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가방 싸게 사려면 연락해!”…짝퉁 뒤에 숨겨진 것 [특파원 리포트][짝퉁의 역습]②

입력 2025.04.19 (10:03) 수정 2025.04.1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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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계속 : [짝퉁의 역습①]이중 철문 속 '쉬쉬' 숨겼던 중국 짝퉁…이제 신분 상승?)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31151

'비밀의 방'까지 가도 볼 수 없을 만큼 어둠 속에 거래되던 'S급 짝퉁'에 이제 어째 손이 닿을 것도 같습니다.

미·중 관세 전쟁이 격화된 사이 틱톡, 더우인(중국판 틱톡)을 중심으로 '정품 딱지를 달고 팔리던 게 사실 다 우리 공장에서 만든 거였다' '싸게 팔 테니 우리한테 직접 사라'고 홍보하는 영상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해외 소비자를 겨냥해 영어로 된 영상까지 올리는데, 사실상 S급 짝퉁을 팔 테니 구매하라고 미끼를 던지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영상을 올리는 업체들은 주로 자사 공장이 명품 브랜드의 하청으로, 실제 정품 가방을 만들어 왔다고 주장합니다. 진위는 가리기 힘들지만 상당히 솔깃합니다.




특히 1편에서 기자가 다녀왔던 광저우 소재 업체들의 영상은 제법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합니다.

광저우는 '중국 가죽의 수도'라는 별칭이 붙은 스링전(狮岭镇)을 시작으로 1970년대부터 가죽과 가방 산업이 발달한 곳입니다. 질 좋은 가죽부터 각종 부자재까지, 가방을 생산하기 위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습니다.

진짜와 분간하기 힘든 짝퉁 역시, 일부 공장에서 슬며시 유통하기 시작한 것으로 회자됩니다.

명품 브랜드 제품들도 '중국에서 값싸게 만든 뒤 재포장해 수백만 원을 남기고 파는 것'이란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지만, 원가와 생산 과정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우리 중국 공장이 만들었다'는 폭로 영상에 힘을 실어줍니다.

영상이 중국은 물론 해외, 특히 관세 전쟁 중인 미국 소비자들의 눈길까지 사로잡으며 상품 구매를 문의하는 댓글이 줄을 잇는 이유입니다.


중국 가방 업체들이 중국에서 제작된 명품이라고 주장하며 SNS에 올린 가방 영상들. (출처 : 더우인, 틱톡)중국 가방 업체들이 중국에서 제작된 명품이라고 주장하며 SNS에 올린 가방 영상들. (출처 : 더우인, 틱톡)

■"중국 없으면 못 살걸?" … '짝퉁의 역습'

'무역전쟁에는 승자가 없다'.

중국 정부의 기세 좋은 외침을 필두로 지금 중국은 일반 소비자들까지 미국에 맞서자며 똘똘 뭉쳐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중국이 대외적으로 가장 알리고 싶어 하는 메시지 두 가지가 S급 짝퉁 홍보 영상들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전해진다는 점입니다.

①미국인들이 쓰는 소비재, 심지어 명품까지 죄다 중국에서 만드는 것이다. 결코 무역에서 중국을 배제할 수 없다.

몸집으로는 분명 제조 대국임에도 '메이드 인 차이나'의 브랜드 가치는 평가절하되기 일쑤였습니다. 품질이 떨어진다고 여겨지기도 했고 저가 상품을 박리다매하면서 이윤을 챙긴다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S급 짝퉁 영상들은 미국, 나아가 전 세계 소비자들이 갈망하는 최고급 명품 가방도 중국에서 만드는 거라고 말합니다. 명품 브랜드 로고만 떼놓고 보면 짝퉁도 진짜나 다름없고, 무시 받던 '메이드 인 차이나' 딱지만 가려놓고 보면 품질이 떨어지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생각이 뻗어나갑니다. 중국에서 안 만드는 건 뭐가 있을까요? 관세 전쟁,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②중국에는 14억 내수시장이 있다. 미국 시장 없이도 어떻게든 버티고 일어날 수 있다.

한 영상 속 여성 판매자는 말했습니다. '원래 미국으로 보내려던 가방이지만 국내 자매님들에게 팔겠다'라고 말입니다.

14억 내수시장이 있으니 중국 국내 소비자들만 사줘도 괜찮다는 건데, 바꿔 말하면 '난 버틸 만 하지만 우리 물건을 못 사면 미국 소비자들만 손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연일 내수 시장의 잠재력을 주장하며 관세 전쟁을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홍보하는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메시지입니다.

중국에 국제적인 불명예를 안겼던 짝퉁이건만, 지금은 상당히 효과적인 대미 선전 도구로 신분 상승했습니다.

그야말로 '짝퉁의 역습'인 셈입니다.


