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경중’ 유효기간 끝났다…이제는 ‘자력자강’의 시대” [광복80년]①

입력 2025.08.17 (07:00) 수정 2025.08.17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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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80년, 동북아시아의 안보 환경은 빠르게 변했습니다. 한국 전쟁의 아픔을 겪으며 남북이 갈라섰고,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게 됐습니다. 1990년대 탈냉전을 거치면서 안보 환경은 이완됐지만, 북한의 핵 개발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80년 동안 초강대국인 미국의 억제력을 등에 업고 빠르게 도약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80년 만에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 됐고, 세계 5위의 군사력을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동북아 안보 환경은 커다란 변화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80년 사이 중국은 미국을 빠르게 뒤쫓았고, 이제는 더 이상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이 아닙니다. '미·중 전략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고, 미국은 동북아에서의 관여를 점차 줄여나가며 대북 견제의 무게 추를 중국 견제 쪽으로 옮기려 하고 있습니다.

KBS는 광복 80년을 맞아, 앞으로 한반도 안보 지형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묻는 전문가 연속 인터뷰를 준비했습니다. 첫 순서로 이백순 전 주호주대사의 인터뷰를 싣습니다. 이 전 대사는 1985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고, 35년 동안 외교부에 근무하며, 북미국장, 주호주대사 등을 지냈습니다. 이 전 대사는 미국과 안보를, 중국과 경제를 협력하는, 이른바 '안미경중'의 유효기간은 끝났다며, 이제는 '자력자강'의 시대라고 강조했습니다.

[광복 80년, 동북아의 미래를 묻다 : KBS 연속 인터뷰]

① 이백순 전 주호주대사
② 강창일 전 주일대사
③ 조성렬 전 오사카 총영사
④ 장성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연관 기사] 판 바뀌는 동북아…한일·한미일 안보 협력 진화할까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331423


Q. 최근 펴낸 저서(격변기 외교의 새 길 찾기)에서 지금 시점을 국제정세 급변하는 '대변환기'라고 정의내리셨어요.

A. 미국이 쇠퇴하고 있습니다.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Pax Americana :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가 이제 황혼기에 접어들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죠. 이걸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이나 당선됐다는 건, 그 점을 더 분명히 하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지난 80년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죠. 또 중국은 빠른 부상으로 80년 전 같지 않은 중국이 된 거죠. 그래서 미·중 간에 패권 경쟁이 벌어지는 겁니다. 이제 두고 봐야죠. 미국이 트럼프가 말한 것처럼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를 통해서 다시 회복할 것인가, 아니면 기회를 놓쳐버리고 중국이 더 앞서 나갈 것인가. 그 변동 속에서 그 중간에 낀 나라들은 굉장히 지금 어려운 처지에 있는 거죠.

Q. 실용 외교를 지향하는 이재명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절한 자리 잡기를 하고자 하는데, 미국에선 대놓고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은 꿈도 꾸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거든요.

A. 저는 7~8년쯤부터 안미경중이 유효기간이 다 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단 우리가 중국하고 초격차를 유지하지 못하면 중국으로부터 우리가 경제적으로 이득을 취할 게 오히려 더 없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을 따라가는 건 쉬운데 중국으로부터 도망가는 건 힘듭니다. 뒤도 쳐다보고 앞으로 나가는 길도 보고 뛰어야 돼요. 근데 우리가 그걸 못했단 거죠. 또 미국이 이전 같지 않기 때문에 안보도 100% 미국에 의존한다는 것은 과거의 문법이라고 봅니다.

Q. 그러면 새로운 문법은 뭘까요?

A. 우리가 자력자강해야죠. 이제 우리 스스로 안보를 지킬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글로벌 강국이라고 하고, 국방력 세계 5위라고 하고 경제력은 10위권이라고 그러는데 아직도 우리는 정신적으로 굉장히 의존성이 강하고 남을 너무 과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 같은 격변기의 국제 정세에서는 남을 믿으면 나중에 큰 어려움이 될 수 있습니다.

