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참혹한 전쟁은 수많은 아픔과 상처를 남겼지만 기적같은 희망의 순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생과 사를 가르는 한 겨울 흥남부두의 피난선 위에서 모두 다섯 명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들의 기막힌 사연을 들어보시죠.
조성훈 기자입니다.
<리포트>
1950년 12월 23일 함경남도 흥남부두는 몹시도 추웠습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시작된 갑작스런 피난길.
유일한 탈출구였던 마지막 미군 수송선을 타기 위해 너나없이 몰려들면서 부두앞은 또다른 전쟁터가 됩니다.
<녹취> 심왕식(당시 피난민) : "그물을 잡고 올라가는데 어린애 업고 올라가던 여자가 (힘에 부쳐) 떨어지고..."
어렵사리 올라탄 배는 이미 정원의 4배를 넘겼고.
선창에선 모두가 뒤엉킨 채 눈보라와 맞서야 했습니다.
그렇게 생과 사가 오가는 긴박한 순간, 기적처럼 새로운 생명들이 태어납니다.
모두 5명, '김치'들입니다.
<녹취> 로버트 러니(당시 수송선 갑판장) : "우리는 아이들을 김치12345라고 이름지었습니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김치라는 것을 알고 그렇게 지은 겁니다."
그리고 60여년 뒤, 다섯번째 김치, 김치 5인 이경필씨가 그 바다위를 다시 찾았습니다.
<녹취> 이경필(김치5) : ""제 고향이 여기 바다거든요. 바다에 있는 배 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씨에게 전쟁의 기억은 이젠 '평화'로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끝까지 지켜준 부모님의 평생 소원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왜 '평화'라고 하냐고 물어봤더니 전쟁하지 말고 평화롭게 살자!"
살아남은 '김치'들은 참혹한 전쟁속에서 피어난 희망이었고, 지금도 여전한 분단 현실의 살아있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KBS 뉴스 조성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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