 이상 상태'를 필수 요건으로 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 정슬기 박사는 지난 5일 국회 토론회에서 "업무상 스트레스로 정상적 인식 능력이 결여돼 자살에 이른 것으로 추단할 수 있을 때, 법원은 업무와 자살 행위 사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다"고 말했습니다.
정 박사는 "고인이 새롭게 잘 살고자 의지를 보였던 것도 '자살의 전조 증상'이라고 판단한 대법원 판례가 있다"면서 "자살에 대한 더 진전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정여진 전문의 역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에 정신질환자 당사자나 가족이 참여하는 것처럼, 산재 심의 과정에 산재 자살 유가족 등이 배심원처럼 참여할 수 있는 길이 필요하다"면서 "전문가들이 모여서 '나 때는 어땠는데' 식의 논의를 하기보다는 좀 더 개방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픽: 권세라, 반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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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때문에 죽을 만큼 괴로웠다…‘자살 산재’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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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3-23 08:01:28

"항상 죄송한 일을 만들었고, '잘못했습니다' '더 잘하겠습니다'라는 말만 반복하며 살았죠." (수입차 딜러사 영업사원 故 이 모 씨) "사는 게 너무너무 피곤합니다. (…) 내가 사랑하는 일을 마음껏 사랑만 할 수 없는 게 싫어요." (기상캐스터 故 오요안나 씨) |
생을 마감하기 전, 두 사람이 털어놓은 것은 '일하며 느꼈던 괴로움'이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며 최근 목숨을 끊은 전 바바리안모터스 영업사원 고(故) 이 모 씨와 전 MBC 기상캐스터 故오요안나 씨의 유서에 적힌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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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를 공개한 유족들은 고인의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 당사자를 대신하여 고용노동부 조사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 절차가 끝난 뒤에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상 신청을 할 계획입니다. 이른바 '자살 산재' 신청입니다.
■ '자살 산재' 신청, 연평균 100건 안 돼…"누락 상당할 듯"
한국에선 매년 1만 3천 명이 넘는 사람이 자살로 사망하고 있습니다. 최근 10년간(2014~2023년) 연평균을 내면 13,380명입니다.
그럼, 자살의 원인으로 과로·직장 내 괴롭힘 등 '업무 관련성'을 주장한 자살 산재 신청은 얼마나 됐을까요?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9~2023년) 연평균 89건의 자살 산재 신청이 근로복지공단에 접수됐습니다.
같은 기간 전체 자살 사망자 수는 연평균 13,446명이었으니, 전체 사건의 0.66%만 유족들이 업무 관련성을 주장한 셈입니다.
산재보험 적용 대상자에 공무원·사립학교 교직원·군인이 빠져 있음을 고려하더라도 매우 낮은 비율인데요.
고인의 자살에 업무 관련성이 있었더라도 유족들이 이를 알지 못한 경우, 인지했어도 자살 산재 제도를 모르거나 이용하기 어려웠던 경우가 상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누락되는 건이 많을 거라는 추론인데, 이런 정황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경찰의 변사 사건 통계입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이 확보한 2019~2023년 경찰의 변사 사건 처리 결과를 보면,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로 인한 자살은 연평균 477명으로 확인됐습니다.
같은 기간 '자살 산재' 인정 건수(57.6명)보다 8.3 배가량 많은 수치입니다.
이와 관련해 김정민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은 지난 5일 국회 토론회에서, 경찰과 고용노동부 간의 협력 체계를 만들자고 제언했습니다.
변사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공무원이 자살 사망자의 사망 원인을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로 판단하면 고용노동부(근로복지공단)에 사건을 통보하고, 해당 사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심층 조사를 실시하자는 구상입니다.
김 운영위원은 "조사를 통해 자살 산재가 의심되는 경우, 공단이 유족에게 산재보상 제도를 안내하고 보상 절차를 진행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대기업·관리자·40대·남성 노동자, '자살 산재' 신청 많아

'자살 산재' 심사대에 오른 숨진 노동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정여진 정신건강의학과·예방의학과 전문의가 2019~2023년 근로복지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자살 산재' 신청 당사자(고인)의 82%는 남성이었습니다.
평균 연령은 44.5세, 평균 경력은 8.4년이었습니다.
일했던 회사 규모는 300인 이상 사업장이 37.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5인 미만 사업장이 13.7%로 가장 적었습니다. 직종을 보면 관리자 비중이 35%로 가장 높았습니다.
이 같은 통계는 업무로 인한 자살 사건 예방에 여러 시사점을 줄 수 있습니다.
법률사무소 '일과사람'의 권동희 노무사는 지난 5일 국회 토론회에서 "(자살 산재 신청에서) 300인 이상 사업장 비중이 높다는 건 대기업일수록 스트레스 관리가 오히려 안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권 노무사는 "일본의 경우 2014년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은 (노동자의) 스트레스를 측정해 일정 집단별로 분석한 뒤, 사용자가 심리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도록 노력할 의무를 법으로 부여하고 있다"면서 "예방의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 '자살 산재' 승인율 하락 추세…"진전된 이해·개방적 논의 필요"
앞서 살펴봤듯 '자살 산재' 신청까지 오는 사건 자체도 많지 않지만, 실제 산재로 인정되는 사건은 당연히 더 적습니다.
산재보험법 시행령 36조는 '자살 산재' 인정 기준을 아래와 같이 정하고 있습니다.
1.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2.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3. 그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 |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 행위를 한 경우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고인이 자살 당시 '정신적 이상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되지 않으면, 자살 산재가 승인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정신적 이상 상태가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도 일관되지 않습니다.
정여진 정신건강의학과·예방의학과 전문의는 "고인이 유서를 남기고 매우 '구체적인' 계획적 자살을 감행했단 이유로 '정신적 이상 상태'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우울증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죽음만이 답이다'는 식의 인지왜곡을 '정신적 이상 상태'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5년(2019~2023년)간 자살 산재 최초 승인율은 평균 50%를 겨우 넘겼습니다.

김정민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은 지난 5일 국회 토론회에서 "프랑스와 벨기에에선 업무 수행성이 인정되는 자살은 반증이 없는 한 업무상 재해로 추정한다"면서 "'정신적 이상 상태'라는 (자살 산재 인정의) 전제 조건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살은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완전히 코너에 몰렸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하는 행위이며, 따라서 자살만으로도 정신적 이상 상태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산재 신청을 심의하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산재 여부를 최종 판단하는 법원조차 업무와 자살의 인과관계를 판단할 때 '정신적 이상 상태'를 필수 요건으로 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 정슬기 박사는 지난 5일 국회 토론회에서 "업무상 스트레스로 정상적 인식 능력이 결여돼 자살에 이른 것으로 추단할 수 있을 때, 법원은 업무와 자살 행위 사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다"고 말했습니다.
정 박사는 "고인이 새롭게 잘 살고자 의지를 보였던 것도 '자살의 전조 증상'이라고 판단한 대법원 판례가 있다"면서 "자살에 대한 더 진전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정여진 전문의 역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에 정신질환자 당사자나 가족이 참여하는 것처럼, 산재 심의 과정에 산재 자살 유가족 등이 배심원처럼 참여할 수 있는 길이 필요하다"면서 "전문가들이 모여서 '나 때는 어땠는데' 식의 논의를 하기보다는 좀 더 개방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픽: 권세라, 반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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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린 기자 di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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