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지난 24일 진행된 서울시의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는 투표율이 25.7%에 그쳐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하고 무효가 됐습니다.
무상급식에 대한 정책 투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가세하면서 정치투표로 변질됐고 언론들도 정책 내용보다는 정치권의 공방이나 정파의 이해득실을 따지는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관련된 언론 보도 내용을 점검해보겠습니다.
박진현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질문>
박기자, 24일 치러진 주민투표는 결국 무효로 처리됐는데요.
언론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답변>
네, 오세훈 시장이 시장직을 내걸었던 투표였던 만큼 언론들은 정치적 파장을 분석하는데 집중했습니다.
정작 무상급식의 내용이나 예산 문제 등 본질적인 기사는 생산하지 못했습니다.
<녹취> 임승창·오세훈(K 8.24) :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투표 결과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당당하게 참여해주신 서울시민 유권자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지난 24일 방송 뉴스는 투표율과 정치권의 이해득실을 따지는데 집중했습니다.
<녹취> 김영인(8.24 기자) : "2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인 곳은 서초구였고, 강남과 송파구도 30%를 넘겼습니다."
<녹취> 김세진(MBC 8.24 앵커) : "한나라당은 투표 무산의 책임을 민주당으로 돌리며 차단막을 쳤고, 민주당은 무상복지 정책이 탄력을 받게 됐다며 반겼습니다"
신문은 우선 투표율이 낮아진 원인에 대해서 뚜렷한 시각차이를 보였습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보편적 복지를 원하는 시민의 열망이 투영된 것으로 봤습니다.
<녹취> 한겨레 8.25 31면 사설 : "주민투표에서 확인된 민심은 분명하다. 무조건적인 편가르식 복지 논쟁은 신물이 난다는 하소연이자 포퓰리즘이니 망국병이니 하는 딱지 붙이기 경쟁을 제발 멈추라는 명령이다."
반면 조선일보는 패배의 원인으로 한나라당의 분열을 지목했습니다.
<녹취> 조선 8.25 38면 논설위원 칼럼 : "33.3% 투표율이 불가능하더라도 30% 선을 넘기기 위해, 그것도 어려우면 25%만이라도 넘기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한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한나라당에 그런 모습을 기대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수수방관했고 지리멸렬했다."
동아일보는 야당의 투표거부운동과 한나라당의 분열을, 중앙일보는 전략의 부진으로 패인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투표 결과에 대한 정치적 분석외에 정작 이번 주민투표의 의미와 남은 숙제 등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질문>
사실 주민 투표 이전에도 정책보다는 정치적 공방을 중심으로 보도가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답변>
네, 말씀하신대로 무상급식의 본질은 사라지고 정치적인 구호만 난무했다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대선출마 포기 등 오시장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정치적 분석에 매진했기 때문입니다.
<녹취> 이종현(서울시 대변인) : "행정적,시간적 제한이 있기 때문에 오늘 오전에 무상급식 주민 투표를 발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1일에 서울시가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를 발의하면서부터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됐고 언론도 이에 맞춘 기사들을 쏟아냅니다.
이 때문에 주민투표가 발의된 후 열흘이 넘도록 무상 급식을 둘러싼 정책 내용에 진지하게 접근한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정치권 중심의 보도는 오세훈 시장의 대선 출마 포기 선언을 계기로 증폭됐습니다.
<녹취> 이상현(8/12 MBC 뉴스 데스크) : “주민투표가 10여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서울 시민들의 관심이 저조하자 투표율을 높이고, 야권의 투표 거부 운동도 돌파하려는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신문들은 오 시장의 대선 출마 포기가 향후 정치 역학구도에 어떤 변화를 불러 올 것인지 주목합니다.
<녹취> 조선일보 8/13 04면 : “오 시장은 친이계가 내세울 ‘박근혜 대항마’ 중 한 명으로 거론됐지만 이날 대선 레이스 포기를 선언함으로써 ‘박근혜 대세론’에 더욱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있다.“
<녹취> 8.13 경향 04면 : “박근혜 전 대표의 독주체제는 더욱 공고화할 공산이 커졌고, 대항마 후보군은 전열이 다시 짜이는 양상이다. 이 때문에 경선 흥행에도 비상이 걸릴 판이다.“
그리고 주민 투표 사흘을 앞 둔 지난 21일.
오 시장이 주민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선언했고 이는 언론으로부터 또 한번 주목받습니다.
무상급식이 무엇이기에 시장직을 걸게 했느냐에 대한 내용보다는 정치적 셈법에 치중했습니다.