Q. 미국 국방정책을 설계한 앨브리지 콜비 미 국방 차관도 전시작전권 환수를 계속 이야기하는데, 대사님 말씀하신 부분과도 맞닿아 있네요.

A. 일각에선 전시작전권 환수를 서두른다고 지적하는데, 이 문제가 나온 지 거의 50년 가까이 됐습니다. 미국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한다고 7사단을 뺄 때 앞으로 한국 국방은 우리 스스로 책임져야겠다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작권 환수 검토 지시를 내렸어요. 그게 1976년입니다. 노태우 정부 때에도 대통령 공약으로 전작권을 환수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이걸 못한다고 버티면 두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는 미국이 콜비가 계속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반도 안보는 한국이 스스로 책임져라, 이렇게 나왔을 때 앞으로 어떻게 하냐는 겁니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거죠. 또 이걸 계속 우리가 안 하겠다면 미국에 꽃놀이패를 주는 셈이죠. 그걸 빌미로 안보 비용 청구서의 비용을 더 높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Q. 결국 흐름은 한국이 북한에 대한 재래식 전력 방어를 맡고, 미국이 북핵에 대한 확장억제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가는 거겠죠.

A. 전작권을 우리가 환수받는다고 해도 실제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미국이 결심할 겁니다. 한반도에 개입할 거냐, 한반도 전쟁에 개입할 때는 다시 전시 전작권이 미국으로 넘어가게 돼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예전부터 그 준비를 다 하고 있고, 그래서 미래 연합사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겁니다.

Q. 지금 미국이 이야기하는 '동맹 현대화'가 진행될 경우,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국의 의견도 중요하게 반영되어야 할 텐데요. 미국의 생각처럼 주한미군 전력이 중국 견제에까지 활용될 경우 중국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을 거거든요. 이 문제는 어떻게 다뤄야 한다고 보시나요?

A. 그 문제에 대해서 보수 정부도 진보 정부도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던데 저는 타이완 문제는 조금 이제 별개로 하고요. 남중국해 문제를 우리가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거는 좀 굉장히 이상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남중국해는 한국의 '파이프라인'입니다. 그 길을 통해서 한국의 모든 원자재와 에너지가 다 수입되거든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은 거기에 대해서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죠. 심지어 제가 있을 때 호주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우리 80%의 물동량이 거기를 통해서 들어오는데 다른 나라가 다 책임져주고 우리는 관여 안 해도 된다는 거는 좀 무책임한 태도죠. 중국을 상대로는 '항행의 자유'를 보장받으려 한다고 설명하면 됩니다.

Q. 타이완은 별개로 한다고 하신 이유가 타이완은 역시 중국이 이야기하는 '핵심 이익'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A. 네. 그거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 준비는 해야 해요. 타이완 문제가 터지면 중국, 북한, 러시아, 이 삼각 연대가 한반도에서도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상황들을 보면서 굉장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거 같습니다.

Q. 미국이 이야기하는 '동맹 현대화'의 흐름은 사실 거스를 수가 없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데, 이런 과정에서 '한미일 안보 협력'은 강화되는 방향이겠죠.

A. 동아시아 안보 지형이 막 바뀌고 있잖아요. 그중에서 제일 큰 게 미국의 역할이 점차 줄어든다.
그리고 북중러의 연대가 강해진다. 이런 상황에 한국이 100% 독자적으로 안보를 책임질 수 없으니 북중러에 대항해 한미일 안보 연대를 만드는 게 자연스러운 대응입니다. 사실 또 그게 미국의 오랜 염원이었는데, 한일 관계 때문에 잘 안됐잖아요. 이제 한일 관계가 조금씩 좋아지고 하면서 그리고 또 북중러가 강화되면서 한미일 안보 협력이 강화되는 거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일본에서는 더 나가 '하나의 전구' 구상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A. 그건 한국에는 좀 어려운 문제죠. 전구는 분리되는 게 낫습니다. 주한미군이 축소되고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태평양에서 우리의 역할이 확대될 겁니다. 한미동맹의 적용 범위도 넓어지겠죠. 그건 우리 국민들이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G7에서 만난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G7에서 만난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