짝퉁으로 유명한 중국 전자상거래 앱 DHgate. 짝퉁 홍보 영상이 인기를 끌며 한때 미국 애플 앱스토어 무료 앱 랭킹 2위로 올라섰다.짝퉁으로 유명한 중국 전자상거래 앱 DHgate. 짝퉁 홍보 영상이 인기를 끌며 한때 미국 애플 앱스토어 무료 앱 랭킹 2위로 올라섰다.

■짝퉁 업체가 승자?…"관세로 못 판 물건, 사무실에까지 쌓아놨다"

'명품 중의 명품' 에르메스가 관세의 영향으로 미국 시장에서 제품 가격을 올릴 방침이라고 발표하는 순간에도 짝퉁 홍보 영상들은 계속 퍼져나갔습니다.

이를 두고 중국의 '민관 합동 여론전'이라고 평가하는 시선이 많습니다.

그런데 과연 '제조 강국' 중국의 힘을 알리기 위한 애국심의 발로이기만 했을까요?


중국의 한 가방 업체가 관세로 수출이 멈췄다며 SNS에 올린 영상. 물건을 둘 곳이 없어 사무실에까지 쌓아놨다고 말한다. (출처: 더우인)중국의 한 가방 업체가 관세로 수출이 멈췄다며 SNS에 올린 영상. 물건을 둘 곳이 없어 사무실에까지 쌓아놨다고 말한다. (출처: 더우인)

사실 SNS에는 관세 전쟁의 여파로 제품 출하가 줄줄이 중단됐다며 괴로움을 토로하는 영상도 적지 않습니다.

미국 수출이 중단돼 갈 곳을 잃고 쌓여있는 물건을 보여주는데, 그중에는 마찬가지로 가방을 만드는 제조 업체의 영상도 있습니다.

한 영상에서는 관세로 주문이 멈췄고, 물건을 창고에 쌓아두는 걸로도 공간이 부족해 사무실에까지 가져다 놨다고 토로합니다.

아무리 내수 시장이 크다고 해도 판매처를 새로 뚫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든다고 해도 남의 지갑을 열게 하는 건 언제나 어렵습니다.

중국 경제는 버틸 수 있더라도 모든 사업체가 다 버틸 수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짝퉁 홍보에 나선 업체들이 관세 전쟁의 어부지리를 누리게 됐다고 확신할 수도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짝퉁의 역습 이면에는, 어쩌면 어떻게든 새로운 소비자를 찾아내야 한다는 불안감과 국내 소비자들의 애국심에라도 호소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 미국, 생산자, 판매자, 소비자… 거기에 때아닌 과도한 가격 부풀리기 논란을 떠안게 된 명품 브랜드까지.

중국 정부의 말 그대로 무역전쟁에 승자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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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품가방 싸게 사려면 연락해!”…짝퉁 뒤에 숨겨진 것 [특파원 리포트][짝퉁의 역습]②
    • 입력 2025-04-19 10:03:30
    • 수정2025-04-19 10: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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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계속 : [짝퉁의 역습①]이중 철문 속 '쉬쉬' 숨겼던 중국 짝퉁…이제 신분 상승?)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31151

'비밀의 방'까지 가도 볼 수 없을 만큼 어둠 속에 거래되던 'S급 짝퉁'에 이제 어째 손이 닿을 것도 같습니다.

미·중 관세 전쟁이 격화된 사이 틱톡, 더우인(중국판 틱톡)을 중심으로 '정품 딱지를 달고 팔리던 게 사실 다 우리 공장에서 만든 거였다' '싸게 팔 테니 우리한테 직접 사라'고 홍보하는 영상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해외 소비자를 겨냥해 영어로 된 영상까지 올리는데, 사실상 S급 짝퉁을 팔 테니 구매하라고 미끼를 던지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영상을 올리는 업체들은 주로 자사 공장이 명품 브랜드의 하청으로, 실제 정품 가방을 만들어 왔다고 주장합니다. 진위는 가리기 힘들지만 상당히 솔깃합니다.




특히 1편에서 기자가 다녀왔던 광저우 소재 업체들의 영상은 제법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합니다.

광저우는 '중국 가죽의 수도'라는 별칭이 붙은 스링전(狮岭镇)을 시작으로 1970년대부터 가죽과 가방 산업이 발달한 곳입니다. 질 좋은 가죽부터 각종 부자재까지, 가방을 생산하기 위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습니다.

진짜와 분간하기 힘든 짝퉁 역시, 일부 공장에서 슬며시 유통하기 시작한 것으로 회자됩니다.

명품 브랜드 제품들도 '중국에서 값싸게 만든 뒤 재포장해 수백만 원을 남기고 파는 것'이란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지만, 원가와 생산 과정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우리 중국 공장이 만들었다'는 폭로 영상에 힘을 실어줍니다.