<녹취> 조선 8/22 01면 : “오시장이 시장직을 건 것이 투표율에 미칠 영향에 대해 한나라당과 여론 조사 기관들은 “3~7% 포인트 정도 상승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녹취> 한겨레 8/22 05면 : “9월 사태 땐 10월 26일 보선 오세훈 “시점 밝히기엔 일러” 여당선 “국감 뒤로 미뤄야” 일부 “차라리 10월 보선이 낫다”
이처럼 정책이 사라지고 오세훈 시장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그의 동정이 주요한 뉴스로 등장합니다.
심지어 그가 몇 번 눈물을 흘렸는가가 제목으로 뽑히면서 그 횟수에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녹취> 중앙 22, 4면 : "여섯 번 눈물, 큰절하고 무릎 꿇고...경향 22. 2면 : 무릎 꿇고 네 번의 눈물..감성에 호소한 오 시장"
방송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녹취> 김상협(KBS 8.21) : "오 시장은 평소의 자신에 찬 모습과는 달리 눈물까지 보였고, 회견문을 다 읽고 나선 무릎을 꿇고 투표 참여를 호소했습니다."
문제는 이같은 보도로 정책 투표가 정치 투표로 변질됐다는 것입니다.
또 오 시장에게 초점이 맞춰지면서 유권자들에게는 무상급식 자체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왜 무상급식이 문제가 되는지 소득수준 50%를 어떻게 선정하는지 투표 결과에 따른 변화는 무엇인지 등 투표와 관련된 쟁점에 대한 기사가 투표 이틀 전까지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주민투표는 무상 급식에 대한 민의보다는 개인의 정치 성향이 드러날 수 밖에 없었다는 분석입니다.
<녹취> 권상희 : “미디어의 보도가 본질의 보도가 되지 않다 보니까 결과, 수용자들 독자들이 나타내는 의견 표출이 결국은 정책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인 이해의 투표결과가 되기 때문에, 투표결과에 대한 신뢰도라든가 정확한 타당도, 투표의 목적에 맞지 않을 수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
<질문>
언론의 가장 큰 힘이라면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일 것인데. 이미 실시되고 있는 무상급식 현장과 관련한 기사들이 많이 있었나요?
<답변>
네. 투표가 발의된 시점이 방학이었다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급식 현장과 관련된 기사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얼마 되지 않은 관련 기사도 뚜렷한 시각차를 보였습니다.
<녹취> 현원섭 : "찬반 논란이 거셌던 학교 무상급식이 오늘부터 시작됐습니다."
지난 3월 이후 언론은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점검하기도 했지만 구체적인 검증과 비교를 담은 기사는 많지 않았습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발의된 뒤 약 한 달간의 보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방학중이었던 만큼 방송은 한건도 없었고 주요 5개 일간지에 작성된 무상급식 현장과 관련된 기사는 단 3건에 그쳤습니다.
같은 사안을 다루고 있어도 그 시각은 정반댑니다.
<녹취> 중앙 8.8 18면 : "서울의 한 초등학교 영양교사 김모씨는 “예기치 않은 기후변화 때문에 안정적인 식재료 공급체계가 불가능하다”며 “무상급식 정책으로 예산이 위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식자재 선택 폭도 좁아졌다”고 말했다."
<녹취> 동아 8.23 12면 : “B초 관계자도 ”과일과 고기반찬을 줄였다. 친환경 재료 구입으로 다른 반찬이 부실해 질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 비해 한겨레신문은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녹취> 한겨레 8.9 5면 : “무상급식의 힘! 서울시내 초등학교 10곳 가운데 7곳이 급식 재료에 친환경 농산물을 50% 이상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극과 극으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 기사들은 결국 수용자들에게 한쪽 시각만 제공해주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녹취> 최영묵(성공회대 교수) : “기본적인 사실은 비슷해져야 되는데 그것조차도 일치하지 않고 전혀 다른 상황을 얘기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어느 매체를 보느냐에 따라서 세상을 달리 봐버리니까 그럼 언론을 아무리 봐도 세상을 코끼리의 한 다리만 보는 것이 될 수 있고...”
대신 언론은 개표기준인 투표율 33.3%에 집중했습니다.
보수성향의 신문과 진보성향의 신문들은 여.야의 대리전을 수행하는 듯 했습니다.
<녹취> 동아 8.2 31면 : “이번 주민 투표는 결과에 따라 무상 급식뿐 아니라 복지정책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달 24일 투표일에 서울 시민의 적극 참여가 중요한 이유다.”