■ '동맹 현대화'는 불가피…'하나의 전구' 통합은 막아야

Q. 말씀을 종합하면, '동맹 현대화'에 맞춰 전작권 환수 등을 포함한 '자력자강'에 힘쓰되, '하나의 전구'와 같은 구조적 변화는 막아야 한다는 거네요.

A. 네. 그리고 인도 태평양에 중국을 자꾸 개입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중국을 배척하는 게 아니라고 얘기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10월에 또 APEC이 있잖아요. 인도 태평양 전체를 하나의 경제 공동체로 보는 개념이 있으니 안보 협력도 이야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Q. 정례적으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 등도 활용할 수 있겠죠.

A. 네. 북중러 북방 삼각과 한미일 남방 삼각이 서로 대립하는 현상은 당분간 피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대립으로 갈 필요는 없습니다. 구도는 그렇더라도 중국, 러시아, 또 심지어 북한하고까지 우리는 계속 양자적인 관계로 계속 우리의 진의를 전달해야 합니다. 결국 전쟁을 막는 게 외교의 목적입니다.

Q. 아태 지역에 여러 소다자 협의체가 있는데요. 쿼드(QUAD :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안보 협의체), 오커스(AUKUS : 미국, 영국, 호주의 안보 협의체)와의 협력은 어떻게 보시나요.

A. 우리가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거는 중국을 자극할 수 있고요. 그들 스스로 협의체를 확대할지도 불투명하고요. 오커스 필러2처럼 부차적 레벨, 세컨더리 레벨에서 협력하는 정도로 그들과 보조를 맞춰 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Q. 한국과 일본이 맞닿은 또 다른 문제는 트럼프 정부의 안보 비용 청구잖아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A. 이번 관세 협상처럼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시사점을 주고받는 거는 좋지만, 우리가 둘 다 미국의 동맹인데 그걸 공동 대응하긴 어려울 거예요. 다만 장기적으로는 한일 간에는 하여튼 안보 문제에서는 조금 더 긴밀히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제 미국은 장기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지배적인 행위자로 남아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까요.

Q. 또 한국과 일본의 공통적인 지위 하나가 나토(NATO)의 IP4 멤버라는 거죠.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하냐 마냐를 두고 논란도 있었는데, 나토의 태평양으로의 확장에 한국과 일본 그리고 호주 뉴질랜드가 함께 들어가는 형국이잖아요. 이 방향은 유지가 될까요?

A. 자유 진영 국가들이 서로 연대를 표시한다는 건 좋지만 글쎄요. 저는 나토가 동아시아 문제까지 정말 전력으로 도와줄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지금 러시아 막기도 급급한데 동아시아에서 중국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전력을 빼서 돌리지는 않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한국, 일본도 그쪽으로 보낼 수도 없고. 그리고 일본에서 무슨 '아시아판 나토' 이야기가 나오는데, 유럽하고 역사적으로도, 지정학적으로도, 시민의식도 유럽과 굉장히 차이가 커서 쉽지 않습니다.