영상이 중국은 물론 해외, 특히 관세 전쟁 중인 미국 소비자들의 눈길까지 사로잡으며 상품 구매를 문의하는 댓글이 줄을 잇는 이유입니다.


중국 가방 업체들이 중국에서 제작된 명품이라고 주장하며 SNS에 올린 가방 영상들. (출처 : 더우인, 틱톡)
■"중국 없으면 못 살걸?" … '짝퉁의 역습'

'무역전쟁에는 승자가 없다'.

중국 정부의 기세 좋은 외침을 필두로 지금 중국은 일반 소비자들까지 미국에 맞서자며 똘똘 뭉쳐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중국이 대외적으로 가장 알리고 싶어 하는 메시지 두 가지가 S급 짝퉁 홍보 영상들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전해진다는 점입니다.

①미국인들이 쓰는 소비재, 심지어 명품까지 죄다 중국에서 만드는 것이다. 결코 무역에서 중국을 배제할 수 없다.

몸집으로는 분명 제조 대국임에도 '메이드 인 차이나'의 브랜드 가치는 평가절하되기 일쑤였습니다. 품질이 떨어진다고 여겨지기도 했고 저가 상품을 박리다매하면서 이윤을 챙긴다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S급 짝퉁 영상들은 미국, 나아가 전 세계 소비자들이 갈망하는 최고급 명품 가방도 중국에서 만드는 거라고 말합니다. 명품 브랜드 로고만 떼놓고 보면 짝퉁도 진짜나 다름없고, 무시 받던 '메이드 인 차이나' 딱지만 가려놓고 보면 품질이 떨어지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생각이 뻗어나갑니다. 중국에서 안 만드는 건 뭐가 있을까요? 관세 전쟁,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②중국에는 14억 내수시장이 있다. 미국 시장 없이도 어떻게든 버티고 일어날 수 있다.

한 영상 속 여성 판매자는 말했습니다. '원래 미국으로 보내려던 가방이지만 국내 자매님들에게 팔겠다'라고 말입니다.

14억 내수시장이 있으니 중국 국내 소비자들만 사줘도 괜찮다는 건데, 바꿔 말하면 '난 버틸 만 하지만 우리 물건을 못 사면 미국 소비자들만 손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연일 내수 시장의 잠재력을 주장하며 관세 전쟁을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홍보하는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메시지입니다.

중국에 국제적인 불명예를 안겼던 짝퉁이건만, 지금은 상당히 효과적인 대미 선전 도구로 신분 상승했습니다.

그야말로 '짝퉁의 역습'인 셈입니다.


짝퉁으로 유명한 중국 전자상거래 앱 DHgate. 짝퉁 홍보 영상이 인기를 끌며 한때 미국 애플 앱스토어 무료 앱 랭킹 2위로 올라섰다.
■짝퉁 업체가 승자?…"관세로 못 판 물건, 사무실에까지 쌓아놨다"

'명품 중의 명품' 에르메스가 관세의 영향으로 미국 시장에서 제품 가격을 올릴 방침이라고 발표하는 순간에도 짝퉁 홍보 영상들은 계속 퍼져나갔습니다.

이를 두고 중국의 '민관 합동 여론전'이라고 평가하는 시선이 많습니다.

그런데 과연 '제조 강국' 중국의 힘을 알리기 위한 애국심의 발로이기만 했을까요?


중국의 한 가방 업체가 관세로 수출이 멈췄다며 SNS에 올린 영상. 물건을 둘 곳이 없어 사무실에까지 쌓아놨다고 말한다. (출처: 더우인)
사실 SNS에는 관세 전쟁의 여파로 제품 출하가 줄줄이 중단됐다며 괴로움을 토로하는 영상도 적지 않습니다.

미국 수출이 중단돼 갈 곳을 잃고 쌓여있는 물건을 보여주는데, 그중에는 마찬가지로 가방을 만드는 제조 업체의 영상도 있습니다.

한 영상에서는 관세로 주문이 멈췄고, 물건을 창고에 쌓아두는 걸로도 공간이 부족해 사무실에까지 가져다 놨다고 토로합니다.

아무리 내수 시장이 크다고 해도 판매처를 새로 뚫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든다고 해도 남의 지갑을 열게 하는 건 언제나 어렵습니다.

중국 경제는 버틸 수 있더라도 모든 사업체가 다 버틸 수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짝퉁 홍보에 나선 업체들이 관세 전쟁의 어부지리를 누리게 됐다고 확신할 수도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짝퉁의 역습 이면에는, 어쩌면 어떻게든 새로운 소비자를 찾아내야 한다는 불안감과 국내 소비자들의 애국심에라도 호소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 미국, 생산자, 판매자, 소비자… 거기에 때아닌 과도한 가격 부풀리기 논란을 떠안게 된 명품 브랜드까지.

중국 정부의 말 그대로 무역전쟁에 승자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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