<녹취> 한겨레 8.10 31면 : “투표 대상이 된 정책의 지속을 바라는 유권자라면 주민 투표에 참여해 현행 유지 뜻을 밝히거나 주민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나타내면 된다.”
이러한 태도는 자체 여론조사를 보도하는데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조선일보는 여론 조사결과 무상급식 투표에 꼭 참여하겠다는 응답이 34.6%로 나타나 실제 투표에서 33.3%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조선 7.25 1면 : “지난 1년여 사이에 실시된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의 지방선거와 재보선 3-4주일 전 여론조사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적극 투표의향률과 실제 투표율이 비슷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최종 투표율은 33.3% 안 밖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선거 운동 자체가 뜨거운 공직 선거의 투표율 자료를 이번처럼 한쪽이 투표 불참을 선언한 상황에 대입한 것은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라는 분석입니다.
한겨레의 여론 조사 보도도 투표 반대측에 힘을 실어 주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녹취> 한겨레 7.25 06면 :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확대’와 ‘현행유지’ 여론이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까지 동원하면서 이 사실을 부각했습니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가장 관심을 끌만한 항목인 무상급식 적용 범위에 대한 문항이나 주민투표 당위성에 대한 문항 등은 뒤에 배치했습니다.
편집과정에서 비중이 낮게 취급된 이들 문항에 대한 응답은 오세훈 시장 쪽을 지지하는 비율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녹취> 김영원(숙대 교수) : “여론 조사를 보도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왜곡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인데 이 부분에 어떤 가치를 두고 보도를 하게 된다면 그 자체가 왜곡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질문>
주민투표와는 조금 다르지만 주민소환투표가 과거에 시행됐지 않습니까?
두 투표 모두 투표율이 33.3%를 넘어야 개표가 가능한 점이 같아서 자주 비교 되곤 했는데요.
과거 제주지사 소환투표 때와 지금의 보도 태도를 비교해보면 상반된 점이 있죠?
<답변>
네, 민의를 수렴한다는 점에서 두 제도 모두 투표라는 형태는 같지만 상황에 따라 이를 바라보는 언론의 시각이 달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09년 당시 해군기지건설을 추진하던 김태환 제주도지사에 대해 주민소환투표가 발의됐지만 투표율이 11%에 그쳐 결국 부결됐습니다.
김 지사측이 투표 불참 운동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를 바라보는 언론의 시각이 이중적이라는 점입니다.
이번 주민 투표에서 보수 성향의 언론은 무상급식 주민투표 불참 운동을 벌인 민주당을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녹취> 동아 8.24 35면 : “나쁜 투표라면 휴일이 아닌데도 귀중한 시간을 내 투표장으로 향하는 시민은 '나쁜 시민'이란 말인가? 국민 참여의 깃발을 흔들던 세력이 국민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기는 커녕 '나쁜 투표'니 '편 가르기'니 하고 비방하는 것은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하지만,과거 보도에서는 김태환 지사의 투표 불참 운동으로 소환투표자체가 무효가 되자 제주도민의 현명한 선택이라고 규정합니다.
<녹취> 동아 2009년 8월 27 31면 : “국책사업인 해군기기 유치 때문에 자치단체장이 주민 소환 절차의 대상이 된 것은 유감스럽지만, 제주도민의 현명의 선택으로 불발에 그쳐 그나마 전화위복이 됐다.”
이 같은 시각 변화는 진보 성향 언론도 마찬가집니다.
<녹취> 경향 8.24 35면 :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오염된 투표라면 이를 거부하는 것도 정당한 민주적 의사 표시에 속한다. 그런 투표를 거부하는 것은 제2,제3의 오염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투표 거부도 중요한 의사표현이라고 규정했지만 2년 전에는 다른 의견을 내놨습니다.
<녹취> 경향 2009년 8.28 31면 : “먼저 투표율 ‘3분의 1 이상’ 요건을 완화하고 ‘투표 불참’운동을 제재할 필요가 있다. 현행법은 투표율이 3분의 1 미만이면 개표하지 않게 돼 있기 때문에 제주에서 보았듯이 소환 대상자가 이 조항을 악용하는 것이다.”
결국, 투표에 대한 시각도 정파적 이해 관계에 따라 다르게 표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나타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독단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주민투표제입니다.
이 제도의 취지는 궁극적으로 지자체와 주민들 사이의 소통을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언론은 이번 주민투표와 관련해 소통을 위한 노력보다는 정파적 시각에 갇혀 오히려 유권자들이 냉정한 판단을 내리기 힘든 상황으로 몰아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