이백순 전 주호주대사이백순 전 주호주대사

■ '과거사 논의'는 민간에서…K-콘텐츠 활용 가능

Q. 이번엔 한일 관계에 대해 여쭤볼게요.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전에 한일 정상회담을 하는 사실상 첫 대통령이 됐는데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그리고 앞으로 한일 관계는 어떻게 끌고 가는 게 좋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A. 그게 실용이죠. 가까운 나라 또는 먼저 가능한 나라를 먼저 만나면 되지, 뭐 미국이 항상 먼저 돼야 하고 그럴 필요는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요. 이제 한일 간에는 사실은 이제 아까 말씀드렸지만, 이 안보나 이런 측면에서는 미래적으로 봤을 때는 가까워져야 하는 나라인데 과거사 요인이 항상 있지 않습니까. 근데 과거사 문제는 더 이상 정부 간에 해결하려고 하고, 양자 간에 해결하려고 하는 건 시대 상황에 맞지 않다고 봅니다. 일본에선 이미 전쟁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져 버렸고, 일본 자체가 우경화가 심해 되고 있는데 그 나라 보고 자꾸 그렇게 이야기하면 결국은 관계가 나빠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리고 일본은 사실은 어떻게 보면 우리한테 약간의 자격지심도 있거든요. 그런 일본 국민감정도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Q. 그럼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A. 양자 간에, 정부 간에 해결하지 말고 저는 오히려 다자 간의 문제로, 그러니까 민간 차원에서 해결하는 게 훨씬 더 낫다고 봅니다. 정부는 미래와 협력 쪽으로 가고 과거사 문제는 다자에서 민간인들이, NGO들이 많이 해결하는 게 좋다는 겁니다. 또 문화 분야도 있습니다. 과거사에서 이제 위안부 문제라든지 강제징용 문제 이런 거는 분명히 인권 문제이기 때문에 국제적으로도 이 호소력이 있거든요. 유대인들은, 물론 독일이 사과했지만, 독일이 사과한다는 거는 사실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사과했지, 유대인을 박해했던 전체 역사에 대해 사죄한 건 아니거든요. 유대인들은 영화 '쉰들러 리스트'나 소설 '안나의 일기' 같은 콘텐츠를 끊임없이 만들었거든요. 우리는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K 콘텐츠가 있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이 했던 것처럼 영화도 만들고 뮤지컬도 만들고 해서 그런 거를 전 세계 사람이 알게 하면 되거든요. 그래서 일본이 부끄럽게 느끼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만들면 그거로 족하다는 겁니다.

취재 : 김경진, 송금한
촬영 : 이상훈, 김철호, 이중우, 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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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미경중’ 유효기간 끝났다…이제는 ‘자력자강’의 시대” [광복80년]①
    • 입력 2025-08-17 07:00:22
    • 수정2025-08-17 07: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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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80년, 동북아시아의 안보 환경은 빠르게 변했습니다. 한국 전쟁의 아픔을 겪으며 남북이 갈라섰고,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게 됐습니다. 1990년대 탈냉전을 거치면서 안보 환경은 이완됐지만, 북한의 핵 개발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80년 동안 초강대국인 미국의 억제력을 등에 업고 빠르게 도약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80년 만에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 됐고, 세계 5위의 군사력을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동북아 안보 환경은 커다란 변화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80년 사이 중국은 미국을 빠르게 뒤쫓았고, 이제는 더 이상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이 아닙니다. '미·중 전략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고, 미국은 동북아에서의 관여를 점차 줄여나가며 대북 견제의 무게 추를 중국 견제 쪽으로 옮기려 하고 있습니다.

KBS는 광복 80년을 맞아, 앞으로 한반도 안보 지형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묻는 전문가 연속 인터뷰를 준비했습니다. 첫 순서로 이백순 전 주호주대사의 인터뷰를 싣습니다. 이 전 대사는 1985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고, 35년 동안 외교부에 근무하며, 북미국장, 주호주대사 등을 지냈습니다. 이 전 대사는 미국과 안보를, 중국과 경제를 협력하는, 이른바 '안미경중'의 유효기간은 끝났다며, 이제는 '자력자강'의 시대라고 강조했습니다.

[광복 80년, 동북아의 미래를 묻다 : KBS 연속 인터뷰]

① 이백순 전 주호주대사
② 강창일 전 주일대사
③ 조성렬 전 오사카 총영사
④ 장성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연관 기사] 판 바뀌는 동북아…한일·한미일 안보 협력 진화할까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331423


Q. 최근 펴낸 저서(격변기 외교의 새 길 찾기)에서 지금 시점을 국제정세 급변하는 '대변환기'라고 정의내리셨어요.

A. 미국이 쇠퇴하고 있습니다.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Pax Americana :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가 이제 황혼기에 접어들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죠. 이걸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이나 당선됐다는 건, 그 점을 더 분명히 하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지난 80년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죠. 또 중국은 빠른 부상으로 80년 전 같지 않은 중국이 된 거죠. 그래서 미·중 간에 패권 경쟁이 벌어지는 겁니다. 이제 두고 봐야죠. 미국이 트럼프가 말한 것처럼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를 통해서 다시 회복할 것인가, 아니면 기회를 놓쳐버리고 중국이 더 앞서 나갈 것인가. 그 변동 속에서 그 중간에 낀 나라들은 굉장히 지금 어려운 처지에 있는 거죠.

Q. 실용 외교를 지향하는 이재명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절한 자리 잡기를 하고자 하는데, 미국에선 대놓고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은 꿈도 꾸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거든요.

A. 저는 7~8년쯤부터 안미경중이 유효기간이 다 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단 우리가 중국하고 초격차를 유지하지 못하면 중국으로부터 우리가 경제적으로 이득을 취할 게 오히려 더 없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을 따라가는 건 쉬운데 중국으로부터 도망가는 건 힘듭니다. 뒤도 쳐다보고 앞으로 나가는 길도 보고 뛰어야 돼요. 근데 우리가 그걸 못했단 거죠. 또 미국이 이전 같지 않기 때문에 안보도 100% 미국에 의존한다는 것은 과거의 문법이라고 봅니다.

Q. 그러면 새로운 문법은 뭘까요?

A. 우리가 자력자강해야죠. 이제 우리 스스로 안보를 지킬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글로벌 강국이라고 하고, 국방력 세계 5위라고 하고 경제력은 10위권이라고 그러는데 아직도 우리는 정신적으로 굉장히 의존성이 강하고 남을 너무 과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 같은 격변기의 국제 정세에서는 남을 믿으면 나중에 큰 어려움이 될 수 있습니다.

Q. 미국 국방정책을 설계한 앨브리지 콜비 미 국방 차관도 전시작전권 환수를 계속 이야기하는데, 대사님 말씀하신 부분과도 맞닿아 있네요.

A. 일각에선 전시작전권 환수를 서두른다고 지적하는데, 이 문제가 나온 지 거의 50년 가까이 됐습니다. 미국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한다고 7사단을 뺄 때 앞으로 한국 국방은 우리 스스로 책임져야겠다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작권 환수 검토 지시를 내렸어요. 그게 1976년입니다. 노태우 정부 때에도 대통령 공약으로 전작권을 환수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이걸 못한다고 버티면 두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는 미국이 콜비가 계속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반도 안보는 한국이 스스로 책임져라, 이렇게 나왔을 때 앞으로 어떻게 하냐는 겁니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거죠. 또 이걸 계속 우리가 안 하겠다면 미국에 꽃놀이패를 주는 셈이죠. 그걸 빌미로 안보 비용 청구서의 비용을 더 높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Q. 결국 흐름은 한국이 북한에 대한 재래식 전력 방어를 맡고, 미국이 북핵에 대한 확장억제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가는 거겠죠.

A. 전작권을 우리가 환수받는다고 해도 실제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미국이 결심할 겁니다. 한반도에 개입할 거냐, 한반도 전쟁에 개입할 때는 다시 전시 전작권이 미국으로 넘어가게 돼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예전부터 그 준비를 다 하고 있고, 그래서 미래 연합사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겁니다.

Q. 지금 미국이 이야기하는 '동맹 현대화'가 진행될 경우,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국의 의견도 중요하게 반영되어야 할 텐데요. 미국의 생각처럼 주한미군 전력이 중국 견제에까지 활용될 경우 중국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을 거거든요. 이 문제는 어떻게 다뤄야 한다고 보시나요?

A. 그 문제에 대해서 보수 정부도 진보 정부도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던데 저는 타이완 문제는 조금 이제 별개로 하고요. 남중국해 문제를 우리가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거는 좀 굉장히 이상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남중국해는 한국의 '파이프라인'입니다. 그 길을 통해서 한국의 모든 원자재와 에너지가 다 수입되거든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은 거기에 대해서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죠. 심지어 제가 있을 때 호주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우리 80%의 물동량이 거기를 통해서 들어오는데 다른 나라가 다 책임져주고 우리는 관여 안 해도 된다는 거는 좀 무책임한 태도죠. 중국을 상대로는 '항행의 자유'를 보장받으려 한다고 설명하면 됩니다.

Q. 타이완은 별개로 한다고 하신 이유가 타이완은 역시 중국이 이야기하는 '핵심 이익'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A. 네. 그거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 준비는 해야 해요. 타이완 문제가 터지면 중국, 북한, 러시아, 이 삼각 연대가 한반도에서도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상황들을 보면서 굉장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거 같습니다.

Q. 미국이 이야기하는 '동맹 현대화'의 흐름은 사실 거스를 수가 없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데, 이런 과정에서 '한미일 안보 협력'은 강화되는 방향이겠죠.

A. 동아시아 안보 지형이 막 바뀌고 있잖아요. 그중에서 제일 큰 게 미국의 역할이 점차 줄어든다.
그리고 북중러의 연대가 강해진다. 이런 상황에 한국이 100% 독자적으로 안보를 책임질 수 없으니 북중러에 대항해 한미일 안보 연대를 만드는 게 자연스러운 대응입니다. 사실 또 그게 미국의 오랜 염원이었는데, 한일 관계 때문에 잘 안됐잖아요. 이제 한일 관계가 조금씩 좋아지고 하면서 그리고 또 북중러가 강화되면서 한미일 안보 협력이 강화되는 거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일본에서는 더 나가 '하나의 전구' 구상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A. 그건 한국에는 좀 어려운 문제죠. 전구는 분리되는 게 낫습니다. 주한미군이 축소되고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태평양에서 우리의 역할이 확대될 겁니다. 한미동맹의 적용 범위도 넓어지겠죠. 그건 우리 국민들이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G7에서 만난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
■ '동맹 현대화'는 불가피…'하나의 전구' 통합은 막아야

Q. 말씀을 종합하면, '동맹 현대화'에 맞춰 전작권 환수 등을 포함한 '자력자강'에 힘쓰되, '하나의 전구'와 같은 구조적 변화는 막아야 한다는 거네요.

A. 네. 그리고 인도 태평양에 중국을 자꾸 개입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중국을 배척하는 게 아니라고 얘기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10월에 또 APEC이 있잖아요. 인도 태평양 전체를 하나의 경제 공동체로 보는 개념이 있으니 안보 협력도 이야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Q. 정례적으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 등도 활용할 수 있겠죠.

A. 네. 북중러 북방 삼각과 한미일 남방 삼각이 서로 대립하는 현상은 당분간 피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대립으로 갈 필요는 없습니다. 구도는 그렇더라도 중국, 러시아, 또 심지어 북한하고까지 우리는 계속 양자적인 관계로 계속 우리의 진의를 전달해야 합니다. 결국 전쟁을 막는 게 외교의 목적입니다.

Q. 아태 지역에 여러 소다자 협의체가 있는데요. 쿼드(QUAD :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안보 협의체), 오커스(AUKUS : 미국, 영국, 호주의 안보 협의체)와의 협력은 어떻게 보시나요.

A. 우리가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거는 중국을 자극할 수 있고요. 그들 스스로 협의체를 확대할지도 불투명하고요. 오커스 필러2처럼 부차적 레벨, 세컨더리 레벨에서 협력하는 정도로 그들과 보조를 맞춰 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Q. 한국과 일본이 맞닿은 또 다른 문제는 트럼프 정부의 안보 비용 청구잖아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A. 이번 관세 협상처럼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시사점을 주고받는 거는 좋지만, 우리가 둘 다 미국의 동맹인데 그걸 공동 대응하긴 어려울 거예요. 다만 장기적으로는 한일 간에는 하여튼 안보 문제에서는 조금 더 긴밀히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제 미국은 장기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지배적인 행위자로 남아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까요.

Q. 또 한국과 일본의 공통적인 지위 하나가 나토(NATO)의 IP4 멤버라는 거죠.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하냐 마냐를 두고 논란도 있었는데, 나토의 태평양으로의 확장에 한국과 일본 그리고 호주 뉴질랜드가 함께 들어가는 형국이잖아요. 이 방향은 유지가 될까요?

A. 자유 진영 국가들이 서로 연대를 표시한다는 건 좋지만 글쎄요. 저는 나토가 동아시아 문제까지 정말 전력으로 도와줄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지금 러시아 막기도 급급한데 동아시아에서 중국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전력을 빼서 돌리지는 않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한국, 일본도 그쪽으로 보낼 수도 없고. 그리고 일본에서 무슨 '아시아판 나토' 이야기가 나오는데, 유럽하고 역사적으로도, 지정학적으로도, 시민의식도 유럽과 굉장히 차이가 커서 쉽지 않습니다.

이백순 전 주호주대사
■ '과거사 논의'는 민간에서…K-콘텐츠 활용 가능

Q. 이번엔 한일 관계에 대해 여쭤볼게요.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전에 한일 정상회담을 하는 사실상 첫 대통령이 됐는데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그리고 앞으로 한일 관계는 어떻게 끌고 가는 게 좋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A. 그게 실용이죠. 가까운 나라 또는 먼저 가능한 나라를 먼저 만나면 되지, 뭐 미국이 항상 먼저 돼야 하고 그럴 필요는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요. 이제 한일 간에는 사실은 이제 아까 말씀드렸지만, 이 안보나 이런 측면에서는 미래적으로 봤을 때는 가까워져야 하는 나라인데 과거사 요인이 항상 있지 않습니까. 근데 과거사 문제는 더 이상 정부 간에 해결하려고 하고, 양자 간에 해결하려고 하는 건 시대 상황에 맞지 않다고 봅니다. 일본에선 이미 전쟁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져 버렸고, 일본 자체가 우경화가 심해 되고 있는데 그 나라 보고 자꾸 그렇게 이야기하면 결국은 관계가 나빠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리고 일본은 사실은 어떻게 보면 우리한테 약간의 자격지심도 있거든요. 그런 일본 국민감정도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Q. 그럼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A. 양자 간에, 정부 간에 해결하지 말고 저는 오히려 다자 간의 문제로, 그러니까 민간 차원에서 해결하는 게 훨씬 더 낫다고 봅니다. 정부는 미래와 협력 쪽으로 가고 과거사 문제는 다자에서 민간인들이, NGO들이 많이 해결하는 게 좋다는 겁니다. 또 문화 분야도 있습니다. 과거사에서 이제 위안부 문제라든지 강제징용 문제 이런 거는 분명히 인권 문제이기 때문에 국제적으로도 이 호소력이 있거든요. 유대인들은, 물론 독일이 사과했지만, 독일이 사과한다는 거는 사실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사과했지, 유대인을 박해했던 전체 역사에 대해 사죄한 건 아니거든요. 유대인들은 영화 '쉰들러 리스트'나 소설 '안나의 일기' 같은 콘텐츠를 끊임없이 만들었거든요. 우리는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K 콘텐츠가 있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이 했던 것처럼 영화도 만들고 뮤지컬도 만들고 해서 그런 거를 전 세계 사람이 알게 하면 되거든요. 그래서 일본이 부끄럽게 느끼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만들면 그거로 족하다는 겁니다.

취재 : 김경진, 송금한
촬영 : 이상훈, 김철호, 이중우, 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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